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2월호 언론현장 제작기

비현실적 제작비와 일정 속에서
EBS 사상 최고 시청률 달성
EBS ‘한반도의 공룡’

한상호 EBS 편성기획팀 PD

발굴과 고증, 인터뷰, 그에 기초한 공룡의 컴퓨터 그래픽 재현으로 이루어지는 판에 박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실사로 촬영한 배경에 합성된 실제 같아 보이는 공룡들이 빚어내는 감동적인 스토리. 그것은 전인미답의 팩션(Faction, Fact+Fiction) 다큐멘터리 영역이었다.

기존 작품들에서 나온 공룡들은 대부분 어둡고 색감이 부족했다. 우리는 공룡이 주행성 동물이고 오늘날의 파충류와 조류의 생태를 볼 때 화려한 색깔과 보호색을 가졌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컬러풀한 공룡들이 탄생했다. ‘쥬라기 공원’ 등 기존의 영화나 다큐멘터리보다 ‘한반도의 공룡’이 뛰어난 부분이었다.


‘한반도의 공룡’은 필자도 놀랄 만큼 열렬한 반응 속에 끝이 났다. EBS 사상 최고의 시청률이라는 기록이 세워졌고 지금까지 한반도의 공룡 홈페이지를 다녀간 숫자가 1만 5,000회를 넘고 있다.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의 원인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할리우드에서나 가능하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수준 높은 컴퓨터그래픽 기술로 공룡을 재현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순수 우리 기술로 말이다. 둘째는 이 다큐멘터리가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로 짜여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반대로 이 원인들이 작품을 시작할 때는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한반도의 공룡’을 기획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가장 우려한 부분이 바로 그 기술력이었다. 이미 ‘쥬라기 공원’이나 BBC의 다큐멘터리 수준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국내 시청자들이 아닌가?
  필자는 처음부터 이 작품을 완벽한 서사구조를 가진 다큐멘터리 영화로 기획했다. 발굴과 고증, 인터뷰, 그에 기초한 공룡의 컴퓨터 그래픽 재현으로 이루어지는 판에 박힌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방송작가’ 1월호에도 밝혔지만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동력은 상상력이 있는 이야기와의 만남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사로 촬영한 배경에 합성된 실제 같아 보이는 공룡들이 빚어내는 감동적인 스토리. 그것은 전인미답의 팩션(Faction, Fact+Fiction) 다큐멘터리 영역이었다.

팩션과 다큐의 결합
“이야기가 있는 다큐”
 문제는 이 거창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의 전편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50분 다큐멘터리 두 편을 제작해야 했으니까 전체 90분 정도의 컴퓨터그래픽을 제작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조사해 보니 BBC가 제작한 ‘공룡 대탐험(Walking with Dinosaurs)’도 ‘한반도의 공룡’과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인데 1999년 물가로 제작비가 160억 원 정도 들었다고 했다. 제작기간만도 3년이었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액수였지만 국내에서는 좀 다르지 않을까? 국내 제작업체들도 70분 분량의 컴퓨터그래픽 제작비로 대략 30억 원 안팎의 제작비를 제시하였다. ‘한반도의 공룡’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았는데 통상적인 다큐멘터리보다는 제작비가 꽤 많은 형편이었지만 30억 원 규모라면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민병천 감독이 설립한 올리브스튜디오에서 심사숙고 끝에 공동제작을 결정해 주어서 일단 ‘한반도의 공룡’이 세상으로 나오는 첫걸음을 디딜 수 있었다. 민병천 감독의 후일담으로는 모든 작업자들이 이 작품을 하는 데 반대했다는 것이다. 도저히 그 제작비와 스케줄로는 불가능하다는 우려들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공룡’의 전체 프로덕션은 기획부터 시작해도 채 12개월이 되지 않는다. 돌이켜봐도 아찔한 스케줄이지만 그 기간 내에 끝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조차도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꼼꼼하고 엄격한 프리프로덕션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시나리오가 급선무였는데, 작가와 나는 총괄자문을 해주신 허민 교수(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와 함께 광주에서 합숙하듯이 하면서 시나리오를 만들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그런 열정 끝에 거의 두 달 만에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2월이었으니까 이제 남은 시간이 10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시나리오가 나오는 사이에 주요 등장 공룡들에 대한 모델링 작업이 선행되고 있었다. 모델링은 공룡의 형태를 만드는 작업이니까 시나리오 완성 전에도 먼저 작업할 수가 있었다.


