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서울신문 교열팀 차장, 한국어문기자협회장

적어도 언론 매체에선 사라진 줄 알았던 ‘학부형’이 제법 보인다. 여성이 사회활동을 거의 안 하던 시절, 모든 것이 남성 위주로 돌아가던 시절엔 ‘학생의 보호자’를 가리키는 말이 ‘학부형’이었다. ‘학부형(學父兄)’은 ‘학생의 아버지나 형’이라는 뜻이다. 이 말 속엔 아버지와 형만 있을 뿐 ‘어머니’는 없다. 아버지 대신 형은 보호자가 될 수 있었지만 어머니는 보호자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3 학부형께”, “내년이면 저도 학부형입니다”, “시험장 앞에서 기도하는 학부형” 같은 표현이 대세였고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학부모(學父母)’의 쓰임새가 많아졌다. 특히 공적인 자리에서는 더욱 그랬다. ‘형’ 대신 ‘어머니’가 학생 보호자로 들어와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이제 ‘학부형’은 지난 시절의 용어가 됐다. “고3 학부형께”는 “고3 학부모께”라고 쓰는 게 정당해 보인다. “내년이면 저도 학부모입니다”, “시험장 앞에서 기도하는 학부모”라고 하는 게 좋겠다.

‘학부형’ 같은 표현은 세상에 여성은 없고 남성이 우선이라고 강요하는 게 된다.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차별적 인식을 낳게 할 수 있다. 다음 같은 표현은 ‘여성’을 특별히 드러내 문제가 된다. 기사 제목 “국세청 첫 납세자보호관 이지수 여성 변호사 선임”에서 ‘여성’은 반드시 필요한 정보라고 보기 어렵다. 이렇게 표현하면 변호사이기 전에 여성으로 먼저 보게 만들 우려가 있다. ‘여성 산악인’, ‘여성 골퍼’, ‘여성 과학자’ 등에서처럼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넣을 때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횟집을 운영하는 김모(40・여)씨는 ‘언제부터 영업을 하냐’는 문의 전화에…”, “‘자, 이제 책 읽자’는 조승희(29•여) 담임교사의 말이 떨어지자 학생들의 발길이 학급문고로 향했다.” 이 문장들에서는 등장하는 인물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밝힐 필요가 없어 보인다. 습관처럼 여성임을 알렸다. “여대생이 학교에서 받은 성적 우수 장학금을 세 학기 연속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써 달라며 전액 반납했다.” 여기서도 반드시 ‘여대생’일 필요는 없었다. 장학금을 반납한 게 ‘여대생’이어서 이목을 끄는 상황이 아니다.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한 대학생’이어도 충분했다.

매춘(賣春)은 ‘돈을 받고 몸을 팖’이라는 뜻이다. “1949년 신중국 수립 후 매춘은 금지됐으나 개혁개방 이후 매춘 산업이 다시 부활해 번성했다.” 여기서 ‘매춘’에는 남성은 없고 여성만 있다. 성매매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넘겨씌우는 용어다. 성매매(性賣買)는 ‘일정한 대가를 주고받기로 하고 성행위나 이에 준하는 행위를 하는 일’이라는 의미다. 때때로 ‘매춘’을 대신해 ‘성매매’가 쓰일 수 있겠다. “페루가 아동 매춘(성매매)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인들의 정신적 매춘(성매매) 현장을 목격한….”

여성은 집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게 지난 시절의 가치관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집사람’, ‘안사람’이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야 했다. 여성은 가려져 언제나 남성 뒤에 있었다. 이는 우리가 쓰는 말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형제애’는 보여도 ‘자매애’는 듣기 어렵다. ‘미혼모’, ‘미망인’, ‘복부인’ 같은 말들은 여성들에게만 해당한다. 이에 대응해 남성에게 붙는 명칭이 없다. 그래서 불평등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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