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
(http://blog.hankyung.com/kim215
)


김광현 한국경제신문 IT전문기자

블로깅을 시작한 지 서너 달 지나면서 오만과 욕심은 버렸다. 블로깅은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수단이라는 걸 절감했다.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잘못 알고 있는 걸 바로잡고 독자가 원하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엉터리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독하게 공부했다.

누구나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편집국을 떠나기 마련이다. 광파리도 그랬다. IT부장 만 4년이 된 2008년 2월 전략기획부장 발령을 받고 편집국을 떠났다. 전략기획부가 신설되면서 그 자리를 맡았는데 착잡했다. 20년 이상 기사 쓰는 일만 해온 놈이 신문사 전략 짜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회사에서 내 소임은 끝난 게 아닌가? 조용히 떠나는 게 깔끔하지 않을까?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만 하자

며칠 고민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그동안 돌봐준 회사와 선후배를 위해 봉사할 일이 있으면 끝내고 떠나자. 기획부장 자리에 앉고 보니 고민이 몰려 왔다. 인터넷 매체가 수없이 생겨나고 블로그까지 급증하면서 신문의 매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블로그가 뭐고, 신문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걸 알려면 직접 해 봐야 하지 않겠나.

블로그를 개설하면 어떤 글을 쓸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쓸까? 아니다. 이렇게 해서 누가 읽겠는가. 광파리의 시시껄렁한 신변잡기에 누가 감명을 받겠는가. 정보기술(IT) 얘기를 쓸까?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 아닌가. 그렇다고 삼성전자 SK텔레콤 등에 관한 글을 쓴다면 후배 출입기자들과 부딪치지 않겠나? 그렇다면 해외 이야기만 쓰자.

해외 IT 이야기라면 자신이 있었다. 국제부 기자로 3년 반이나 일한 적도 있고 IT부장 시절에는 매일 두세 시간씩 꾸준히 해외 IT 뉴스를 읽었다.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IT 블로거로는 어떤 선수들이 있나 찾아봤다. 떡이떡이, 멀티라이터, 늑돌이…. 무림의 고수들이 즐비했다. 글을 읽어 보니 꽤 어려웠다. 전문용어를 보니 겁이 났다. 일찌감치 포기할까? 이런 생각도 했다.

뒤집어 생각해 봤다. 어려운 내용는 포기하자.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그 대신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만 하자. 기자 생활 20년 이상 한 놈이 내세울 것이라곤 이것밖에 없지 않겠나. 할아버지 이야기처럼 구수한 이야기라면 IT라도 통하지 않겠나? 그래, 이야기를 하자. 핵심은 ‘이야기’다. 이런 생각에서 블로그 타이틀을 ‘글로벌 IT 이야기’라고 정했다.

마지막으로 닉네임.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닉네임이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려웠다. 고상하고, IT 냄새도 나고, 한 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아야 하고…. 고민고민 하다가 ‘그런 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차라리 ‘광팔이’가 낫다. 촌스럽긴 해도 기억하긴 쉽지 않겠나. 화투판에서 광이나 파는 ‘광팔이’가 싫으면 ‘광파리’로 바꿔도 된다.

필자 블로그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http://blog.hankyung.com/kim215)’ 초기 화면

