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를 하면서 느낀 점은, 외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미국, 일본, 서유럽 주요 국가 몇 개에만 너무 치우쳐서 그 밖의 지역에 대해서는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계 전문가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이 지역 관련 서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와 보니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지가 심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동유럽에 한국을 알리고
평생 가지기 힘든 추억도 쌓고

조선일보 ‘글로벌 챌린지’ 연수기

오윤희  조선일보 사회정책부 기자



며칠 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200여km 떨어진 시골 마을 토카이(Tokaj) 지역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1,500년간 조상 대대로 헝가리 명물 토카이 와인을 제조하고 있는 와인 제조자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지인이 소개시켜 줘서 성사된 만남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니 어느새 산과 들판엔 울긋불긋 단풍이 져 있더군요. 처음 이곳에 왔던 9월 중순만 해도 아직 늦여름의 뙤약볕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였는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이곳에 온지도 두 달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가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로 충만했던 두 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의 관심이 덜했던 지역을 선택

안녕하세요. 저는 조선일보 사회정책부 소속 오윤희라고 합니다.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은 5년차 햇병아리이지만, 조선일보사가 올해부터 시작한 ‘글로벌 챌린지(Global Challenge)' 프로그램 덕분에 6개월간 해외 연수를 나오게 됐습니다. 글로벌 챌린지는 5~6년차 주니어 기자와 업무직 직원들이 해외에 나가 견문을 넓히고, 현지에 대한 공부를 하라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지원자들은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공부 혹은 취재 주제를 가지고 나가 활동할 수 있습니다.
1기 글로벌 챌린지 프로그램에 선발돼 올해 하반기부터 각 지역으로 나간 사람들은 제 동기인 정치부원 조의준 씨(남미), AD 본부 최호선 씨(미국), CS 본부 이동진 씨(미국) 등 모두 4명입니다.
기자들은 미국, 일본 등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역보다는 이제껏 언론의 관심이 덜했던 지역을 새롭게 개척하고, 현지 사정을 공부하고 오라는 의미에서 동유럽(정작 이 지역 사람들은 ‘동구’라는 말에 거부감을 보이며 ‘중부 유럽’이라고 불리길 원하지만)과 남미, 중동 지역에 가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에 저는 동유럽을 선택해 6개월간 헝가리에 머무르면서 폴란드, 루마니아 등 이웃 동유럽권 국가를 돌아보기로 했고, 저보다 2주 정도 늦게 지원 지역으로 떠난 조의준 씨는 현재는 칠레에 머무르고 있지만, 2개월 단위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남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예정입니다.
나오기 전에 준비를 하면서 느낀 점은, 외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미국, 일본, 서유럽 주요 국가 몇 개에만 너무 치우쳐서 그 밖의 지역에 대해서는 정보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계 전문가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몇몇 여행기를 제외하곤 이 지역 관련 서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나와 보니 한국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 지역에 대한 무지(無知)가 심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헝가리에 나와 동유럽 전반에 대해 갖게 된 인상은 ‘이곳은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하루가 다르게 빨리 바뀌고 있는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1989년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 약 20년간 정치, 경제, 사회 측면에서 이들 나라는 쉴 새 없이 변화를 겪었습니다.

문화 마케팅 잠재력 커

2004년 대다수 동유럽 국가가 EU에 가입하게 되면서 ‘유럽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지만 동시에 물가가 평균 2배 이상 뛰면서 오히려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습니다. 이런 배경 탓에 현재의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견해는 세대나 계층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입니다.
그런 반면 아직까지 저렴한 노동력을 장점으로 갖고 있는 이 지역은 유럽에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지역으로 평가 받아 전 세계 기업이 앞 다투어 투자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최근 몇 년간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투자 움직임이 활발한데 그 가운데서 일본과 중국은 우리보다 훨씬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엔 자국 문화 마케팅까지 활발하게 진행시켜서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곳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특별한 날엔 회전 스시집에 가서 스시를 먹는 게 유행일 정도로 현지인들은 일본에 대한 일종의 동경을 갖고 있는 반면 한국에 대한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너무 떨어집니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을 ‘북한’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유럽권은 시장 가능성 외에도 문화 마케팅 방면으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최근 몇 년 전부터 마니아층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제가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서도 인터넷으로 ‘궁’ 같은 한국 드라마를 다운로드해서 보거나 해적판 한국 만화를 읽으며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된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수요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 지역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울 때도 많았습니다.
지난 두 달이라는 시간은 짧은 기간이지만, 제가 갖고 있는 이런 무지를 깨는 데 많은 도움이 됐던 시기였습니다.

