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의 장점은 새로운 실험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지상파에 비해 제작과 표현의 수위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살인 등 사건에 대한 시각효과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었다. 또한 편성 역시 러닝타임을 70분까지도 용인해 줬기에 더욱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탄탄한 대본과 역동적 화면
실험적인 시즌 드라마로 성장

제작기_MBC 드라마넷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시즌2

신승엽  MBC프로덕션 PD



조선과 과학수사,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의 어울림이 빚어내는 묘한 매력이 ‘별순검’이라는 새로운 콘텐츠를 탄생시켰고, 케이블 드라마 사상 최초로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주 특별한 드라마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시즌2’의 단초가 되었다. 별순검을 지탱해 주는 가장 큰 힘은 바로 끝없는 실험정신, 즉 상상력에 대한 무한도전이다.
   “조선에도 과학수사가 있었다.” 이 흥미로운 사실의 발견이 신선한 기획이 되고, 작가들의 상상력을 통해 탄탄한 이야기로 거듭나면서 탄생한 별순검! 사실 별순검이 한국 방송환경에서는 드문 시즌 드라마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끝없는 실험의 연속이었다. 2005년 MBC 추석특집 예능프로로 기획되었던 ‘추리다큐 별순검’, 2007년 MBC드라마넷 특별기획드라마 ‘별순검 시즌1’, 2008년 ‘별순검 시즌2’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드라마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호흡과 촬영기법 등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케이블 TV의 장점은 드라마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 실제로 지상파에 비해 제작과 표현의 수위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살인 등 사건에 대한 시각효과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었다. 또한 편성 역시 러닝타임을 50분 이상, 70분까지도 용인해 줬기에 더욱더 이야기(Story)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는 결국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별순검 시즌2’의 실험은 케이블 TV의 제작환경에서 안정적인 시즌 드라마가 가능한가에 대한 것이었고, 그 실험은 지금 ‘별순검 시즌3’가 기획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시즌 드라마의 장점은 기존의 캐릭터를 이어 가는 안정된 제작기반 위에서 새로운 사건(Episode)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기존의 주연배우와 계약이 틀어지면서 5개월간의 대본 작업이 일순간에 날아갔다. 또한 그로 인해 시즌1의 성공요인이었던 마니아 시청자들이 한순간에 우군에서 적군으로 바뀌었다. 시즌1 종방 이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던’ 분위기가 ‘2보다 더 나쁠 수 없는’ 분위기로 바뀐 것이다. 시즌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보다 장기적인 기획과 배우 관리 시스템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 순간이었다.
 
인간 드라마 별순검?!