90분을 CG로 채워라
제작 기한은 한달?!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스토리보드 작가와 함께 그림을 그려 나갔다. 컴퓨터그래픽에서 스토리보드는 설계도와도 같이 중요하다. 스토리보드에 의해 작업의 난이도와 작업공정의 순서가 결정되는 것이다. 50분 한 편의 완성도 있는 스토리보드를 만들기 위해선 통상 한 달 이상이 필요하다. 두 편의 스토리보드는 두 달이 걸린다는 결론이다. 작업기간을 당길 수밖에 없었다. 3월에 사전답사를 가기 위해서는 한 달 안에 스토리보드 작업이 끝나야 했고 결국 약 700컷으로 된 스토리보드가 나왔다.
  스토리보드 작업을 하면서 촬영 로케이션을 물색했다. 당시 백악기의 한반도와 가장 유사한 자연환경을 가진 곳은 현재 어디일까? 호수가 풍부하고 오래된 침엽수와 양치류가 풍부한 뉴질랜드가 가장 적당한 곳으로 떠올랐다. 현지의 로케이션 매니저와 사진을 주고받으며 시나리오에 적합한 배경무대를 찾기 시작했다. 답사를 가기 전 우리는 장면별로 된 로케이션북 한 권을 만들었다. 거기에 나온 실제 장소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뉴질랜드가 남반구의 끝이라 4월이 넘어가면 겨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사촬영에 합성할 컴퓨터그래픽 작업시간을 생각할 때 아무리 늦어도 4~월 중에 촬영이 끝나야 했다. 스토리보드 작업이 끝난 3월에 촬영감독과 나는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보름 동안의 기간에 1만 5,000킬로미터를 훑어야 하는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사전답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제작비 예산 때문에 비주얼 슈퍼바이저와 함께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실의 자연환경에서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자연배경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자연배경을 컴퓨터그래픽으로 가공해 만들어야 하는데 직접 컴퓨터그래픽을 담당할 비주얼 슈퍼바이저 없이 장소 헌팅을 한 것이 사전답사 기간 중에도 힘들었고 이후 실제 촬영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를 가져왔다.
  사전답사에서 촬영된 배경에 간단하게 움직이는 공룡을 합성한 애니메틱이라고 불리는 3D동영상 콘티가 만들어졌다. 프리비주얼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인데 이를 통해 촬영하기 전 우리는 카메라의 동선과 움직임에 대해 미리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이 꼼꼼하고 정교할수록 실제 촬영에서 원활하고 완성도가 높은 화면을 얻을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작업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 ‘킹콩’에서는 5분짜리 결투 장면을 위해 1년 반의 프리비주얼 작업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애니메틱에 들일 수 있는 시간은 한 달여 정도. 또다시 작업자들이 휴일과 밤잠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촬영 출발 전날에야 애니메틱 작업이 끝날 정도로 숨 가쁜 작업이었다. 작업을 하고 보니 애니메틱이 없었다면 실제로 불가능한 작업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나리오-현장답사-동영상콘티-촬영
숨가빴던 일정
촬영은 4월 중순에 시작해 5월 중순에 끝났다. 대략 한 달이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촬영기간 중 가장 괴로웠던 점은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 날씨였다. 촬영 주요 지역인 뉴질랜드 남섬은 낙엽송이 별로 없어 풍광은 사계절 푸르지만 우기로 접어들어 비가 많이 오고 심하면 눈이 오기도 한다. 도착한 다음 날부터 내린 눈은 처음부터 우리를 절망에 빠뜨렸다. 하루 지나 눈이 녹아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매운 신고식이었다. 이후로도 변덕이 심한 날씨 속에서 고생스러운 촬영을 계속했다. 가장 절정은 통가리로라는 화산 사막지역에서였다.

