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_KBS 특별생방송 '여기는 안나푸르나'
조영중 KBS대전방송총국 PD

4월2일 해발 4,200미터의 닐기리 베이스가 조용하다. 카라반을 시작한 지 이틀째. 방송단원들은 텐트에 시체처럼 누워 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온몸은 고열로 불덩이처럼 뜨겁다. 일부는 물만 먹어도 토해 낸다. 갑작스럽게 높아진 고도 때문이다. 산소가 평지의 절반밖에 안되는 상황. 환경 변화에 몸이 고역을 겪는 것이다. 오은선 대장이 돌아다니며 방송단원들의 상태를 체크한다. "물 많이 드시고, 오줌 많이 싸시고. 갑자기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좀 참으세요" 어쩔 도리가 없다는 오 대장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그렇다. 실제로 몸이 고지대에 적응하는 것 외에는 두통과 메스꺼움, 오한과 몸살기운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바로 그 점이 히말라야 고지대의 무서움이다. 헬기가 있어도 타고 가지 못하는 곳, 고지대에 몸을 서서히 적응시켜야만 지낼 수 있는 곳, 바로 그곳이 오늘날 지구상에 남은 극한의 오지 히말라야다. 높이 올라가 본 산이라고는 한라산, 지리산이 전부인 방송단원들. 가파른 경사에 다리는 후들거리고, 부족한 산소로 머리는 지끈거렸지만, KBS 방송단 25명은 히말라야 생방송을 위해 희박한 공기 속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방송장비만 3.1톤

 사실 히말라야 HD 방송계획은 처음부터 무모한 도전이었다. 통과해야 할 관문이 너무 많았다. 관문 중 하나라도 통과하지 못한다면, 생방송 전체가 실패하는 상황. 예를 들어 방송 장비가 오작동하더라도 오은선 대장이 등정에 실패한다거나, 오은선 대장이 등정에 성공해도 KBS 카메라맨들이 등정에 실패해 정상 등정 장면을 촬영하지 못한다면 생방송은 실패한다. 말 그대로 촘촘하게 짜여있는 톱니바퀴 중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전체가 틀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나푸르나 생방송이 무모해 보인 이유는 히말라야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이었다. 해가 쨍쨍 내리쬐다가도 순식간에 폭설이 내리는 변화무쌍한 히말라야의 날씨. 히말라야의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의 노력은 미미하다. 만약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방송단의 철저한 준비도 무위에 그칠 수밖에 없다.


 기술과 교통의 발달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생생한 영상을 제공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히말라야는 누구나 쉽게 발 디딜 수 없는 곳이었다. 히말라야 생방송은 방송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도전의 장이자 시청자에게 생생한 영상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럼에도 방송단은 무모한 도전에 일단 뛰어들었다. 네팔로 운반한 방송 장비 무게는 3.1톤. 대형 헬기로도 다섯 번이나 실어 날아야 하는 엄청난 무게였다. 장비는 헬기로 올렸지만, 방송단은 걸어서 베이스로 이동했다. 고소 적응을 위해서였다. 우리가 걸은 루트는 일반인들이 거의 찾지 않을 정도로 험준한 길. 만약 폭설이라도 내린다면 방송단이 제 시간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 없었을 것은 물론 모두가 무사히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나푸르나 여신은 카라반이 진행되던 4일 내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4월 4일 방송단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 지 1시간이 지나자, 해가 내리쬐던 베이스캠프가 순식간에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만약 방송단이 해발 4,600미터의 툴루부긴 고개를 넘을 때 눈이 내렸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 생방송을 감행한 것일까. 사실 히말라야 생방송 프로젝트가 갑자기 튀어나온 기획은 아니었다. 기술과 교통의 발달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생생한 영상을 제공할 수 있게 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히말라야는 누구나 쉽게 발 디딜수 없는 곳이었다. 때문에 히말라야 생방송은 방송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도전의 장이자 시청자에게 생생하고 신선한 영상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4,200미터에 방송센터 건립

 안나푸르나 생방송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또 다른 이유는 14좌 완등이 갖고 있는 콘텐츠 자체의 매력이었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할수록 그 속에서 우리는 점점 내면에 숨어 있는 야성을 잃어가고 있다. 새로움을 향한 모험과 호기심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는 오은선 대장의 도전은 안락에 기대어 꿈을 포기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게다가 히말라야는 삶과 죽음이 매순간 뒤바뀌는 곳이다. 그처럼 위험한 8,000미터 이상의 봉우리 14개를 모두 무사히 등정한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특히 오은선 대장은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 14좌 완등을 앞두고 있었다. 때문에 KBS방송단은 생방 중계를 위해 부족한 산소, 가파른 경사와 싸우며 기를 쓰고 해발 4,200미터 베이스캠프에 올랐다.

