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와 시장 획정

이재영 KISDI 방송정책연구그룹장



지난 5월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부터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를 하기로 결정했고, 이와 관련해 10월에는 방송시장 획정안을 발표했다. 내용을 보면 방송시장을 크게 방송 플랫폼 가입자 확보 시장, 방송채널 시장, 방송 프로그램 시장 및 방송광고 시장 등 네 가지로 크게 구분하고 각각의 세부 시장을 획정하고 있다.

이후 각 시장의 관련 사업자에게 자료를 요청해 시장별 지배력 평가를 위한 기초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이용자 만족도와 전환 장벽에 대한 질문을 중심으로 한 소비자 설문조사도 할 예정이다.

경쟁상황 평가란 어떤 한 시장의 사전•사후 규제 여부를 판단하거나 시장상황을 주기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관련 시장’을 획정하고 유효경쟁 및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존재 여부를 평가하는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화된 규제체제일수록 시장분석을 통한 시장 지배력 판단을 규제 정책 결정의 선행 과정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높으며, 직접적인 규제와는 관련이 없더라도 주요 시장 상황을 정기적으로 파악해 정책판단의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10월 방송시장 획정안 발표

전통적으로 통신시장의 경우에는 이용 약관 인가나 설비제공, 도매제공 및 상호접속 의무 등 사전적 규제의 근거로 경쟁상황 평가를 활용하고 있으나, 시장 지배력 남용 판단, 인수•합병 승인과 같은 사후적인 경쟁정책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활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쟁상황 평가가 반드시 규제를 도입하거나 강화하는 목적으로만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규제를 완화 또는 폐지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방송시장과 같이 규제가 많은 분야의 경우에는 시장상황 분석 결과를 기존 규제의 완화를 위한 실증적 근거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크다.

경쟁상황 평가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경쟁압력을 제공하는 사업자군을 밝혀낼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절차가 ‘관련 시장 획정’ 또는 ‘시장 획정’이다. 시장 지배력을 판단하는 가장 대표적인 기준이 시장 점유율인데, 누가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지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실질적인 경쟁관계와 지배력을 판단할 수 있다. 만약 불필요하게 많은 사업자들을 포괄하는 시장을 획정하게 되면 사실과 다르게 시장 지배력이 낮게 나타날 수밖에 없으며 반대의 경우 시장 지배력이 과도하게 높게 추정된다. 따라서 시장 획정이 경쟁정책의 방향을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는 경쟁상황 평가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대체성이 높은 상품을
누군가 제공할 수 있는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기업들이 동시에 가격을 인상할 경우 다른 기업들이 얼마나 빨리 대응할지를 알 수 있다면 시장 획정은 매우 간단한 일이 될 것이다. 가격을 인상한 그룹의 기업들이 제공하는 상품과 대체성이 높은 상품을 누군가가 제공할 수 있다면 소비자들은 그들에게 옮겨갈 수 있을 것이고, 이는 그 상품들이 서로 동일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수요함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불행히 우리는 이 수요함수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현재 시장 획정을 위해서는 가상적 독점사업자 검정법 또는 SSNIP(small but significant and non-transitory increase in price) 검정법으로 알려진 방법론이 이용되고 있다. 일정 그룹의 기업들(hypothetical monopolist)이 작지만 의미 있는 정도로 일시적이지 않은 가격 인상을 했을 때 이윤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 이 그룹을 관련 시장으로 획정하고, 그렇지 않다면 대상 기업을 더욱 확대해 검정하는 방식이다. 만약 가까운 대체재가 있다면 일정한 정도의 가격 인상에 대해 수요대체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 가상적 독점기업(기업 그룹)은 이윤을 증가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SSNIP 검정법은 미 법무부와 FTC(Federal Trade Commission)의 ‘1982년 합병지침(1982 Merger Guideline)’을 통해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유럽연합(EU) 국가들과 캐나다, 호주 등 주요국 규제기관들이 이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기준에서도 동일한 개념적 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SSNIP 검정법은 경제 이론을 현실에 적용시키기 위해 마련된 단순•명료한 방법론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수요함수를 추정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분석자의 자의성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자료가 충분하다면 이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춘 검정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시장실패가 큰 산업에 대해 다양한 규제가 존재해 왔고, 규제 여부 및 강도를 결정하는 데 정확한 시장분석의 중요성이 강조돼 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쟁상황 평가는 통신시장에서 빈번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이전부터 (구)정보통신부 주도로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가 진행돼 왔으며 2007년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법제화되었다. 방송 분야에서 경쟁상황 평가는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으나, IPTV 사업에 대해서는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에 따라 제도화돼 있다.
현재 국회에 방송시장에 대한 경쟁상황 평가제도 도입이 포함된 방송법안이 계류돼 있다. 지난 3월 제정된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은 ‘방송통신시장의 경쟁상황 평가’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관련 시행령에 대한 법적 절차를 밟고 있어 곧 공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월 방송통신위원회에 보고된 방송시장 획정안은 이러한 법 제도적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지만, 이미 몇 차례 수행된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08년에는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 체계연구’라는 이름으로 해외사례, 평가지표 및 정책활용 방향에 대한 연구가 수행됐으며, 2009년에는 유료방송 서비스와 방송채널 거래 시장을 중심으로 시장 획정과 시장 분석이 시도되었지만 구체적인 지배력 평가에까지 이르고 있지는 못하다. 올해에는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 방송채널 시장 외에 방송 프로그램 시장과 방송광고 시장을 포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은 시청자에게 종합유선방송사(SO), 위성방송사 및 IPTV 사업자가 유료 다채널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을 의미한다. 이 시장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입자를 확보하는 시장이라는 측면에서 기존의 통신 서비스 시장과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다. 다양한 채널 티어(tier) 제공과 지역적으로 구분된 시장구조 등은 이 시장만의 고유한 특성이 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유료방송 서비스와 아날로그 유료방송 서비스 간의 시장획정 문제는 정책적•학술적으로 오랫동안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번 방송시장 획정안에서는 국내 유료방송 이용자에 대한 설문조사로 얻은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체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과 ‘디지털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을 동시에 획정하고 있다.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 법안 계류중

