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G20 정상회의 취재기

김용래 연합뉴스 경제부 기자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났다. 경제부 기자로서 세계의 금융과 거시경제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G20이라는 큰 국제회의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정부가 G20 의장국을 맡아 선진국들의 중재와 협상기술을 배우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면, G20의 의제와 행사 전반을 담당했던 나와 같은 기자들은 좁은 시야를 벗어나 보다 세계적인 안목에서 경제현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G20을 맡기 시작한 것은 5월 국제뉴스부에서 경제부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다. 발령이 난 뒤 기획재정부와 G20 준비위원회를 출입하기 시작했을 때 경제 분야는 처음이라 매우 생경했었다. 더구나 한국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를 담당하는 취재팀의 막내(말진)로 일하게 됐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조세, 재정, 예산, 거시경제, 국제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자료와 일정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가운데, G20 위원회의 브리핑에 참석하는 일은 그나마 삼청동이라는 위치 때문인지 약간의 숨통을 제공했다. 국제뉴스부에서 국제경제 기사를 써봤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그나마 G20이라는 단어가 덜 낯설었다고 할까. 그렇다고 G20의 쟁점 의제들을 기사화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기사의 톤과 난이도가 고민

G20은 경제위기 극복을 목적으로 재정과 국제금융, 거시경제정책의 공조와 국제금융기구의 개혁 등을 모색하기 위해 탄생한 다자간 협의체다.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안보회담 같은 양자 간 문제도 기사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은 마당에 다자 간 금융과 거시정책 문제는 또 얼마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겠는가. 국제통화기금(IMF) 지배구조개혁, 개발의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국제금융규제 등 어느 하나 쉬운 테마가 없었다. 정부는 의장국이랍시고 민감한 현안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려 취재가 쉽지도 않았고, 일반 독자들이 복잡한 국제경제 이슈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겠나 하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기사를 쓰다 보니 기사의 톤과 난이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도 숙제였다.

초짜들이 겪게 마련인 전형적인 어려움들 속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열리는 G20 재무장관 회의(부산)가 시시각각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시 우리 팀은 6월 부산 재무장관 회의를 앞두고 G20 주요국들의 재무장관들과 IMF 총재의 서면 인터뷰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선진국이 아닌 나라의 비애인가 싶었지만 팀 선배들은 인맥과 각종 압력(?)을 총동원, 결국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 웨인 스완 호주 재무장관 등의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G20이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 포럼으로 격상돼 IMF로서는 G20 의장국인 한국에게 잘 보일 필요가 있었고, 마침 연합뉴스는 서울 G20 정상회의의 ‘공식 미디어 파트너’인데다, 우리 팀이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점 등이 맞물리지 않았나 싶다.

프랑스와 호주 재무장관이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해 기사가 일반론으로 치우친 데 비해 IMF의 스트로스칸 총재는 90년대 후반 한국에 단행했던 혹독한 구제금융 방식에 일부 실수가 있었음을 처음으로 시인해 ‘뉴스’를 제공했다. 나는 팀의 막내로서 IMF 총재의 답변서를 번역하고 1차 정리를 담당했었는데 총재가 이런 내용을 언급하는 대목을 읽으며 “이거 제목 나오네”라며 무릎을 치며 혼자 키득거렸다. 결국 우리 팀은 이 내용을 리드로 잡아 역할을 분담, 스트레이트와 박스, 인터뷰 전문까지 써 내려갔고 수많은 신문과 방송에 전재・인용되면서 주요 이슈가 됐다. 팀은 이 기사로 사내에서 조그만 상도 받았다. 부산 재무장관회의가 끝난 뒤 10월 경주 장관회의와 11월 서울 정상회의까지 거의 매주 있었던 G20 준비위의 브리핑과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국제경제 세미나들을 커버하는 것도 큰 과제였다. 말진이라 현장 취재는 주로 내 몫이었는데, 과천에서 서울까지 여러 현장을 다니는 것이 한편으로는 귀찮으면서도 당국자들과 안면을 익히고 G20 의제들의 흐름을 짚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됐다.

                        MPC(Main Press Center)의 뜨거운 취재 열기.

IMF-세계은행 연차총회, 기삿거리 넘쳐

이제는 회의 자체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 지난 7개월 동안 내가 G20 때문에 출장을 간 것은 두 번에 지나지 않는다. 부산 재무장관 회의는 팀 사정상 과천의 기획재정부에 남아 있었으므로 가지 못했고, IMF-세계은행 연차총회 취재를 위해 갔던 워싱턴 출장과 경주 재무장관 회의가 유일한 ‘원정 취재’였다(서울 회의는 출장은 아니니까 제외하고).

