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문과방송> 2008년 11월호

이정환 닷컴 운영하는 블로거 기자

정치적으로 올바른
‘다른 경제’를 꿈꾼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기자

검색 사이트에서 상위에 랭크된다는 것은 상당한 권력이 된다. 내가 한번 글을 쓰면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명의 독자들이 읽는다. 여론을 쥐고 흔들지는 못하겠지만 작은 울림을 줄 수는 있다. 얼마나 정확하고 올바른 콘텐츠를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회사 사장께서 들으시면 깜짝 놀라시겠지만 꽤나 오래 전부터 나는 내 진짜 직업이 블로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럼 회사는 뭐냐고? 부업이다. 본업이 밥벌이 수단으로 신통찮은데 그렇다고 인형 눈 붙이기 같은 걸 할 수도 없고 이왕이면 본업에 지장이 없거나 도움도 되면서 생계유지에 큰 불편이 없을 정도 수입이 되면 더 좋다. 여러 차례 옮겨 다니긴 했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는 부업 치고는 그렇게 나쁘지 않다.

나는 기자인가, 블로거인가?

사실 블로거에게 기자는 정말 매력적인 부업이다. 중요한 현장을 놓치지 않을 수 있고 이슈를 쫓으며 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고 고급 정보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고 취재를 빙자해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라도 만날 수 있고 굳이 인터뷰가 아니라도 궁금한 게 있으면 누구에게나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물어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본업과 부업이 크게 따로 놀지 않으니 하루 24시간을 한 가지 주제에 매달려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물론 기자도 기자 나름이다. 쓰고 싶지 않은 형편없는 기사를 써야 할 때도 있고 아무 관심도 없는 분야를 취재하고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인터뷰해야 할 때도 있다. 기자가 본업이 되면 입지가 좁다. 잘리지 않으려고 회사의 눈치를 보게 된다. 회사의 성향과 논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고 때로는 자신의 신념과 배치되는 기사를 쓰게 될 수도 있다. 본업과 부업이 뒤바뀌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소수의 엘리트가 언론을 독점하고 여론을 주도했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직접 언론을 소유하거나 여론의 형성과 확산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블로거를 본업으로 삼고 회사를 부업으로 다니는 것도 이런 변화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생계와 본업을 연결시키지 않는다면 권력과 자본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신념에 위배되는 타협을 최소화할 수 있다.
나는 평생을 기자로 살 생각이지만 굳이 특정 회사에 목을 매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럴 생각도 없다. 미디어오늘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매력적인 매체지만 이곳이 내 평생직장이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돈 벌이야 어디서든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쓰고 무엇과 맞서 싸우느냐다. 이정환닷컴은 그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처음 개설한 때가 2001년 10월이니 벌써 꼬박 7년이 됐다.

트래픽이 권력이다
그때만 해도 블로그라는 개념이 생소할 때여서 게시판 형태의 홈페이지로 운영을 했다. 기사 게시판과 자유 게시판, 방명록, 이를 테면 자료를 백업해 두는 수준이었고 책과 영화와 음악에 대한 글도 생각나는 대로 썼다. 테크노트라는 CGI 방식의 유료 게시판 프로그램을 썼는데 소스 코드를 수정하고 다듬어 뉴스 사이트 비슷한 꼴을 갖추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건 3주년인 2003년 10월부터다. 무버블타입이라는 공개 프로그램을 썼는데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블로그라는 게 제대로 개념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블로거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정환닷컴도 그때까지는 주변 친구들이나 가끔 찾는 정도였는데 블로그를 시작하고 블로그코리아 같은 이른바 메타블로그 사이트에 RSS 파일을 피딩한 뒤부터 링크를 타고 독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정환닷컴(www.leejeonghwan.com)은 외부 링크를 타고 들어온 독자들이 50%, 그리고 검색 사이트에서 넘어온 독자들이 30% 정도의 비율을 이룬다. 메타블로그에서 들어오는 독자들도 많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독자들이 검색 사이트를 타고 들어온다. 이를테면 검색 사이트 구글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첫 페이지 위에서 4번째에 이정환닷컴이 뜬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찾는 사람들이 이정환닷컴을 방문할 가능성이 꽤나 높다는 이야기다.

나는 2003년 9월에 이명박 대통령의 젊은 시절에 대한 짧은 글을 썼는데 구글에서 ‘이명박’을 검색하면 위키백과와 청와대 홈페이지에 이어 6번째로 그 글이 뜬다. 5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이 글에는 심심치 않게 댓글이 달린다. ‘경부운하’를 검색하면 맨 위에 뜬다. 또한 ‘투기자본’과 ‘외환보유액’ ‘파생상품’ ‘키코’ 등은 두 번째로 뜬다. 아직까지도 꾸준히 방문자를 불러오는 검색어들이다.
검색 사이트에서 상위에 랭크된다는 것은 상당한 권력이 된다. 이를 테면 내가 ‘다크나이트’라는 영화를 보고 글을 썼는데 다음 날 구글에서 이 영화 제목을 검색했더니 첫 페이지에 이 글이 걸렸다. 생일날 미역국을 끓여먹고 그 레시피를 블로그에 올렸더니 ‘미역국’이라는 검색어로 첫 페이지 맨 위에 랭크가 됐다. 인터넷에는 미역국에 관한 수많은 글이 있지만 구글은 내가 쓴 글의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했다.

