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성향의 전직 중국공산당 간부와 원로지식인 23명이 언론검열을 종식하라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과거 정치와 문화, 언론 분야에서 일했던 이들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앞으로 보내는 온라인 공개서한에서 언론검열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주춘렬 세계일보 베이징 특파원

지난 11월 8일 중국 베이징(北京) 징시(京西)호텔에서는 기자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중국 언론 정책 책임자인 리창춘(李長春) 상무위원과 문화홍보부문 관계자 및 500여명의 언론대표가 참석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아직도 언론은 선전의 도구

중국의 대표적인 국영매체 중국중앙방송과 신화통신이 각각 중국인민공화국 성립 60주년 대회와 칭하이(靑海)성 위수(玉樹) 지진재해보도로 중국신문상 최고상인 특별상을 받았다. 또한 1등상 34건, 2등상 87건, 3등상 146건 등을 포함해 중앙과 지방언론사와 기자들도 포상을 받았다. 기자와 언론의 축제 한마당인 셈이다.

중국에서 직업 기념일은 간호사와 스승, 그리고 기자의 날 세 개 밖에 없다. 원래 중국 기자의 날은 항일전쟁기간인 1937년 11월 8일 당시 언론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상하이에서 중국 청년 신문공작자협회가 결성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이 협회는 현재 중화 전국신문 공작자협회(약칭 중국 기협)의 전신이다. 중국 청년 신문공작자 협회 결성에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중요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언론인을 상대로 한 통일전선 조직 구축 작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창춘 상무위원은 이날 기념식에서 “언론은 반드시 중국 경제와 사회발전의 방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며 인민의 소망에 따라야 하고 국내외 정세에도 순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 위원은 이어 “언론인은 공산당의 주장과 민중의 목소리를 통일시켜야 한다”며 “언론활동은 사실과 대중생활에 가까이 다가서고 인민의 알권리, 참여권, 감독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언론을 당과 인민 사이의 창구로 판단해 여전히 선전 선동의 도구, 혹은 통일전선 구축과 같은 고전적 개념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리 위원은 이날 언론 자유와 자율성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리창춘 위원의 보수적 발언은 최근 불거졌던 언론자유논쟁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12일 개혁 성향의 전직 중국 공산당 간부와 원로지식인 23명이 언론검열을 종식하라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과거 정치와 문화, 언론 분야에서 일했던 이들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앞으로 보내는 온라인 공개서한에서 언론검열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고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 등 홍콩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개혁파 인사, 언론자유 보장 촉구
 
이 공개서한에는 마오쩌둥(毛澤東) 비서 출신으로 중앙조직부 상무 부부장을 지낸 리루이(李銳),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사장을 지낸 후지웨이(胡績偉), 신화통신 부사장을 지낸 리푸(李普), 공산당 중앙선전부 신문국장 출신의 중페이장(鍾沛璋),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출신인 두광(杜光) 등 중량급 인사들이 주도했다. 또한 차이나데일리 부국장 출신인 위유(于友), 중국 정법대 전 총장 장핑(江平), 중국사회과학원 출판사 전 사장 장딩(張定), 상하이인민극장 전 대표 사예신(沙葉新) 등 원로 교수•문인•예술인들이 대거 참여했다.

개혁파 인사들은 1982년 개정된 중국 헌법에 인민의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여행, 시위의 자유가 규정돼 있으나, 이 조항은 문구로만 존재했을 뿐, 지난 28년간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며 이는 ‘거짓 민주(假民主)’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거듭된 정치개혁 발언까지도 검열할 정도로 인민의 알 권리를 박탈하는 비밀권력을 가진 ‘검은손(黑手)’ 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8월 21일 선전 연설, 9월 22일 미국 기자들과의 회견, 9월 23일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정치 개혁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거듭 역설했으나 중국 내 언론들은 공산당 중앙선전부의 검열과 압력 탓에 계속 침묵했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중국의 언론•출판 자유의 현실은 (영국) 식민지 시대의 홍콩만도 못하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공개서한은 이어 당과 국가 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도록 언론매체의 독립성을 부여할 것, 기자들에 대한 임의 체포 금지, 인터넷 게시글과 댓글에 대한 임의적인 삭제 중단, 홍콩과 마카오에서 발간되는 서적에 대한 중국 독자들의 제한 없는 접근 허용, 중앙선전부의 임무 변경 등 언론•출판 자유와 관련한 8개 사항을 요구했다.

