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3월호 문화비평


       ‘꽃남’에서
채우는 세 가지 욕망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



김명혜 동의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궁’ ‘식객’ ‘쩐의 전쟁’ ‘풀하우스’ ‘바람의 나라’ ‘타짜’ 등 그동안 방영된 만화원작 드라마들을 살펴볼 때 드라마 시청의 즐거움은 현실적이거나 사실적 재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현 가망성이 거의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망에 기댄 만화적 상상력과 화려한 영상미학에 있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꽃보다 남자’(이하 ‘꽃남’)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일찍이 일본과 대만에서 제작 방영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던 터라 한국판에 대한 관심도 매우 뜨거웠었다. 그런 관심 때문인지 KBS 2TV의 ‘꽃남’은 방영 초기부터 높은 시청률(첫 회 시청률 14. 3% TNS 미디어코리아 자료)을 자랑하더니 2월 들어서는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던 드라마 ‘에덴의 동쪽’을 능가하게 되었다. 높은 시청률에 힘입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인기 또한 급상승하고 있으며 이들과 관계된 모든 것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얼핏 보면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는 이 드라마가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꽃남’의 시청층을 살펴보면 남성보다는 여성들에게서, 장년층보다는 10대에서 30대 사이의 세대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꽃남’ 현상에 대한 답은 이 드라마 주 시청층의 세대적, 젠더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고픈 10대의 욕망
전지전능 고등학생 ‘F4’
‘꽃남’의 성공요인 중 한 가지를 지적해 보자면 우선 그동안 만화 원작 드라마 장르에 대한 관습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간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인기 있었던 드라마로는 ‘궁’ ‘식객’ ‘쩐의 전쟁’ ‘풀하우스’ ‘바람의 나라’ ‘타짜’ 등을 들수 있다. 이 드라마들의 성공으로 시청자들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의 상상적 기획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으며 또 만화원작 드라마의 비현실성을 포용하는 시청 자세를 형성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꽃남’의 비현실적 인물과 배경 설정도 만화 원작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을 때는 한결 수용하기 쉬워진다. 시청자들은 ‘꽃남’의 비현실성에 대한 비난보다는 만화적인 판타지로 용인하고 있다. 그동안 방영된 만화원작 드라마들을 살펴볼 때 이 드라마들의 시청의 즐거움은 현실적이거나 사실적인 재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현 가망성이 거의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망에 기댄 만화적 상상력과 화려한 영상미학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꽃남’의 시청 포인트 또한 현실성 검증보다는 만화적 상상력을 얼마만큼 충실히 재현하는가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화적 상상력을 강조하는 ‘꽃남’이 10대 시청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어린 세대일수록 만화에 쉽게 감응하기 때문이다. 또한 10대들은 자신들이 현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의 실상에 매우 어둡다. 그들의 경험은 집, 학교 그리고 학원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10대들은 또한 자신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현실에 주눅 든 어른들을 무능력하게 생각하고 어른들의 관심을 간섭과 통제로 여기며 이를 불만스러워한다. ‘꽃남’은 이런 10대의 정서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10대들이 ‘꽃남’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멋진 외모도 있겠지만 고등학생인 그들이 갖춘 전지전능함이 그 이유라 볼 수 있다.
극중에서 F4라고 불리는 모든 것을 갖춘 네 명의 남자 주인공들이 부모 세대의 어떤 제재도 받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을 맘껏 부리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10대 청소년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인일 것이다. 주인공 구준표는 아버지뻘에 가까운 집사를 종 부리듯 하고 집안의 여자 고용인들을 말 한마디로 해고시키며 교장선생님에게 학생들을 자신의 마음대로 퇴학시키라고 압력을 넣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자신이 마귀할멈이라 부르는 엄마를 제외하고는 어떤 어른도 구준표를 통제할 수 없다. 그의 부모는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사업으로 대개는 부재 중이며 하나뿐인 누나는 그를 바르게 끌어주려고 하지만 이해심이 많은 편이다. 게다가 그는 잘생긴 데다 엄청난 부의 소유자이며 만능 스포츠맨이며 주먹 또한 세다.

