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야 청산 가자' (http://blog.daum.net/yojo-lady)
이요조 다음 블로거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만난 블로그는 삐걱이기 시작한 낡은 인생에 윤활유가 되었다. 우울함에 갇힌 내게 친절하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더 없이 좋은 원고지가 되어 주고, 캔버스가 되어 주고, 멋진 친구가 되어 주었다.

 십년 전 어느 날 집에서 자판을 더듬어 연습하던 중 남편의 "며칠 저러다 말겠지~"란 비아냥에 힘입어 혼자서 둥둥 인터넷 바다로 헤엄쳐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텍스트만 구사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두 달간 밤을 새워 올려놓고 흐뭇해했다. 그러다 그 글들이 전부 사라지는 망연자실한 일을 겪고 당시에는 어려웠던 HTML을 잡고 혼자 끙끙댔다. 그림도 사진도 움직일 뿐 아니라 '시'라고 긁적여둔 어눌하던 내 글이 나비처럼 살아 움직이는 신기함에 매려되었다.

 원도 그림판을 펼쳐 놓고 마우스로 꼬박 한나절이 걸리는 그림도 그려보고 요술 상자의 마력에 빨려 들어갔다. 아이들끼리 엄마가 얼마 만에 이 요술에서 풀려나나 내기를 걸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섯 달, 6년이 지나고 만 10년이 넘어도 여전하기만 하니 이젠 중독이라고 보기엔 도를 넘어 일상이 되어 버린 셈이다.

 삐걱이기 시작한 인생에 윤활유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요에다 그림을 그려서 접목시키는 동요 칼럼을 쓰는 등 글쓰기에 열정을 쏟았다. 블로즈로 바뀌는 과정에서 수많은 그림들이 사라져 버린 점은 아직도 아쉬운 점이다.

 어렸을 적에는 감수성 예민한 문학소녀로, 어른이 되어서는 한국문인협회 시조시인으로 늘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내게 갱년기는 암울한 무덤과 같았다. 50이란 고갯길을 막 넘자 만난 블로그!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만난 블로그는 삐걱이기 시작한 낡은 인생에 좋은 윤활유가 되었다. 우울함에 갇힌 내게 친절하게 내미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더 없이 좋은 원고지가 되어 주고, 캔버스가 되어 주고, 멋진 친구가 되어 주었다.

 고향을 떠나온 객지에서 옛 기억의 편린들을 모아 회상할 수 있었던 것도 블로그였다. 2001년 2월 27일 시작한 블로그는 손수 가꾸어 일군 열정의 묵정밭이기도 하다. 어느 때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대나무 숲이 되어 주기도 했다. 삶의 고민을 상담할 필요도 없이 주절주절 뇌까리다 보면 저절로 치유가 되고 마는 희한한 해결사이기도 했다.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한 이후 거의 매일 업데이트를 해왔다고 자부한다. 여러 꼭지의 글을 올리고 싶어도 다른 블로그에 알림 글이 줄줄이 뜨는 게 미안해서 참아야 하는 날들도 부지기수였다. 물론 블로그 글이야 양보다 질이겠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꾸벅꾸벅 앞만 걸어가며 내가 느끼고 본 것을 글로 옮겼다. 남달리 특별히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젊은이들처러 번뜩이는 기지가 있는 글도 아니지만 타 블로그의 글이나 추세를 의식하지 않고 클릭 수에 연연하지 않고 써 왔다.

 지나가는 누가 그랬다. "이 블로그는 돌과 물, 햇살과 바람이 흐르며 살아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자연이 좋았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마냥 시골이 좋아 외갓집에 가면 먼 길을 마다 않고 걸었는데 그 길은 내게 걷는 길이 아니었다. 놀이였다. 나비가 있고 들꽃이 있고 개울이 있고 자갈돌이 있고 송사리가 있고 반짝이는 햇살이 있는가 하면 그늘이 있고 매미소리가 있었다.


이요조 님의 블로그 '나비야 청산가자'의 첫 페이지.

 한 갑자를 산 이 나이에도 세 살 버릇 여든 가는지 가끔 그런 자연이 있는 곳으로 곧장 날려 나간다. 대문만 나서면 내게는 늘 여행길이 시작되곤 했다. 마음에 닿는 대로 카메라에 담아 와서 내 문서에 저장해 두고 펼쳐 보고 그런 낙으로 지내는…. 핑핑 돌아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현실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이상향을 그리는 '꿈꾸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이뱌 청산 가자'라는 블로그 제목을 붙였는지도 모른다.

 바른 밥상과 슬로푸드 지향

 음식 역시 이런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우리의 전통요리를 기본으로 민들레 김치, 아카시아꽃 튀김, 엉겅퀴나물, 굴비 장아찌, 나아가 간고등어 고추장 장아찌 등 산해진미보다 나물 먹고 물 마시는 민초들의 전통음식을 주로 만든다. 바른 먹거리로 차린 '바른 밥상'과 전통 슬로푸드(slow food)를 지향하고픈 작은 바람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려 노력하고 있다.

