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시 ‘시정취재 언론사 출입 및 운영기준’ 시행 한 달

최병길 연합뉴스 경남취재본부 차장

지난해 12월 27일 경남 양산시 프레스센터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브리핑이 열렸다. 양산시가 새해부터 지역 신문사 난립으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시정취재 언론사 출입 및 운영 기준’을 만들어 시행하겠다는 발표였다.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사실상 전무했던 핵폭탄급 발표가 아닐 수 없었다.


발행부수 1만 부 이상 언론사만 출입 인정

시가 마련한 운영 기준에 따르면 우선 신생 언론사의 시청 출입을 엄격한 잣대로 허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한국ABC협회(신문발행부수 공식 조사기관, 이하 ABC협회)가 공개한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1만 부 이상 발행 언론사에 한해 출입을 인정하기로 했다. 둘째, 기존 상주 일간지라 하더라도 ABC협회에 발행 부수를 공개하지 않거나 1만 부 이하 언론사에 대해서는 고시・공고료 등 광고 예산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셋째, 사실 왜곡 또는 허위・과장 보도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 결정될 때에도 광고 예산 지원을 중지하기로 했다. 넷째, 상주 언론사 기자가 시 이미지 또는 시의 청렴실천에 배치되는 행위(외부에서 기자 빙자 금품수수 행위로 적발되거나 시청 실・과 방문 금품 요구행위 또는 무리한 광고 요구행위 등)를 한 때에는 시청 출입을 금지하고 광고 등 예산 지원을 중지하기로 했다. 프레스센터가 술렁거렸다. 시의 운영 기준을 적용하면 이미 시청 출입기자로 들락거리거나 프레스센터에 자리를 잡고 상주하고 있던 일간지 중 5개 사가 기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기자들끼리도 희비가 엇갈렸다.

시청에 수년간 출입하며 고참급 기자 행세를 하던 일부 기자들의 소속 회사는 시가 마련한 기준에 미달되면서 좌불안석이 됐다. 반면 프레스센터에 따로 자리를 잡지 않고 시청 안팎을 취재해 오던 K사 기자는 시의 운영 기준을 충족해 시가 마련해 준 자리에 앉게 됐다. 기준에 미달되는 대상 언론사 기자들의 강력한 반발과 저항이 예상됐지만 신기하게도 이날 브리핑은 큰 소란 없이 조용히 마무리됐다.

“터질 것이 터졌다”

양산시의 발표 소식은 곧바로 국내 언론사와 인터넷 등을 통해 전국에 퍼졌다. 지역 언론사는 시의 전격 발표에 놀라면서도 실제 시행 여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새해 1월 2일 시청 프레스센터에 나온 기자들은 시의 발표가 발표에 그치지 않았음을 실제 눈으로 확인했다.

시의 ‘시정취재 언론사 출입 및 운영 기준’에 미달하는 상주 언론사 기자들의 책상이 사라졌고 시의 출입기자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반면 시의 운영 기준에 적합한 언론사 기자들에게는 지정석이 마련되고 책상에는 소속사 이름이 박힌 명패가 붙었다.

나동연 양산 시장

양산시는 행정구역상 경남도에 속해 있지만 인근 부산시와 울산시의 생활권에 있어 3개 시・도 언론사 기자들이 함께 들락거리는 ‘트라이앵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양산을 부산과 울산 등을 합친 일명 ‘삼산(三山)’이라고도 부른다. 이에 따라 시에 등록된 출입기자만 25명이며 그 외 출입하는 언론사 기자 등을 포함하면 40여 명에 달한다.

시의 운영 기준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나동연 양산시장은 “민선 5기 원년을 가장 바르게 열 수 있는 것이 언론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이라고 판단하고 이번 운영 기준을 시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나 시장은 “직원들은 물론 시민들도 시청 출입기자가 너무 많아 혼란스럽다는 여론이 많았다. 금품수수로 구속된 시청 주재기자에 대한 비난 여론과 시 직원들의 비난 목소리에도 주목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양산시청에 출입하던 경남 지역 모 신생 언론사 A기자는 최근 지역 기업체를 상대로 시 출입기자로 행세하며 공갈, 협박을 통한 금품수수 등을 일삼다 사법기관에 적발돼 구속되는 등 일부 기자들의 자질 문제가 계속 지적돼 왔다.

특히 행정업무 일선에서 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시청 공무원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양산시 공무원노조 홈페이지에는 지난해부터 ‘나이 먹은 기자들은 안 나가나?’ ‘시장님(기자들) 정리 좀 하십시오’ ‘노조원 새해 희망은 사이비 기자 퇴출’ ‘부적격 기자 퇴출 강력히 투쟁해 주십시오’ ‘간 큰 기자’ 등 문제가 된 함량 미달 언론사와 기자들을 겨냥한 비난 글이 빗발쳤다.

