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는’ 서울, ‘내려가는’ 지방?_이경우 서울신문 교열팀 차장


지난날 서울은 임금이 ‘거처하던’ 곳이었다. 높은 분이 사는 곳이니 높은 땅이었다. 그래서 물리적 높낮이와 관계없이 ‘올라가는’ 곳으로 표현됐다. 어느 지방에서 가거나 늘 ‘올라가는’ 서울이었다. 서울보다 북쪽 지역에서 갈 때도 서울은 ‘올라가야’ 했다. 반면 ‘지방’은 북쪽이든 남쪽이든 ‘내려가는’ 곳으로 표현됐다. 이런 관습은 지금까지도 일상에 그대로 남아 있다. 대부분 ‘서울에 올라간다’고 한다. 지방에는 ‘내려간다’고 말한다. 공적인 공간의 표현도 그렇다.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교통수단은 상행선이고,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교통수단은 하행선이다.


서울과 통하는 길들에는 ‘경인선’, ‘경부선’, ‘경춘선’, ‘경인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같은 이름들이 붙었다. 이처럼 서울을 뜻하는 ‘경(京)’은 언제나 먼저 표현됐다. 중심이고 높은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높은 서울’은 모든 것을 서울로 향하게 했고, 굳건하게 모든 것의 중심지가 되게 만들었다. 신문과 방송의 언어도 대부분 이런 의식을 반영한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상경하지 못한 경남 지역 농민 88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수평적인 이동이라고 전제하면 여기서 ‘상경하지’는 ‘서울로 가지’ 정도로 대체되는 게 정당하다. 그러나 ‘상경’을 풀어 쓸 때 ‘서울로 올라오는’으로 표현하는 예가 적지 않다. ‘올라가다’도 공정해 보이지 않는데 한술 더 떠 ‘올라오다’로 표현하는 것이다. ‘오다’는 지역에 있는 농민 대신 서울에 있는 기자가 중심이 된 서술이다. 그러면 기자는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돼 버리고 만다. 참여자는 객관을 버리고 주관을 선택하게 된다.

“부산에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는 차편을 구하지 못해 부산역으로 갔다. ”이렇듯 ‘오르는’ 서울은 무의식적이라고 할 만큼 뿌리가 깊다. ‘오는’이라고 해도 충분한데 ‘올라오는’이라고 한다. 반면 지방은 이렇게 표현된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10여분이면 도달할 수 있고”, “지방으로 발령을 받아 내려갔다.”, “서울에서 경남 하동까지 내려가는 대절 관광버스 안에서” 

특정 지역을 설명할 때도 서울은 항상 중심이고 출발점이 된다.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얼마나 걸리는지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 때도 습관처럼 나타난다. 그리고 지방은 ‘내려가는’ 곳으로 표현된다. 이런 식의 표현은 서울을 높이고 지역을 낮추는 구실을 한다. 높이고 대접해야 하는 서울이라는 의식을 심는다. 다음과 같은 표현도 서울만 생각하는 표현이다. 감사원장은 오전 삼청동 감사원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역삼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촬영 현장에서”

서울에 있는 동을 나타낼 때 그곳이 서울인지 밝히지 않는다. 서울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매체도 아니면서 그렇다. 대학로는 서울뿐만 아니라 전주, 경산 등 다른 지역에도 있다. 그럼에도 서울의 대학로는 ‘서울’이 생략된 채 나타난다.  대학로 공연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연 8,000억 원이고 취업 유발효과는…”

다른 지역 대학로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칫 자기가 사는 지역의 대학로로 오해할 우려도 있다. 이런 식의 표현도 지방에 대한 차별 가운데 하나다. 서울 이외의 지역이 변두리라는 의식을 심어서는 곤란하다. ‘올라가는 서울’, ‘내려가는 지방’이 아니라 ‘가는 서울’, ‘가는 지방’이 공정하다.


월간<신문과방송>2010년 2월 '바른말좋은기사'

Posted by 정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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