계급장 떼고 붙어 보고 싶었다

닉네임을 ‘광파리’로 정한 데는 사연이 있다. 기자 초년병 시절 토요일에는 일찌감치 기사를 마감하고 여관으로 몰려가 고스톱을 쳤다. 선배들 중엔 고수가 많았다. 한 주먹 쥐었다고 생각해 들어갔다간 피박에 스리고 맞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광 팔고 죽었다. 그러자 후배가 투덜거렸다. “형은 광팔이야? 왜 만날 죽어?” 그 후 후배는 걸핏하면 “광팔이 선배”라고 놀렸다.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계급장 떼고 붙어 보고 싶었다. 기자 생활을 IT 업계 출입으로 시작했고, 정보통신부 출입을 했으며, IT부장을 4년 했기에 어느 누구랑 붙어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블로깅을 하면 사람들이 놀랄 거라고 생각했다. “광파리가 누구야? 누군데 이렇게 잘 써?” 이런 얘기 들을 줄 알았다. 그래서 신분을 숨겼고 얼굴 사진 대신 팔광 화투짝을 광파리 이미지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것이 오만이고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블로깅을 시작하자마자 태클이 들어왔다. 내가 알기로는 이것인데 광파리 이 자식 아무것도 모르고 쓴 것 아니야? 이런 식의 댓글은 점잖은 편에 속했다. 삼성 햅틱 폰을 옹호하는 듯한 글을 썼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당신 삼성 직원이지?’ 이 댓글을 보는 순간 맥이 풀렸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블로깅을 시작한 지 석 달쯤 됐을 무렵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애플이 아이폰 신제품을 내놓았을 때 다들 신제품에 관해 썼다. 광파리는 ‘애플 이번엔 장외홈런: 앱스토어 오픈’이란 글을 썼다. 앱스토어야말로 패러다임을 바꿀 혁명적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글은 당일 수만 클릭을 기록했고 한경닷컴 서버가 버벅거리기까지 했다. 그동안의 수모가 말끔히 잊혀지는 것 같았다.

댓글과 답글로 독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많이 놀랐다. 그동안 독자를 우습게 봤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휴대폰 기사를 쓰면 휴대폰 업계 사람들이 읽고, 인터넷 기사를 쓰면 인터넷 업계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댓글 수준이 장난이 아니었다. 특정 분야에 관한 한 광파리보다 한참 위였다. 중요하다고 생각한 글이 외면당하고, 아무렇게나 쓴 글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블로깅을 시작한 지 서너 달 지나면서 오만과 욕심은 버렸다. 블로깅은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수단이라는 걸 절감했다.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잘못 알고 있는 걸 바로잡고 독자가 원하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엉터리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독하게 공부했다. 수면 시간을 여섯 시간에서 다섯 시간으로, 다시 네 시간, 세 시간으로 줄였다. 딱 1년만 미쳐 보기로 했다.

시간 낭비라는 느낌을 주는 글은 죄

블로깅을 하면서 느낀 소감은 이랬다. 그동안 신문을 잘못 만들었구나. 기자 생활 잘못 했구나. 후회스러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독자가 무얼 원하는지 알아보지도 않은 채, 내가 자의적으로 경중을 판단해 신문을 만들었다는 걸 절감했다. 왜 독자를 알려고 좀 더 발버둥치지 않았을까?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해 보고 싶었다.

블로깅을 시작하면서부터 ‘글을 읽고 나서 시간 낭비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죄’라고 생각했다. 그런 글을 쓸 바엔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댓글과 답글로 독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때때로 만나 얘기하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일부 블로거들이 트래픽을 늘리고, 추천을 많이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식으로 하진 않나 반성도 했다.
겸손한 태도로 독자에게 다가가면서 블로깅이 훨씬 쉬워졌다. 블로그 글은 내가 70%를 쓰고 독자들이 나머지 30%를 채운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악플이 현저히 줄었다. ‘엉터리’란 말 듣지 않으려고 쉬지 않고 내공을 쌓았다. 퇴근 후에는 새벽 1시, 2시까지 인터넷 서핑을 하며 다음날 무얼 쓸지 고민했고, 아침 5시 30분에 회사에 출근해 업무시간 전에 블로깅을 마쳤다.

사실 이렇게까지 독하게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기획부장이 기획은 않고 블로깅만 한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업무시간에는 신문의 미래를 고민하는 일만 했다. 블로깅과 관련해서는 답글 다는 것 말고는 일절 하지 않았다. 1년만 미치자고 했는데, 1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미친 듯이 했다. 미치는 게 버릇이 돼 버렸다. 좋게 말하면 신바람이 났다고 할 수도 있다.

