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2월호 박상주의 터놓고 얘기합시다


‘엄마’를 화두로 던진 소설가 신경숙
“늘 제 삶이 엄마를 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박상주 참미디어연구소 소장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한 시골 소녀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헛간 볏단 속에 숨어들어 소설책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못했던 소녀는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에 취업했다. 공장 일을 하면서도 소설가의 꿈만은 버리지 않았다. 결국 그의 꿈은 이루어졌다.

“항상 호평(好評)보다는 혹평(酷評)만 하는 사람이에요. 원래 그런 쓴소리를 듣기 위해 보여주는 거지만…. 그런데 유일하게 ‘엄마를 부탁해’의 경우는 달랐어요. 둘째 장 ‘미안하다, 형철아’를 읽으면서 남편이 우는 걸 봤습니다. ‘자기 왜 그래’ 했더니, ‘혹시 내가 우는 거야?’ 하더군요. 읽으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고 하더군요.”

인간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자장을 내뿜는 자석이다. 그 자석에서 방사되는 헤아릴 수 없는 자기력은 바로 인간의 생각이고 꿈이다.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이고, 나의 현재 인생은 과거 내 마음을 지배했던 생각의 결과물이다.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랫동안 올라 있던 책 ‘시크릿’(론다 번)의 핵심 내용이다. 당신의 인생에 나타난 모든 현상은 당신이 끌어당긴 것이다. 한마디로 꿈은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한 시골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헛간 볏단 속에 숨어들어 소설책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읽을 책이 없으면 ‘새마을’이나 ‘새농민’ 등 농민 잡지에 나오는 수필과 소설을 읽었고, 배나무 밭에 배를 싼 신문지 쪼가리를 펼쳐 읽기도 했다.
그러나 풍족하지 못했던 농사꾼의 딸로 태어난 소녀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당시 다른 많은 농촌 소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학교를 졸업한 소녀는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의 공장에 취업했다. 공장 일을 하면서도 소설가의 꿈만은 버리지 않았다. 산업체 부설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반드시 소설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결국 그의 꿈은 이루어졌다.

농사꾼의 딸로 태어나
소설가 꿈 키워
‘엄마를 부탁해’, ‘외딴 방’, ‘풍금이 있던 자리’, ‘리진’ 등을 쓴 중견 소설가 신경숙(46)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국일보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21세기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북한산 자락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카페에서 신경숙을 만났다. 얼마 전 내놓은 ‘엄마를 부탁해’가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진입했기 때문일까. 그의 표정이 아주 밝고 여유로웠다. 인사를 나눈 뒤 들고 간 ‘엄마를 부탁해’를 내밀며 사인을 부탁했다. 벌써 여러 사람이 돌려 읽은 탓에 제법 손때가 묻은 책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거치면서 책 겉표지에 덧씌우는 띠지가 사라진 상태였다. 신경숙이 책을 받아들며 물었다.
“책의 띠지는 왜 벗기셨어요? ‘엄마를 부탁해’의 표지는 띠지가 있어야 디자인이 완성되는 책입니다. 이 책의 띠지는 단순한 책갈피용으로 사용하라고 덧씌운 게 아니에요. 요란한 광고 문구를 넣은 것도 아니고요. 잃어버리셨으면 제가 하나 구해 드릴게요.”
신경숙은 띠지 그림을 자신이 직접 골랐다고 했다. 살바도르 달리의 ‘새벽, 한낮, 해넘이, 해질녘’이란 그림이다.
“달리는 밀레의 ‘만종’을 끔찍이 좋아했다고 합니다. 달리의 ‘새벽, 한낮, 해넘이, 해질 녘’은 밀레의 ‘만종’을 변형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달리의 그림 속에는 수건을 쓴 채 새벽, 한낮, 해넘이, 해질 녘까지 시간대별로 기도하는 여인들이 나열식으로 등장한다. 항상 땀에 전 수건을 머리에 두른 채 가족만을 위하고 생각하는 엄마의 이미지로서 이만 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신경숙이 한낱 띠지에 깊은 애착을 보이는 이유일 것이었다.
엄마는 누굴까. 신경숙이 또 우리 사회에 큰 화두를 던졌다. 신작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우리에게 ‘엄마’의 의미와 위치를 묻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입으로는 모두가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떠들면서도 실제로는 항상 주변인 취급하는 우리의 엄마에게 눈을 돌린 것이다.
“엄마의 삶에 우리는 얼마만큼의 자리를 내주고 있을까요. 현대문학 속에서 엄마의 자리는 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연이고, 주변인일 뿐입니다. 엄마를 중심으로 설정한 소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고리키의 ‘어머니’나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등 외국문학에서는 적지 않은데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엄마를 부탁해’는 바로 엄마로 가득 채운 소설입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고리키의 ‘어머니’보다는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 쪽에 가깝다. ‘새벽의 약속’은 로맹 가리가 마흔네 살의 나이에 18년 전 타계한 어머니를 추억하면서 쓴 작품이다. 어머니에게 바치는 한 편의 긴 사모곡이자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오직 어린 아들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홀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는 시골에서 올라온 엄마가 서울역에서 실종되면서 시작된다. 아버지 생일을 맞아 자식들이 차려 주는 생일상을 받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던 길이었다. 엄마는 혼잡한 지하철에서 남편을 놓친다. 글자를 배운 적이 없는 문맹인 데다 치매 증상까지 보이기 시작하던 엄마를 찾을 길이 막막했다. 4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이루어진 소설은 차례로 첫째 딸과 장남, 남편 그리고 엄마 자신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에필로그는 다시 딸의 시점으로 되돌아간다.

