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메딜 무죄 프로젝트(The Medill Innocence Project)는 노스웨스턴대학의 학부학생들이 잘못된 사법적 결정 사례들을 대상으로 탐사보도를 시도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불과 10년 만에 장기 복역수 11명의 무죄를 입증해 풀어 줬다. 그 가운데 5명은 사형수였다. 1999년 프로젝트 시작 첫해 무죄를 입증해 준 앤서니 포터는 사형 집행 48시간을 앞두고 풀려났다.

                           메딜 무죄 프로젝트(www.medillinnocenceproject.org)


 메딜 무죄 프로젝트(The Medill Innocence Project)의 기록은 놀랍다. 불과 10년 만에 장기 복역수 11명의 무죄를 입증해 풀어 줬다. 그 가운데 5명은 사형수였다. 1999년 프로젝트 시작 첫해 무죄를 입증해 준 앤서니 포터는 사형 집행 48시간을 앞두고 풀려났다.

탐사보도 수업의 일환

 이 프로젝트의 홈페이지는 www.medillinnocenceproject.org다. 프로젝트의 주체는 시카고에 있는 노스웨스턴대학 메딜 저널리즘스쿨이고, 주관하는 사람은 이 학교에서 탐사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프로테스 교수다.

 “메딜 무죄 프로젝트는 노스웨스턴대학의 학부학생들이 잘못된 사법적 결정 사례들을 대상으로 탐사보도를 시도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탐사 대상의 선정은 살인사건에 우선권을 준다. 사형을 선고 받았거나 감형이 허용되지 않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주로 선택된다. 우리는 외부 기자들, 사설탐정들 또는 자원하는 변호사들과 공동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우리의 목적은 사법체제의 잘못된 유죄 판단을 드러내고 바로잡는 데 있다.”

 메딜 무죄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설립 목적을 설명하는 글의 한 단락이다. 이 프로젝트는 1990년대 초부터 소규모로 진행돼 오다 1999년 공식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직원으로 프로테스 교수를 돕는 사람은 사립탐정 1명과 변호사 1 명 등 둘이다.

 이 프로젝트의 구체적 작업은 노스웨스턴대학 저널리즘 전공 학생들이 프로테스 교수가 강의하는 탐사보도 과목에 등록하면서 시작된다. 탐사 대상 사건들은 법원으로부터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는 죄수들이 프로테스 교수에게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 달라고 보내오는 편지들을 검토해 결정한다.


살인죄가 선정기준

 이 프로젝트가 홈페이지에 제시한 선정 기준은 다음의 다섯 가지다. 첫째, 범죄가 발생한 지역은 일리노이주 에번스턴(노스웨스턴대 소재지)에서 250마일 이상 떨어진 곳이면 안 된다. 100마일 이내면 더 바람직하다. 둘째, 기소 내용에 살인죄가 포함돼 있어야 한다. 셋째, 해당 사건은 세 번의 재판을 모두 거쳐 최종적으로 유죄가 확정된 상태라야 한다. 넷째, 범인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완전한 무죄를 주장해야 한다. 형기를 줄이고 싶거나 법률적 이익을 위해 지원하는 사람은 배제한다. 지원자가 범행 현장에 있었던 경우도 탐사 대상에서 제외한다. 다섯째, DNA 조사 대상이 아니라야 탐사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사건 선정 기준을 이렇게 일리노이주로 제한해 놓았지만 무죄를 주장하는 사형수들은 전국에서 자신들의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고 요청한다. 실제로 텍사스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한 경우도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소그룹으로 나뉘어 선정된 사건들에 대해 철저한 재조사에 돌입한다. 이 과정은 해당 사건에 관련된 모든 법원기록물의 재검토와 관련 미디어 보도 내용의 확인 등 문헌자료의 수집과 검토로 시작된다. 그 다음은 법정에서 증언한 증인과 참고인들에 대한 확인 작업을 진행하며 사건 현장 주변의 재조명, 새로운 증인의 발굴 등 추가적인 작업이 진행된다. 프로테스 교수와 학생들은 이러한 전체 과정을 체계적으로 다시 정리하며, 새로운 증인들의 증언이나 기존의 법정증언 내용을 바꾸는 사람들의 증언 등을 비디오로 녹화해 해당 사건을 재심하는 법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증거들을 모아 나간다.

 1999년 앤서니 포터 사건은 학생들이 이러한 노력을 통해 진범의 고백을 받아냄으로써 포터의 무죄를 입증한 경우다. 그는 풀려나기까지 거의 20년을 사형수로 감옥에서 보냈다. 포터 사건은 당시 조지 라이언 일리노이 주지사에게 충격을 주었다. 라이언 주지사는 이 사건으로 인해 2000년 1월 일리노이주 사형수들에 대해 사형집행 정지 명령을 내린다. 사법제도가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실증적인 사례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퇴임을 앞두고는 사형수들을 모두 종신형으로 감형해 줬다. 메릴 무죄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비용은 알파우드 재단의 지원과 개인 기부자들의 도움으로 충당한다.