 도착하자마자 해발 4,200미터 고지에 방송센터를 건립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버거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산소가 턱없이 부족했다. 조금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마치 운동장을 두세 바퀴 뛰는 일처럼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무거운 짐을 나르고, 복잡한 전선을 연결해야 했으니, 방송단의 몸이 남아날 리 없었다. 오후만 되면 눈이 내리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추위는 방송단의 고소증세를 악화시켰다. 두통에 괴로워하는 사람, 설사를 하는 사람, 목 뒤가 뻐근한 사람, 소화가 안 되는 사람 등 증세도 다양했다.

 발전기를 돌리는 것으로 센터 건립 작업은 시작 됐다. 방송단은 소음과 환경 문제를 고려해 필요한 전력의 50%이상을 태양광으로 해결했다. 안나푸르나가 전해 주는 자연의 선물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방송 센터의 혈액에 해당하는 전기가 안정적으로 보급되면서 방송센터 건립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히말라야의 영상을 전송하기 위해 SNG위성송수신 장비를 설치했다. 해발 5,100미터에 캠프1을 세우고 그곳에서 2,200㎜ 망원카메라를 준비했다.

 방송센터가 거의 다 세워질 즈음 강력한 눈사태가 캠프1을 정통으로 덮쳤다. 베이스캠프에서 눈사태를 바라보던 스태프들의 표정은 한순간에 파랗게 질렸다. 모두의 뇌리를 단 하나의 문장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 끝났다.' 베이스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캠프 1 대답하라. 캠프 1 대답하라!" 하지만 답이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10분쯤 흘렀을까.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캠프1의 정하영 촬영감독이었다. "텐트 몇 동이 무너졌지만 대원 모두 무사합니다. 오버.'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구나. 당신의 눈사태는 캠프 1 카메라에 생생히 찍혔다. 정하영 촬영감독은 '엎드려'를 외치며, 정작 본인은 바위 뒤에 숨어 눈사태 순간을 안정적으로 담아냈다.

 가장 중요한 장비가 바로 오은선 대장의 정상 장면을 촬영할 정상 카메라 두대. 정하영 감독과 나관주 산악인이 촬영할 카메라였다. 두 사람이 촬영한한 영상과 음향은 마이크로웨이브를 통해 캠프1과 베이스에 도달되고, 다시 인공위성을 통해 한국으로 전송될 예정이었다.


 장비 전원 공급과 일교차 적응이 관건

 눈사태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방송국을 세웠다. 본격적인 장비 테스트가 시작됐다. 가장 중요한 장비가 바로 오은선 대장의 정상 장면을 촬영할 정상 카메라 두 대. 정하영 감독과 나관주 산악인이 촬영할 카메라였다. 두 사람이 촬영한 영상과 음향은 마이크로웨이브를 통해 캠프 1과 베이스에 도달되고, 다시 인공위성을 통해 한국으로 전송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될지는 미지수였다. 과연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서도 방송 장비가 제대로 작동할까. 게다하 히말라야에는 추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해가 내리쬐는 낮에는 기온이 급격히 올라갔다. 큰 일교차를 장비들이 견딜 수 있을까. 안나푸르나의 험준한 지형 속에서 송수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까. 아무도 해 보지 않은 과정이었기에 누구도  확실히 답할 수 없었다.

 우선 카메라를 특별히 개조해 영하 30도에서 몇 차례 시험 가동을 실시했다. 또한 험준한 지형 속에서 영상과 음성의 송수신이 원할이 이뤄지게 하기위해 방송 전진기지에 송수신기를 하나 더 설치했다. 정상에서 찍은 영상이 베이스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루트 개척을 위해 오은선 대장과 KBS 촬영 팀이 해발 5,600미터의 캠프2에 올랐다. 그곳에서도 장비 실험은 계속됐다. 캠프2에서 정하영 촬영감독이 촬영한 영상과 음향이 베이스 캠프에 깔끔하게 전달됐다. 방송장비를 총괄 담당하던 김승일 감독은 바로 그때 "비로소 HD로 정상 등정 생방송을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제 인간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났다. 단지 신의 허락을 기다려야 할 때였다. 오은선 대장은 작년 가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화이트아웃 현상 때문에 안나푸르나 등정에 실패 한 바 있다. 히말라야의 날씨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위대한 산악인도 히말라야 정상에 도달할 수 없다. 4월 22일 오은선 대장이 정상을 향해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정상 등정 목표일은 25일.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정상 등정을 하루 앞 둔 24일. 해발 6,400미터의 캠프 3에서 오은선 대장의 무전이 왔다. "바람이 너무 세서 루트 개척을 하러 나간 셰르파들도 전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25일 등정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역시나 안나푸르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회의 끝에 방송 날짜는 27일로 변경했다.

