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영 신화통신과 반관영 중국신문사 등 언론들은 노벨 평화상 소식을 단 한 줄도 전하지 않았다. 바이두, 시나닷컴 등 인터넷 포털에서 ‘노벨 평화상’이나 ‘류샤오보’를 검색해도 ‘관련 법과 규정에 따라 정보를 보여 줄 수 없다’는 문구만 나왔다. 또한 노벨 평화상 발표 직후 중국 전역에는 미국 CNN과 영국 BBC의 화면은 먹통이 되기도 했다.

 

주춘렬 세계일보 베이징 특파원

“이번 사건은 단순한 외교 분쟁을 넘어 ‘동서양의 문명충돌’로 봐야 할 거 같다.”

2010년 10월 10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2010년 노벨상 수상자로 중국의 반체제 작가 겸 변호사인 류샤오보(劉曉波)를 선정하자 베이징 외교가의 한 고위 인사가 했던 말이다. 그만큼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은 중국에 엄청난 타격을 줬던 게 사실이다. 류샤오보는 중국 인권의 아킬레스건인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관련돼 있으며, 공산당 일당 독재를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해 온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로 꼽힌다. 그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운동이 발발하자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급거 귀국, 단식 투쟁에 나섰다가 수감된 바 있다. 특히 류샤오보는 2008년 12월 공산당 일당 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08 헌장’을 주도한 혐의로 2009년 징역 11년형을 선고 받았다.

중국으로서는 그토록 기다려 온 첫 번째 노벨상 중국인 수상자가 수감 중인 범법자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더욱이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평화의 수호자로, 중국은 인권 탄압국으로 공식적으로 낙인 찍힌 셈이다. 그동안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등 중국의 현 지도부는 대외적으로 독립•자주•평화 외교정책을 통해 ‘조화로운(허셰•和諧) 세계’를 건설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세계 경제 2위의 대국으로 미국과 더불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하던 중국으로서는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화가 날대로 난 중국은 초강경 대응과 함께 대대적인 언론 검열에 돌입했다. 관영 신화통신과 반관영 중국신문사 등 중국 언론들은 노벨 평화상 수상 소식을 단 한 줄도 전하지 않았다. 바이두(百度) 시나닷컴 등 인터넷 포털에서 ‘노벨 평화상’이나 ‘류샤오보’를 검색해도 ‘관련 법과 규정에 따라 정보를 보여 줄 수 없다’는 문구만 나왔다. 또한 노벨 평화상 발표 직후 중국 전역에는 미국 CNN과 영국 BBC의 화면은 먹통이 되기도 했다.

중국의 반발, 고강도 언론 통제

중국 정부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당시 마자오쉬(馬朝旭)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노벨 평화상 발표 이후 첫 성명을 통해 “중국 법률을 위반해 중국 사법기관에서 형벌을 받는 죄인에게 이런 상을 주는 것은 노벨 평화상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난했다. 환구시보(環球時報) 영문판 글로벌 타임스도 노벨위원회가 스스로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노벨 평화상이 반중(反中)이라는 목표에 복무하는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노벨위원회가 지난 30여 년간 가장 주목할 만한 경제・사회적 진보를 이룬 국가에 대해 다시 한번 오만과 편견을 드러냈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에서 류샤오보의 석방과 중국의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지만 중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국 공안당국은 류샤오보의 부인 류사(劉霞)와 친지, 반체제 인사에 대해 가택연금 등 대대적인 감시활동에 돌입했다. 다만 류사가 랴오닝(遼寧)성 진저우(錦州)에서 수감 중인 류샤오보를 만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달했을 뿐이다.
중국 공안 당국은 면회 이후 베이징 시내 류샤오보의 자택에 류사를 연금, 외부의 접촉을 차단했다. 또한 류샤오보와 함께 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한 ‘08 헌장’의 서명자 10여 명도 공안 당국에 연행되거나 가택 연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행적인 빈 의자 수상

이로부터 약 두 달 후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다가오자 중국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중국 공안 당국은 시상식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류샤가 사는 베이징 자택 주변과 진입로에 정복과 사복 차림 경찰관을 대거 배치해 감시활동을 대폭 강화했다. 저명한 설치미술가이자 인권운동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 류샤오보가 변호사로 재직했던 법률회사의 대표이자 중국의 저명한 인권운동가인 모샤오핑(莫少平) 변호사 등 수많은 인권운동가 및 반체제 인사들도 중국 공안 당국의 감시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결국 중국 당국이 류사 등 가족과 친구, 반체제 인사의 노르웨이행을 봉쇄하면서 2010년 12월 10일 오후 1시부터 시작된 노벨 평화상 시상식은 수상자 없는 파행 속에 치러졌다. 수상자 없는 시상식은 110년 노벨상 역사상 두 번째다. 앞서 1935년 나치 치하의 독일 언론인이자 평화주의자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가 나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탓에 수상자도, 대리자도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노벨위원회의 토르비에른 야글란 위원장은 시상식에서 연설을 통해 “류사오보 구금은 중국 정치체제의 취약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서 “류샤오보는 중국 인권투쟁의 상징으로서 그의 견해가 장기적으로 중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중국 관영매체들은 서방의 음모론까지 거론하며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맹렬히 비난했다.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번 평화상 수상의 배후에 ‘정치적인 동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법원에서 사법적 단죄를 받은 죄인에게 노벨 평화상을 주는 것은 일종의 내정 간섭으로 모종의 음모가 있다는 주장이다.
관영 신화통신은 시상식의 빈 의자에 상패가 놓인 데 대해 ‘정치적 희극’이라고 비판했다.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 타임스도 노벨상이 중국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면서 이는 서구의 음모라고 비난했다.

