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2월호 언론현장 제작기


제작과정은 ‘북극의 악몽’
결과는 명품다큐
MBC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

허태정 MBC 시사교양 1CP PD

이번 기획은 ‘지구온난화’라는 주제를 먼저 고민했고 그 심각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재로 북극을 택했다는 게 달랐다. 북극의 원초적이고 광대한 자연과 함께 그 생태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의 극한적인 삶과 변화의 과정을 함께 보여 주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 스케일이 달랐다.

12년 전에 장덕수 PD가 다녀왔던 그린란드 중부도시 일록수이트에선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온난화로 인해 얼음이 녹으면서 당시 출연했던 사냥꾼 몇 명이 죽었고 그 마을은 이제 한적한 어촌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촬영해 온 테이프를 보면서 다음 촬영계획을 수정했다.     


 2008년 12월 8일 오전 7시경.  “삐리리” 하는 소리와 함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휴대전화를 재빨리 열어 보았다.  ‘TNS 13.3%, AGB 닐슨 13.0%(수도권 기준 시청률).’ 성공이었다. 아니 대박이었다. 전날인 일요일 밤 10시 35분부터 MBC를 통해 방영된 ‘북극의 눈물’ 1부 ‘얼음왕국의 마지막 사냥꾼’의 시청률 결과였다. 기자들은 ‘명품 다큐’라는 표현을 쓰면서 축하해 주었고 인터넷 게시판엔 프로그램에 대한 열띤 반응이 쏟아졌다.
이후 1주일 단위로 2부 ‘얼음 없는 북극’, 3부 ‘해빙(解氷) 사라지는 툰드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북극의 눈물 제작기’가 연이어 방송됐다. 두 자릿수 시청률과 호평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우리 제작진 누구도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제작비도 시간도 부족
10억 협찬으로 겨우 시작해
‘북극의 눈물’이 기획된 것은 방송 1년 전쯤인 2007년 12월이었다. 물론 몇몇 PD들이 제안했던 ‘북극’ 관련 아이디어들은 이미 있었다. 또 1996년에 장덕수 PD(현 MBC 프로덕션 사장)가 제작했던 ‘그린란드 에스키모와의 100일’(3부작)이란 프로그램도 MBC에서 이미 방영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기획은 ‘지구온난화’라는 주제를 먼저 고민했고 그 심각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재로 북극을 택했다는 게 달랐다. 북극의 원초적이고 광대한 자연과 함께 그 생태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과 동물의 극한적인 삶과 변화의 과정을 함께 보여 주어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무엇보다 스케일이 달랐다.
  주인공이나 한 지역을 섭외해 그곳을 집중적으로 촬영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또 로드무비 방식으로 이동하면서 북극의 다양한 모습을 담는 방식도 해결책이 못됐다. 캐나다 공영방송인 CBC의 캐럴라인이라는 북극 전문 프로듀서를 직접 만나 알아보니, 북극은 워낙 변수가 많기 때문에 철저한 사전조사에 의해 계획을 짜야 하고 편당 10억 원 정도는 투자해야 괜찮은 프로그램 한 편이 나온다고 했다. 전문적인 제작 노하우의 부족과 엄청난 예산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2008년 3월 초. 후배인 조준묵 PD는 알래스카로, 나는 캐나다로 각각 답사를 다녀왔다. 온난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된 알래스카는 이미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북극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는 얼음왕국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캐나다 북부와 그린란드를 취재하기로 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창사 특집을 위해 쓸 수 있는 예산은 직접제작비(인건비와 장비, 시설 사용료 등을 뺀 순수제작비) 5억 원. 대충의 촬영계획을 잡아 보니 최소 15억 원은 필요했다. ‘제작비에 맞춰 프로그램 촬영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는 안과 ‘프로그램 성격에 맞게 제작비를 늘려야 한다’는 안을 놓고 몇 차례 심각한 토의를 했다. 결국 우리가 북극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면 할 때 한번 크게 저질러 보자는 것과 대형 다큐멘터리의 전범을 만들어 보자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다.
 