 4월 27일 오전 11시 등정 생방송이 시작됐다. 안나푸르나는 환한 햇살로 오은선 대장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상부의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망원 카메라에 잡힌 오은선 대장은 너무나 힘들어하고 있었다. 등반 속도도 생각보다 더뎠다. 3시간 정도의 방송시간을 생각한 방송단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대로 생방송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오후 1시 일단 방송을 중단하고 오후 3시에 다시 연결하기로 했다. 망원 카메라에 비친 오 대장과 KBS 촬영팀은 개미처럼 기어가고 있었다. 정상 등반의 고단함이 베이스캠프까지 전달됐다.

 방전 우려로 정상 100m 앞두고 카메라 ON

 문제는 또 있었다. 히말라야의 거친 환경을 모르는 사람은 흔히 촬영하며 등반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나푸르나 정상부의 경사는 잠깐의 방심으로도 굴러 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가파르다. 촬영하며 등반하는 건 위험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서서 촬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 대원들과 멀어지면, 그들을 따라잡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정하영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등반 내내 거의 켜지지 않았다. 베이스캠프는 불안하고 답답했다. '카메라에 문제가 있는 걸까?' '정하영 감독이 낙오한 것일까?'

 정하영 감독의 말이다. "당시 전 정상 촬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 올라가는 내내 배터리 방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이스캠프에서 무전이 계속 왔지만 전 정상 직전에 카메라를 켜기로 결심한 겁니다."


 4시. 5시. 정상 등정 시간은 계속 늦춰지고 있었다. 더 늦어지면 등정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 베이스캠프에서 준비한 VCR도 바닥이 났다. 베이스에선 정하영 감독을 계속 재촉했다. '야 인마! 등정 성공도 중요하지만 촬영을 해야지! 카메라 당장 켜!' 하지만 카메라는 여전히 작동하지 않았다. 왜 정하영 감독은 그때 카메라를 켜지 않았을까. 정하영 감독의 말이다. "당시 전 정상 촬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장면이 없다면 전체 방송 자체가 실패하는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전 올라가는 내내 배터리 방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추위에 배터리가 금방 방전되거든요. 그래서 베이스캠프에서 무전이 계속 왔지만 전 정상 직전에 카메라를 켜기로 결심한 겁니다."

 정상을 약 100미터 남겨 놓은 상황에서 드디어 정하영 감독의 카메라가 켜졌다.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얼마나 환소 소리가 컸는지, 당시 중계를 하던 유지철 아나운서는 오은선 대장이 정상 등정에 성공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정상을 앞둔 지점, 갑자기 오은선 대장이 힘을 내기 시작했다. 유지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드디어 오은선 대장이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정하영 촬영감독은 기쁨에 울부짖었다. 베이스캠프에서도 모두가 포옹하고 박수를 쳤다. 가슴 깊은 곳의 무언가가 한순간에 터져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불가능할 것 같았던, 그래서 등반 내내 마음을 조아리게 했던 불안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불가능이라 생각했기에 더 가치 있었던 도전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리고 더욱 가치 있던 KBS의 히말라야 HD 생중계 도전이 극적으로 성공했다. 모두가 얼싸안고 성공을 자축했다. 몇몇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직종 간의 벽을 허물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 만들어 낸 결실이었다. 오은선 대장의 등반이 아름다운 이유는 목숨을 내걸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도전 정신 때문일 것이다. KBS 역시 오은선 대장이 안나푸르나에 도전했던 것처럼 히말라야 생방송이라는 우리 안의 안나푸르나 등정에 도전했다. 이번 안나푸르나 등정 HD 새압ㅇ송이 값진 이유도 단순히 최초로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도전했다는 데 있다. 또 다른 안나푸르나들이 KBS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안의 안나푸르나를 오르기 위한 KBS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Posted by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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