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2월호 신문과방송 초대석


중앙일보 상임고문·국제문제 대기자 김영희
공부하고 준비하는 기자 돼야


윤창빈 한국언론재단 교육1팀 차장

한국 언론의 대북문제 보도는 보수·진보지를 떠나 전체적인 맥락을 벗어나 있고, 기사에 희망사항인 주장이 앞서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주관적인 주장을 넘어 메시아주의적 십자군 저널리즘의 수준까지 가 있어 문제가 심각합니다.

해석이 담긴 정보를 담아서 칼럼을 집필하며 역사적 사실과 새로운 정보를 강조하여 평가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의 칼럼이 인터넷 시대에 중앙데일리를 통해 영어로 번역되어 주한 외국대사를 비롯한 외국인도 저의 기사를 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집필을 합니다.

한국 언론계의 산증인으로 50년 넘는 기자 생활을 하며 남북관계와 국제문제에 전념해 온 김영희(73)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를 지난 12월 5일 중앙일보 3층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1958년 11월 22일 22세의 나이에 한국일보외신부 기자로 첫 출근했고, 1965년 중앙일보 외신부 기자, 동남아 순회특파원, 외신부장, 워싱턴특파원, 논설위원, 편집국장, 임원으로 재직한 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1995년부터 국제문제 대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칼럼 집필과 세계 유명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에게 다양한 해석과 새로운 시각의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서구에선 백발을 흩날리며 현장을 누비는 기자가 흔하지만 국내 언론에선 유례가 없이 아직도 현장기자로 외길을 걷고 있다. 지난 2008년 11월 22일로 한국 언론사상 최초로 기자생활 50주년을 맞이한 김 대기자는 현재 북핵문제 및 오바마 정부출범에 따른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추이를 심층 분석하는 칼럼을 주로 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자초년병 시절의 회고와 워싱턴특파원 생활, 언론계 생활의 보람과 어려움, 칼럼 집필과 인터뷰 활동, 50년기자생활이 가능했던 이유,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보도문제, 언론과 권력의 올바른 관계, 후배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 등을 들었다.


기자 초년병 시절 신문사 분위기는 어떠했는지요? 생각나는 선배 언론인은 누구인지요?

제가 1958년 11월 22일 8기 수습기자로 입사한 한국일보는 도하 신문 중 가장 자유분방하고 지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스타 기자들이 많았고 선배들은 다양한 문학과 사회과학 및 철학서를 독파해 대화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초년병인 나 같은 젊은 기자들은 그런 지적인 분위기에 압도당했지요. 한국일보는 젊은 기자들이 만드는 생기발랄한 젊은 신문이었습니다.
  그때 외신부 데스크가 부장 없는 차장인 송건호 선생이었는데 학구파였고 후배 기자들에게 공부하라고 자극을 주었습니다. 그는 내가 번역한 외신기사를 새빨갛게 고쳐 주셨지요. 후배 지도에 열성적이고 꼼꼼하게 기자의 길을 이끌어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매일 밤 야근을 같이한 명편집자로 이름을 날린 최정호(전 연세대 교수) 선배도 방대한 독서 편력으로 독서량이 무한대로 보였습니다. 저는 두 분이 추천하는 책을 바로 다음 날 광화문 외국서점으로 달려가 원서를 구입하는 데 기자 월급을 다 털어 넣어야 했습니다.
 
또한 당시 사주였던 장기영 사장도 기자의 글쓰기 수업의 지름길은 세계적으로 기라성 같은 대기자들이 쓴 글을 열심히 읽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부서는 외신부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기자들은 내근 부서로 3D 부서인 외신부를 기피했지만 저는 수습기자 교육이 끝난 뒤기를 쓰고 가려 했습니다. 배움의 노다지가 거기 있었습니다. 

송건호, 최정호 선배에게서
받은 것보다 더 큰 지적 자극 받아

중앙일보 외신부 기자로 창간 멤버였고, 71년부터78년까지 워싱턴특파원 생활을 하셨는데요.

