한국 언론에 필요한 미래의 보도준칙

우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을 보도한다


보도 개요

1. 제목: 샌디에이고의 목소리(Voice of San Diego) 보도준칙

2. 매체(나라): 샌디에이고의 목소리(미국)

3. 창간: 2005년 2월

4. 특징: 지역 현안에 밀착한 탐사보도

5. 웹: http://www.voiceofsandiego.org/ (※‘크롬’에서 접속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6. 수상: 미국 탐사기자협회(IRE) 탐사보도상(2008년), 미국 기자협회(the Society of Professional Journalists) 시그마델타카이상(2007년)


보도요약

미국 최초이자 (아마도) 세계 최초로 후원금을 통해 운용되는 탐사보도 온라인 뉴스 매체 ‘샌디에이고의 목소리’의 보도준칙은 기계적 중립과 관습적 보도를 지양하고, 진실을 향한 끈질긴 추적과 심층 탐사보도, 그리고 좋은 삶을 위한 지식과 분석의 제공에 초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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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디에이고의 목소리’는 세계 최초로 후원금을 통해 운용되는 탐사보도 온라인 뉴스 매체이다.


올해 초부터 잡스런 글을 귀한 지면에 실었다. 두 달에 한 번꼴이었는데, 그나마 한 차례 펑크내는 바람에 겨우 5번을 썼다. 그래도 아주 힘에 겨웠다.

연재의 취지는 서구 선진 언론의 좋은 기사를 소개한다는 것이었지만, 외국에 살았거나 잠깐이라도 연수를 다녀온 적이 없으니 오직 ‘구글 검색’에 의존해야 했다.

디지털 문명 덕분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 찾다보면 어지간한 사실관계는 파악할 수 있었지만, 현지 사정을 정확히 모르는 비전문가가 공연히 아는 체 하는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그 뉴스룸들을 제대로 구경했다면, 나는 지금쯤 진짜 좋은 기자가 됐을 것이다.

이제 이번 글로 연재를 마치게 되니 속이 아주 후련할 뿐만 아니라, 죄책감에 시달릴 일도 줄어들게 됐다.

마지막 글이니만큼 이번에는 평소에 하지않던 짓을 하려고 한다. 기사가 아니라 기사에 대한 규칙과 다짐, 즉 보도준칙 하나를 소개하겠다.


올바른 보도준칙이란?

‘보도준칙’이 이제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한겨레는 2007년 1월 보도준칙을 제정했다. 국내 개별 언론사가 보도준칙을 마련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 얼마나 많은 언론사가 자체 보도준칙을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기자협회가 자살보도준칙, 재난보도준칙 등을 속속 만들면서, ‘취재보도의 표준’을 만들어 공표하는 것이 일상다반사가 됐다.

한겨레 보도준칙 제정 당시 나는 이 신문사의 노동조합 미디어국장이었다. 준칙 제정을 주도한 사측과 마주 앉아 조문 하나하나를 검토하고 논의했다. 처음에는 격론이 일었다.

그 초안은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의 보도준칙을 모범삼은 것이었는데, 나는 좀 불만이었다. 그런 나라의 언론은 기자 각자가 자유롭게 취재하고, 최종 편집 단계에서 에디터가 좋은 기사를 솎아낸다.
 
취재 전반을 에디터가 좌지우지할 여지가 적다. 따라서 처음부터 각종 윤리적 문제를 기자 스스로 꼼꼼히 점검하도록 만드는 ‘사전 규율’이 필수적이다.

반면 한국 언론은 (한겨레도 마찬가지인데) 기사의 구상 단계부터 데스크가 적극 개입한다.

데스크가 승인하지 않은 아이디어를 기자가 알아서 취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취재 동선까지 데스크가 개입한다. 따라서 윤리적 문제를 포함하여 ‘좋은 취재와 보도’가 탄생하는 관건은 ‘좋은 데스크’의 존재 여부다.
 
뉴스룸 지휘부의 관성과 관습을 혁파하지 못한 상태에서 몇몇 선언적 조항으로 뉴스의 무엇을 바꿀 수 있겠나 싶었다. 오히려 진실을 끈질기게 추적하려는 현장 기자의 발목을 잡아채는 족쇄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헌법 조항이 아름다워도 이를 적용하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구성이 신통찮으면, 아름다운 헌법의 문장이 정의를 구현하는 잣대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여겼다.