나동연 시장은 시 차원에서 운영 기준을 마련, 새해부터 즉각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운영 기준 마련에 들어간 시 담당부서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방자치단체 중 이 같은 기준안을 마련한 곳이 전무한 데다 객관적인 기준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지던 중 눈과 귀를 번쩍 뜨게 발표된 것이 바로 ABC협회의 발행 부수 공개였다. 시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이러한 기준을 만드는 데 참고할 만한 사례가 한 곳도 없어 고심했는데 그나마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진 ABC협회의 발표가 나와 기준안 마련에 큰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시가 시행에 들어간 운영 기준에 대해 대다수의 언론사들은 ‘공감’에 무게를 뒀지만 기준에 미달되는 일부 언론사 기자들은 시의 다소 자의적인 운영 기준에 적잖은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시 공무원노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시가 마련한 발행부수 1만 부 이상 기준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듯 ‘9,999부 기자’라는 작성자가 “언론은 강자만이 살아남아야 하는 경제적 기업이 아니다. 올해 ABC협회에서 유가부수가 공개되면 지방 신문이 과연 몇 개나 살아남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1만부 이하 신문기자를 사이비라고 모는 획일적 기준에 문제가 있으며 시가 발행 부수 강자에게만 손을 들어 주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시의 운영 기준에 따라 프레스센터 자리를 내준 울산 지역 B일간지는 “시의 기준을 존중하고 언론 정화를 위해 노력하는 데 공감하며 이 시책이 건전한 방향으로 정착되길 희망한다”는 공문을 시에 보내기도 했다.

양산시의 ‘시정취재 언론사 출입 및 운영 기준’ 마련 및 시행 소식은 언론사를 통해 요란스럽게 보도되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일파만파였다. 특히 ‘동병상련’을 겪고 있던 지자체를 중심으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경남 지역 시장・군수들의 모임인 경남시장군수협의회에서는 이번 양산시의 시행과 관련해 많은 지자체에서 관심을 갖자 협의회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기로 하고 정기회의 때 공동안건으로 상정하기로 했다. 협의회는 시・군별로 기준안을 마련해 협의회 차원에서 공동 기준으로 채택, 시행하거나 시・군 실정에 부합하는 기준안을 추가하는 방안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시행할 태세다.

“우리도 만들고 시행하겠다”

나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반응이 컸다. 전국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 40여 곳이 넘는 곳에서 문의가 잇따랐다. 중소기업 대표와 각계각층 인사, 시민들의 격려 전화가 많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했다. 그는 “우리들만의 문제로 인식하고 시작했는데 전국적인 문제임을 알게 됐다”며 “전국 지자체는 물론 언론사 스스로의 변화도 기대한다”고 언론계의 자정 필요성도 제기 했다.

경남도내 한 지자체 총무과장도 “솔직히 그동안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를 고심했는데, 이번 양산시의 시행에 대부분의 지자체가 공감하고 연대하는 분위기”라며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정책을 수립하는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지방신문협회, 언론중재위원회 등 언론 관련 단체에서도 양산시의 이 같은 운영 기준 마련에 큰 관심을 갖고 많은 문의 전화를 했다.

김진홍 공보계장은 “감히 언론을 대상으로 운영 기준을 만들어 발표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데 공감한 것 같았다”며 “우리도 이렇게까지 호응이 높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는데 정말 사회 전반적인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운영 기준 마련 실무를 맡았던 김 계장은 “당장 1월 초 고시・공고 연간 계약과 신년 광고로 4,300여만 원의 예산을 절감했으며 시청 분위기도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며 “많은 지자체와 언론사가 스스로 잘못된 점을 개선하는 계기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일방적인 시정 운영이나 언론자유 침해로 비칠 소지도 없지 않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나 시장은 “요즈음 개인이나 조직이나 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는 이제 시정에 대해 견제하고 감시하는 곳이 다양하게 있다. 시청에 출입하는 언론사가 적어진다고 시정이 변하거나 일방적으로 갈 수 없다”며 “우리의 기준은 언론과 대립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시의 ‘시정취재 언론사 출입 및 운영 기준’ 시행이 언론의 잘못된 취재 관행 변화와 취재원과의 올바르고 건강한 관계를 여는 큰 변화를 가져오기를 기대한다”는 한 시청 공무원의 말은 이번 조치에 대한 양산시 공무원들의 견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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