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_로드다큐 '길'
                                                                                       하대성 전북도민일보 기획특집팀장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길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 생각하는 요즘 다시 길이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이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 것이다. 서점마다 걷기 책이 수북하다. 트레킹 관련 산업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산책, 운동 정도로만 인식되던 걷기가 문화상품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왜 사람들이 다시 길을 찾고, 걷는 것일까. 걷기 시대를 맞아 길은 과연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지자체마다 길 내기에 혈안이다.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동호회가 속속 결성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에서도 트레일 개척에 나섰다. 대한민국은 지금 길에 미쳤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걷기에 대한 온갖 미학적인 용어들을 들이대면서 걷기를 권장하고 있다. 그래서 뜬 것이 지리산길이며 제주 올레길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길 상품 소개를 구상했다. 걷기 상품을 3가지 관점에서 요리하기로 했다. 정보와 사실 그리고 정감으로. 손쉽게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비빔밥형 레저판'으로 기획했다. 보통 여행의 참맛은 배낭여행이고 배낭여행의 정수는 도보여행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쉬운 걷기가 여행의 정수라면 단순하게 떠나기도 했다. 모악산 둘레길을 첫 번재로 택했다.

 길에서는 헤매도 괜찮아요

 손에 노선이 그려진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나섰다. 그리고 엄청나게 고생했다. 원래 코스보다 두 배를 걸었고 시간도 두 배 걸렸다. 미개설 56Km 코스를 들랑날랑 대다 보니 100Km이상 걸었다. 발톱이 멍들고 가시에 찔리기도 부지기수. 하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완주의 기쁨과 보람이 힘듦보다 훨씬 컸다. 작년 10월 로드다큐 '길'1호는 이렇게 탄생했다.

 길 걷기 취재는 주로 금·토요일에 이뤄졌다. 주말이라야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첫날은 사전조사, 자료수집과 답사 형식으로 잡았고 이튿날은 답사한 코스대로 걸었다. 풍경과 감흥은 울림으로 전하고, 주민들 삶의 모습은 인터뷰로 채웠다. 마을 유래, 문화재, 전설 등은 문화원에서 협조를 받아서 담았다. 발품으로 걷기 상품을 만들었다. 본대로, 느낀 대로, 들은 대로 내러티브 기사체로 엮었다. 모악산 둘레길에 이어 군산 구불길, 익산 둘레길, 고창 질마재 100리길, 부안 변산 미실길, 장수 뜬봉샘 가는 길, 진안 마실길… . 걷기 열풍을 타고 열린 길을 소개했다.



 살아 있는 옛길을 명승지로

 부침의 역사길인 순창 회문산 빨치산길. 눈으로 보고도 걸을 수 없는 진안 용담댐 수몰길, 천혜의비경을 자랑하는 무주 금강벼룻길, 4대 종단에서 화합의 길로 낸 아름다운 순례길, 눈물 날 정도로 감동이 밀려오는 고창 청보리밭 길, 벽해상전된 새만금 방조제 길 등을 걷고 걸었다.

