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의 편집국장인 데이비드 슐레진저는 “우리가 프로라면 일을 좀 다르게 해야 한다”며 “우리는 ‘노’라는 말을 좀 더 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사진을 놓칠 각오를 좀 더 해야 하고, 피격당하지 않기 위해 촬영할 기회를 놓치는 데 좀 더 담담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봉현 한국언론진흥재단 영국통신원,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박사과정

저널리스트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초고를 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들의 소명 의식이 극적으로 발휘되는 것은 전장이나 분쟁 지역을 취재할 때다. 그것도 안전한 본부에서 홍보장교의 기획과 안내에 따라 움직이는, ‘배속된’ 기자가 아니라 피가 튀고 살점이 나뒹구는 전투와 살육의 현장을 누비는 종군기자는 그런 소명 의식이 없이는 하기 힘들다.

촬영 기회 놓치더라도
피격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

그런데 이런 저널리즘의 오랜 믿음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바로 분쟁취재 과정에서 어느 언론사보다 많은 기자들이 희생당한 국제 통신사 톰슨로이터의 최고 편집책임자로부터 그런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로이터의 편집국장인 데이비드 슐레진저는 이달 초 그리스 아테네에서 ‘살아서 증언하라’를 주제로 열린 INSI(International News & Safety Institute) 기조연설에서 저널리스트들이 과연 전쟁 취재에 지금처럼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표시했다.

슐레진저는 “우리가 프로라면 일을 좀 다르게 해야 한다”며 “우리는 ‘노’라는 말을 좀 더 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사진을 놓칠 각오를 좀 더 해야 하고, 피격당하지 않기 위해 촬영할 기회를 놓치는 데 좀 더 담담해져야 한다. 우리는 창창한 인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야기의 일부를 놓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에서만 지난 10년간 12명이 전장과 분쟁 지역을 취재하다 사망했다. 대표적인 예는 2007년 미군 아파치 헬기가 무장하지 않은 일군의 이라크인을 공격해 이들과 같이 있던 로이터 카메라기자 나미르 누어엘든과 운전기사 시드 차마가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은폐되어 있다 올 초 폭로 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헬기가 찍은 기관포 사격 장면 비디오를 공개하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2003년 8월에는 기자 100여 명이 묵고 있는 바그다드 팔레스타인 호텔을 미군의 M1A1 에이브러햄 탱크가 1마일쯤 떨어진 다리 위에서 조준 사격해 15층 발코니에 있던 로이터 카메라기자 타라스 프로셔크와 스페인 카메라기자 호세 코우소가 치명상을 입었고, 다른 3명의 로이터 직원이 부상을 당했다.

슐레진저는 “저널리스트로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늘 사건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특히 사진기자와 방송 카메라기자는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 저널리스트 사회의 암묵적 합의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데 이게 실제 가치가 있으며, 특히나 요즘 세상에 필요한가”라고 반문한다.

기자 보호, 정부와 군이 함께 해야

즉 무장헬기가 4킬로 미터 떨어진 상공에서 기총소사를 할 수 있는 시대에 종군기자가 현장에 있어야 하며, 지구 반 바퀴 떨어진 곳에서 조종하는 미사일이 한 지역을 초토화하는 마당에 기자가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당연시되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슐레진저는 기자는 상황을 좀 더 명확히 이해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현장을 목격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좀 더 솔직해지자. 종종 이런 목적은 증발한 채 약간은 덜 고상한 이유로 위험을 무릅쓰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유로 경쟁의 압력, 개인적 야심 또는 흥분 등을 들었다. 이어 슐레진저는 “전문직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동료를 위험에 노출시키는 상황에 좀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기자들의 희생에서 교훈을 얻어 분쟁취재의 규범을 개정했는데 예를 들어 ‘기자는 무장을 한 민간인들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된다’거나 ‘병사들과 함께 걸으면 타깃이 될 수 있으므로 종군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장한 병사들과 발을 맞춰 걷지 말 것’ 등의 규정이 새로 생겼다. 그러나 슐레진저는 “이런 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슐레진저는 기자가 전장에서 무방비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정부와 군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인식향상’, ‘투명성’, ‘책임성’ 등 세 가지를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는 “‘배속된’ 기자뿐 아니라 어떤 기자도 전장에서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본부에 있건 훈련장에 있건 군인들이 확실히 인식하게 하라”고 요구한다. 그는 치열한 전투 와중에 극도로 예민해진 병사들은 기자가 들고 있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무기로 오인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병사들에게 그 모양이 다르다는 것을 반복해서 훈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 아파치 헬기에 의한 공격은 비디오 화면 분석 결과 시드차마 기자가 어깨에 걸머진 카메라가 대공미사일 등 무기처럼 보였고, 헬기 조종사와 지휘관이 이런 상황에 대해 몇 마디 교신을 주고받은 끝에 곧바로 사격 명령이 떨어졌다. 슐레진저는 “(헬기가 찍은) 비디오 화면과 무전교신을 보면 공격을 승인한 간부나 방아쇠를 당긴 헬기 탑승 요원이나 사망자 가운데 종군기자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바그다드 팔레스타인 호텔 피격 때도 발코니에 나와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투를 목격하던 100여 명의 기자들은 누구도 그들이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탱크에 있던 병사는 그중 망원경을 보고 있던 사람이 미군에 대한 포격을 지휘하는 것 같아 포신을 돌렸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안전에 대한 인식향상과
투명성, 책임성이 키워드