분석 결과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 가입자들은 디지털 케이블 방송이나 위성방송 및 IPTV를 충분히 가까운 대체재로 인지하고 있지만, 반대로 디지털 케이블 방송, 위성방송 및 IPTV 가입자들은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을 그렇게 긴밀한 대체재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의 지배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른 디지털 유료방송을 동일시장으로 묶은 전체 유료방송 시장을 분석할 필요가 있지만, 각각의 디지털 유료방송의 지배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을 배제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을 전체 및 디지털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의 두 가지 시장으로 획정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이번 시장 획정안에서는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은 권역별로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SO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볼 때, 경쟁 사업자인 위성방송사와 IPTV 사업자가 전국 사업자라고 하더라도 77개 권역별 지역시장으로 획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은
권역별 지역시장으로 획정이 타당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이 최종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매시장인 것에 비해 방송채널 시장은 일종의 사업자 간 도매시장에 해당한다. 방송채널을 보유한 사업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채널을 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제공하는 시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의 입장에서는 시청자에 대한 접근권을 방송채널을 가진 사업자에게 제공하는 시장이기도 하다. 방송채널과 시청자 접근권이라는 두 개의 상품이 동시에 맞교환되면서 시장구조의 특성에 따라 대가 지불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 키스테이션(key station)과 지역 방송사 간의 거래는 지역 방송사가 시청자 접근권을 제공하는 형태로 나타나며, 그 대가로 이른바 ‘전파료’라는 이름의 광고수익 배분이 이루어진다. 그에 비하여 SO, 위성방송사 및 IPTV 사업자 등은 지상파 방송 채널이나 유료방송 채널을 제공받는 대가를 각각 지상파 방송사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게 지불하고 있거나 지불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장 획정안에서는 유료방송 플랫폼의 입장에서 지상파 방송 채널과 유료방송 채널 간의 수요 대체성이 높지 않으므로 이들을 동일 시장에서 경쟁하는 상품으로 판단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최근 SO와 지상파 방송사 간의 법정 소송과 방송통신위원회의 중재로 관심이 집중된 ‘지상파 방송채널 재전송권 시장’을 지역별로 획정하는 한편, ‘유료방송 채널 시장’을 하나의 시장으로 획정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시청자의 선호도가 높게 나타나는 스포츠, 드라마 및 영화 등 주요 장르에 대해서는 각기 별도의 방송채널 시장을 획정하고 평가할 예정이다.

