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신문과방송> 2009년 3월호 특별기획 - 범죄 피의자 얼굴 공개

<찬성>
무죄 추정 원칙은
사진 공개와 무관

문재완 한국외국어대 법대 교수

군포 여대생 살인 피의자 강호순 씨의 얼굴 공개를 놓고 말이 많다. 대부분의 국민은 알 권리를 위해 그의 얼굴이 공개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법률신문이 헌법학자 3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한 결과, 흉악범 얼굴 공개를 반대하는 견해(53. 3%)가 찬성하는 견해(47. 6%)보다 조금 많게 나왔다.
 흉악범이라도 인권은 있으며, 그의 인권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하나도 그릇된 것이 없다. 하지만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할 경우 어떠한 인권이 문제 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강호순 씨의 얼굴 공개로 발생하는 인권침해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번 사안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인권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초상권이다. 강호순 씨가 연쇄살인의 피의자이기 때문에 고문을 하여도 좋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필요 없이 바로 처벌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헌법상신체의 자유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보호된다.
 얼굴 공개 후 그의 가족이 겪게 되는 고통을 이유로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3조 제3항에 반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이 겪게 되는 고통은 사실상의 것으로, 법률상 불이익한 처우가 아니다. 또 그의 가족이 겪게 되는 불이익은 강호순 씨가 저지른 행위로 인하여 부수적으로 발생한 것이지, 그의 얼굴 공개가 직접 야기한 것이 아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얼굴 공개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만 명시되어 있지만, 형사절차상 그보다 유죄의 입증 정도가 낮은 상태에 있는 피의자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죄 확정된 것처럼
보도하는 게 더 문제
강호순 씨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과 무죄추정의 원칙은 어떻게 연결될까? 혹자는 얼굴 공개가 유죄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또는 유죄라는 심증을 강화하므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헌법재판소가 설명하듯이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원칙적으로 죄가 없는 자로 다루어져야 하고, 그의 불이익은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기소되었다는 이유로 그를 유죄 확정판결을 받을 자와 동일하게 대우하면 이 원칙에 반하는 것이다.
 헌재 판례를 보면 형사사건으로 공소제기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변호사에 대하여 업무정지 명령을 내리는 것, 공소제기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교원 혹은 공무원에 대하여 무조건 직위해제 처분을 하는 것, 단지 고발만 이루어진 수사의 초기 단계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법 위반 사실을 받은 일을 공표하도록 강제하는 것 등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사안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절차 내에서 적용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헌법재판소는 ‘기타 일반 법 생활 영역에서의 기본권 제한과 같은 경우에도 적용된다’고 본다. 따라서 아직 혐의를 받고 있는 데 불과한 피의자나, 검찰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기소된 피고인을 마치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보도하면 이 원칙에 반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연쇄살인범 강호순’이라는 표현이다. 그는 아직 형이 확정된 단계가 아니므로, ‘연쇄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강호순씨’가 제대로 된 표현이다. 그가 저지른 것으로 보도된 모든 범죄의 내용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그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느냐 마느냐는 이 논의와 상관없다. 얼굴 사진을 공개하더라도 ‘연쇄살인혐의를 받고 있는 강호순 씨의 최근 사진’이라고 설명을 붙이면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반대로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더라도 ‘연쇄살인범 강호순’처럼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였으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신문조차 “기존 연쇄살인범들은 사회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분노형 연쇄살인범이었던 데 반해 강호순은 개인적인 욕구를 위해 치밀하게 살인을 하고 은폐하는 이른바 ‘쾌락적 연쇄살인범’의 전형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런 보도야말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만약 피의자의 얼굴 공개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면, 정치인, 공무원, 대기업 회장 등이 검찰에 소환될 때 사진을 찍어 보도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혹자는 이들은 공인이기 때문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공인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공인은 기소되기만 하면 유죄의 판결이 확정된 것처럼 취급할 수 있게 된다. 피고인 또는 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국회의원 자격을 상실시켜도 되고, 공무원 직위를 해제해도 되고, 법 위반 사실을 공표하도록 명령해도 된다. 이 결론이 타당한가?
 언론이 피의자나 피고인을 유죄로 확정된 것처럼 함부로 보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언제나 옳다. 그러나 그것은 범죄사건의 보도 때 수사기관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쓰지 말라는 뜻이지, 얼굴 사진을 게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언론사의 사진 공개는
초상권 침해 아니다
강호순 씨의 얼굴 공개는 그의 동의를 받지 않고 그의 얼굴을 공개하면서 나타나는 인권 침해 여부, 즉 초상권 침해 여부만 문제 될 뿐이다. 초상권은 크게 보면 프라이버시(privacy)권의 일부이고, 더 크게 보면 인격권의 일부다. 프라이버시권은 우리나라에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는 사생활 비밀의 불가침, 사생활 자유의 불가침,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그 내용으로 한다. 초상권은 개인의 얼굴정보에 관한 권리이므로 개인정보, 즉 개인 식별정보의 자기결정권에 속하게 된다.
 초상권과 같은 권리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장되는 것으로 상대적인 것이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제한받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제한받을 수도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자기 정보라도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리하면, 내 얼굴은 인격권의 보호대상이지만 그 보호의 정도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해진다. 집안에 홀로 있을 때 내 얼굴을 누군가 몰래 훔쳐보는 경우와 내가 길거리나 공원을 걸을 때 내 얼굴을 누군가 쳐다보는 경우는 다른 것이다. 전자는 거의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하지만, 후자는 길을 걷는 사람이 받아들여야 할 범위에 있는 것이다. 후자는 다시 내 얼굴을 그냥 쳐다보는 경우와 카메라처럼 저장이 가능한 매체를 이용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경우가, 특히 디지털 사진을 찍어 인터넷 등 다중에게 공개하는 경우가, 더 나아가 그런 사진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경우가인격권 침해의 가능성이 더 크다.
 원래 문제, 강호순 씨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는 것이 그의 인권, 즉 초상권을 침해하는 것인가의 문제를 살펴보자. 그가 얼굴을 마스크와 모자로 가리고 있는데, 이를 경찰이 강제로 벗긴다면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크다. 이번 논란과 상관없이, “경찰관은 경찰관서 안에서 피의자, 피해자 등 사건 관계인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제85조는 정당한 것이다.