 가장 인상에 남은 길은 용담댐 수몰길이었다. 구정 특집으로 꾸민 수몰길은 겨울철 갈수리오 용담댐 물이 줄어 옛 동네가 드러났다. 2Km 남짓한 거리에는 10년 전의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마은 고샅길, 대문 앞 감나무, 도로 중앙선까지…. 수몰민 20여 명을 인터뷰해 망향가를 들었다. 용담 인근에서 사는 사람과 도시로 이사한 사람들을 망라했다. 한 수몰민은 물에 잠긴 고향집을 가보고 싶어 스킨 스쿠버를 배웠다고 한다. 주말이면 바다에서 물질 연습을 한다고 했다. "학교 교정은 온데간데없고, 산 날망 저 능선에 외로운 탑 하나…. 우리의 꿈도 묻었고, 우리의 희망도 묻었고, 손목을 마주 잡고 힘을 합하여 함께하던 친구들의 우정도 묻었고, 우리의 추억도 송두리째 묻어 버린 사모비…. 그 애타는 심정을 누가 알랴!" "태수기 그러게 말이여~ 이북에 고향 둔 실향민보단 더한 것 같혀~ 그 사람들은 상상이라도 하지만 우린 우짜겠는가! 뚫어지게 봐도 물뿐인 것을…. 근데 우리 벗들이 있기에 웃을 수 있지 않은가? 그나마 든든하잖아~" 코끝을 찡하게하는 마음카페 '모정24' 카페지기가 올린 고향에 대한 심경과 댓글이다. 실향민은 통일되면 갈 수 있지만 수몰민은 통일돼도 못 간다며 울먹였다. 짧은 2Km길이지만 무척 무거웠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허준은 '동으보감'에서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食補)보다 행보(行補)가 낫다"고 했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약이나 음식보다 좋은 것은 걷는 것이라고 봤다. 다산 정약용은 '걷는 것은 청복(淸福)' 즉 '맑은 즐거움이다'고 극찬했다. 그럼 옛날 사람들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옛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평지에 있는 옛길은 모두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뒤집어쓰고 있었으나 산속 옛길은 살아있었다. 그런데 마을 노인들께 옛길을 물으면 하나같이 길이 없어졌다거나 사라졌다고 했다. 알음알음 찾고 발굴한 옜길 5개를 보도했다. 진안에서 완주 소양으로 넘나들던 길로 임진왜란 웅치전투로 유몀한 곰티 옛길, 정읍과 장성을 오가던 고갯길인 갈재 옛길, 산적들이 많아 60명이 모여야 재를 넘었다는 육실령 옛길, 기암절벽을 깎아 만든 천년 묵은 무주 금강 벼룻길, 남원 여원재 등 발길이 끊겨 없어 졌따고 여긴 옛 고갯길에도 발자국을 찍었다. 특히 무주 금강 벼룻길은 천년 길로 그동안 언론에 공개안 된 천혜의 길이었다. 보도된 후 반향도 컸다. 여기저기서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느냐며 문의가 잇다랐다. 각시바위굴로 불리는 석굴은 벼룻길의 백미로 지금도 답사객들이 쇄도하고 있다. 문경토끼비리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명품 옛길이다. 풍광과 역사성이 우수한 옛길을 명승지로 지정하자고 주창하고 '옛길 발굴 및 아름다운 길 걷기' 길 세미나를 가졌다. 구룡령 옛길, 죽령 옛길, 문경새재, 문경토끼비리, 하늘재 등 전국에 있는 명승지 옛길 5곳도 답사해 소개했다. 지금 자치단체에서 살아 있는 옛길을 발굴해 문화재로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조만간 명품 옛길 두세 개는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트레일법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길을 많이 걷다 보면 저절로 자연보호론자 내지 환경론자가 되는 것 같다. 석산 개발로 허리 토막이 잘려 나간 산기슭을 보면 가슴이 저려 온다. 도로를 낸다며 가슴팍이 잘린 육산을 접하면 마음이 애린다. 올망졸망, 둥글밍글한 산야, 안으면 가슴으로 쏙 들어올것 같은데…. 보면 볼수록 아름답고, 걸으면 걸을수록 정겨운 것이 우리 땅, 우린 산임을 느꼈다. 로드다큐 '길'을 취재하면서 발견된 길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한 '길이 자산이다'도 7회에 걸쳐 연속 보도했다. 걷기 열풍, 왜 길의 경제학, 어떻게 길을 내야 하나, 개념 없는 지자체, 스토리가 생명, 개설보다 중요한 운영, 트레일법·길의 날 제정 등을 진단했다. 이 중에서 트레입법 제정은 급한 일이다. 길을 내는 가이드라인이 트레일법이다. 길의 폭은 어느 정도로 내야 할 것인가, 이정표를 어디에, 어떻게 설치해야 하나 등을 망라한 것이다. 길 내기 가이드라인이 없어 자치단체들이 애를 먹고 있고, 실컷 길을 내놓고 욕을 먹고 있는 실정이다. 예산 준다고 마구 시설물을 설치하고 데크를 만들어 놓고 있다. 걷는 데는 아주 조그만 이정표 하나면 족한데 말이다. 영국, 미국 등 선진국들은 진작에 길 내기 규칙을 만들어 가지고 있다.

 또 중요한 것이 '길의 날'제정이다. 현재 국가기념일은 50개가 있다.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의한 기념일이 40개가 있고, 개별법에 의한 기념일이 10개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길의 날'을 제정한 사례가 없다. 인류의 문명을 이끌어 온 '길'을 어느 나라도 국가적으로 조명하고 기념하는 날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제정하면 '길'의 새로운 역사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적어도 1년에 하루는 '길'의 고마움을 온 국민이 느끼며 기념하는 의미로 차는 집에 두고 걸어서 출근하고 학교 가자는 것이다. 방방곡곡 길을 걸어가는 국민의 모습을 항공 촬영한다면 기네스북에 오를 수 있는 장관이 연출될 것이다. 속도가 서구의 경쟁력이라면 느림의 미학으로 창의의 시대를 선도하느 모습,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길의 날'을 만들자
 
 5월 31일이 무슨 날일까? '바다의 날'이다. 국토해양부가 주관하는 국가 기념일이다. '바다'를 기념할 만한 가치와 필요성이 있기에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었듯이 '길'도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어야 할 충분한 가치와 필요성이 있다. 두 사람이 손잡고 걷자는 의미로 '10월 10일'이나 인간의 두발, 직립을 뜻하는 '11월 11일'을 길의 날로 지정하자는 의견까지 적극적으로 대두하고 있다. 로드다큐 '길'은 청원 형식으로 길의 날 제정을 위한 추진위 구성에 돌입했다. '길의 날 추진위'(약칭 길추위)를 출범시켜 전국적인 서명작업과 함께 국민 걷기대회, 길의 날 제정을 위한 세미나를 추진하기로 했다. 누군가 "길은 낼 탓이고, 일은 할 낫이다"고 했다. 로드다큐'길'은 길 걷기와 옛길 발굴 명승지 등록 추진, 길의 날 제정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길에서 길을 찾고 그 길에서 또 다른 길을 찾고 있는 로드다큐'길', 다음은 어떤 길에서 어떤 것을 찾을지 관심이다.
Posted by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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