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던 8월 중순경에는 마스크를 쓴 취재진까지 등장했다. 막상 ‘손 씻으라, 마스크 쓰고 다녀라’고 기사를 써도 실천은 하지 않던 기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신종플루를 담당한다는 이유로 편집국에만 들어서면 의사 대우를 받았다. 열이 나는 것 같다는 둥, 목이 아프다는 둥 다양한 증세를 토로하며 진단을 요구했다.


겁없이 뛴 7개월, 가을지나 업무량 급증 
신종플루 현장 취재기

이민영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미국과 멕시코에서 지금껏 보고되지 않은 희귀종의 ‘돼지독감(swine flu)’에 감염된 사람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있고 고작 3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지구 반대편 멀리에 존재하는 희귀병으로 생각했던 돼지독감이 국내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것은 빠르게 진행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돼지독감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우려 사안’을 선포한 다음날 정부는 긴급비상대책회의를 열었고, 그 다음날인 4월 27일 보건복지가족부는 돼지독감 비상체제를 가동했다.
비상체제를 가동한 27일 월요일 복지부 기자실은 만원이었다. 가뜩이나 좁은 브리핑실에는 복지부 출입기자 외에도 다양한 매체의 기자들이 자리했다. 좌석이 부족해 쪼그려 앉은 사람도, 서서 브리핑을 듣는 사람도 있었다. 신종플루로 취재진이 모여 들자 기자실에 배치된 각종 음료수도 금방 동이 났다. 신종플루 보도가 급격히 늘어난 5월 한 달 동안 복지부 기자실 예산을 다 썼다는 풍문이 돌 정도였다.
정부는 철저한 검역을 통해 신종플루를 통제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고, 그 말이 사실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현실이 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신종플루는 그러고도 장장 7개월을 더 갔고 11월 현재도 진행 중이다.

밤 11시 50분 “사망자 발생” 
 
“차라리 신종플루 걸렸으면 좋겠다.” 1주일, 고작 해야 한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신종플루는 지겹게도(?) 오래갔다. 주말은 물론이고 밤낮 가릴 것 없이 신종플루 관련 사건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날이 갈수록 기자들의 피로는 쌓였다.
정부의 비상체제가 가동되고 날씨가 더워지면서 신종플루가 사그라들 때까지 매일매일이 전쟁이었다. 매일 환자 발생 현황 브리핑이 이어졌고, 하루에 1~3개의 지면이 신종플루로 채워졌다. 경험이 많지 않은 2년차 기자로서는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주말에 쉬지 못하는 건 상관없지만, 밤에 급작스럽게 기사를 써야 하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신종플루 내용이 어렵고 복잡하다며 야근자는 처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술 마시다가도, 친구와 영화를 보다가도 기사를 써야 했다. 복지부 담당 기자 2명이 서로 시간을 조율해 번갈아 가면서 밤 상황을 맡았기 때문에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가장 당황한 건 밤 11시50분이 다 돼서 신종플루 사망자가 발생했던 일이다. 그날따라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복지부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메시지를 보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켜 인터넷을 연결함과 동시에 회사에 전화를 했다. 마감은 12시. 기존 기사에서 사망자 관련 내용 1~2줄 정도만 추가하면 되는 것이기에 다행이었다.
그렇게 바쁘다가도 한가할 때는 할 일이 없어 탈이었다. 신종플루 기사량을 분석해본 적은 없지만 4월 말 시작과 동시에 많았다가 여름이 되면서 사그라들었고 8월 말부터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다시 조금씩 증가하다가 신종플루 위기단계를 최고로 격상한 11월 초 정점에 달했다.
가장 한가했던 여름에는 신종플루 기사가 모두 1단으로 나갔다. ‘이대로 신종플루가 끝나는가 보다’라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다. 데스크에 보고를 해도 시큰둥했다. 물론 겨울이 되면 날씨가 추워지면서 다시 활개를 칠 수 있다, 변종이 생긴다는 보도는 간간이 이어졌다.
기자도 기자지만 취재원, 즉 복지부 공무원들도 만만치 않은 업무량을 자랑했다. 하루에 2~3번은 기본으로 전화를 해댔다. 9시가 되지 않은 시간에 전화해서 담당 과장을 찾으면 “새벽까지 일하다 방금 퇴근했다”는 답변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괜히 취재원에게 전화하기가 민망하고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려운 용어는 의대 교수에 물어

