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창사20주년 특집다큐 ‘최후의 툰드라’

장경수 SBS 제작본부 프로듀서

‘툰드라’는 러시아 말로 ‘나무가 없는 땅’이란 뜻이다. 우리가 중학교 때 배우는 툰드라의 정의와 비슷하다. 백과사전을 보면 지구 면적의 약 10%를 차지하는 대륙의 끝, 북위 60도 이북의 땅, 관목 이외의 나무가 자라지 않는 땅, 연중 내내 녹지 않는 영구 동토 지역 등 여러 가지 정의로 툰드라를 설명하고 있다.

베일에 싸인 대지, 툰드라에 내디딘 첫발

사람들은 보통 툰드라라고 하면 북미와 캐나다 북부 지역을 떠올린다. 사실 툰드라 영토의 3분의 2는 러시아에 위치하고 있다. 소비에트 시절 변방의 시베리아 툰드라는 보안상의 이유로 외국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땅이었다. 그렇다 보니 외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과연 시베리아의 툰드라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북극처럼 얼음이 연상되지도 않고, 땅이라고는 하지만 동토의 땅이니 풍요롭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땅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런 궁금증은 프로그램을 기획한 모티브가 되었다.

지금 툰드라는 21세기의 인류와 지구환경이 겪는 매우 아이러니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영구 동토 아래에 수백만 년 동안 저장된 메탄가스가 올라와 기후 격변의 방아쇠가 될지 모르는 땅, 반면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어 정부와 기업들이 개발의 눈독을 들이는 땅이다. 그래서 툰드라는 어쩌면 우리가 겪고 있는 환경의 위기 상황과 그것을 가속화시키는 인간의 욕망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껏 혹독한 자연환경으로 문명이 접근하기 힘들었던 곳,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전통을 보존하며 살 수 있었던 곳. 그러나 툰드라는 이제 바뀌고 있다. 가속화되는 개발 붐 속에서 툰드라의 대자연도,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거센 변화의 바람 앞에 서 있다.

툰드라 촬영팀은 툰드라에서의 촬영을 진행하는 내내 특수전(特殊戰)을 수행하고 있다고 농담처럼 서로 이야기했다. 미디어가 많이 다루지 않는 지역은 사실 다 이유가 있다. 시베리아 툰드라의 경우 오지이고, 촬영 자체가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거기에다 러시아 정부의 취재 허가라는 아주 큰 어려움이 하나 더 붙는다.

툰드라에서 특수전을 수행하다

러시아 취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취재 비자를 필요로 한다. 러시아 취재비자는 세계적으로 받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툰드라 지역의 경우는 별도의 통행 허가가 필요한데, 이 통행 허가를 받기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만일 통행 허가 없이 툰드라 지역에 들어갔다가는 십중팔구 보안검문에 걸려 구류를 살거나 벌금을 물고 추방 당한다. 설령 통행 허가가 난다 하더라도 30일을 넘지 않으며 기간이 만료된 뒤에는 다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재허가에 걸리는 기간은 통상 3개월이다. 이 때문에 해외의 유수한 방송사들도 4계절의 툰드라를 담아내려는 시도는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최후의 툰드라> 팀은 4계절을 담아내겠다고 옹골찬 계획을 세웠다. 그것도 1년 안에 말이다. 2009년 9월 툰드라의 핵심 지역인 야말로네네츠 자치주에 촬영 허가를 신청하고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주 정부는 3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결국 툰드라 팀은 무작정 야말로네네츠 지역을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절차를 밟아 일을 진행해도 성과가 없는 경우에는 강하게 나가는 것이 때로는 주효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사실 러시아에서 이렇게 무작정 일을 진행하다간 잘못하면 영구 추방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다행히도 툰드라 팀에게 이 작전은 주효했다. 야말로네네츠 자치주 정부 관리에게 한국 취재팀이 내일 무조건 들어갈 테니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최후 통첩을 보낸 뒤, 행정 수도인 살리하르드에 도착했을 때 공항에서 제작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러시아 경찰과 정보부 요원들이었다.

도착과 동시에 바로 정보기관으로 압송되어 살벌하게 취조받기를 몇 시간, 부리나케 달려온 자치주 행정부 관리들에 의해 우리는 석방될 수 있었다. 하기는 우리의 취재 요청을 이유 없이 묵살한 것도 그들이었으니, 뿌린 대로 거둬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날로부터 툰드라 제작 팀은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툰드라의 핵심인 야말로네네츠 지역을 여섯 차례에 걸쳐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단일 해외 취재 팀이 외국인 출입 통제구역인 이 지역을 이렇게 단기간 여러 번에 걸쳐 취재한 기록은 이제껏 없었고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우리라 생각된다.  

최상의 선택 DSLR 카메라

지구의 땅끝 툰드라를 촬영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많이 고민을 했던 것이 카메라 기종의 선택이었다. 예상대로 <최후의 툰드라>가 방송되고 난 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인 것도 DSLR 카메라가 보여 준 독특한 색감과 심도였다. 사실 DSLR 카메라를 다큐멘터리에, 그것도 4부작 대작 다큐멘터리에 메인 장비로 쓴다는 것은 모험이었다. 드라마나 극영화와 달리 피사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고 다음 장면이 어떤 장소가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포커스를 맞추고, 적절한 색온도와 감도, 노출을 모두, 그것도 수동으로 맞춘다는 것은 정말 달인이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너무나 장점이 분명한 카메라였다. 툰드라로 가기 전 약 2~3개월 동안 피디로서의 직분을 망각하고 카메라에만 매달렸다. 기획과 자료조사할 시간을 쪼개서 DSLR 카메라의 특징과 장단점, 안정적인 동영상 촬영을 위해 필요한 보조 장비와 녹음 시스템을 연구했다.