그런데 격론 과정에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어쨌건 그래도 좋은 헌법이 필요한 것이다. 권력자가 무능부패할지라도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기 위해 기대볼 만한 ‘옳고 바른 글’이 있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도준칙 제정 과정에 숟가락을 하나 얹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그 문장이 아름답긴 하지만, 기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정말 좋은 기사를 쓰는 것으로 이끌기엔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진실을 보도하겠다’는 다짐의 문장에서 무엇이 빠진 것일까.


꿈에 그리던 보도준칙의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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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에 올라온 샌디에이고의 목소리 기자들의 다양한 활동 모습.


그러다 샌디에이고의 목소리(The Voice of San Diego, 이하 VOSD)를 발견했다. 2005년 2월 창간된 이 매체는 미국 최초의 비영리 디지털 뉴스 기업이다.
 
개인 또는 재단의 후원만 받아 운영되는데, 창간 10년이 지난 다음에도 ‘디지털 시대에 지속가능한 탐사보도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당연하게도 여러 탐사보도 관련 언론상을 수상하고 있다. 한국의 ‘뉴스타파’도 이와 비슷한 모델의 언론이다.

이들이 홈페이지에 밝힌 ‘우리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샌디에이고 지역을 위해 경천동지할(groundbreaking) 탐사보도 저널리즘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것. 지역민들에게 시민 참여를 위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 지역민들이 좋은 정부 및 사회 진보를 위한 대변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심층 분석을 제공하는 것.”

이들이 독자에게 자랑스레 내세우는 ‘우리의 정신(The Spirit Behind The Voice)’이라는 것도 있는데, 한국 언론사마다 채택하고 있는 ‘윤리강령’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 제목이 흥미롭다.

‘우리의 정신-정직하고(Honest), 불경스러우며(Irreverent), 매력 있는(Engaging)’. 해석하자면, 진실에 정직하고, 권력에 불경하며, 독자에게 매력 있는 언론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그 아래에 자신들의 지향을 적었다. 다소 발췌하고 의역하여 옮긴다.

우리는 여느 언론과 다르다. 우리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더 깊이 파고든다.

혼란스런 뉴스를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기사로 바꾸기 위해 시간을 바친다. 우리는 모든 기사를 보도하진 않는다. 우리는 자동차 추격이나 화재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다.

우리의 임무는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을 보도하는 데 있다. 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는 방식으로 보도한 것을 보도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

복잡한 사안을 하루 만에 보도할 수는 없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지속적인 내러티브를 제공하는 심층적인 탐사보도에 매진한다. 내러티브는 우리 기사의 전형이다.

우리의 기자들은 정치, 교육, 경제, 예술 등 담당을 갖고 있지만, 그 담당에 묶여 있진 않다. 기자들은 그들이 주도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내러티브를 담당한다.


이를 더 상세하게, 특히 기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만들어둔 보도 준칙(reporter guideline)이 있다.

짧은 영어 실력 탓에 전체적으로 의역했고, 번역이 힘들어 두어 대목은 생략했으나, 그래도 오역이 많을 것이다.

원문은 여기서(http://www.voiceofsandiego.org/reporter-guidelines) 확인할 수 있으니, 오역 등을 알려주시면 바로잡겠다.

군데군데 개인의 잡생각을 주석으로 넣었다. 여하튼 내가 꿈꾸었던 보도준칙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겼다.
 
좋은 기사를 도모하는 한국의 모든 기자들에게 이제 건넨다. 우리에게도 언젠가 이런 준칙 아래 취재보도할 날이 있긴 있을 것이다.

■ VOSD의 보도준칙

VOSD는 대부분의 전통적 뉴스룸과 다른 방식으로 취재와 보도에 접근한다.

우리는 객관성 등에 대한 여러 질문을 받는데, 이것은 언론이 직면한 주요 이슈다. 아래는 우리가 기자들에게 건네는 원칙과 생각(the guiding principles and ideas)이다. 당신(기자)이 가진 모든 질문에 이 내용이 도움되길 바란다.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거나, 다른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할 때만 우리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기사에 가치를 더해야 한다. 우리는 특별해야(unique) 한다.

기사 쓸 때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맥락(context), 권위(authority), 그리고 발생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Not just what is happening, but what it means).

