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_산림청 산불감시 현장을 찾아서
김주영 한국일보 사진부 기자



 정식 기자 명함에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다. 우리 신문이 격주 화요일마다 제작하는 포토다큐의 취재를 맡게 된 것. 한국일보 포토다큐는 사진부가 독자적으로 기획해 제작하는 지면으로 한 면 전체가 사진과 짧은 기사로 구성되는데, 바이라인이 붙지 않는 작은 사진 하나만 지면에 실려도 기뻐하는 새내기 사진기자에게 면 전체를 혼자 맡는 일은 엄청난 부담일 수 밖에 없었다. 열심히 노력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수 많은 특종으로 한국 포토저널리즘을 선도한 한국일보 사진부의 위상에 먹칠을 해서는 안됐다.

새내기, 한 면짜리 포토다큐 맡아

 마감이 2주일 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아이템도 잡지 못했다.연초부터 다큐에 맞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려왔지만 영 신통치 않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에 고민만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틈나는 대로 역대 보도사진연감을 차근차근 살펴보고, 우리 신문에 실렸던 포토다큐도 전부 찾아봤다. 스토리 사진 관련 서적들도 뒤져가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똘똘한 아이템만 잡으면 절반은 성공한 셈인데…. 온통 아이템을 빨리 잡아보자는 생각뿐이었다. 한 번은 취재 결과를 본 데스크에게 폭격(?)을 당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꿈에서 무엇 때문에 지적을 받았는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감일은 계속 다가오고, 마음은 조급해지고, 하지만 계속 제자리 걸음. 앞서 지면을 멋지게 장식했던 선배들의 노력과 고민이 어땟을 지 그때서야 이해가 갔다. 결국, 마감을 열흘 정도 앞둔 시점에 포토다큐 팀장 선배가 아이템을 던져 줬다. 전전긍긍해 하는 후배가 안쓰러웠나 보다.

'산불', 왜 짧은 이 단어를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매년 봄철은 건조한 날씨 탓에 산불이 번번하게 발생하는 시기다. 이 맘 때 발생했던 대형산불들은 신문과 방송의 머리를 채우기도 했었다. 산불 현장 르포, 꽤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많은 사람들이 산불의 위력을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실감하고 있을 터이다. 하지만 산불 예방 관리 진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취재는 여기에 주안점을 뒀다. 독자들로 하여금 산불예방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대형사고를 막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결과는 없을 것이다.

 '산불'이라는 단 두 글자를 전달받은 머리가 새하얗던 도화지에 환상적인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직접 눈으로 현장을 보고,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기 전까지는 상상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늦었지만 시동은 건 셈, 이제 엑셀레이터를 밟을 차례다. 부드럽게 나갈 지는 두고 봐야 할 일.

 '산불은 누가 끄지?, 산불현장에 출동하는 헬기는 어느 기관 소속이지?' 아주 단순한 궁금증에서 취재는 시작됐다. 군 복무 시절 부대 근처에서 발생했던 산불을 떠올렸다. 등짐펌프를 짊어진 군인들, 머리 위로 쉴새 없이 날아다니며 물을 뿌려대던 대형 헬기들, 굉음을 내며 산불진화 현장에 투입되는 헬기들이 산림청 소속이라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산림청에 취재 의도를 설명하고 일정을 조율했다. 사실 마감까진 일주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기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현장에 가야 했다. 마감까지 남은 기간 일기예보를 보니 비, 비, 비…. 온통 우산 밑에 빗금이다. 예보대로라면 마감까지 맑은 날은 단 이틀에 불과했다. 산불현장 르포는 물 건너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푸라기라도 건져야 했다. 화재현장이 아니라면 훈련하는 모습이라도 취재하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출장을 나왔다. 산불발생 빈도가 높고 대형화 될 가능성이 높은 강원도 동해안산불관리센터를 주로 취재할 계획을 세우고 강릉으로 향했다.



아이템은 '산불', 계속되는 비, 비, 비…

 남은 시간은 5일. 비는 5일 중 4일 동안 추적추적 계속 됐다. 비가 오는 동안은 답답한 가슴을 안고 관리센터 산불감시 활동을 취재했고, 간간히 비가 그치면 여기저기 이동하며 대형 화재 현장, 산불감시원 등을 취재했다. 원하는 사진은 당연히 얻지 못했다. 출장 5일째, 숙소에 아침 햇살이 강하게 내리 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를 본 것이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들뜨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관리센터로 향했다. 센터에서는 이미 항공훈련준비를 마치고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내용을 전달받고 통제헬기에 미리 탑승해 취재를 준비했다. 장비와 통신상태를 최종 점검하고 헬기가 이륙했다. 센터를 이룩한 진화 헬기는 10분 정도를 이동해 취수, 진화 훈련장소인 소형 댐에 도착했다. 취수구를 늘어뜨린 헬기들이 차례로 수면에 접근했다. 산불진화용 헬기의 거대한 회전익이 일으킨 바람의 힘은 엄청났다. 헬기가 취수를 위해 수면에 다다를수록 나이테 같은 물 주름은 점점 더 선명해졌고 물의 입자들은 더욱 가벼워져 비상하기 시작했다. 비상한 물의 입자들은 찬란한 봄 햇살을 받아 영롱한 무지개 빛깔을 쏟아냈다. 상상으로도 그려보지 않은 그림이었다. 현장에서 무지개를 만날 것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검지손가락은 셔터에서 떨이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난생 처음 보는 장면을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보고 있는 나는 사진기자였다.



헬기 취수장면 영롱한 무지개

 취수를 마친 헬기들은 인근 야산으로 이동해 진화 훈련을 시작했다. 대형진화헬기가 동시에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촬영하고 취재를 마쳤다. 센터로 돌아오면서 촬영결과를 확인했다. 무지개가 예쁘게 담긴 모습을 확인하니 한숨부터 크게 나왔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은 꽉 막혔지만 마음만큼은 뻥 뚫렸다.

 지면에 게재된 다음 날 아침부터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사진 밑에 네 이름이 있을 줄은 몰랐다"며 기분 좋은 비아냥을 해대는 친구부터 사진기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 "사진 좋다"는 선배들의 격려까지. 그 날을 지금까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하루로 기억한다. 딱 지금까지다. 미래에 가장 행복한 하루를 계속 업데이트 할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다.
Posted by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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