국내의 유경험자 몇 분께 자문해 보고, 몇 달간 해외 블로그를 섭렵한 결과 조금씩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DSLR 카메라를 메인 촬영 장비로 선택했다.
<최후의 툰드라> 촬영에서 DSLR 카메라를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툰드라의 원주민인 네네츠족은 매우 수줍음이 많아서 작은 카메라일수록 접근성이 높았다.
둘째, 춤(순록 가죽으로 만든 원주민들의 집)은 실내가 매우 좁아 큰 카메라가 들어가 활동하기 어렵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매우 어두운 환경이었다. 하지만 DSLR 카메라를 써서 좁은 환경에서도 다양한 앵글을 확보할 수 있었고 50㎜(f1.2) 렌즈로 등잔불과 촛불 아래에서도 훌륭한 영상을 구현해 낼 수 있었다.

셋째, 2~3일에 한 번씩 20㎞ 이상 이동을 하는 네네츠 유목민을 따라 같이 이동해야 하는데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유일한 육지의 이동수단이 순록이 끄는 썰매이다. 그런데 순록 썰매에 익숙하지 않은 제작진은 수시로 굴러 떨어지기 일쑤였다. 만일 큰 카메라를 툰드라로 가져갔다면 썰매에서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오래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넷째, 피사체에 집중할 수 있는 얕은 피사계심도와 특유의 따뜻하고 화려한 색감, 높은 해상도가 고급스런 영상을 만들어 냈다. 밤하늘의 별, 오로라, 리니어 달리를 이용한 미속 촬영 등은 DSLR 카메라만이 만들 수 있는 특유의 영상미를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꼽자면 러시아와 같이 아직도 보안검문이 강한 곳은 DSLR 카메라가 여러모로 유용하다. 모든 점을 종합해 봤을 때, <최후의 툰드라> 촬영에서 DSLR 카메라의 선택은 최상이었다.

한국적 접근 방식으로 샤먼의식 촬영

툰드라 사람들은 여러모로 촬영 팀을 놀라게 했다. 대표적인 것은 제작진을 도와주기도 했고, 힘들게 하기도 했던 ‘툰드라의 법칙’이었다. 툰드라의 법칙은 첫째, 아무리 원수라도 툰드라에서 조난당하면 무조건 도와준다. 둘째, 누구든지 자기 춤에 오면 이유를 묻지 않고 3일간 먹이고 재워 준다. 셋째, 동물은 필요한 만큼만 잡는다.

크게 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법칙은 촬영 팀이 툰드라 한복판에서 조난당했을 때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두 번째 법칙은 촬영 팀에 예상치 못한 고난을 안겨 주었다. 정확하게 3일간은 환영받지만, 3일이 지나면 더 이상 이유 없이 춤에 체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툰드라에서 춤은 말 그대로 집 본연의 역할을 한다. 밖에 나가면 얼어 죽기 십상인 툰드라에서 춤은 따뜻한 온기를 제공하는 곳이고 춤의 주인은 따뜻함의 상징인 여성이다.

촬영감독 중에 한 분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추운 툰드라에서 춤 밖으로 나가란 말은 가장 무서운 말이라고. 하지만 춤에 계속 머물려면 선결 조건이 있다. 춤에 사는 툰드라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머물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돈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그들과 관계 형성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같이 해 주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었다. 어떡하겠는가, 취재진은 촬영과 함께 노동을 병행해야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하는 일인 물 떠오기를 했고 좀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난이도가 높은 장작 패기, 그리고 좀 더 지나서는 춤 설치, 썰매 몰기 등 단계별로 툰드라의 일을 배워 나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툰드라의 네네츠인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를 마음으로 좋아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네네츠 사람들은 서구의 방송 취재진에게는 속속들이 그네들의 생활을 잘 보여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보여 준 샤먼적인 의식, 차가버섯 빨래, 이끼 설거지 등은 친밀감을 형성하지 않으면 보여 주지 않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들은 한국 촬영 팀이 유럽의 취재진과 비교했을 때 뭔가 다르고 좋은 느낌이라고 했다.

아마도 우월적인 지위에서 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높이의 시선에서 그들의 삶을 보고자 했음을 그들도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한국적인 다큐 제작 방식이 있다면 우리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취재할 때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서 같은 높이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라 여겨진다.

서구의 제작 방식과 차별화되는 이런 제작 태도는 같은 사안을 훨씬 더 심도 있게 담아내고 다큐멘터리의 탄탄한 서사적 구도를 가능케 하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 다큐멘터리가 앞으로 좀 더 고민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대목이 아닐까 한다.


 
<최후의 툰드라>가 방송되고 많은 분들이 제작진 앞으로 소감을 보내 주셨다. 가장 많이 보내 주신 소감은 가슴이 따뜻했고 툰드라 사람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잊어버린 소중한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부족한 역량에도 영상 이상의 것을 봐 주신 수많은 분들의 지혜로운 눈에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 툰드라엔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고, 일각에서는 관광 사업을 추진하는 기류도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툰드라와 툰드라 사람들이 지금처럼 그들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저 멀리 툰드라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행복감을 느꼈던 것은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복잡한 현대 문명 속에서 잊어버렸던 가족애, 자연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들. 이제 스스로 우리네 삶 속에서 툰드라가 일깨워 준 것들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보고 싶은 툰드라 사람들, 나중에 다시 찾아갔을 때도 예의 그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 주기를,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 물을 떠오고 나무를 해 오라고 시키기를,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진지하게 한국에 호수가 몇 개인지 물어보기를, 그런 모습을 그들에게서 다시 보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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