객관성 따위는 없다.

그러나 공정성은 중요하다(There is such thing as fairness).

그러나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그들 자신만의 여과장치를 통해 본다. 그것을 명심하면서 당신을 자유롭게 하라. 그것이 당신을 조절하게(regulate) 하라.1

우리는 정치적 정체성, 이데올로기 또는 도그마에 이끌리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을 취재할 것인지,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모든 결정은 우리 자신의 주관적 판단을 통과해 이뤄진다.

우리는 투명하고 독립적인 능력과 우리의 공동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평가하는 능력에 의해 지도받으며(guided), 진실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다.

혁신하라. 모든 것은 항상 나아질 수 있다.

우리는 도그마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편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샌디에이고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더 나은 기반시설, 더 건강한 환경, 더 나은 교육 체제, 책임 있고 효율적이며 투명한 정부, 이웃의 어려움에 대한 더 나은 이해, 번창하는 경제와 끊임없이 증진하는 삶의 질을 가질 수 있다.

만일(우리에게) 편견이란 게 있다면, 이런 믿음들이다.

전문가(expert)가 되어라.

열심히 취재하고 보도하면 권위 있는 기사를 쓸 권리를 얻는다.

“그가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고 쓰지 말라.
 
“긍정적 측면도 있고 부정적 측면도 있다”는 헤드라인을 쓰는 날, 우리의 죽음이 시작된다. 50 대 50의 균형 같은 것은 없다. 진실은 존재하고, 우리는 그 진실에 가닿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2

때로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관점은 50 대 50으로 다룰 만한 가치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어떤 일에 두가지 측면이란 없다.
 
누가 대표되지 않고 있는가? 만일 그들이 발언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저 질문만 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사를 통해 질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에 대답한다.

우리는 질문으로 헤드라인을 쓰지 않는다. 그 헤드라인이 염병하게 좋아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경우를 빼고는.

예컨대 우리는 이런 것을 하지 않는다: “시 공무원이 뇌물을 받았는가?” 대신 이렇게 할 수는 있다: “시 공무원은 어떻게 수백만 달러의 기부를 받게 됐는가?”

우리는 누군가의 염병할 속기사(someone’s goddamn transcription service)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언론에 기댈 수 있다.

정치 지도자들이 유권자들과 직접 손쉽게 소통할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a)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분석하고 b)그들이 말하기를 원치 않는 것들을 알아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진실을 말하라.

편견에 입각한 위협에 맞서라. 그들에게 당신이 왜 그렇게 했는지 말하라. 그들이 당신에게 도전하도록 하라.

만일 누군가 당신을 편파적이라고 한다면, 겁먹지 마라.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마라. 그것에 대해 검토해보고 확신을 갖고 대답하라.

이미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 그리고 당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것을 굳이 누군가로부터 인용하려고 돌아다니지 마라.

기사의 마지막 인용문에 당신의 의견을 숨기지 마라.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고있다면 직접 당당히 나서라.3

당신의 담당(beat)을 다른 언론의 어느 기자보다 더 아껴라.

그것이 샌디에이고를 살기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당신의 길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에 집중하라. ‘더와이어’의 창업자 데이비드 시몬은 이렇게 말했다. “언론은 작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중대 문제의 작은 부분을 취하는 데 능숙하다. 그러나 언론은 중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기자로서 고액 연봉자들을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공무원의) 출장명세서에 적힌 값비싼 식사비용을 비판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더 큰 문제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다음 세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기사를 접어라.

- 나는 왜 이 기사를 선택했나?

- 사람들이 이 기사를 왜 신경쓸 것인가?

- 사람들이 이 기사를 왜 기억할 것인가?

쓰레기 기사의 양산을 피하라(Avoid ‘churnalism.’)

당신의 담당에서 모든 것을 취재하는 게 당신의 일은 아니다. (담당에서) 최고의 것을 구하는 게 당신의 일이다. 낙종을 두려워 말라.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을 두려워하라.

우리는 제한된 자원을 가진 작은 집단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독자들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4

스포츠 저널리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그 가운데 기억해둘 만한 말이 있다.
 
“아무도 누가 1등 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 1등을 했는지에 대한 뉴스는 가치가 있다.

특히 오늘날의 정보 홍수 시대에 그런 뉴스는 더욱 가치가 있다. 독자들은 그런 기사에 매혹당하면서 그 기사를 나누고 기억할 것이다.”

