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Vs 머독-미디어 환경 변화와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온도의 차이
‘진보-정론-독립경영’의 가디언과 ‘보수-상업-언론재벌’의 머독은 단지 온라인 뉴스 유료화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급속한 미디어 환경 변화와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시각 자체가 다른 것이다.


가디언, 머독과는 다른 길을 가기로   
                                         
                                      이봉현 한국언론진흥재단 영국 통신원, 골드스미스칼리지대 박사과정


가디언과 루퍼트 머독은 여러 모로 대비가 된다. 가디언 하면 ‘진보-정론-독립경영’이 떠오르지만 머독은 ‘보수-상업-언론재벌’ 같은 말들과 자주 한 쌍을 이룬다. 하지만 격변기에 놓인 미디어 산업이 어디로 갈지를 묻는 세계의 언론인들은 이 둘 모두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지금 이 둘이 또 한번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온라인 뉴스 유료화를 놓고 둘의 차이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온라인상에서 뉴스 보기를 유료로 하느냐 마느냐의 판단 차이가 아니다. 둘은 지금의 급속한 미디어 환경 변화와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디언, “머독의 인터넷 뉴스 유료화는 재봉건화 시도일 뿐”

온라인 뉴스 유료화를 주도하고 있는 머독에 대해 그간 가디언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거리를 두어 왔다. 올 4월 ‘더 타임스’가 테이프를 끊고 여름까지 영국, 미국, 호주 등에 산재한 머독의 매체들이 온라인 뉴스를 유료화할 예정인 가운데, 가디언의 좀 더 분명한 생각이 편집 총책임자인 앨런 러스브리저를 통해 드러났다.

그는 지난 1월 25일 런던에서 열린 ‘휴 커드립 강연’(1950~60년대 ‘데일리 미러’에서 맹활약한 커드립경을 기리는 강연)에서 전면적인 온라인 유료화는 신문이 ‘시나브로 잊혀가져가는’(sleepwalk into oblivion) 지름길이라며 머독과 대립각을 세웠다. 1995년 임명된 이래 베를리너 판형 변경 등 가디언의 여러 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러스브리저의 이날 발언은 가디언이 그간 온라인에 대해 어떤 모색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가늠하게 한다.


러스브리저는 신문이 유료의 벽(paywall) 안에 웅크릴 때 디지털 혁명이 가능하게 해 준 기회, 즉 독자와 한층 긴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은 날아가 버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이 살아남아야 좋은 저널리즘도 있다’는 머독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러스브리저는 온라인 뉴스에 전면적인 울타리를 치는 ‘둔탁한’ 방법 말고 좀 더 나은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예를 들어 일반 뉴스는 계속 무료로 보여 주고 특화된 전문 뉴스만 돈을 받는다든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등 다른 플랫폼을 이용할 때 자연스럽게 요금을 부과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러스브리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머독의 유료화를 인터넷이란 자유 공간을 돈으로 구획화하는, 즉 ‘재봉건화’(re-feudalization) 시도쯤으로 몰아붙였다. 러스브리지는 “플리트스트리트(런던의 신문사 밀집 구역)는 자유 언론이 발원해 세계로 퍼진 곳”이라며 “현대 사회에는 이런 초기 신문의 정신이 면면히 이어지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있다”고 말했다. “좋은 뉴스는 제값을 내고 봐야 한다”는 머독의 주장에 대해서는 과거 ‘더 타임스’를 인수한 뒤 경쟁자를 죽이고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1부당 가격을 제작비도 안 되는 10펜스까지 내리는 출혈경쟁을 시작한 게 누구였냐고 되물었다.

이 강연에 대한 머독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 냉랭했다. 머독은 1월 말 뉴스코퍼레이션의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가디언 기자가 지난주 “러스브리저의 강연 내용을 혹시 읽어 봤냐?”고 묻자 질문을 자르며 “노(No)”라고 짧게 말했다. 그는 온라인 유료화가 “아이디의 민주화를 질식”시키고 “신문 산업을 서서히 잊혀지게 할 것”이란 게 강연의 요지였다고 기자가 환기하자 여전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나는 그런 말은 허튼소리로 들린다”고 말했다.