투명성은 일어난 일을 가능한 한 소상히 밝히는 것이다. 로이터는 2007년 피격 사건이 일어난 뒤 군 당국으로 비디오테이프의 첫 부분만 제공 받았고 어떤 맥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공개된 뒷부분은 헬리콥터가 부상자를 수송하던 한 트럭에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 찍혀 있었다. 로이터는 그 전에 거듭 비디오 후반부를 공개하도록 했으나 당국은 보안상 중요한 것이 찍혀 있다며 거부했었다. 그러나 결국 은폐의 가장 큰 이유는 불리한 것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임이 드러난 것이다.

투명성의 부족은 책임성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두 경우 모두 미군 당국이 살상을 저지른 군인을 찾아내 단죄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늘 군인들의 책임을 보여 주는 증거를 찾아내기보다는 해당 병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들을 제출하곤 했다. 희생자의 가족들은 왜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믿을 만한 조사가 진행되길 기대하지만 독립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자 단체는 지난 7년간 조지 부시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정의롭고 공정한 조사를 할 것을 거듭 요구했지만 별 신통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있다.

슐레진저는 “암흑 속에서 수행된 전쟁은 책임성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며 “기자의 직무는 민주주의 유지・발전에 핵심적이며 이런 가치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슐레진저의 이날 발언은 조심스럽긴 했지만 저널리즘의 전통적 교의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를 두고 그럴 때가 됐다는 의견도 있지만 책임회피라는 시각도 나왔다.

기자는 목격자돼야

2001년 스리랑카 내전을 잠입 취재하다 폭탄 파편에 눈을 잃은 마리에 콜빈 ‘선데이타임스’ 특파원은 그 며칠 뒤 지난 10년간 숨진 49명의 영국 기자를 추모해 열린 ‘어떤 희생을 무릅쓰더라도 진실을’이란 모임에서 슐레진저와 다른 시각을 개진했다.

그녀는 “전쟁을 취재한다는 것은 혼돈, 파괴, 그리고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목격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며 “이는 군대와 부족과 테러리스트가 충돌할 때 선전의 모래바람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녀는 국방부나 펜타곤의 미화된 비디오 장면에도 불구하고, 또 ‘스마트 폭탄’이니 ‘족집게 공격’이니 하는 ‘살균 처리’된 언어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의 광경은 놀랍게도 수백 년 전이나 똑같다고 강조했다. 즉 포탄이 만든 분화구, 불탄 가옥, 절단된 몸통, 아이와 남편을 잃고 흐느끼는 여자, 부인・어머니・아이를 잃고 우는 남자 등이 전형적인 전쟁 장면이란 것이다.

그녀는 기자가 전쟁을 취재・보도하는 것은 “국민이 우리 정부와 우리 군대가 우리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우리는 역사의 초고를 쓰고 있는 것”이라며 “물론 이는 기자 자신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인데 우리는 늘 우리 자신에게 이 기사가 위험에 견줄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다쳤을 때 ‘우리가 과연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한 신문은 “마리에 콜빈은 이번에 지나치게 앞으로 나갔는가?”란 제목을 뽑기도 했다. 그녀는 “내 대답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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