상투적 기사를 최대한 피하라.

‘기자들이 써야 될 것 같은 기사’는 절대로 쓰지 마라. 친구의 흥미를 끌기 위해 전자우편에 적을 만한 기사를 써라. 가볍게 해라. 창조성을 발휘해라. 즐겨라. 대화하듯이 써라.

독자를 사건(event)이 아니라 의미(implications)로 이끌어라.

지루하게 쓰지 말라. 사람들은 지루한 것에 그들의 자유시간을 쓰지 않는다.

독자에게 ‘어떤 비평가들’이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전하지 말라.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들 ‘비평가’와 ‘누군가’는 지구상에서 언론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람들이다. 독자는 (기사에 등장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필요가 있다.5

즐겨라! 창조적으로 일하라! 한계까지 밀어붙여라!(Have fun! Be creative! Push the envelope!)

당신이 이 일을 하는 건 돈 때문이 아니다. 그러니 재미있게 하자. 그전엔 전혀 시도되지 않았던 일을 시도하자.

적어도 누군가 다른 곳에서 했으나 아직 여기선 해보지 않았던 일을 시도하자. 그냥 해야 하기 때문에 기사를 쓰지는 말자.

독자나 정책 결정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생각하자. 독자가 무엇을 읽기 원하고, 변화를 이루기 위해 정책 결정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오늘날의 위대한 언론 혁신의 학생이 되자. 오늘날의 위대한 언론 혁신의 리더가 되자.


당신은 어떤 기자인가

이 보도준칙의 마지막 몇 문장으로 이 연재를 갈음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돈 때문에 기자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조용하고 담백하고 즐겁게 살고 싶은 기자도 있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기자들 때문에 언론이 망한다. 일찍 퇴근하기 위해 대충 취재하고, 주말에 쉬기 위해 추적 보도를 포기하고, 안온한 노후를 위해 일찍부터 권력자와 친분을 쌓아 그들에게 우호적 기사를 쓰게 된다.

취재와 보도를 즐기는 기자, 그것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되, 창조적으로 혁신하는 기자. 관습과 관성이라면 오만정이 떨어지는 기자, 남들이 취재 안하는 것에만 매력을 느끼는 기자.

기사를 읽으며 감동할 독자를 상상하는 기자, 기사를 읽고 부들부들 떠는 권력자를 상상하는 기자, 그런 상상으로 마지막까지 취재와 보도를 매만지는 기자.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배우고 익히며 공부하는 기자, 그런 공부를 사람들과 나누며 더 좋은 기자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기자.

그런 기자들이 지금 필요하다. 2016년 한국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



1 ‘객관성’은 미국 언론에서도 ‘죽어버린 원칙’이다.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을 보도한다는 그 원칙은 현실적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 대신 ‘공정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공정성에는 ‘정의(justice)’와 ‘균형’의 관념이 모두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VOSD는 취재보도의 ‘주관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더 투명하고 당당하게 이를 활용하되, 오직 진실추구를 위해 헌신하라고 강조한다.

2 “기계적 균형을 버리라”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 추적을 위해 “죽도록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성실하지 않은 기자가 기계적 균형까지 포기하면, 최악의 기사가 탄생한다.

3 “진실을 말하라”는 문장의 무게를 생각하면, 편견과 편향에 대한 비판에 어찌 대응할지는 간단하다. 죽도록 취재해서 진실을 파악했다면,(물론 비판을 성찰해보되) 당당하게 밀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4 한겨레21 기자들에게 특히 이 대목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제한된 자원을 가진 작은 집단이다. 우리의 일은 모두 독자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그러니 관습적, 관성적 기사, 출입처 보도자료나 베끼는 기사는 다른 언론에 줘버리고, 진짜 중요한 문제에 대해 진짜 흥미롭게 보도해야 한다.

5 투명 취재원은 공정성과 신뢰성의 결정적 요인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그 중요성이 너무 쉽게 간과된다. 심지어 기자 개인의 철저한 주관에 입각한 보도를 하더라도, 그 취재원과 취재자료가 투명하다면, 어느정도 용서될 수 있다. 익명을 빌린 기계적 균형 보도야말로 언론 신뢰를 갉아먹는 주범이다.


Posted by 미디어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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