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기자들 은어 중에 ‘총맞았다’는 표현이 있다. 자신의 출입처가 아닌 곳에서 취재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남의 일을 떠맡는 격이라 그리 달갑지는 않다. 지난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을 때 크게 총을 맞았다. 5일장 내내 하루 평균 16시간 근무하며 1개면 분량의 기사를 썼다.
사연인즉 이렇다. 2월 16일 오후 6시 30분 내가 속한 사회부 사건팀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날아온 속보 문자. ‘김수환 추기경 선종’. 벼락같이 긴장감이 찾아들었다. 캡이 맞은편에 있던 내게 “명동성당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짐을 챙겨 들고 나오긴 했는데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한 말이 하나 있었다. “캡, 명동성당은 중부 담당인데요….” 엄밀히 구역을 따지자면 이건 중부경찰서 출입기자가 챙길 사건이었다. 나는 옆 동네인 종로서 출입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는’ 것이 사건기자의 숙명인 것을.
그날 이후 나는 명동성당에 붙박여 조문객 숫자를 세고, 유명 인사들의 멘트를 따고, 기사를 썼다. 매일 자정까지 야근의 연속이었다. 피곤한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쓸 기사가 많은 것도 불평거리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5일장이 끝날 무렵까지도 내가 총을 맞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억울함과 서러움이었다. 명동의 겨울바람은 유난히 더 매웠다.
억울함에 몸서리치던 나를 위로한 게 ‘후루사또’다. 가게 이름은 일본어로 ‘고향’이라는 뜻인데 이름에 걸맞은 일본 현지의 맛으로 일본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단다. 내가 즐겨 먹었던 냉라멘(8,800원)은 일본어로 ‘히야시추카(冷し中華)’라고 하는데, 중국 냉면이 일본화된 음식이다. 새콤달콤한 국물에 쫄깃한 면발, 거기에 아삭한 숙주나물과 오이, 계란 고명 등이 어우러져 한 입 후루룩 들이켜면 입 안 가득 청량감이 알싸하게 퍼진다.
발인이 끝나고 얼마 뒤, 나는 용기를 내 캡에게 넌지시 물었다. “중부 출입도 아닌 저를 왜 보내셨나요?” 캡은 대답했다. “어? 그냥 니가 내 앞에 앉아 있길래… 그런데 너, 중부 출입 아니었냐?”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1월호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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