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비상상황에서의 취재보도 준칙 토론회

박성희 한국언론진흥재단 산업지원팀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전쟁, 혹은 이에 준하는 비상상황의 보도와 관련해 군 당국과 언론의 갈등이 있었다. 국가 안보를 앞세우며 정보를 통제하려는 군과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정보 공개와 취재 확대를 요구하는 언론의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2010년 12월 20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전시-비상상황에서의 취재보도 준칙’ 토론회 모습

준비 부족이 갈등 불러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10년 12월 20일(월) 프레스센터에서 ‘전시-비상상황에서의 취재보도 준칙’ 토론회를 개최해,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태도를 돌아보고, 바람직한 보도 방안 모색과 가이드라인 마련에 대해 언론인과 언론학자, 군 당국자와 군사전문가들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성준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우리 언론은 준전시상황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최대한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려고 나름대로 애써 왔지만, 국민의 안전에 위협이 되거나 정보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었다”며 “오늘 이 토론회가 우리 언론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지속적인 논의의 장으로 연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발제를 맡은 윤영철 연세대 언론영상홍보학부 교수는 “전시에서나 겪을 만한 군사적 도발 행위로 비롯된 전쟁에 준하는 상황을 맞아 군 당국과 언론은 기밀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타협점을 제대로 찾지 못해 불협화음과 혼선을 빚었다”고 지적했다. 비상상황에서의 공보 관리와 보도에 관한 경험과 준비 부족이 군과 언론의 갈등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또 “남북한 간 화해, 협력 무드가 조성되었다가, 북한의 도발로 인해 북한을 교전 상대국으로 봐야 하는 보도 패러다임 변화 상황에 군과 언론 모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연평도 사건에 대한 군 당국의 대응과 언론의 보도 행태 모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군 당국의 철저한 보도 통제로 현장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대언론 브리핑을 언론이 그대로 믿고 보도하면서 사실성이 훼손됐다”고 군과 언론 모두에 문제를 제기했다.

공보 관리의 발상의 전환 필요

군 당국의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공보 관리 문제가 먼저 도마에 올랐다. 윤 교수는 현행법상 군 당국의 자의적, 주관적 판단에 따라 언론 보도가 엄격히 차단될 수 있는 점이 군 당국의 대응을 폐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윤 교수는 “보도 통제 조치의 근거가 되는 군사기밀보호법에서 군사기밀을 너무나 광범위하고 모호한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어 군의 주관적, 자의적 적용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가 지나치게 제한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윤 교수는 또 “적을 이롭게 하는 사항, 군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군사기밀과 함께 보도금지 대상으로 지정한 국방 공보규정 역시 판단 주체인 군 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군사기밀관리 정책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철우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한 발 더 나아가 국방부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발맞춘 공보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 당국이 적극적으로 언론에 자료와 정보를 제공해 당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디어 메시지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보도 통제에만 주력하는 공보 관리에서 벗어나 정확한 자료 제공을 통해 당국이 의도하는 메시지를 적과 주변국에 명확히 보여 주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며 “포만 무기가 아니라 미디어도 전략적 무기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 측 토론자 박상수 KBS 해설위원도 군 당국의 공보 관리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미디어 전쟁 시대를 맞아 미 국방부가 미디어센터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공보 관리에 임하는 것처럼 우리 국방부도 소극적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미디어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외에도 군 당국에 대해 “공개 대상 정보를 상황에 떠밀려 결정하거나 자의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에 입각해 일관성 있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비상상황에 직면했을 때 상황에 따라 동행취재를 허용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며, “언론 앞에 선 당국자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만큼 전문성을 보여 주었는지, 보도자료 작성 및 브리핑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사진과 음향 변조는 문제

언론의 비상상황 보도 행태도 문제로 지적됐다. 윤 교수는 군의 부정확한 브리핑을 그대로 받아 쓴 결과 K9 자주포의 수가 바뀐 점, 모 방송사가 이라크 바그다드 폭격 사진을 연평도 포격 사진이라고 보도한 점 등, 확인이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언론의 보도 행태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윤 교수는 또 현장에 가 보지도 않았으면서 마치 현장 목격을 한 듯이 보도하거나 피폭 현장 사진의 컬러를 변조한 신문들의  사례와 CCTV 화면에 폭발음을 덧입혀 보도한 방송 사례 등을 예로 들며, 과장・조작・왜곡 보도, 흥미 위주의 보도, 첨단장비와 무기에 관한 과도한 보도 등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종의 위원회를 구성해 언론인들의 참여 속에 구체적인 취재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한편 언론사도 BBC의 편집 가이드라인과 같은 보도 준칙을 자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 교수는 또 언론을 향해 “가이드라인이나 준칙 마련도 중요하지만, 언론인 스스로 사실 검증을 위한 노력, 군사 분야에 대한 심층적 이해, 보도 윤리와 사회적 책임 준수 등을 바탕으로 전문인으로서 자질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토론자로 나선 윤원식 공보과장은 “통합방위법에 취재활동 지원 및 제한에 관한 근거 조항을 가지고 있지만 엄격하게 시행하지 못하고 있어 군사기밀이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 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언론사 편집국장이나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기밀사항이니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뿐”이라고 공보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윤 과장은 이어 “이런 어려움 때문에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이후 군 내부에서 취재보도 준칙 초안을 마련했지만, 언론과의 협의 및 사회적 합의 과정이 없어 이도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언론, 학계, 전문가 등과 협의를 거쳐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익과 진실의 균형 유지를

윤 과장은 또 군에 대한 일련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면서도 언론을 향해 “연평도 사건과 관련한 여러 보도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감정을 세간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분별 없는 언론, 분별 있는 국민’”이라고 꼬집으며, “비상상황에서 국민이 가장 바라는 것은 알 권리보다는 개개인의 안위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도 언론에 대해 “비상상황에서는 안보 친화적 보도가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국가 안위를 생각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며 “언론 스스로 보도를 자제하는 ‘자율적 통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 교수는 ‘국익’과 ‘전쟁의 진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윤 교수는 “공정 보도를 덕목으로 삼고 있는 언론인이라면, 맹목적 애국주의 여론에 편승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의도적으로 편향 보도를 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수 KBS 해설위원은 이에 대해 언론이 자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일부 수용하기 힘든 지적도 있었다고 평가 했다. 박위원은 “군이 비상상황에서의 취재보도 가이드라인 초안을 마련해 둔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라고 반기면서, “언론인들은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라는 가치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작성할 때는 언론인들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이 날로 예고된 우리 군의 연평도 해상 사격 훈련으로 인해 일부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이번 토론회가 시의적절했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토론회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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