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것은 풀고 조일 것은 조여 가며 공영방송은 공영방송답고 민영방송은 민영방송답게, 지상파 방송은 지상파 방송답고 유료 다채널 방송은 유료 방송답게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플랫폼과 채널들이 건강하게 경쟁하며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

소유규제완화를 통한 자본유입과
시장 확대 정책 필요

미디어 지형 변화와 향후 과제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 글은 미디어법 통과에 따른 변화를 전망하고 향후 과제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갈등이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헌재의 미디어법 무효청구 기각판결 이후에도 반대세력 측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법 이후의 변화나 과제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과연 적절한지 주저되는 바가 없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그 어떤 사회 시스템보다 중요한 미디어 시스템, 그중에서도 방송과 관련된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로 개정된 미디어법, 그중에서도 방송법은 우리 사회 방송이 발전하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향후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미디어법의 핵심은 아래의 표에 제시된 바처럼 주요 방송사업(지상파, 종편, 보도전문 PP)에 대한 대기업 및 일간신문/뉴스통신의 소유제한 규제완화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이미 여러 차례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바 있다. 방송 소유규제 완화의 큰 방향에 대해 더 이상 반대할 논리가 없다는 것이다.

소유규제 완화는 비합리적 규제 없앤 것

우선 신문의 방송사업 진출과 관련해 인쇄 저널리즘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어 고사 직전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신문이 방송이나 인터넷 등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저널리즘의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오히려 장려되어야 할 일이다. 또한 대자본의 방송사업 소유규제 완화도 마찬가지다. 방송 산업에서 우수한 콘텐츠는 경쟁력 강화의 핵심요소이며,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업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방송산업 진입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해외 어디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합리적인 규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금번 미디어법 개정내용은 소유규제 완화라는 큰 방향성을 제외한다면 세부 내용에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게 사실이다.
첫째, 주요 일간지, 대기업의 주요 방송사업 참여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이 극심했던 관계로 개정된 방송법은 아래와 같이 매우 강한 ①사전규제 ②사후규제 장치를 포함하게 되었다. 이런 조건에서 과연 방송 사업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전, 사후규제 장치 너무 많아

설상가상 지상파의 경우 국가 내지 공익재단 소유의 KBS와 MBC는 애초에 제외되며, SBS의 경우 소유구조 변동 가능성이 희박하다. 결국 남는 건 만성적 경영위기에 허덕이는 지역 민영방송 정도다. 사전사후 규제가 혹처럼 주렁주렁 달린 상황에서 신문사나 자본이 그쪽을 기웃거릴 리 만무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지상파 방송 대신에 케이블의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 채널, 그중에서도 지상파와 흡사한 종편 채널에 온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 역시 주요 신문사들의 숙원이던 방송진출로 이해되고 있어 주요 방송에 대한 자본 참여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 소유규제 완화의 세부 내용을 보면 일관성도 원칙도 찾아보기 어렵다. <표>를 꼼꼼히 살피면 알 수 있듯 언론사, 대기업, 외국자본에 대한 종합유선방송 플랫폼(SO)이나 위성방송 플랫폼에 대한 소유규제의 경우 IPTV 플랫폼과 동일한 수준으로 일관성 있게 완화되었다. 하지만 종합편성 채널이나 보도전문 채널에 대한 소유규제 완화 부분은 한마디로 엉성함 그 자체다. 구체적으로 외국자본의 종편 및 보도전문PP 소유제한선은 전자는 20%이고 후자는 10%인데 종편이 보도전문PP에 비해 사회적 파급효과가 더욱 크게 예상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렇게 거꾸로 차등화시킨 기준이 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더 큰 문제는 IPTV 종편 및 보도전문 PP의 경우 일반 종편 및 보도전문 PP와 구별되어 언론사, 대기업, 외국자본에 대한 소유제한이 각각 49%, 49%, 20%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일 서비스에 다른 조건을 부여한 꼴이다. 미디어법 개정을 둘러싼 극심한 갈등 과정에서 의원들이 방송법, 신문법만 갖고 극렬히 싸우는 동안 관련 법인 IPTV법은 쳐다보지도 않고 원안대로 통과돼 생긴 희극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디어법은 누더기라는 것이다.