사전답사 기간 중에는 가장 청명한 날씨를 보여 준 곳이라 내심 가장 좋은 화면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기대하고 있기까지 했다. 그러나 통가리로는 해발 1,800미터 고지에 있는 사막지대였다. 우리나라의 지리산 노고단 높이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착하자마자 눈이 내려 쌓이고 있었다. 친타오사우루스가 횡단해 오는 건조한 사막지대를 눈밭에서 찍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떻게든 촬영을 해야 했기에 일주일을 현장에서 기다리며 눈이 녹는 짬짬이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애써도 원경의 눈 덮인 산은 피할 수 없어 결국 후반작업의 부담이 되었다. 최종 결과물은 사막풍광이 제대로인 화면으로 재탄생했지만 배경의 눈을 지워 내고 멋있는 사막 배경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작업자들의 노고는 잊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정교한 스토리보드와 애니메틱 등 프리비주얼 작업을 하더라도 실제 촬영에서 난감한 점은 존재하지 않는 공룡을 존재하는 것처럼 촬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룡의 크기를 짐작만으로 촬영할 수 없어서 우리가 개발해 낸 방법은 공룡의 크기에 맞는 나무봉을 만들고 사람이 들고 움직이는 것이다. 매 컷별로 비주얼슈퍼바이저들이 공룡 나무봉을 들고 연기하는 장면을 리허설하는 것처럼 촬영한 뒤 그것을 기억하며 다시 촬영을 했다. 그리고 나무나 풀잎이 흔들리고 물이 튀는 등의 화면효과도 합성을 계산하여 블루스크린이나 낚싯줄을 이용하여 촬영했다. 이 모든 수고로운 작업들이 최종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여 주었다.

성공비결은 ‘컬러풀 공룡’
질감있는 피부표현에 공들여
촬영이 끝난 후 촬영된 배경화면을 먼저 편집한 뒤 그 길이에 기초해 정교한 최종 애니메이션 작업이 시작되었다. 애니메이션은 배우의 연기에 해당된다. 배경 화면의 움직임에 맞추어 공룡이 걷거나 뛰는 기본적인 움직임에서부터 공룡들의 표정까지 표현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촬영이 끝난 후 약 두 달 만에 애니메이션 작업이 끝나야 했다. 작업자들은 시간 부족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부족한 시간이라고는 믿기기 않을 만큼 놀라운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애니메이션 작업이 끝난 뒤 공룡의 피부와 질감을 입히는 매핑 작업이 이어졌다. ‘쥬라기 공원’ 등 기존의 영화나 다큐멘터리보다 ‘한반도의 공룡’이 뛰어난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매핑에 있었다. 기존 작품들에서 나온 공룡들은 대부분 어둡고 색감이 부족했다. 우리는 공룡이 주행성 동물이고 오늘날의 파충류와 조류의 생태를 볼 때 화려한 색깔과 보호색을 가졌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컬러풀한 공룡들이 탄생했다.
  최종 비디오가 나오고 나서 음악과 음향 작업을 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그래서 사운드 작업을 최종편집 전에 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초기 애니메이션 편집본이 있었기에 작업이 가능했다.  전작들에서 호흡을 맞추어 온 이미성 음악감독과 나의 숙원은 작곡한 곡을 전자 악기가 아닌 제대로 된 규모의 오케스트라로 연주해 녹음하는 것이었다. 미국과 유럽 등 여러 곳을 리서치한 결과 우리가 선택한 곳은 체코 프라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였다. 프라하의 고풍스러운 녹음 스튜디오에서 연주된 테마곡이 화면에 녹아 들어갈 때의 첫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만큼 감미로웠다. 공룡시대의 모든 소리를 말 그대로 창조해야 했던 음향팀의 노력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공룡들의 연기가 많았던 만큼 공룡의 기본적인 울음소리 외에 숨소리나 호흡 등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한 부분은 사운드 디자이너들이 직접 자신의 숨소리와 호흡소리를 합성해 만들었다.
   이렇게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1년여를 고생해 만든 작품이 ‘한반도의 공룡’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왔다. 엄청난 환호와 찬사를 보내 주신 분들도 많았고 아쉬움을 표현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나는 지금 나온 ‘한반도의 공룡’이 최선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한반도의 공룡’이 탄생하기까지 안팎으로 고생한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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