관영 매체, 언론자유 요구 진화에 앞장

이 공개서한은 시기적으로 미묘한 시점에 발표돼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원래 이 서한은 지난 8월 중국 싼먼샤(三門峽)댐 건설과 관련한 지방정부의 이주정책을 고발하는 책을 냈다가 공안에 체포된 셰자오핑(謝朝平) 사건 때문에 시작됐으나, 결과적으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와 부인 류샤(劉霞)에 대한 당국의 탄압과 보도 통제가 심화하는 시점과 맞아 떨어졌다. 또한 15일 개막된 중국 공산당 제17차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7기 5중전회)에 임박해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수신인으로 지정해 서한을 보냈다. 중페이장 전 공산당 중앙선전부 신문국장은 “이번 서한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중국 당국과) 싸우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공개서한은 중국대륙에 언론자유논쟁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듯했다. 서한이 공표된 인터넷 사이트 ‘우류춘(五柳村)’에는 하루 사이에 476명이 지지 의사를 밝혔다. 대학교수와 교사, 언론인, 전직 고위 공무원, 시인, 작가, 기업인, 연구원 등 각계 인사들은 자신의 실명과 직업을 밝히며 언론 자유를 촉구했다.

중앙과 지방의 유력 신문들도 일제히 원 총리의 정치개혁 및 언론자유 발언을 지지하는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共靑團) 기관지인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와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경보(新京報), 상하이(上海)시 동방조보(東方早報), 후베이(湖北)성 장강일보(長江日報), 장쑤(江蘇)성 현대쾌보(現代快報), 후난(湖南)성 소상신보(瀟湘晨報), 광둥(廣東)성의 남방일보(南方日報) 등 7개 신문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중국 정부와 관영언론도 곧바로 전방위 진화에 나섰다. 당장 17기 5중전회는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는 관측과는 달리 정치개혁와 언론자유요구를 일축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와 관영 신화통신도 다당제와 언론자유 등 서구식 민주주의를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인민일보는 10월 20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민주정치제도의 우월과 기본 특징’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다당제와 권력분립을 비효율적이며 분열적”이라고 비난하면서 “중국의 현 정치체제가 중국 상황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명됐으며 유지,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이어 당 간부들에게 중국식 사회주의 민주주의와 서구식 민주주의 사이에 명확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며 기존 정치제도를 옹호했다. 인민일보는 21일에도 ‘언론출판자유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논평기사를 통해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언론자유는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화통신도 서방식 정치체제와 언론자유의 폐단을 비판하고 중국특색의 사회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했다.

중국 당국은 이번 5중전회를 전후해 반체제인사를 격리하거나 밀착감시하며 강경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안당국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류샤오보(劉曉波)의 부인 류샤(劉霞)를 포함해 상당수의 반체제 및 인권운동가들에 대해 가택연금, 격리, 강제신문 등 다양한 탄압조치를 취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취재 여건 개선 등 변화 조짐도
 
기자의 날을 즈음해 일부 중국 중앙과 지방언론들은 현재의 기자취재여건 등을 조망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와 기자의 취재여건 개선을 요구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환구시보(環球時報)의 영자지 글로벌 타임스는 지난 8일 탐사보도기자가 협박과 보복, 심지어 폭력을 당하는 실태를 고발했다. 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의 중국건설신문사 탐사보도기자인 리쿤은 올 초 불법적인 부동산 프로젝트를 폭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관련개발업자는 4,000만 위안의 벌금을 부과 당했고 두 명의 시 공무원이 해임됐다. 리 기자와 가족은 그러나 이 보도 이후 끊임없는 협박에 시달렸고 결국 직장을 떠나고 말았다. 글로벌 타임스는 리 기자 이외에도 올해 모두 11명의 기자가 구타 등 폭력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또한 탐사보도기자가 회사 내에서조차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중국청년보의 탐사보도기자인 류완융은 글로벌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 간부와 회사 내 경영진의 압력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탐사보도의 경우 신변의 위협뿐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도 기사건수가 적은 탓에 급여삭감 등 불이익이 뒤따른다는 설명이다. 최근 신화통신도 탐사보도기자를 광부와 정부관료 다음으로 가장 위험한 직업으로 꼽았다.

내몽고의 유력일간지 북방신보(北方新報)는 지방기자의 열악한 취재여건을 고발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지방공무원들은 기자들의 취재를 거절하면서 뇌물을 주거나 혹은 기자를 때리거나 협박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설명이다.

이 신문은 한 조사를 인용해 5%의 기자가 구타를 당하고 있으며 18%는 모욕과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신고를 당하는 경우도 6%에 달한다. 북방신보는 언론의 알권리와 취재권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권리를 보장하는 장치는 없다며 관련 법률과 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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