‘누가 했나’ 대신
‘뭘 했나’를 알리자
하지만 강호순 씨의 얼굴 사진을 언론사가 공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언론사는 사회에 어떠한 범죄가 일어났는가를 보도함으로써 경각심을 일으키고, 사회적 대응의 필요성과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국민은 이를 통하여 알 권리를 실현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린다. 이번 사건의 경우 강호순씨의 얼굴은 그가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범죄의 중요한 구성요소다. 목격자를 통해 범죄를 재구성하고, 추가 범죄의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범죄 사건에서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다. 보통의 범죄 사건에서 국민의 알 권리는 범죄 자체에 있으며, 그것이 누구에 의해 저질러진 것인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강호순 씨의 얼굴 공개가 모든 형사 피의자의 신상공개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기회에 형사 피의자의 얼굴 공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얼굴 공개의 문제는 사안마다 보도의 가치와 피의자의 초상권 침해를 비교형량하는 방식으로 결정돼야 하는데, 언론사가 지나치게 움츠리거나 거꾸로 지나치게 인권침해적인 보도 형태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들이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좋다. 그 기준은 ①형사 피의자가 공인이거나 ②범죄 사건이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부정하거나 공동체의 존립과 안전을 뿌리째 흔들어 놓는 극히 중한 범죄일 경우에 한하여 ③피의자의 범행이 상당 정도 밝혀진 상태로 제한돼야 한다. 또 신원이 공개되더라도 그의 범죄 혐의를 보도할 때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일은 자제돼야 한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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