 이 프로젝트를 창안하고 주도해온 데이비드 프로테스 교수는 1981년 노스웨스턴대학 메딜 저널리즘스쿨에 부임했다. 그는 루스벨트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1974년 시카고 대학에서 공공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사법제도를 다루는 전문잡지와 학술지들에서 탐사보도를 담당하며 주로 잘못된 판결 사례들을 추적해 보도했다. 
 
50개 대학에서 무죄 네트워크 결성

 메딜 무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프로테스 교수는 많은 미국 주류 매체들의 취재대상이 됐다. ABC 뉴스는 그를 ‘이 주일의 인물’로 선정했고, CBS의 ‘60 Minutes’도 그의 프로젝트를 다뤘다. 뉴욕타임스, 시카고트리뷴 등은 여러 차례 기사와 사설, 칼럼 등으로 프로테스 교수와 메딜 무죄 프로젝트의 활동을 보도했다.

 수상 기록도 화려하다. 시카고의 리처드 데일리 시장은 프로테스 교수의 날을 선포해 줬고, 미국 신문노조가 주는 ‘허브 블록’상을 비롯해 2003년에는 상금을 10만 달러나 주는 ‘푸핀/네이션 인스티튜트 상’을 받기도 했다. 노스웨스턴 대학에서는 14번이나 ‘최우수 교수상’을 받았는데, 이 상은 학부 학생들이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메딜 무죄 프로젝트는 일리노이주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전국적인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미국 전역에 있는 50개 저널리즘 스쿨과 법학대학원들은 이미 무죄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각 지역에서 노스웨스턴대학과 비슷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프로테스 교수는 처음부터 창립 이사로 이 네트워크의 창설을 지원하며 1990년대부터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나눠 주고 있다.

 칼 갠터는 1991년 메딜스쿨 학생이었다. 그는 당시 프로테스 교수팀에서 일곱 살 된 딸을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이던 데이비드 두왈리비라는 사람의 사례를 조사했었다. 다음은 그가 메딜 무죄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올린 회고담이다. “그 사건은 나의 DNA를 바꾸어 버렸다. 프로테스 교수와 함께 두왈리비 사건의 판결을 뒤집은 경험은 끈질긴 취재와 사건의 추적을 통해 저널리즘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체험이었다.”

 숀 암브러스트는 워싱턴과 메릴랜드, 버지니아 지역에서 무죄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책임자다. 그녀는 10년 전 앤서니 포터 사건의 재조명에 참가해 포터의 무죄를 입증한 경험을 회고한다. “나는 또 글쓰기 강의를 듣기가 싫어서, 그리고 강의 주제가 멋있는 느낌이라서 프로테스 교수의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강의는 결국 나의 미래를 결정했다. 포터 사건의 자세한 사실들을 뒤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고, 마침내 그가 무죄라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을 때,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이 프로젝트의 홈페이지에는 현재 조사 중인 주요 사건들에 대한 경과보고서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일리노이주 검찰의 반격

 프로테스 교수와 메딜스쿨 학생들은 2009년 일리노이주 쿡카운티 검찰총장으로부터 증거자료 제출 명령을 받는다. 쿡카운티의 검찰총장은 아니타 알바레즈 검사다. 문제가 된 사건은 앤서니 매키니 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78년 매키니가 18세일 때 일어났다. 그는 시카고 교외 지역의 안전요원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수사과정에서 살인을 고백한 것으로 정리돼 있었다. 30년이 넘게 지나 메딜스쿨 학생들이 이 사건을 다시 조명하기 시작했다. 사건 당시 유죄를 입증하는 데 가장 중요했던 한 증인은 매키니가 살인범이 아니라고 증언을 바꿨다. 수사과정에서 심하게 구타를 당해 매키니가 살인범이라고 거짓 증언을 했다고 했다.

 다른 새로운 두 증인은 매키니는 그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남자는 자신은 살해 현장에 있었지만, 매키니는 그곳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프로테스 교수와 메딜스쿨 학생들이 이러한 자료를 제출해 사건을 다시 심리하는 청문회가 열리자 검찰이 반격에 나섰다. 메딜스쿨 학생들은 기자가 아니기 때문에 일리노이주 기자 특권법(Reporter's Privilege Act)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알바레즈 검사는 학생들의 성적 자료와 비용에 관한 자료를 모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강의 계획서와 성적 평가표도 내놓으라고 했다.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증인을 매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법리논쟁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시카고트리뷴지는 강력하게 학생들을 지지하는 사설을 싣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도 2009년 11월 16일 미디어난에 관련 칼럼을 게재하며 프로테스 교수 팀에 힘을 실어 줬다. 이 다툼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와 관계없이 메딜 무죄 프로젝트는 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었다. 그러면서 미국 사법제도의 문제를 드러내고, 신념으로 다져진 준비된 탐사 기자들을 배출한다. 저널리즘 교육이 어떻게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부러운 사례다.


 

Posted by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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