독자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내공을 쌓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블로그가 전부는 아니었다. 블로그는 시작에 불과했다. 2009년 5월에는 트위터를 시작했다. 해외 IT 전문가 200여 명을 팔로잉했고 국내 IT 업계 경영자와 개발자들을 팔로잉했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기자 생활 하면서 듣지 못했던 얘기도 많이 들었다.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독자와 소통 확대

2009년에는 애플 아이폰 도입 문제를 놓고 논란이 뜨거웠다. 초기에는 대다수 신문이 애플의 고압적인 자세를 꼬집는 기사를 실었다. 이동통신사나 휴대폰 업체 홍보 담당자들이 했을 법한 말을 그대로 기사에 써 놓은 걸 보면서 답답했다. 왜 저런 식으로 기사를 쓸까? 나도 저런 식으로 신문을 만들지 않았을까? 아이폰 도입 문제를 놓고 후배 기자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멘토링을 해준 전문가 몇 분을 잊을 수 없다. 특히 ‘6502’란 닉네임을 쓴 분에 대해서는 늘 스승처럼 생각했다. 40대 중반 IT 전문가, 독신남. 이 분에 대해 아는 것은 이게 전부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IP 세탁까지 하고,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분이다. 이분은 광파리가 방향을 잘못 잡았을 땐 따끔하게 야단을 쳤고 궁지에 몰렸을 땐 도와주기도 했다.
블로깅 하면서 독자와 가까워지기까지 몇 단계를 거쳤던 것 같다. 독자와 따로 놀다가,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다가 점점 신뢰하게 됐다.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 보니 전문가들이 광파리를 빙 둘러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문가가 아닌 광파리한테 뭘 배울 게 있다고 전문가들이 나를 둘러싸나? 책임감을 느꼈다. 엉터리 글을 쓰지 않으려면 계속 내공을 쌓는 수밖에 없었다.

2010년 봄에는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IT 블로거로서 페이스북이 뭔지 궁금해 손을 댔다. 몇 차례 그만두기를 반복하다가 간신히 맛을 들이기 시작했고 가을 무렵 ‘페이지’라는 걸 따로 만들었다. 이곳에 간단한 생각을 메모해 올리곤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블로그보다 댓글이 많이 붙고 반응이 신속했다. ‘좋아요’를 눌러 퍼뜨려 주기도 했다.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더 활발해졌다.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자로 만족

지금은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오가며 블로깅을 한다. 블로그 시스템을 개선해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할 필요는 있지만 어느 플랫폼에 글을 올리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사실 ‘파워블로거’란 말은 부담스럽다. IT가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자’라고 평가해 준다면 고마울 따름이다.

IT 블로거로서 가장 힘든 일은 ‘라이브 블로그’이다. 애플, 구글 등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발표하는 기자설명회를 하는 날엔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다. 샌프란시스코 시간으로 아침 10시면 한국에서는 새벽 2시나 3시다. 이때부터 한두 시간 동안 설명회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끝나자마자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려야 한다. 블로깅이 끝나면 주섬주섬 옷 챙겨 입고 바로 출근한다.

라이브 블로그는 ‘인터넷 생중계’다. 그러나 광파리가 생중계하는 것은 아니다. 생중계 내용을 정리해서 올릴 뿐이다. 라이브 블로그를 지켜볼 때는 화장실 다녀올 틈도 없다. 한두 시간 꼼짝 않고 생중계 화면 지켜보다가 텍스트 중계 내용 읽다가를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을 두 시간쯤 보고 나면 녹초가 된다. 발표 내용을 정리하는 일도 간단치 않다.

광파리는 1년 전 ‘IT전문기자’로 편집국에 복귀했다. 전문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기자’라고 하는 게 옳다. 앞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국내와 해외를 넘나들고,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소식을 전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간혹 후배들이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을 다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중요하다”고만 말한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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