  본격적으로 경험 부족을 메우기 위해 캐나다 현지 자료연구원을 고용했고 전문적인 북극 코디네이터를 섭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꽤 이름 있고 저렴한 현지 지원팀들은 이미 BBC나 유럽의 유명 방송사와 계약이 돼 있었다. 매일 밤 국제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현지와 연락을 취한 끝에 방송경험이 있는 한 지원업체와 선이 닿았다. 기획의도와 촬영내용을 설명하면 그들이 촬영 시기와 장소를 잡는 식이었다.
  제일 처음 부딪친 문제는 우리의 현장감 부족이었다. ‘이런저런 장면들을 촬영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면 그들의 답변은 ‘그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한 달 아니 2, 3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2주 만에도 찍을 수 있으니까 보장할 수는 없지만 너희 예산에 맞춰서 스케줄을 짜주겠다’였다. 또 ‘좀 더 좋은 그림을 위해 어떤 장비를 쓰고 싶다’고 하면 ‘북극에서 그 장비를 쓰려면 2, 3배의 비용이 든다. 예산을 늘리면 가능하다’. 이런 식이었다. 결국 문제는 시간과 돈이었다.
  그 와중에 협찬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먼저 언론 관련 공익단체들을 알아봤는데 시기가 맞지 않았고 액수가 크지 않았다. 다음으로 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우리는 없는 제작비를 쪼개 협찬용 브로셔를 제작하고 왜 이 프로그램에 지원해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자료를 만들었다. 당시 정호식 국장과 윤미현 팀장이 열심히 발로 뛴 결과, 우리는 조선업을 하는 한 업체로부터 10억 원의 협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1차 출장을 떠나는 날까지 협찬이 성사되지 않아 제작비에 대해 엄청난 부담을 느껴야만 했다.

온난화된 북극,
촬영할 ‘흰 눈’이 없다
촬영은 4명씩 2팀으로 나눠서 했다. 연출, 조연출, 카메라 2명이 한 조가 되었다. 첫 출발일은 5월 13일. 북극이란 낯선 환경에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두 팀의 장비를 포함한 짐의 무게는 1톤에 달했다. 캐나다 토론토까지 함께 간 뒤 사냥꾼을 촬영하러 그린란드 최북단 도시 카낙으로 가는 조준묵 PD팀과 헤어졌다.
  캐나다 북부의 작은 도시 쿠작이 우리의 첫 목적지였다. 이곳에서 먼저 항공촬영을 하기로 했다. 북극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도시는 작년 이맘 때만 해도 눈에 덮여 있었다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눈이 많이 녹아 있었다. 작년보다 한 3주 정도 빠르다고 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북극의 남쪽을 선택했는데 이렇게 빨리 온난화가 진행되는지 몰랐다. 다행히 기장이 2시간 정도 북쪽으로 비행하면 눈과 얼음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문제는 날씨였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지역에는 얼음처럼 딱딱해진 눈보라가 수시로 내려 비행시간을 예측할 수 없었다. 시네플렉스라는 비싼 카메라 장비와 카메라맨까지 고용한 상태에서 마냥 날씨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다행히 예정된 1주일 중에 4번의 항공촬영을 할 수 있었고, 노련한 조종사와 카메라맨이 호흡을 잘 맞춰 북극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잡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기다림의 고통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첫 촬영을 마친 뒤, 우리는 비행기 꼬리에 북극곰이 그려진 퍼스트 에어라는 현지항공편을 이용해 북위 73도에 위치한 ‘폰드인레’라는 이누이트 마을로 갔다. 얼음이 꽁꽁 언 마을 앞바다에서는 몇몇 가족들이 사냥여행을 떠나기 위해 카무틱(사람과 짐을 싣는 이누이트 전통 썰매)에 짐을 싣고 있었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살을 에는 북극의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이하. 그런데도 이들은 갓난아기까지 데리고 얼음판 위로 캠핑을 떠났다. 전업 사냥꾼들은 줄어들고 있지만 대대로 내려온 전통 삶의 방식을 배우고 전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이누이트들의 잔인한 사냥 방식이 언론에 부정적으로 비춰지면서 그들은 카메라를 극도로 꺼렸다. 결국 우리는 그들과 헤어져 북위 75도에 위치한 랭카스터 해협에 캠프를 차렸다. 북극곰, 일각고래, 물개 등 북극의 동물들을 촬영하기 위해 여기서 3주간 생활해야 했다.