산업적 뿌리 건강해야 좋은 방송 가능

굳이 미디어법에서 의미를 찾자면, 참으로 힘들고 어설픈 출발이긴 하지만 방송산업을 선진화시키기 위한 첫 단추는 꿰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기화로 투자와 시장 양측에서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고 있지 못한 우리 방송산업을 발전시키고, 언론으로서의 방송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으면 하는 게 필자를 포함한 미디어법 지지자들의 바람일 것이다.
우리 역사상 사회적 소통의 중요성이 최근처럼 현실적 공감을 얻은 시기는 없었다.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한 일차 조건은 사회적 소통의 제도적 매개자인 미디어의 건강한 작동이다. 이러한 미디어 중에서 도달의 보편성 및 파급효과 면에서 정점에 있는 미디어가 방송이다. 그러기에 21세기 선진화된 시민민주주의의 달성은 건강한 방송의 실현을 통해 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산업적 뿌리가 건강하지 못한 방송이 제대로 된 방송 콘텐츠, 저널리즘을 실천할 리 만무하다.
필자는 방송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결국 한편으로 소유제한을 완화해 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하고, 다른 한편으로 시장을 확대시켜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방송 미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우수한 인력, 자원, 시장이 최적의 상태로 결합되는 것 말고 무슨 묘수가 있을 수 있는가. 미디어법은 이러한 결합을 가로막아온 비합리적인 칸막이식 규제를 일부나마 제거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이는 80년대식 개념, 시야, 구호와 운동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반대세력의 거센 저항에 부닥쳐 많은 사회적 비용을 수반했지만 비용만큼 그 의미도 적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를 기화로 우리 방송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아온 불합리한 규제 개혁 작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런 주장이 무조건적인 시장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풀 것은 풀고 조일 것은 조여 가며 공영방송은 공영방송답고 민영방송은 민영방송답게, 지상파 방송은 지상파 방송답고 유료 다채널 방송은 유료 방송답게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선발 플랫폼과 후발 플랫폼, 다양한 채널들, 그리고 플랫폼과 채널들이 건강하게 경쟁하며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공영방송과 민영방송, 다양한 플랫폼과 채널들 간의 관계를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일관성 있는 방송산업 발전의 청사진이 마련되어야 한다. 종래 우리나라 방송정책은 이러한 종합적 청사진이 없이 각 채널이나 플랫폼 단위 정책이 추진된 관계로 정책 간의 충돌 내지 비효율성이 적지 않았다.

종편PP 성공여부가 법 개정 타당성 잣대

미디어법 통과에 따라 가장 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는 정책 사안이 종합편성PP 사업자 승인이다. 오랜 기간 방송사업 참여 기회를 기다리며 절치부심해온 주요 일간지 및 대기업들은 사력을 다해 사업권을 따기 위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종합편성 채널의 성공여부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미디어법 개정이 과연 타당한 일이었는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사업승인의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 방송채널정책의 맥락 속에 일관성과 타당성을 갖춘 종편채널 규제정책의 틀을 갖추고,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사업자 승인절차를 가져가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만에 하나 종편사업 및 그 사업자 선정과정이 특혜나 불공정 시비에 휘말린다면, 종편의 성공은 차치하고, 전 사회가 다시금 미디어법을 두고 빚어졌던 극한의 혼란 상태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미디어법 개정을 힘들게 지지하고 통과시켰던 당위성은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미디어법 개정은 처음부터 시도되지 않았던 것만도 못한 꼴이 될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만에 하나 종편사업에 대한 특혜가 부여된다면 이는 한시적이어야 하며 그에 대한 뚜렷한 정책명분이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법 이후의 정책적 행보 한 걸음 한 걸음이 돌다리를 두드리듯 신중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지적한 바대로 이번에 통과된 미디어법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향후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이를 개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정논의는 이번 헌재판결 이후 미디어법 반대론자들이 제기하는바 미디어법 무효화를 위한 재논의 주장과 구별되어야 한다.
지겹기 그지없지만 되돌아보자. 한나라당 내 미디어특위에서 미디어법 초안을 만들어 낼 때부터 잡음이 그치지 않았다. 법안이 공개되어 해당 상임위인 문방위에서 심의되는 첫 순간부터가 파행의 연속이었다. 급기야 해머에 소화기까지 동원해 크게 한판 붙더니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발위)라는 애매한 성격의 대리자를 내세우곤 휴전에 들어갔다. 큰 판을 그대로 보고 배운 이 작은 판에서 벌어진 일들 또한 가관이었다. 막판에 원내 대표들이 시시각각 타협안을 주고받으며 협의를 전개할 때 혹시 하는 희망으로 지켜보던 이들의 속내엔 끝내 하얀 재만 남았다. 그 법안을 최종표결에 붙여 한편에선 강행처리, 다른 한편에선 결사저지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참담한 사태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급기야 국민의 대표자라는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법정에 이를 들고 갔다. 헌재는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법 무효청구를 기각했다. 이번엔 헌재에 대한 비판이 들끓었다.
반대론자들의 재논의 주장은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하자는 것이다. 정말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법 내의 문제점들은 개정되어야 하겠지만 또다시 이 같은 소모적 갈등이 재연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방송, 미디어, 더 나아가 우리 사회를 정녕 결딴내고자 함이 아니라면 말이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2월호 특집 - 복합 미디어그룹 탄생하나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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