신작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의 의미를 찾는 소설

모든 소설은 기본적으로 자서전적이다. 상상력도 결국은 자신의 체험에서 출발한다. ‘엄마를 부탁해’ 역시 신경숙의 대표작 중 하나인 ‘외딴방’처럼 자전적 요소를 많이 담아낸 작품이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신경숙은 작가인 큰딸로 등장한다. 여기서 큰딸은 ‘나’가 아닌 ‘너’라는 2인칭으로 나온다. ‘나’를 ‘너’로 객체화시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다. 마치 자신을 피고석에 앉혀 놓고 스스로를 준열하게 꾸짖는 느낌을 갖게 한다. 신경숙은 엄마에 대한 불효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너’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누구를 꾸짖기 위한 의미로 ‘너’를 상정한 것 아닙니다. 다만 엄마한테만 ‘나’라는 자리를 내주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항상 우리의 변방이었던 엄마를 중심인 ‘나’의 자리에 모시려는 뜻이었습니다. 엄마는 한 번도 나를 나라고 말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엄마에게만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자리와 시간을 만들어 준 거지요. 딸과 엄마는 정서적으로 너무 가깝기 때문에 약간 거리를 두고 바라보려는 의도도 있었고요. 작품을 쓰는 동안 제 손 위에 엄마의 두툼한 손이 올려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경숙은 자기 작품의 원천은 엄마라고 말한다. 엄마는 이야기꾼이었다. 똑같은 옛날이야기를 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무릎을 바짝 끌어당기게 하는 재주를 지닌 분이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문학적인 재능이 번득이는 분이었다.
“아무 교육도 안 받으신 분인데도 이야기를 참 잘하셨어요. 내가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런 엄마의 영향일 겁니다. 저는 늘 제 삶이 엄마를 딛고 서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땅히 엄마의 몫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의 기회까지 내가 모두 전해 받고 있다는 미안함 같은 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엄마에게 바치는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이제야 내놓게 됐습니다.”
엄마는 항상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엄마 곁에 붙어 있을까. 우리는 평소 얼마나 엄마를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어느 날 문득 신경숙은 자신이 엄마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엄마를 부탁해’ 후기에도 밝힌 일이지만 책이 세상에 나오기 일 년 전 겨울 엄마가 우리 집에서 보름쯤 지내셨습니다. 엄마랑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것은 거의 30년 만의 일이었어요. 중학교 졸업하고 집을 떠난 이후 엄마랑 통째로 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없었어요. 내밀하게 깊은 이야기를 할 짬이 없었던 겁니다.”

호평보다는 혹평을 하던 남편
‘엄마를 부탁해’ 읽고 눈물
엄마는 언제 주무시는 걸까. 엄마는 자식보다 항상 늦게 잠자리에 든다. 새벽에 일어나 보면 벌써 일어나셔서 움직이신다. 신경숙도 어려서부터 자신보다 일찍 주무시거나 늦게 일어나시는 엄마를 뵌 적이 없다고 했다.
“새벽에 글을 쓰다가 엄마 방을 살짝 들여다보면 항상 깨어 계셨어요. 옆에 가서 누우면 처음엔 뭐 하러 왔냐 하시면서도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지난 시절 이야기를 하시던 엄마가 한쪽으로 얼굴을 묻고 우셨다. 신경숙은 그때 내가 엄마의 이런 이야기들을 한번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구나, 참 나쁜 딸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이런 이야기들을 가슴속에 묻고만 사셨구나, 큰딸인데도 엄마의 깊은 속사정을 들어준 적이 없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벽마다 한 이불을 덮고 누워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참 행복했어요.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 그런 순간들이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아늑한 행복감을 느꼈어요. 남편도, 친구도,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완벽한 행복감이었지요. 엄마를 찾아서,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엄마를 부탁해’를 마치게 한 힘이었지요.”
신경숙의 남편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 교수(명지대 문예창작과)다. 남진우가 ‘외딴 방’의 서평을 쓰는 등 여러 차례 ‘신경숙론’을 발표하면서 가까워지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셋째 오빠의 고교동창이다. 작가 커플은 어떻게 살까.
“최고급 독자와 한 지붕 밑에서 사는 셈이지요. 서로의 작품을 가장 먼저 읽어 주는 최초의 독자입니다. 그 사람이 시를 쓰면 제가 먼저 읽고, 제 소설은 또 그 사람이 가장 먼저 읽습니다. 서로 어느 정도 각자의 세계를 이루었고, 서로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만난 사이입니다. 글속에 빠져 있다는 게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서로 방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를 하면서 살지요.”

“다르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거야”
두 사람만 있을 때 남편은 아내의 작품에 대해 어떤 평을 내릴까.
“항상 호평(好評)보다는 혹평(酷評)만 하는 사람이에요. 원래 그런 쓴소리를 듣기 위해 보여주는 거지만…. 그런데 유일하게 ‘엄마를 부탁해’의 경우는 달랐어요. 둘째 장 ‘미안하다, 형철아’를 읽으면서 남편이 우는 걸 봤습니다. ‘자기 왜 그래’ 했더니, ‘혹시 내가 우는 거야?’ 하더군요. 읽으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를 꿈꾼다. 그러면서도 막상 소설가가 되겠다고 나서지를 못한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과연 소설가의 자질을 타고났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요, 그 다음 이유는 소설가라는 직업이 몇몇 인기 작가를 빼놓고는 배고픔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경숙에게 물었다. 소설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지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얼마나 진실하고 절절하냐는 거지요.”
하긴 신경숙은 ‘외딴방’에서 외사촌과 대화하는 구절을 통해 이미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남겼다. “글을 쓰는 사람은 다르게 태어나는 것 같던데?” 하는 외사촌의 말에 이런 명언으로 답한다. “다르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는 거야.”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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