구글은 동일한 검색어를 기준으로 가장 많은 링크가 걸려 있는 페이지를 가장 가치 있는 정보로 평가하는데 이를 페이지 랭크라고 한다. 링크를 많이 받는 블로그일수록 그 블로그의 콘텐츠가 유용한 콘텐츠로 평가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내가 한번 글을 쓰면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명의 독자들이 읽는다. 여론을 쥐고 흔들지는 못하겠지만 작은 울림을 줄 수는 있다. 얼마나 정확하고 올바른 콘텐츠를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다.

언론이 늘 진실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돈도 안 되는 블로깅이 본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회사에서는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을 블로그에서는 마음껏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과 진짜 하고 싶은 일이 100%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블로그 덕분에 나는 좀 더 역동적으로 현실을 고민하고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게 되고 그 어떤 기자도 하지 못한 새로운 전망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미디어오늘에서 경제팀장을 맡고 있는 나는 경제기사의 정치적 편향성, 특히 주류 언론의 맹목적 성장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기사를 주로 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 이면에서 벌어지는 기득권 계급의 여론 조작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이 내 부업이라면 우리 사회의 투기적 욕망과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맞서 싸우고 적극적인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적 대안을 고민하는 것이 내 본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지도 않았고 이공계 출신이라 인문학적 바탕도 얕고 주류 언론에서 일하고 있지도 않고 그나마도 회사를 너무 많이 옮겼다. 그러나 이런 한계가 오히려 새로운 도전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기득권 계급의 편향된 이데올로기에 속박되지 않고 이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진보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독립 언론이 가능할 거라고 본다. 시스템의 종속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다.

2006년 3월에 나는 그동안 블로그에 썼던 외환은행 불법 매각 사건 관련 글들을 모아 ‘투기자본의 천국’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기사로 써서 지면에 내보낸 글도 많지만 지면에 실을 수 없었던 글들도 많았다. 이 책의 출간 직후 론스타펀드의 법률 대리인이었던 아무개 로펌과는 명예훼손 소송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만약 블로그가 없었더라면 나는 취재를 중도에 그만뒀을 수도 있고 결국 이 책을 완성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언론이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아야 한다. 아예 침묵하거나 진실을 은폐하거나 편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언론은 광고주와 독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삼성그룹의 편법 경영권 승계를 비난하는 기사를 쓸 수 있는 곳은 한정돼 있고 부동산과 주식 투자의 탐욕을 비판할 수 있는 곳은 더 없다. 정부 비판은 차라리 쉽지만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과 맞서기에는 언론 역시 그 시스템에 기생하고 있다.

나는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 든 신자유주의와 금융 세계화를 비판하는 기사를 써왔고 그 대안을 다양한 각도에서 모색해 왔다. 주류 언론의 다른 기자들이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내게는 블루오션이 된다.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늘 반성하고 있지만 적어도 늘 깨어 있으려고 그리고 타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끔씩 절망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블로그가 밥 먹여 주나
블로거가 진짜 본업이 되려면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갖춰야 하고 부업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포털 사이트 블로거 뉴스에 글을 보내고 방문자들을 끌어 모아 배너광고로 푼돈을 벌수도 있다. 그러나 이정환닷컴이 아주 대중적인 주제를 쓰는 곳은 아니고 방문자 수도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광고도 내걸지 않았다.
핵심은 무턱대고 방문자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우선 콘텐츠를 더욱 강화하고 차별화하는 것이다. 만약 이정환닷컴이 어느 다른 언론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비판과 유효한 대안 사회 모델을 제시한다면 수익모델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설령 수익모델이 없더라도 그런 목표라면 남은 젊음을 통째로 걸어볼 만하지 않은가. 먹고 사는 게 문제라면 인형 눈 붙이기라도 할 수 있다.

지난해 미디어오늘로 옮긴 뒤부터는 다행히 본업과 부업의 간격이 많이 좁혀졌다. 하루 24시간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일과 지향이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요즘은 이정환닷컴을 통해 원고 청탁도 많이 들어오고 강연 섭외도 많이 들어온다. 이정환닷컴에 실린 글을 다시 기획해 출판하는 작업까지 시스템화한다면 머지않은 언젠가는 풀 타임 블로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이정환닷컴 같은 경제 관련 블로그들을 모아 메타 블로그 또는 새로운 형태의 인터넷 신문을 창간하는 구상도 있다. 다른 경제, 어너더이코노미닷컴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거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수많은 이정환닷컴들이 모여 비판을 쏟아내고 소통을 거듭하면서 대안을 모색해 나가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방향만 옳다면 주류 언론 못지않게 영향력을 확보하고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일도 가능할 거라고 본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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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7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어린뿔1 2009.04.07 11: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시고, 출처를 밝혀주신다면 퍼가셔도 좋습니다. 출처는 "월간 <신문과방송> 2008년 11월호 파워 블로거의 세계"라고 명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책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