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성동규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교수

2010년은 방송시장 빅뱅의 원년이라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확산이나 스마트 TV 등장 등 방송과 통신 융합의 첨단을 달리는 미디어가 출현하고, 전통적으로 공익성이 중시되던 방송에 통신의 경쟁논리가 점차 접목되고 있어 방송 환경의 전반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 추세다. 또한 작년에 개정된 미디어법과 최근 몇 년간 논의된 융합 환경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은 기존 방송 환경의 구조적 변화들을 야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반에서 2010년은 방송의 새로운 가치를 다듬어 가는 ‘혁신 원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변화뿐만 아니라 문제점도 다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한 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9월 디지털 전환 시범 지역인 울진을 시작으로 강진과 단양의 아날로그 방송이 순차적으로 종료되었다. 내년 6월 또 다른 시범 지역인 제주도의 아날로그 방송 종료가 예정돼 있다. 이후 2012년 12월 31일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를 앞두고 있어 본격적인 디지털 방송 시대의 개막을 목전에 두고 있다. 디지털 전환으로 시청자들에게 선명한 화질과 디지털 양방향 서비스 등 새로운 방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방송환경의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 문제가 그것이다. 실제로 시범 지역 내에서 디지털 방송을 직접 수신하는 가구가 전체의 5%에 불과했다. 이는 수신환경의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수십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취약계층의 시청권 보장 문제가 디지털 전환의 최우선 과제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전환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기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사업자들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1월 20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2010년 디지털전환 시범사업 발대식 및 제4차 디지털방송활성화추진위원회’에서 참석자들과 디지털방송 개시 행사를 갖고 있다.

지상파 재전송 갈등 미해결

한편 디지털 전환과 함께 지상파 재전송 문제와 관련해 지상파 사업자와 일부 유료방송사업자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초 케이블 TV의 지상파 디지털 방송 재송신 이슈에 관해 지상파 방송사의 일부 승소 판결이 났다. 지상파 재전송료를 둘러싼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까지 불거진 것이다. 이번 판결로 난시청 해소를 명분으로 케이블 사업자에게 암묵적으로 인정되었던 지상파 무료 재전송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상파 사업자, 케이블 사업자 간에 3자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법적 다툼은 보류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지상파 재전송을 둘러싼 이해 당사자 간의 입장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각 사업자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청자들의 권익은 실종된 채 각 사업자의 이득만이 저울질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또한 협상 타결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상파 재전송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밝히고 있어 지상파 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의 대립이 첨예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방송 산업에 경쟁 논리가 도입되고 각 사업자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나타났다. 특히 밴쿠버 동계올림픽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같이 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스포츠 경기에 특정 방송사가 중계권을 독점해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이 침해되고 다양성의 가치가 훼손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광고 수익을 목적으로 사업자 간의 치열한 경쟁이 야기한 시청권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방송사업자 간의 협의를 통해 스포츠 이벤트의 중계권 독점에 의한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례에 의해 시청자들의 권리와 권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이슈들은 현재 우리 방송 환경에서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논의는 방송 사업자들의 무한 경쟁 상황에서도 시청자들의 권익 보장을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관련해 단순히 콘텐츠 접근을 의미하는 협의의 보편적 시청권을 넘어서 방송 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보장을 의미하는 광의의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처럼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사업자, 정책 당국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산업적 이득을 목표로 한 무한출혈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지난 11월 15일로 예정됐다가 무산된 케이블 사업자의 지상파 사업자에 대한 광고 송출중지 시도는 이해 당사자 간의 거대한 방송 전쟁 불씨가 여전히 산재했음을 의미한다.