10월 초의 IMF 출장은 별 생각 없이 갔다가 ‘폭탄’을 맞은 출장이었다. 명색이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미국은 처음 가보는 것이라 처음에는 설렘이 컸으나 이는 곧 부담으로 변해 갔다. 당시는 브라질의 기도 만테가 재무장관이 국제무대에서 환율 전쟁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과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시장국 간의 환율 절상 문제로 대립이 막 첨예화한 시점이었다. IMF-세계은행 연차총회는 온통 ‘환율 전쟁터’였고 기삿거리도 넘쳐났다. 경주와 서울 회의가 환율전쟁의 무대로 바뀔 것이라는 위기감은 IMF에 출장 온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쉽게 감지됐다.

아무튼 나는 워싱턴에 여장을 풀자마자 외신을 체크하며 IMF의 분위기를 익혔고, 곧 특파원 선배에게 워싱턴 도착 보고를 한 뒤 환율 관련 기사들을 송고하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생각했던 출장은 결국 일주일 내내 기사는 물론 데스크가 있는 서울과의 시차 싸움이 됐고, 세계 금융계의 축제라는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의 특성상 매일매일 잡혀 있는 국내 금융기관장들과 한국 취재진의 간담회 역시 부담이 컸다. 이 분들은 또 왜 그렇게 ‘기사 되는’ 얘기만 하는지, 간담회를 마치고 들어와서는 호텔방에 처박혀 익숙하지 않은 국내 금융계 현안까지 써대느라 정작 워싱턴 구경은 많이 못했던 것이 아쉽다.

워싱턴 출장이 끝나고 며칠 만에 바로 경주 G20 재무장관 회의가 다가왔다. 경주 출장은 IMF 지배구조 개혁 작업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데다 기존의 ‘시장지향적 환율’이라는 문구에서 진일보한 ‘시장 결정적 환율’이라는 합의가 나온 일대 ‘분수령’이기도 하지만, 연합뉴스의 팀플레이가 크게 빛을 발한 출장이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기획재정부팀 4명과 금융팀 1명, 영어로 기사를 작성하는 영문뉴스부 기자들 3명에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로 기사를 작성하는 다국어뉴스부 라이터들까지 혼연일체가 되어 유기적인 취재와 기사 작성을 매끄럽게 해낸 일이 기억에 남는다. 철인 같은 팀 선배들은 묵묵히 그리고 전광석화와 같이 기사를 써냈고, 팀이 한 몸이 되어 스트레이트 1, 2보 종합과 박스, 기자회견 문답까지 순식간에 처리해내는 것을 보고 새삼스레 연합뉴스의 저력을 실감하기도 했다. 비관적인 언론의 예상과 달리 경주 회의에서는 G20 재무장관들이 ‘시장결정적인 환율’(market determinded currency rate)이라는 문구를 선언문에 넣기로 합의함으로써 나름 성공적인 회의가 됐다. IMF 개혁은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지분이전을 5% 이상에서 6%로 합의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받았다. 정부가 이로 인해 크게 고무됐음는 물론이다.

국제경제 현안 공부 해야

이제는 서울 G20 정상회의. 서울 회의는 사실 어떻게 흘러가 버렸는지 모르게 이틀간의 일정이 빨리 끝나 버렸다. 4,000여 명의 기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코엑스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장의 가장 앞줄에 먼저 자리를 선점하는 것이 팀 막내로서 나의 첫 임무였다. 회사는 G20 주관 뉴스통신사로서 부스까지 따로 마련해 놓았지만, 그래도 기자들이 어찌 현장에서 떨어진 부스 안에만 있을 수 있겠는가. 브리핑장 바로 앞은 수시로 열리는 각종 브리핑을 커버하면서 기사를 쓸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서울 회의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첫날 환영만찬 행사에 풀 기자로 참여한 경험이다.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환영만찬의 제1코스, 즉 정상들이 차에서 내려 전시관 입구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레드카펫을 밟고 도열한 전통의장대 사이를 걸어 들어가는 60여 미터 남짓한 구간에 홀로 배치됐다. 항상 기사나 영상으로만 접했던 G20 정상들을 코앞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나도 기자지만 설레는 일이었다. 거짓말을 좀 보탠다면 소녀시대를 마주한 군인 팬다운 그런 심정이었다고 할까. 오바마와 눈인사를 나눴고, 동안의 영국 신사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패션스타 같았던 아르헨티나의 여대통령과 독일의 메르켈 총리 등도 유심히 관찰했다. 기자로서 이런 걸 자랑(?)하는 건 별로 쿨한 일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두고두고 술 안줏거리가 생겼다는 것은 추억거리다.

얘기가 너무 개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아무튼 G20 서울 정상회의까지 7개월 남짓 G20을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기자로서 한 뼘은 자란 느낌이다. 큰일을 치르고 나니 한 뼘 자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기자생활에 G20이 자양분이 될 것으로 믿는다.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남는다.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내년 프랑스 G20 회의 취재를 위해 이제부터라도 영어와 프랑스어, 국제경제 현안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G20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넌더리가 난 게 엊그제 같은데, 아직도 매일 회사의 외신 검색창에서 ‘G20’을 타이핑하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G20 서울 정상회의의 성과는 앞으로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내 마음속의 G20은 나의 자양분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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