떨어진 낙엽을 보며 한여름의 푸름을 반추하고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듯 죽음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사람을, 사람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드라마 별순검!
별순검의 가장 큰 특징이 과학수사이지만 그것에만 머문다면 CSI의 아류작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CSI를 뛰어넘는 무엇, 별순검을 별순검답게 하는 그 무엇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단지 ‘어떻게 죽였을까’가 아닌 ‘왜 죽여야만 했을까’를 통해 범죄 뒤의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별순검의 일관된 기획 의도였다.
  더구나 시즌2에서는 그 현실적 필요성이 더했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더 이상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을 보여 주는 일이 힘에 부쳤던 것이다. 즉 고초반응을 이용한 루미놀기법, 시신의 반응을 통해 독살을 판별해 내는 검험법 등은 시즌1에서는 새로웠지만 시즌2에서는 눈높이가 높아진 시청자들의 기대를 채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헌이나 사료에 기록된 과학수사 기법은 시즌1에서 대부분 선보였기에, 식물이나 곤충을 이용한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을 계속 만들어 내는 것 외에도 인간적인 드라마의 강화는 필요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바로 ‘주인공들의 드라마’에 더 집중하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주인공들의 러브라인을 드라마의 한 줄기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건 시즌1과의 가장 큰 차별성으로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수사극에 웬 멜로?”라는 비판과 함께 수사극 자체의 긴장감을 놓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실제로 제작발표회 당시 수사와 직접 관련 없는 듯한 주인공의 과거가 반복적으로 암시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고, 이후 제작과정에서도 만만찮은 반대에 부딪혔다. 솔직히 나도 많이 흔들렸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뜬금없는 감정놀음이 아니라 하나의 큰 사건에 연관된 주인공들의 관계를 통해 각각의 에피소드가 20회를 아우르는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중층적 이야기 구조가 훨씬 흡인력을 가지리라는 작가들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결국 그 믿음은 현실이 되었고,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소위 ‘무경라인’(극중 주인공인 무영과 다경의 러브라인)은 고정 열성팬을 확보하여 시청률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참 어려운 드라마, 별순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별순검은 참 어려운 드라마다. 우선 별순검의 장르적 특성을 보자면 사극, 시추에이션 드라마, 스릴러 수사극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로, 사극은 기본적으로 품도 많이 들고 한계도 많다. 당시의 시대상황에 대한 고증과 함께 디테일한 소품, 의상 등의 제작에도 공이 많이 들어간다. 또한 촬영장소 역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극을 많이 찍는 민속촌의 경우 평균 5팀 정도가 동시에 촬영을 하며 그나마 공연시간과 비행기 소음 등을 피해 촬영하느라 늘 시간에 쫓긴다. 어느 날은 정말 5분 단위로 날아드는 비행기와 헬기들을 추락시켰으면 좋겠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둘째로, 시추에이션 드라마는 회별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에 따라 주인공(범인), 주요 장소, 소품 등이 바뀐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탄력이 붙는 연속극과 달리 매주 새로운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릴러 수사극은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요구한다. 어찌 보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시청자와 게임을 하는 것이다. 범죄사건이 벌어지면 시청자들은 추리를 시작한다. 범인은 누구일까, 어떻게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그 추리가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드라마는 성공하지 못한다. 계속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따라갈 수 있도록 수사 팁(Tip)의 강약이 조절되어야 하고, 사건이 해결되고 나면 그 전의 모든 대사, 상황, 관계들이 완벽히 설명되어야 한다. 솔직히 이런 어려운 대본을 매번 완성해 나가는 별순검 작가들을 보면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어려운 드라마를 끝까지 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공동 연출, 공동 집필의 힘이었다. 별순검 시즌2의 제작진은 이승영 감독이 나로 교체된 것을 빼면 시즌1의 제작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연출은 김병수 감독과 나, 대본은 정윤정 작가, 황혜령 작가, 양진아 작가가 함께 집필했다. 3명의 작가, 그런데 힘은 3분의 1이 아니라 3배가 든다. 
  대본작업은 초고- 수정고-완고-책고의 과정을 거친다. 아이템과 에피소드를 정리한 초고에서 논리적으로 사건을 전개시켜 나가는 수정고까지는 각각의 작가가 쓰지만, 수정고가 완성되면 연출자와 작가 모두가 모여 검증의 시간을 갖는다. 그 대본을 맡은 작가에겐 인민재판과도 같은 고문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건의 발생에서 해결까지의 전 과정에 논리적 오류나 비약, 우연성의 개입 여지는 없는지, 시청자의 입장에서 오해의 여지는 없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과해야 비로소 완고로 넘어가고, 역사적 고증과 오탈자 확인을 거쳐 책고(대본인쇄)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수많은 아이템이 날아가고 10번째 수정고가 완고가 아닌 전혀 새로운 초고로 뒤바뀐다는 점이다. 수없이 밤을 새우고 작가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만하면 됐어” 식의 타협은 없었고, 모두가 납득하지 못하면 한걸음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던 이 힘든 과정이야말로 별순검의 퀄리티를 담보해낸 최후의 보루였다.
   
별순검을 빛낸 배우들

별순검 시즌2의 새로운 주인공을 캐스팅하는 일은 끊임없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시즌1의 주인공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지가 너무나 컸기에 시즌2의 새로운 출연진들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다시 말해 얼마나 좋은 연기자를 뽑기에 기존의 인물들을 배제하는지 두고 보자는 분위기가 있었고 이는 제작진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또한 MBC드라마넷에서도 해외수출을 목표로 지명도 있는 스타급 연기자를 요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상파 드라마에 비해 제작환경이 떨어지는 케이블 드라마에 지명도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춘 주연배우를 캐스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2008년 8월 첫 촬영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주연배우는 한 명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초조함은 더해 갔고 1안에서 2안, 3안을 준비하기도 했다. 솔직히 별순검 시즌2의 주인공을 연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확한 대사 전달이 필수인 사극, 더구나 각각의 인물들은 단선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얼음송곳 같은 카리스마. 하지만 슬픈 영혼을 가진 남자 진무영, 초여름 새벽공기 같은 사내 선우 현, 풋사과 같은 여자지만 깊은 우물 같기도 한 여자 한다경…. 도대체 누가 이런 캐릭터를 소화해낼 수 있을까?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마치 운명처럼 1안으로 생각했던 배우들이 차례차례 OK 사인을 내주었고 완벽한 캐스팅이 이루어졌다. 별순검 시즌1이 보여준 가능성, 탄탄한 대본의 힘으로 별순검 시즌2의 라인업이 완료되었고, 캐릭터들은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사관들과 맞서며 별순검의 다른 한 축을 차지하는 범인, 회별 주·조연 캐스팅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새로운 인물이어야 한다. 흔히 알려진 연기자를 범인으로 캐스팅할 경우 시청자들이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위험이 있었고 예산의 압박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가능성 있는 영화, 연극배우, 신인 연기자들을 샅샅이 뒤졌고, 일주일의 공개 오디션 동안 1,000여 명의 배우들을 만나 보았다. 둘째, 대본 리딩을 통해 연기력을 검증한다. 나이 드신 연기자 분들 중 일부는 대본 리딩하는 것을 자존심 상해한다. “신인감독 주제에 감히 날 테스트해?”라고 언짢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본 리딩은 단순한 연기력 테스트가 아니다. 극 중의 캐릭터와 행간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판에 박힌 연기가 아니라 새로운 연기의 가능성을 감독과 배우가 함께 모색하는 것이다. 또한 대본 리딩을 통해 현장에서의 촬영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시간에 쫓겨 이를 소홀히 한 탓에 9화 달맞이꽃의 여주인공을 촬영 중 교체해야 했는데, 결국 이틀 치 촬영분을 고스란히 반납해야만 했다. 셋째, 시즌1에 출연했던 인물들은 배제한다. 하지만 연기력을 갖춘 새로운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후반으로 갈수록 이 원칙은 지킬 수 없었다. 그런데 시즌1 출연진의 새로운 변신이 또 다른 재미를 주어 시청자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별순검을 만든 사람들