프라하의 소녀시대

마침 올해는 1989년 동구권 공산주의가 무너진 지 20년이 되는 해라서 동구에 나온 직후 폴란드, 루마니아 등을 돌아다니며 여러 시민들을 만나 체제 전환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봤습니다. 공산주의 시절, 어린 딸에게 바나나를 먹이기 위해 물어물어 찾아간 가게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리다가 자기 앞에서 바나나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는 한 50대 체코 아주머니의 경험담, 미국 드라마와 영화에 열광하는 평범한 체코의 젊은이들, 폴란드 민주화 운동의 토대가 됐던 자유노조연대 운동에 투신한 젊은 시절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들려주던 90세 폴란드 할아버지, “독재정권은 무너졌지만, 서민의 삶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없다”고 울분을 터뜨리던 루마니아의 노인들까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의 국경과 맞닿은 불가리아의 최남단 장수촌 마을을 찾아가서 적게 먹고, 늘 운동하고, 욕심을 버리고 소박하게 사는 장수 노인들에게서 ‘평범하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힘든’ 장수의 비결 이야기도 들어 봤고, 돌아올 땐 한 80대 할머니가 안마당에서 꺾어준 국화꽃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 밖에도 즐거운 경험은 많습니다. 일본 에세이스트 요네하라 마리가 쓴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읽고 ‘나중에 꼭 가 봐야지’라고 다짐했던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를 방문해서 저자가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칼레메그단 요새의 아름다움을 직접 느꼈고, 눈이 시리도록 푸른 아드리아해가 끝없이 펼쳐진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도 찾아가 봤습니다.
그 밖에도 체코와 폴란드 국경에 인접한 시골 마을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고 아담한 동유럽의 마을도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글로벌 챌린지’가 아니었더라면 평생 가지기 힘든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생활하면서 불편을 겪은 일도 적잖게 있었습니다. 특히 관청 공무원들은 아주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일 때가 많아 애를 먹었습니다.
부다페스트에서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거주증(residential permit)을 받으려면 은행 잔고 확인서, 집 주인이 직접 손으로 서명한 집 계약서, 의료 보험 등 제출 자료를 구비하는 데만 해도 10일 가까이 걸립니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처리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현지인 도움 없이는 처리하기 힘듭니다.
길을 가다 보면 동양인이라고 대놓고 멸시하거나 욕을 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전철을 기다리는데 취객이 다가와 욕을 하며 제 등을 떠민 적도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과의 교류가 서유럽만큼 빈번하지 않아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적었던 데다 경제가 계속 악화되자 일부에선 그 불만을 외국인들에게 돌려 최근엔 이런 반(反) 동양인 정서가 심해졌다고들 합니다.

1,500년 된 와인저장고에서 와인 시음

하지만 한국에 있을 땐 낯설기만 했던 폴란드나 불가리아 같은 나라로 가서 취재하거나, 유럽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헝가리와 접한 여러 나라로 여행을 떠나거나, 1,500년이 된 유럽 지하 와인 저장고에 가서 최고의 와인 브랜드를 맛본다거나 하는 특별한 경험은 이런 불편함을 다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란 가격이 얼마냐”는 단순한 질문에 온 동네 시장 조사를 다 해서 계란 가격을 알려주는 부다페스트의 동네 할머니들을 보면서 ‘아직도 이곳엔 이해타산이 아니라 진심으로 타인을 대하는 온정이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늘 팔에 꽃을 한 아름씩 안고 다니는 사람들이나 레스토랑 바이올린 연주자의 음악에 맞춰 화장실에서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 루마니아 아주머니들을 보며 바쁜 서울 생활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삶의 여유를 다시 느끼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이런 것들을 보고, 느끼는 것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후배들이 저와 같은 특별한 기회를 계속 누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특히 한국인들의 주요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 있던 지역에 젊은 기자들이 많이 나가 한국을 알리고, 동시에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사화해서 한국과 이 지역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면, 기자 뿐 아니라 기사를 접하는 독자(시청자)들의 시야도 한층 더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12월호 언론현장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