방송 프로그램 시장은 방송사가 자신의 채널에 편성할 목적 혹은 자사의 플랫폼을 통해 가입자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방송 콘텐츠 방영권이나 저작권을 획득하는 시장이다. 대표적으로 지상파 방송사와 PP가 외주 제작사나 기타 저작권 보유자로부터 방송 프로그램 방영권을 구매하는 거래가 이 시장에 해당한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지상파 방송사나 PP는 스스로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하므로 자체 공급 역시 이 시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밖에 유료방송 플랫폼이 VoD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방송 프로그램 방영권을 구매하는 경우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며, 동시에 PP들이 재방영을 목적으로 지상파 방송사로부터 방송 프로그램 방영권을 구매하는 거래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처럼 방송 프로그램 시장은 수요 주체와 공급 주체가 혼재돼 있는 독특한 시장이다. 특별한 경쟁 이슈가 없는 세부 시장 하나하나를 구분해 획정하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기도 하다. 이번 방송시장 획정안에서는 이 중에서 특히 지상파 방송사의 외주제작•자체제작 거래의 중요성을 인지해 이를 별도의 시장으로 획정하고 있으며, PP의 외주제작•자체제작 거래와는 분리된 별도의 시장으로 보고 있다. 또한 PP가 지상파 방송사로부터 방송 프로그램 재방영권을 구매하는 시장도 하나의 독립된 시장으로 획정하고 있다.

방송시장 연구의 새로운 계기

마지막으로 방송광고 시장은 방송사가 방송광고 시간을 광고주에게 판매하는 시장을 말한다. 이 시장에는 지상파 방송사나 PP뿐만 아니라 유료방송 플랫폼들도 참여하고 있다. SO, 위성방송사 및 IPTV 사업자들은 PP들로부터 방송광고 시간의 일부를 양도 받아서 이를 전국 광고용 또는 지역 광고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특히 SO는 주로 자기 권역 내의 지역 광고주에게 광고를 판매하고 있다. 이들은 해당 지역 지상파 방송사와 동일한 ‘지역 방송광고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시장 획정안에서는 시청률이나 방송광고 가격의 격차를 고려해 지상파 방송 3사의 방송광고 시장을 별도의 시장으로 획정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이 시장이 다른 지상파 방송사나 PP들의 광고시장과 동일 시장으로 진화해 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PP의 성장이나 지상파 방송의 역외 재송신을 통한 시장 구도 변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의 다음 단계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 획정된 각 관련 시장의 해당 사업자들에게 지배력 측정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고 정리하는 한편, 소비자 설문을 통한 지표를 조사•분석하는 일이다. 이 단계에서 이용되는 평가지표들을 선택하는 데 일반적인 경쟁상황 평가에서 이용되는 지표들을 바탕으로 하되 방송시장에 적합한 지표들을 발굴해 포함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질 예정이다.

지배력 평가 지표들은 크게 시장 구조, 사업자 행위 및 사업자 성과 지표와 이용자 대응력 지표로 대별될 수 있다. 구조 지표에는 각종 시장 점유율과 집중도를 위시해 진입장벽을 평가하기 위한 다양한 정성•정량적 지표들이 포함된다. 행위 지표에는 요금 수준과 같은 가격경쟁 지표들과 서비스 만족도, 프로그램 차별 정도 등의 비가격 경쟁 지표들이 해당된다. 성과 지표로는 각 방송사의 여러 가지 수익률이 이용될 수 있다. 이용자 대응력 지표로는 전환 경험이나 전환 의사 또는 전환 장벽 등을 들 수 있다.

이번 방송시장 경쟁상황 평가는 과거 방송위원회에서 몇 차례 작성된 바 있는 ‘방송시장 경쟁상태 보고서’와는 달리 경제학에서 전통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방법론과 지표들을 활용해 시장을 획정하고 지배력을 평가하는 첫 번째 연구라는 데에 나름의 의의가 있다. 나아가 이번 시장분석 결과를 통해 기존의 방송시장이 안고 있던 다양한 경쟁 이슈들을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평가하고 정책방향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국내 방송시장 연구의 새로운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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