출혈 저가 경쟁과
낮은 ARPU의 만성화

한편 유료방송 측에서는 시장 정상화 문제가 지난 한 해를 달군 뜨거운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출혈적인 저가 경쟁과 이로 인한 낮은 ARPU(Average Revenue per Unit)의 만성화는 유료방송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유료방송 시장의 총체적인 수익성 악화와 투자 동기의 감소는 프로그램의 질 하락으로 이어지며, 질 낮은 프로그램으로 인해 시청자가 외면함으로써 다시 수익성 악화로 이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유료방송 시장의 만성적인 문제는 정책 당국과 사업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정부는 저가출혈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장 구조를 개선하지 못했고, 사업자는 고품질 서비스 제공을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 이에 따라 전반적으로 침체된 유료 방송시장의 역동성을 살릴 수 있는 방안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유규제와 광고규제 완화 등 방송사업자가 콘텐츠의 질적 제고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치열한 경쟁 환경하에서 일부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제어하기 위해 금지행위 조항을 신설하기 위한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이러한 금지행위 도입은 사전 규제를 근간으로 했던 방송 규제 정책 또한 공정한 경쟁을 전제로 한 사후규제로 규제 방향 전환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유료방송 정상화를 위해 사업자의 체질 개선을 위한 자구책 또한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사업자 스스로 내재적인 동력이 결여된 채 외부 지원에 의존한 단기적인 성장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사업자 스스로 내공을 기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슈퍼스타K2의 성공은 질 높은 콘텐츠 확보가 유료방송 시장 정상화의 근본적인 방안임을 반증한다. 양질의 콘텐츠 확보를 통해 시청자들의 요구와 지불의사를 높임으로써 수익성을 향상시키고 이를 다시 질 높은 콘텐츠에 투자하는 등 선순환 구조를 수립하는 것이 유료방송 정상화의 근본적인 해결책인 것이다.

방송과 통신의 거시적 환경변화에 맞물려 나타난 사안들 외에도 현재 방송 산업 내에서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지난 십수 년간 한국 광고 산업의 큰 축이었던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이 이루어졌으나 이를 대체하기 위한 미디어 렙에 대한 논의가 별다른 진전 없이 한 해가 마무리 되고 있다. 작년 미디어법 통과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어 온 종합편성 채널과 보도전문 채널 또한 연내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있으나 몇 개의 사업자를 선정해야 하는지 또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외에도 KBS 수신료 인상에 관한 문제도 쉽게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안이다. 공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서의 수신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논리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한 이후에 수신료 인상에 대한 논의가 적절하다는 논리가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9월 2일 정보통신정책 연구원에서 ‘종합편성, 보도전문 방송채널 사용사업자 승인 기본계획(안)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 도입이 방송환경에 미칠 영향 고려해야


구글TV와 애플TV 등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스마트 TV 또한 방송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케이블 TV, IPTV, 위성 방송 등이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월드가든(Walled Garden) 방식인 데 비해 스마트 TV의 경우 다수를 대상으로 한 개방형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다. 이는 개방된 플랫폼을 통해 이용자에 의한 다양한 개인화(customization)가 가능해짐으로써 기존의 방송과 통신의 융합 논의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개인화가 가능한 스마트 TV가 본격화되면 기존에 미디어 산업에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가까운 시일 내에 기존 미디어 가치 사슬의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질 것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바타의 흥행과 이로 촉발된 3D TV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어느새 시들어 가고 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스마트 TV에 대한 관심 또한 단기적인 집중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종합하면 2010년의 방송환경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다양한 이슈와 문제점이 함께 공존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강조되던 방송의 공익성 측면은 약해지고 있으며 경쟁 논리가 도입됨에 따라 사업자 간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방송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치가 무시된 채 무한 경쟁이 도입되는 것은 시청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보장하기보다는 시청자의 시청권을 담보로 사업자들이 스스로의 잇속 챙기기에 급급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지상파 방송 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 사이의 지상파 재전송료 문제나 국민적 관심사인 스포츠 이벤트 중계권에 대한 독점 또한 시청자의 권리 보장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경쟁 환경 내에서도 시청자들의 권익을 보장할 수 있는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정부, 사업자, 국민 간의 협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유료방송 사업의 정상화 또한 함께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공익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해 사업자의 의욕을 저하시키거나,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해 시청자의 복지 저하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청자 권익을 담보로 한 사업자 간의 출혈적 경쟁보다는 양질의 서비스 수준과 시청자 만족을 제고할 수 있는 선순환적 시장을 조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책 당국 또한 경쟁 중심으로 방송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방송의 고유 기능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업자 간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지상파 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 유료방송 사업자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의 갈등이 커짐으로써 시청자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즉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시청자의 권익을 보장하는 유연한 정책 집행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스마트 TV라는 새로운 융합 미디어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도입보다 이러한 미디어 도입이 우리 방송환경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기존 미디어와의 연계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미디어의 도입과 함께 방송산업 전반의 발전을 야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정부 당국은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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