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서울신문 교열팀 차장, 한국어문기자협회장

‘그는 울었다’에서 ‘는’은 주어를 나타내는 조사가 아니다. ‘이(가)’처럼 앞말이 주어임을 나타내는 주격조사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은(는)’은 그렇게 쓰이지 않는다. 보조사다. 먼저 ‘은(는)’은 앞말이 다른 내용과 대조가 된다는 사실을 알린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앞말이 주제라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서 ‘주제’는 문장에서 중심이 되는 말을 뜻한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에서 ‘오늘은’, ‘우리는’은 문장의 주제가 된다. 또한 ‘은(는)’은 앞말이 기존 정보, 그러니까 이미 알려진 정보임을 가리킨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알려졌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쓰인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는 ‘4~5급이면 간부진인데 다른 업무에 대한 제안서를 내서 채택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 이 관계자는 ‘6~7급 강제 퇴출을 덮기 위한 조치가 아닌가 싶다’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위 기사에서 마지막 문장의 ‘이 관계자는’을 ‘이 관계자가’로 바꾸면 어색해진다. ‘이 관계자’는 앞쪽에 보이듯 이미 알려진 정보인 것이다. 앞쪽의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는’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가’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제시된 부분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러나 기사 전체를 놓고 보면 ‘관계자는’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즉 ‘관계자’는 알려진 정보였다. ‘은(는)’은 이미 알려진 사실임을 전제로 할 때, ‘이(가)’는 앞말이 일반적으로 새로운 사실일 때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아닌데도 ‘은’을 써서 어색해지는 예들이 보인다.
아랍어가 수능에 도입된 2005년 이후 줄곧 100점을 유지해 온 표준점수는 올해 처음 90점으로 떨어진 것이다.”
위 문장을 주의 깊게 읽다 보면 어색한 곳이 보인다. 바로 ‘표준점수는’이다. 이 부분만 ‘표준점수가’로 바꾸면 자연스럽게 읽힌다. 이 기사에서 독자들은 ‘상당히 달랐다’ 다음에 ‘무엇이 어떻게 됐는지’를 기대한다. 이런 내용이 와야 자연스럽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은’이 아니라 ‘무엇이’다. 이때 ‘무엇’은 새로운 정보다. ‘표준점수’가 새로운 정보라는 사실을 나타낼 때 이 문장은 자연스러워진다.
“‘기업의 사장은 돈을 벌면 항상 투자를 하려고 궁리하는 사람들입니다. 투자는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필연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지난 27일 기자 간담회에서 … 이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여기서도 ‘부회장은’보다 ‘부회장이’가 더 자연스럽다. ‘부회장’이 처음 나오는 정보이고 ‘의견을 내놓은 게 누구인지를 알리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올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드러난 진실을 어리석게 감추려 한다’는 뜻의 ‘장두노미(藏頭露尾)’를 뽑았다”에서처럼 시작을 ‘은’으로 하는 예도 적지 않다. ‘교수들’을 알려진 정보라고 전제하고 쓴 것이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오후(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대강당에서 크로파체프 총장으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학생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사진을 설명한 문장이다. 이 문장에서 ‘대통령은’은 ‘대통령이’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이처럼 무엇을 묘사할 때도 ‘이’가 쓰인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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