 기존 블로거들은 대부분 독자들과의 소통 댓글과 방문을 하는 품앗이 댓글 등으로 독자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고유의 빛깔이 점차 다른 색으로 덧씌워지는 것 같아 가급적 외출을 자제했다. 내가 쓰는 글은 정보성이나 지식의 깊이를 보태는 글들이 아니어서 혼자 내면의 세계를 그려 가는 형식을 택했다.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올지라도 구석에서 붉은 벽돌을 갈아 소꿉장난을 하는 그런 유아적인 면이 다분함을 안다. 그냥 물 흐르듯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내리는 대로 묵묵히 내 밭에 씨레질해서 푸성귀를 심어 일굴 따름인 초로의 아낙일 뿐이다.

10년 전 그림판에 마우스로 그린 첫 그림.

주한미대사관 홍보 포스터에 한국의 대표 이미지로 소개된 이요조님의 김치사진.

 내 블로그의 글은 두 갈래다. 여행기와 요리 글. 요리 글은 딸에게 보내는 글이고 여행기는 다름 아닌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글이다.

 여행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고 어떤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포털 '다음'에서 여행 마스터 일을 하게 된 것이다. 2005년 12월에 시작한 여행 글쓰기는 2007년 7월까지 '시티N 지역정보'가 없어지기까지 계속됐다. 얼마간의 월정액과 인센티브로 주어지는 상여금으로 주부로서의 부담감을 벗어 던지고 훨훨 날아다닐 수 있었다. 마침 아이들도 다 키워 놓았고 집에는 연세 드셨지만 노모가 계셔서 실로 자유로운 새처럼 인생의 황금기를 맞는 행운도 겪었다.

 다음 엑스퍼트 '장독대 어머니'

 독자들의 호응이 높은 카테고리는 '엄마의 요리 편지'이다.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사진으로 요리를 쉽게 이해시키려 시작한 편지 글이 시초였다.

 이미 장성해 바쁜 딸 아이를 잡고 조근조근 가르치기엔 세상이 너무 변했다. 그런데 가끔은 지작생활하면서도 엄마의 블로그는 열어볼 수 있으니 블로그에 간단한 요리편지 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모녀간의 커뮤니케이션 장으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큰 기대 걸지 않고 콩나물 기르듯 물은 흘러 버려도 뭔가 남아서 그 키를 보탤 것이라 믿었더니 정작에는 내 딸보다는 네티즌 딸들이 더 좋아했다. "마치 엄마가 곁에서 직접 조근조근 이야기하며 가르쳐 주시는 것 같아 넘 좋아요"라는 댓글에 기분이 좋다가 간혹, "엄마가 돌아가시고 안 계세요. 이 글을 보니 자꾸 엄마 생각에 눈물이 나요" 이런 댓글을 볼 때, 나는 얼마나 이기적이었는가를 돌이켜보게 됐다. 뭔가 그 딸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은 없을까?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엄마로서, 시대를 먼저 살아 온 삶의 선배로서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만인의 엄마가 되고자 다짐했다. 전통음식의 기본이 되는 된장 간장 담그는 방법, 김치의 종류와 김치 담그는 법, 된장찌개 끓이는 소소한 방법까지 전해 줄 게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은 지금은 '장독재 어머니'란 닉네임을 가진 엑스퍼트로서 '다음 지식'에 올라오는 한식 관련 질문에 마음과 정성을 담아 일일이 답변해 주고 있다.

 다음 카페 '김치와 된장 이야기(http://cafe.daum.net/MomKimchi)를 만들어서 카페 회원들에게 매일 계절에 맞는 반찬 메일도 보내고 있다. '처음 한 김치찌개 너무 만족. ㅎㅎㅎ 제 옆지기가 내일 맛보고 깜짝 놀랄 거예요. 옆지기가 내일 쉬는 날이라 내가 조금 남겨 놨어요. 그런데 너무 자신감이 생겨서 도전한 된장찌개는 뭐가 부족하거나 된장이 잘못된 듯해요. 그래서 그건 흔적없이 다 먹어 버렸어요. 된장찌개는 공부 더해서 다음주에 재도전합니다. 이요조님 저에게 이렇게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어서 너무 감사합니다."이런 인사를 받으면 몸이 찌뿌둥하더라도 기꺼이 일어나서 요리를 하고 카메라에 담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한다.


이요조 님이 개설한 다음 카페 '김치와 된장 이야기' (http://cafe.daum.net/MomKimchi)

 앞으로도 내 나름의 글쓰기를 이어갈 것이다. 카페 회원들에게 메일로 나눠 주기 위해, 장독대 곁에 핀 봉숭아꽃처럼 그렇게 피어 있고 싶다. 내가 시드는 날까지. 화수분의 샘을 가진 영원한 이야기꾼으로 말이다.
Posted by 박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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