65년 창간 멤버로 중앙일보 외신부 근무 후 동남아순회 특파원으로 해외취재를 다녔습니다. 70년에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국제보도과정연수를 마치고 곧바로 71년 8월부터 78년까지 워싱턴특파원으로 재임했습니다. 제가 미국 특파원으로 있던 시절은 유신정권으로 기자 사회 전체가 위축된 시기였지만, 미국은 70년대 전체가 뉴스 풍년으로 워터게이트 사건, 코리아게이트(박동선 사건) 및 베트남 전쟁 평화협상과 종전 등으로 의기소침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특히 저는 동양방송과 중앙일보 기자를 겸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 배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동양방송에서는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 맞춰 봉두완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전망대라는 프로를 내보냈는데 나는 매일 방송을 해야 했습니다.
  워싱턴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나 기고를 받기 위해 유명 칼럼니스트 조지 윌과 조지프 크래프트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그들의 서가를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현실 문제에 대한 서적은 물론 여러 철학자들의 저서가 가득 꽂혀 있었습니다.
  그때 나는 한국일보 송건호, 최정호 선배에게서 받은 것보다 더 큰 지적 자극을 받았습니다. 뉴욕타임스 대기자로 이름을 날린 해리슨 솔즈베리의 집을 방문했을 때도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된 책과 방대한 자료들이 즐비한 것을 보고 제대로 된 기자나 칼럼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독서와 노력이 있어야 된다는 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언론 생활을 하면서 보람 있었던 일은? 어렵고 힘든 시기가 있었다면?

한국일보 외신부 기자로 미국 케네디 암살 특종을 했던 일과 중앙일보 워싱턴특파원 시절 워터게이트 사건과 박동선의 코리아게이트, 베트남 전쟁 등 세계적으로 큰 뉴스 및 역사적 사건을 현장에서 취재보도한 일 등이 보람된 기억으로 남습니다.
  단지 60년대 베트남 전쟁 취재 때 문제의식을 충분히 가지지 못하고 보도했던 점과 전쟁의 도덕적 측면을 간과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파병문제 등 한국과 관련된 사항에서도 단기 경제적 손익 측면에서 한쪽 시각으로만 보도했고, 전체적인 베트남 전쟁의 역사적 맥락을 살피지 못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는 전두환 신군부 시절이었습니다. 많은 동료 기자들이 언론계를 떠나는 등 언론계 전체 분위기가 고통스러웠습니다. 83년에서 86년까지 편집국장으로 재직 시는 신문에는 의견이 없고 오직 스트레이트 기사만 있던 재미없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국제문제는 한국과의 관련에서
국내문제는 국제적인 맥락에서 집필

국제문제 대기자로 ‘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란 고정칼럼을 집필하셨고, 세계적인 명사들과 인터뷰를 하시고 계신데요.