생명체는 제작진 뿐?!
얼음 바다 위의 기다림
비행기에서 내리니 온통 눈과 얼음의 세상이었다. 텐트를 친 곳은 얼음이 두껍게 언 바다 위. 배수를 위해 구멍을 뚫어 보니 두께가 2m 20cm 정도였다. 깊게 언 곳은 6m 정도라고 했다. 우리 팀은 캐나다 코디네이터 1명, 이누이트 가이드 4명, 요리사 1명, 수중카메라맨 1명 그리고 MBC 제작진 4명을 포함해 모두 11명. 북극의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생명체라곤 제작진 외에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캠프에 도착한 후, 4일 동안 북극곰을 찾아다니고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백야가 시작되어 밤이 돼도 사위는 온통 하얗게 밝았지만 추위는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것은 추위가 아니라 끝없는 기다림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초조함 속에 모두 지쳐 갔다.
  결국 5일째 되는 날, 북극곰을 만날 수 있었다. 가이드가 우리에게 요구한 최소한의 거리는 20m. 그러나 그 정도 거리로는 만족할 만한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10m 정도 접근해서야 좋은 그림이 나왔다. 다행히 북극곰이 우리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든 촬영이 위험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제작팀이 북극에서 보낸 기간은 두 팀 합쳐 모두 9개월. 출발하기 전 생각했던 것보다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예상외의 성과들도 있었다. 특히 12년 전에 장덕수 PD가 다녀왔던 그린란드 중부도시 일록수이트에선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온난화로 인해 얼음이 녹으면서 당시 출연했던 사냥꾼 몇 명이 죽었고 그 마을은 이제 한적한 어촌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촬영해 온 테이프를 보면서 다음 촬영계획을 수정했다.
  2차 촬영은 8월 초에 시작됐다. 북극곰의 여름나기, 흰고래라고 불리는 벨루가와 바다코끼리 등 북극 해양 동물의 이동, 녹아 내리는 빙하와 빙산 등 온난화로 인한 북극의 변화가 주요 촬영 내용이었다. 북극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녹고 있었고 그로 인해 동물들의 이동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가장 힘들었던 촬영은 순록 떼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이었다. 9월이 되면 북극은 다시 추워지기 시작하고 순록 떼도 조금씩 무리를 지어 남하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순록이 지나는 길목에 있는 산장에 캠프를 차리고 한 달간 기다렸다. 그러나 좀체 거대한 순록 무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순록들은 날씨 변화에 따라 이동경로를 해마다 바꿨고 우리가 광활한 툰드라에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운송수단은 도보였다. 하루 종일 걷다 보면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었고 조금만 쉬고 있으면 땀이 식어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북극의 악몽은 계속되고 있었다. 대규모 이동은 11월인 겨울이 되어서야 결국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처음 제목을 ‘북극의 눈물’로 정하게 된 계기는 ‘빙하의 눈물’이라는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 한 컷에 온난화에 대한 심각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1년 동안 추위와 기다림 속에서 본 북극의 아름다운 모습은 보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송이 나간 뒤의 시청자 반응은 우리의 기대 이상이었다. ‘북극곰 돕기 후원회’가 결성되고 생활 속의 작은 실천에 대한 제안도 잇달았다. 이런 피드백은 제작진에게도 큰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주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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