그와 참모들은 가디언이 반사이익, 즉 이미 유료화가 예고된 뉴욕타임스나 더 타임스에서 떨어져 나오는 독자를 잡겠다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법도 하다. 특히 미국의 자유주의 성향 독자가 많이 보는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이 유료화될 경우 사이트의 트래픽이 현재의 5%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있어 여전히 무료정책을 고수하는 가디언이 유럽과 북미의 중도·진보 성향 독자를 장악할 기회인 것도 사실이다.


가디언과 머독의 견해차

러스브리저와 머독의 ‘장군멍군’식 말싸움의 뒤안길을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서로 다른 생각의 갈래를 만날 수 있다. 상업적인 판단이 우선인 머독은 독자가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한 좋은 저널리즘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에 아무리 정보가 흘러넘치고 이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뀐다 해도 가치 있는 정보는 독자들의 지갑을 충분히 열게 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머독은 최근 아마존의 전자책이나 아이패드가 관심을 끄는 데 대해 “콘텐츠는 이런 디지털 기기에서 단지 왕이 아니라 황제”라며 “콘텐츠가 없으면 이런 첨단 기기는 별 매력도 없고 잘 팔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젠 독자들이 뉴스를 온라인에서 소비하는 것이 보편화된 만큼 초기 무료정책의 뼈아픈 실책을 딛고 신문이 온라인에서 적정한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때가 됐다는 것이 머독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는 독자가 언제 어디서나 양질의 저널리즘을 접할 수 있도록 디지털 하드웨어 업체와 구독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다채로운 대화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머독은 “1년 전만 해도 뉴스가 무료인 관행을 비판하는 우리가 좀 이상해 보였는데 지금은 콘텐츠가 가치 있는 것이란 점은 분명해졌다”며 “이제 돈을 받을지가 아니라 얼마나 받을지를 두고 승강이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반면 가디언의 러스브리저는 지금 진행 중인 변화가 사람들이 뉴스를 단순히 디지털 매체로도 보기 시작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더 크고 넓은 사회변화의 일부라고 보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표현할지, 사회가 어떻게 자신을 조직할지”가 변하는 것이며, “생각과 정보의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생각, 개인의 창의성을 발현하는 방법,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자 하는 세력에 어떻게 저항할지 등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넓고 깊은 변화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고 등을 돌리면 비즈니스 모델이 문제가 아니라 신문 산업이 사라지게 될 것이란 얘기다. 정부나 시민단체(NGOs), 과학자, 예술계, 대학은 모두 자신의 콘텐츠를 어떻게 세상에 내놓고 어떻게 교류할지를 모색하고 있는 판에 신문이 이런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그런 것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러스브리저는 “만일 (신문이) 보편적 유료화란 벽을 쳐버리면 자유롭게 콘텐츠가 공유되던 세상을 등지게 되는 것”이라며 “그럴 만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편집국의 입장에서 신문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세상에 자신을 어떻게 자리매김할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러스브리저의 이런 생각은 가디언이 그간 온라인과 디지털 혁명에 대응해온 방식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가디언은 신문의 미래가 온라인에 있다고 선언하고 영국 신문 가운데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과감하게 인터넷 뉴스에 투자했다. 편집장인 러스브리저는 2006년 “가디언은 이제 디지털 회사인 만큼 웹이 종이 신문보다 우선”이라며 ‘웹 우선 전략’(web first policy)을 선포했다. 종이 신문의 틀을 벗고 멀티미디어 콘텐츠 생산자로 환골탈태하려는 의지를 담아 회사 이름도 ‘가디언 뉴스페이퍼 리미티드’에서 ‘가디언 뉴스 & 미디어’로 변경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가디언 소유주 스콧 트러스트(Scott Trust: 공익재단)는 모험이나 마찬가지인 온라인 투자에 한 해 수천만 파운드를 지원했다.