당시 홍석현 사장의 아이디어로 1998년부터 매주 칼럼을 썼습니다. 내가 쓰는 칼럼의 성격상 많은 사람들이 읽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오피니언 리더 3만 명만 읽으면 되니 그런 사람들에게 읽힐 만한 칼럼을 쓰라는 주문이었습니다. 나는 국제문제는 한국과의 관련(relevancy)에서, 국내문제는 국제적인 맥락(context)에서 칼럼을 쓴다는 콘셉트를 정하여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해석이 담긴 정보’를 담아서 칼럼을 집필하며, 역사적 사실과 새로운 정보를 강조하여 평가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의 칼럼이 인터넷과 중앙데일리를 통해 영어로 번역되어 주한 외국대사를 비롯한 외국인도 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집필을 합니다. 이를 위해 인포메이션을 위한 독서, 지식을 위한 독서, 가치를 위한 독서를 하고 자료 조사 등에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요즘은 3주에 한 번 칼럼을 써 인터뷰에 큰 비중을 둡니다. 기자 초반기부터 지금까지 인터뷰한 사람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역사학의 거장 아널드 토인비, 밀리언셀러 작가 시드니 셸던, 베트남의 전쟁영웅 보 구엔 지압 장군,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등 입니다.
  인터뷰는 그 사람이 쓴 저서와 생각 등을 다 알고 준비하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가장 힘든 작업 중의 하나입니다. 인터뷰는 깊이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하고, 시사적인 이슈에 대해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0년의 세월 동안 기자생활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자가 장수할 수 있는 틀의 하나로 대기자 제도의 정착이 한국 언론 풍토에서 중요합니다. 대기자 제도 정착에 중요한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기자 제도를 정착시키겠다는 최고 경영자의 확고한 의지입니다. 중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경험과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기자를 양성해 신문의질을 높이는 것은 중요한 사안입니다.
  둘째는 대기자나 전문기자가 되기 위한 기자 본인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편집국과 논설위원실의 열린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사 구성원들이 대기자나 전문기자 제도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지 않고 냉소주의로 맞으면 그 부담을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중앙일보의 경우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확고하여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편집국의 열린 자세로 인해 현재 4명의 대기자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제도가 정착되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는 대북문제와 관련해서
‘노 액션과 기다리기’ 전략으로 일관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현 정부는 대북문제와 관련해 ‘노 액션(No action)과 기다리기’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2001년 들어선 부시 정부도 6년 동안 북한을 상대하지 않는 적대적 정책을 펼친 결과 북한이 핵실험까지 가는 단계로 발전되었습니다.
  미국 오바마 정권은 열린 마음으로 불량국가와도 적극적으로 대화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정책을 펼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기 전략에 의지해 남북관계의 후퇴를 오래 방치하면 우리 이해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북·미 합의 이행의 비용만 뒤집어쓸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금강산 및 개성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을 개방시키는 데 큰 효과가 있었고, 안보 안정 측면 및 국민의 심리 상태뿐만 아니라 외국의 투자안정성 등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재 개성 및 금강산관광 중단, 남북철도 중단, 개성공단 축소 등의 사태는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이것만으로도 국내외적으로 큰 불안 요소로 작용되었을 사안입니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기다리는 정책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언론의 대북문제 보도는 보수 · 진보지를 떠나 전체적인 맥락(Context)을 벗어나 있고, 기사에 희망사항인 주장이 앞서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주관적인 주장을 넘어 메시아주의적 십자군 저널리즘의 수준까지 가 있어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지나친 강조도 문제이지만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보도 자세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언론이 전체적인 맥락에서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살려 본연의 자세를 회복해야만 합니다.


언론과 권력의 올바른 관계와 언론이 독자의 신뢰를 받기 위한 방법은?

언론과 권력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거기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 세워지지 않고 지켜지지도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언론인은 공인의식을 가지고 정부 관계자나 정치인과 만날 때는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가지는 윤리의식이 중요합니다. 요즘에는 언론이 무서워하는 것이 권력이 아니라 오히려 언론의 감시자인 시민사회와 독자들입니다.
  언론이 권력에 대한 감시자(Watchdog)인 것처럼 시민사회와 독자에 의해 언론이 또 다른 감시 하에 있다는 것은 민주적이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에 대한 독자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인터넷 언론 등으로 독자가 이탈하는 것과 관련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신문의 질은 시민사회와 독자의 감시로 향상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인쇄매체에서 독자가 떠나는 현실에서 신문의 생존을 위해 기자들이나 제작자들은 품질 향상에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후배 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과 앞으로 남은기자 생활의 계획은?
 

기자란 직업의 특징 중 하나는 어떤 사람도 자신의 기사를 써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기사를 잘 못 쓰는 기자는 어떤 조직에서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즉 기자는 자신의 목표를 정해서 미래와 인생을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정신적 스승이자 멘토였던 홍진기 전 회장으로부터 허송세월을 하지 말고 끊임없이 공부하라는 독려를 수십 번 이상 들으면서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특히 기자들은 퇴근 후 11시까지의 시간을 잘 활용해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데 전력해야 된다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시사적인 내용의 저서뿐만 아니라 문사철(文史哲) 분야의 공부를 통해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을 파악하는 노력도 중요합니다. 저의 마지막 소망은 남은 기자 생활을 먼지 떨어지는 잡음 하나도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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