신종플루 취재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교수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의학지식을 필요로 하는 취재가 많았다. 의대 교수들은 쉽게 쓰는 의학 용어도 일일이 물어 봤다.
처음 신종플루의 이름이 ‘돼지독감’이었을 때는 조류독감과 유형은 같되 돼지가 걸렸기 때문에 돼지독감이라고 생각했다. 이게 웬걸. 원인 바이러스의 형태가 다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H5N1이지만 돼지독감은 H1N1이기 때문이다.
H가 헤마글루티닌을, N이 뉴라미니다제를 의미하는지는 며칠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전화기에 의지해 자투리 의학 강의를 들어야만 이해가 됐고, 이해가 돼야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무작정 감염 내과 교수들을 붙잡고 물었다. H형 항원이 16종류가 있고 N형이 9종이 있어 그 둘을 조합하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끝도 없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타미플루와 릴렌자도 마찬가지다. 타미플루는 AI 파동 때 들어본 적이라도 있었지만 릴렌자는 도대체 뭐 하는 물건인지를 몰랐다. 대부분의 취재진이 비슷한 상황이어서 릴렌자는 물론이고 타미플루가 주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취재원에게 직접 물어 보고 나서야 여느 내복약과 똑같은 알약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릴렌자는 더 신기했다. 타미플루와 릴렌자에 대한 정보와 복용법에 대해 미니박스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릴렌자는 복용 방법이 기존의 약과 전혀 다르다. 릴렌자를 수입하는 다국적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담당자가 열심히 설명했지만 말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릴렌자는 지름 3㎝의 플라스틱 용기인 ‘디스크 할러’ 안에 가루가 들어가 있는 형태다. 이 가루를 ‘흡입’해야 복용한 것이다.
실제로 릴렌자는 의사들도 잘 모르는 약이다. 11월이 되면서 보건당국이 타미플루가 아닌 릴렌자를 적극 처방하길 권고했지만 개원가 의사들은 릴렌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며 항의하기도 했다. 정부가 뒤늦게 부랴부랴 릴렌자 흡입 시연회를 열었을 정도다.
용어도 수없이 바뀌었다. 돼지독감에서 돼지인플루엔자로, SI(swine flu)로, 신종인플루엔자로, 신종플루로. 아, 멕시코 인플루엔자도 있었다. 이제는 모두 ‘신종플루’로 부르지만 초기만 해도 ‘신종’이라는 단어가 고유명사가 될 수 없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제2, 3의 변종플루가 나올 것도 대비해야 했다. 그러나 사람 간 전염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돼지’와 상관없다는 의견이 대세로 받아들여졌다.

“환자 신상공개 하지말자” 취재진 공감

신종플루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두 번째 사망자가 발생하던 8월 중순경에는 마스크를 쓴 취재진까지 등장했다. 막상 ‘손 씻으라, 마스크 쓰고 다녀라’고 기사를 써도 실천은 하지 않던 기자들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신종플루를 담당한다는 이유로 편집국에만 들어서면 의사 대우를 받았다. 열이 나는 것 같다는 둥, 목이 아프다는 둥 다양한 증세를 토로하며 진단을 요구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주변에 환자도 하나둘씩 늘었다. 서울신문의 경우 다행히 편집국 내에 확진환자는 없었다. 그러나 가족이 신종플루에 걸린 것 같다며 문의해 오는 선배들이 많았다.
친구나 지인들을 만날 때도 다들 신종플루 얘기뿐이었다. 정말 걸리면 죽는 거냐부터 시작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타미플루를 구할 수 있냐고 물어 오는 사람도 있었다.
초기에는 속보성 경쟁이 심했다. 첫 확진환자인 수녀와 추정환자인 버스 기사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기자들이 몰렸고, 일부 언론은 이를 보도했다. 수녀와 버스 기사의 신상은 물론 수녀원, 기사가 사는 지역 등도 포함됐다. 신종플루 보도 과정에서 인권이 실종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신종플루 추정환자였던 버스 기사의 경우 ‘버스를 이용한 승객에게 병을 옮겼을 수 있다’는 추측성 기사도 난무했다. 그러나 이 남성은 결국 ‘음성’으로 판정됐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언론의 ‘알 권리’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신종플루 확진환자라는 이유로 신상이 공개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에도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양성환자 발견’이라는 보도가 신상공개와 함께 이어졌다. 다행히 확진환자가 아닌 경우 보도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후에는 신종플루 확진환자라도 나이, 성별, 광역 단위의 거주 지역 정도만 보도했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2월호 집중점검 - 신종플루 보도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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