2008년 8월 4일 첫 촬영을 시작으로 12월 6일에 마쳤으니, 한여름에 시작해서 한겨울에 끝난 셈이다. 스태프 구성은 쉬웠다. 미술팀을 제외하곤 시즌1의 스태프들이 그대로 이어졌기에 호흡은 척척 맞았고 현장 분위기 또한 최고였다. 사실 시즌1 제작 시 손해를 감수하고 제작에 참여해 준 의리의 스태프들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가능하면 기존의 스태프를 쓰려고 했는데, 시즌1 촬영의 노하우가 습득된 스태프들 덕분에 촬영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오히려 덕을 보았다.
  별순검은 다른 드라마와 달리 올 ENG 촬영으로 제작되었다. 물론 순검청과 소유요 등 세트 녹화도 있었지만, 세 대의 카메라로 빠르게 찍어 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하나로 매 컷(Cut)마다 위치를 옮겨 촬영한 것이다. 덕분에 배우들은 다른 드라마보다 평균 1.5배의 연기(Take)를 반복해야 했지만 좀 더 다양한 장면을 잡아낼 수 있었다. 다만 자백 등 감정 신(Scene)의 경우 배우의 BS(Bust Shot)를 먼저 촬영하여 감정이 소진되기 전에 최고의 연기를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사건이 벌어진 곳의 전체구조와 범인의 동선을 표현하기 위해 스테디 캠(Steady Camera)을, 차별화된 화면구성과 상흔을 통한 범행 장면 추측에는 이너비전(Inner Vision)을 많이 사용했고, 이를 통해 보다 역동적인 화면을 구성할 수 있었다.
  수사극의 특성상 살인의 방법과 리얼리티가 관건이기에 작가들은 늘 ‘어떻게 죽일까’를 고민했고, 난 어떻게 하면 좀 더 리얼한 죽음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골몰했다.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흘려 서서히 죽게 하는 연쇄살인, 발가벗긴 채 연못으로 끌려가는 죽음 등등…. 시체를 대신하기 위해 만든 사람 모양의 인형(Dummy)이 있었지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았고, 모든 상황은 배우가 직접 연기해야 했다. 1화 ‘그림자’ 편에서 두 손을 뒤로 묶인 채 거꾸로 매달린 배우는 세 시간을 버텨야 했고, 며칠 후 똑같은 장면을 재촬영해야 했다. 11월의 차가운 연못에 알몸으로 빠진 배우는 시체가 추워서 몸을 떨면 안 된다는 이유로 NG가 나 밤새 촬영을 해야만 했다. 아! 나는 얼마나 잔인한 연출자인지….
  드라마 제작현장에는 폭우 같은 돌발 상황이 늘 있기 마련이고 시간은 항상 모자란다. 시즌2는 김병수 감독과 내가 번갈아 가며 2편씩을 제작했는데, 초기에는 10일 정도 촬영하던 것을 중반엔 8일, 마지막엔 6일 만에 끝마쳐야 했다. 그러다 보니 밤샘 촬영이 잦았고, 수면시간은 이동시 버스에서 잠깐 새우잠이 전부였으며, 대중목욕탕이 숙소였다. 특히 20화 촬영은 마지막 방송이 되던 12월 6일 오전까지 이어졌고, 덕분에 편집감독과 음악감독은 심장마비가 올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완벽한 편집과 선곡이 이루어진 걸 보면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다. 열악한 제작환경에서 끝까지 웃음으로 함께했던 스태프들, 위험하고 힘든 장면에 몸을 던져 가며 최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추운 날 남양주 촬영현장으로 바리바리 음식을 싸온 ‘순검지기’와 별순검을 격려해준 모든 시청자 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바로 그분들이 별순검 시즌2를 만들었기에.
  요즘 방송되고 있는 ‘선덕여왕’ 식으로 말하자면 “나에게 인리(人理)가 없지 않았다”라고 해야 할까. 별순검 시즌3가 천하를 얻기를 기원하며….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1월호 언론현장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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