구준표의 다른 매력은 이러한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인과응보 사필귀정’ 같은 사자성어를 ‘인간응보 사팔귀정’으로 말하는 애교스러운 무식함을 자주 보여 경직될 수 있는 상황을 코믹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런 가벼운 말 비틀기는 10대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 요소가 된다.
또한 구준표의 친구 윤지후는 세계적인 모델인 연상녀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현실세계에서 10대 소년들이 지닌 자신들에 대한 환상-즉 성숙한 여인의 상대가 될 만큼 자신이 남성으로서 완성되었다는-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는 권위적인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는 F4의 지배 아래 놓여 있어 F4의 레드카드를 받는 학생들은 어떤 처벌도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F4가 공부나 입시의 스트레스를 조금도 받지 않으면서 고등학생 신분으로 고가의 사복을 입고 다니며 멋진 스포츠카를 운전하거나 오토바이로 질주하고 기분전환으로 사격을 하거나 골프를 치는 모습 등은 입시에 찌들린 현실의 10대 청소년들의 자유롭고자 하는 욕망을 대리만족시켜 주는 것이다. F4는 10대 청소년들이 꿈꾸는 상상 속의 자신을 상징한다. 멋지고 자유롭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20대 여성의 포기못한 욕망
‘당당한 신데렐라’
‘꽃남’은 전반적으로 10대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특히 소녀들에게 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등장인물들과 서사구조를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꽃남’에는 화려한 외모의 귀공자들이 네 명이나 등장한다. 각각 가진 조건과 재능은 특출 난 외모와 결합하여 소녀들의 동경을 더욱 배가시킨다. 이기적인 외모에 세계적인 재벌의 후계자, 불의의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은 우수에 잠긴 전직 대통령의 손자, 조각 같은 외모의 천재적인 10대 도예가, 밉지 않은 카사노바의 캐릭터들은 소녀 팬들에게 어떤 꽃남을 선택해야 할지 즐거운 고민을 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 꽃남들이 관심을 두는 대상은 외모도 평범하고 재능도 없는 ‘대한민국의 대표 서민’이니 이 땅의 대다수 평범 소녀들은 자신들을 드라마 속의 여주인공 금잔디와 쉽게 동일시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금잔디는 보잘것없는 조건이지만 당당하기에 금잔디와 동일시하는 10대 소녀들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 주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전의 많은 드라마들이 금잔디와 같은 캔디렐라(들장미 소녀캔디+신데렐라) 캐릭터를 양산해 내었고 ‘꽃남’ 역시 그런 전철을 밟고 있다.
하지만 ‘꽃남’은 백마 탄 왕자와 캔디렐라의 모든 역경을 극복하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한 서사 전략임을 증명한다. 현실에서 많은 여성들이 캔디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신데렐라가 되기는 매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신데렐라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그만큼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에 홀로 서기가 힘듦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대의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노력하는 캔디와 같은 삶을 살더라도 마음 한편으로는 백마 탄 왕자를 갈구하는 신데렐라의 은밀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10대뿐만 아니라 20, 30대의 여성 시청자들도 자신들의 은밀한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캔디렐라가 등장하는 드라마에 열렬히 환호하는 것이다.

소비하고픈 현대인의 욕망
‘비현실적인 호화 생활’

‘꽃남’의 또 다른 성공요인은 ‘꽃남’이 보여 주고 있는 초호화 영상이다. 우선 젊음과 외모적 출중함으로 무장한 등장인물들은 시청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그리고 이들이 보여 주는 의상이나 궁궐 같은 저택, 호화롭고 이국적인 휴양지의 장소들 그리고 오토바이, 자동차, 말, 비행기, 호화유람선과 같은 고가의 소품들은 현실의 구차스러움을 잊게 해주는 요소들이다. 주인공들은 주말 동안 머리를 식히러 일반인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뉴칼레도니아로 떠나며, 헬리콥터를 타고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이라며 하트 모양의 섬을 보여 준다. 특히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와 같은 비현실적으로 화려한 배경은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불처럼 현실의 누추함을 잊게 해주고 마음의 위안이 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더라도 말이다.
구준표가 스위스로 수학여행을 가다 말고 가난한 여자친구가 동참하지 못한 것을 알고 크루즈로 여행일정을 바꾸는 일 따위는 현실 속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만약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면 하고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스위스로 수학여행을 떠날 수 있는 초상류층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대표 서민 금잔디와 동일시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려한 영상으로 포장된 가난한 소녀와 재벌2세의 사랑 이야기는 시청층을 20, 30대로까지 확장시키는 요인이 된다. 20, 30대 여성 시청자들 또한 ‘꽃남’의 열혈 시청층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이루지 못한 소녀 시절의 동화적 욕망과 보다 현실적인 소비의 욕망을 드라마를 통해 충족시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꽃남’이 비록 만화를 원작으로 하여 현실성이 떨어지는 드라마라고는 하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과도한 이지메, 10대들의 난폭한 운전 모습, 폭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 청부 납치, 고교생의 호텔 출입과 빈번한 외박, 돈 앞에서 무한히 비굴해지는 어른들, 학교가 공부하는 장소가 아닌 친교나 음모의 공간으로만 등장하는 것, 서민에 대한 노골적인 희화화 등은 시청자들에게 개운하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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