회사의 운영과 직원들의 의식도 비교적 짧은 기간에 디지털 시대에 맞춰 변화하도록 유도했다. 온·오프라인 뉴스룸을 통합했고, 중요 뉴스라도 종이 신문을 위해 묵히지 않고 주 7일 24시간 업데이트하는 실시간 뉴스 제공 시스템을 구축했다. 직원에게 변화를 강요하기보다는 문화를 서서히 바꿔 나가는 전략을 채택해 저항을 최소화하고 자발성을 이끌어 냈다. 기술변화와 새로운 시도에 관심과 친화력을 갖춘 직원을 전진 배치해 변화의 촉매로 활용한 것이다. 아울러 블로거와 일반 독자, 편집국이 온라인상에서 네트워크화돼 유기적으로 콘텐츠를 생산, 비판, 수정, 발전시키는 시스템을 정착시켜 어느 매체의 온라인 사이트보다 내용이 풍부하고 이용자의 충성도가 높은 웹사이트를 구축했다. 더 타임스, 텔레그래프 등 다른 신문이 더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 선두주자 가디언을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가디언 웹사이트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인터넷 신문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0월 영국 ABCe의 조사에 따르면 주말판인 ‘옵서버’를 포함한 가디언 웹사이트(MediaGuardian.co.uk)는 한 달 동안 3,295만 명이 방문해 영국 인터넷 신문 사상 처음으로 월 방문자 3,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8월에 비해서는 23.6%, 1년 전인 지난해 9월에 비해서는 36.3%가 증가한 것으로 독자가 감소하는 종이 신문과 달리 인터넷 신문 이용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방문자 가운데 3분의 2는 북미 등 해외에서 접속하는 독자였다. 전체적으로 온라인이 아직 흑자는 아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온라인 광고가 해마다 60%씩 증가하고 광고단가나 규모도 종이 신문과 달리 시장에서 1위 대접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경제 위기 이후 가팔라지는 종이 신문의 쇠퇴를 상쇄할 만큼 온라인에서 수익이 빨리 느는 것은 아니란 것은 가디언 역시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가디언과 옵서버, 라디오, 지역신문을 망라한 가디언 미디어그룹(GMG)은 지난해 3월 결산에서 9,000만 파운드의 적자를 냈다. 종이 신문 가디언과 인터넷 사이트인 가디언 뉴스 앤드 미디어(GNM)는 같은 기간에 3,680만 파운드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 GMG는 5,000만 파운드 안팎의 이익으로 돌아섰지만 현재도 GNM은 하루 약 10만 파운드의 적자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가디언 미디어그룹은 지난해 11월 100여명의 직원을 감원하고 일요신문인 옵서버를 축소발행하는 등 2차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비즈니스 아닌 저널리즘의 미래를 생각해야 할 것

러스브리저의 이번 강연이 이런 상황 타개를 위한 뾰족한 방식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우려의 시선이 전문가들 사이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가디언은 담을 치고 돈을 받는 쉬운 방법, 그렇지만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방식에 기대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윤곽이 드러난 새로운 수익 확보 방안은 가디언이란 진보지가 지닌 이미지와 경험, 독자의 참여를 팔아서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지난 8월 하순 리더스 클럽(Readers' Club) 매니저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매니저의 일은 월 일정액을 내는 회원제 클럽을 조직하는 것이다. 회원에게는 특별한 콘텐츠와 이벤트, 할인 혜택, 가디언 기자들과의 교류 기회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러스브리저는 또 인터넷 신문 독자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는 “모든 것이 하향추세를 보이는 이 산업에서 디지털 수용자가 늘어나는 것은 희망의 횃불”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디언의 디지털 성장이 콘텐츠 부문의 빠른 성장을 포함해 40%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런 성장이 선정적인 뉴스나 크게 올려서 클릭 수를 높인 것이 아니라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가디언 웹사이트에서 지난해 가장 크게 성장한 분야는 환경(137%), 기술(125%) 그리고 예술과 디자인(84%) 등이었다.

아울러 그는 이날 강연에 온 기자들과 언론학자들에게 저널리즘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조그만 좌파 전국지가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진보적 가치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은 신기술과 변화에 대한 투자와 함께 좀 더 완성된 형태의 저널리즘을 추구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강연에서 “만일 여러분이 저널리즘을 생각한다면 미래에 대해 좀 더 희망을 갖게 될 것이지만 오직 비즈니스 모델만 생각하면 몸이 움츠러드는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간<신문과방송>2010년 2월호 '미디어월드와이드'(영국)

Posted by 정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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