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다양한 얼굴을 가진 족속이다. 어중간하게 바라보면, 관점이 불분명하면 고민의 늪에 빠지게 된다. 자칫 소중한 삶마저 굴절될 수 있다. 언론 진출을 꿈꾸는 후배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이미 몸담은 선후배는 다시금 분명한 좌표를 그렸으면 한다.


기자의 목적지는?





 



조민호  세계일보 논설위원

yk33cho@naver.com




기자가 ‘5D직종’이란 말이 나돈 적이 있었다. 기존의 3D에다 2D(Dry, Dark)가 더해진 조어다. 주머니가 말랐고, 앞날이 암담하다고 해서 2D가 추가된 것이다. 그쯤 되면 세상살이가 여간 팍팍하지 않다는 증좌다. 웃기는 일이지만 웃지도 못할 노릇이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무렵 등장해서는 좀처럼 소멸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당시엔 그래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었지만 이젠 삶 속으로 파고 들어와 똬리를 틀고 있는 형국이다. 각 언론사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언론 환경이 많이 변했고 나라 재정이나 기업 환경도 예전 같지가 않은 탓이다. 기자들이 늘 부르짖던 사회정의도 어느덧 무뎌져 적절하게 타협하는 생활인이 된 듯하다. 목사나 승려가 성직자에서 직업 종교인으로 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볼륨은 커졌어도 속은 허하다. ‘군중 속의 고독’이나 ‘문명 속의 퇴보’라고나 할까.
내 분석에 대해 편견이라거나 패러독스라고 비판한다면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음∼ 그래 맞아!’ 하고 공감한다면 되레 슬퍼진다. 뒷모습을 보이며 어디론가 떠나가는 선후배, 지고한 그 무엇인가를 찾겠다고 길을 나서는 동료를 많이 본다. 언론과 시대 변화를 반추해 보는 시간이 차츰 늘고 있음도 목도한다. 언론이 판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 절대강자는 없다. 다원화 사회에서는 다양한 강자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언론은 다강(多强)체제의 토호 정도로 위상이 낮아졌다. 사회적 지위나 주머니 사정 측면에서 보면 그 이하일 수도 있다.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지금 내 지갑에 들어 있는 돈은 6만8,000원과 1달러 지폐 두 장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 절대 기준은 없다. 자칭 ‘가치’를 좇는 직업이라고 위로하면 스트레스가 안 쌓인다. 재물과 나 사이에 담벼락이 하나 있다고 생각하면 한결 가볍다. 임시방편이지만 능률적이다. 그래서인지 헉헉거리는 군상들에게 나는 카운슬러나 퍼실리테이터가 되곤 한다. 때론 생물학적, 정신적 치료까지 해 준다. 별로 찡그리지 않으니깐 “선배 뭐 좋은 일 있습니까? 좀 불러주세요”라는 농담도 가끔 듣는다. 저나 나나 알고 보면 처한 상황은 비슷한데도 말이다.
많은 기자들이 말한다. “젊을 때는 매력적인데 나이 들면 딴 거 하는 게 좋아.” 얼추 맞는 말이다. 40세 전후 비언론계로 전향하는 선수들이 느는 걸 보면 실감한다. 기자 하다가 부동산 전문가, 교수, 연구원으로 전직하는 부류도 더러 나온다. 채문식 이만섭 김원기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형오 국회의장도 언론 출신이다. 변호사 못지않게 사회 진출의 징검다리가 언론계란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성공확률이 몇 %이겠는가. 성공한 사람만 기자 눈에 띄는 통계상 허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퇴직금 받아 호프집을 하거나 농사짓는 동료도 있다. 속된 말로 방황하다가 개털이 된 사람도 봤다. 삶의 노정에 경중이야 없겠지만 조금은 씁쓸하다. 다 잘 됐으면 한다.
왜 기자가 되려는가? 이 물음에 확고한 목적의식이 있었으면 한다. 그것이 사회정의 구현이든, 구직 차원이든 상관없다. 일정 기간 경험하고 나서 다른 일을 하겠다는 구상도 멋지다. 언론계 3년 정도 하다가 교수로 가서 성공한 김학준 씨가 후자의 경우다. 나는 좀 독특한 경우에 속한다. ‘세상을 알고자’ 기자를 선택했다. 짧은 기간에 가장 폭넓게 볼 수 있는 직업으로 기자가 으뜸이었다고 판단했다. 쑥스럽지만 지면으로는 처음 공개한다. 관청에 출입하면 말단 10급 기능직에서부터 장관까지 만날 수 있고, 정치권 관료 검찰 등 어디에든 가서 새로운 분야에 접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경계가 없었다. 지금도 그 초심은 변함이 없고 나의 판단은 옳았다. 그래서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언론 환경이 어떻게 표변하든 그것은 나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힘이 좀 달린다 싶으면 자기최면이라도 걸어 상황을 넘기는 기술도 터득했다.
언론, 다양한 얼굴을 가진 족속이다. 어중간하게 바라보면, 관점이 불분명하면 고민의 늪에 빠지게 된다. 자칫 소중한 삶마저 굴절될 수 있다. 언론 진출을 꿈꾸는 후배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이미 몸담은 선후배는 다시금 분명한 좌표를 그렸으면 한다. 스산한 초겨울 바람에 선배의 홀쭉한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아린다. 기자 초년 시절 가졌던 당당한 얼굴이 그립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2월호 에세이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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