중국의 관영매체들은 또한 “100여 개 국가와 기구가 류샤오보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중국의 입장을 명확히 지지했으며 중국은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장위(姜瑜) 외교부 대변인의 발언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실제 시상식에도 노르웨이 주재 65개국 대사 가운데는 중국, 러시아, 이란, 카자흐스탄, 콜롬비아, 튀니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이라크, 베트남,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필리핀, 이집트, 수단, 쿠바, 모로코 등 17개국 대사가 불참했다. 이들 국가는 대부분 중국과 밀접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거나 서구의 인권 압력에 적대감을 보여 왔다고 로이터 통신이 분석했다.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 2010년 12월 12일자 1면

끊임없는 언론 자유의 물결과
중국 고유의 가치

중국 당국은 노벨 평화상의 대안 상까지 급조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중국의 공자평화상 수상자 선정위원회는 2010년 첫 수상자로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을 선정하고 노벨 평화상 시상식 직전인 12월 9일 시상식을 개최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중국 당국의 서슬 퍼런 통제에도 언론 자유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광둥(廣東)성의 유력 신문인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는 2010년 12월 12일자 1면에 빈 의자 3개가 나란히 놓여 있고 학 5마리를 한 사람이 막아선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아래에는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개막에 대한 기사가 배치됐다.

겉보기에 특별한 것 없어 보였지만 중국 인터넷에서는 이 사진이 2010년 12월 10일 빈 의자가 대신했던 류샤오보의 노벨 평화상 시상식 장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네티즌들은 사진 속의 빈 의자가 류샤오보를 상징하고, 학은 ‘축하’ 또는 ‘평화’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중국어에서 학(鶴)과 축하(祝賀)의 하, 평화(平和)의 화는 모두 ‘허’로 발음된다. 일부 네티즌들은 “사진 속에서 모자를 쓴 사람이 학들을 막고 있는 것은 독재자가 민주 인사들의 노벨 평화상 시상식 참석을 막은 것을 상징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개막식에 화려한 사진이 많은데 별반 특별하지도 않은 사진을 실은 것은 용감하고 창의적으로 류샤오보의 수상을 축하한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논란이 확산되자 남방도시보 측은 이 사진이 장애인아시안게임 개막식 리허설을 찍은 것일 뿐이며, 외부에서 지나친 연상을 하지 말라고 해명했다.

이 신문은 2010년 3월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즉 양회(兩會)를 앞두고 경제관찰보(經濟觀察報) 등 12개 주요 언론과 함께 공동사설을 통해 ‘현대판 신분제’로 불리는 호적제도(戶口制度) 개혁을 촉구한 바 있다.

시대주보, 수감중인 인권운동가를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

이와 관련해 중국 당국은 시상식 직후 ‘빈 의자’를 인터넷 검색 금지어로 정한 데 이어 남방도시보의 사진과 관련 글도 모두 삭제했다.

중국 당국의 반체제 인사 감시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 주간지가 수감 중인 인권운동가를 ‘중국의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뽑기도 했다. 광둥성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인 시대주보(時代周報)는 ‘멜라민 분유’ 피해자 부모들의 대표로 활동해온 사회운동가 자오롄하이(趙連海•38)를 ‘영향력 있는 시대의 100인’에 포함시켰다. 매주 3만 부가량 출판되는 시대주보는 출판 후 문제의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 중국 언론 당국에 의해 회수되는 소동이 빚어졌다고 홍콩의 명보(明報)가 최근 보도했다.

자오롄하이는 2008년 어린이 6명이 희생되고 30만 명이 피해를 입은 멜라민 분유 파동 때 피해자 가족 단체를 결성해 중국 당국에 피해보상 등을 요구해 온 ‘멜라민 분유 피해자의 영웅’으로 불린다. 그는 2009년 말 ‘사회불안 조장 혐의’로 체포돼 11월 10일 베이징 다싱구 인민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노벨 평화상 파문 이후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고강도 통제에도 중국 대륙에서 언론 자유와 민주화 바람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베이징 외교가의 한 인사는 “물론 서구의 인권, 민주주의 가치와 이념에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며 “이제 중국이 서구의 가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를 대체할 만한, 그리고 세계를 설득시킬 만한 고유의 ‘보편적’ 가치를 세계에 내놓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단지 완력만으로는 중국 대륙에 흐르는 언론 자유와 민주화 물결을 막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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