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김수혜 조선일보 사회정책부 기자


“한국인 평균수명 60세 돌파…남자 59세, 여자 66세.” 1967년 11월 5일 조선일보 사회면 톱이 국민들을 들뜨게 했다. 기사의 행간에 전쟁과 가난을 딛고 이제 우리도 잘사는 나라, 오래 사는 나라로 가고 있다는 흥분감이 넘친다. 위생시설과 의료시설이 날로 발달해 사상 처음으로 평균수명이 60세를 넘어섰다는 분석과 함께 ‘장차 한국도 선진국처럼 평균수명이 70세에 달할 수 있다’면서 해외 주요 국가의 평균수명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스웨덴 73.3세, 영국 70.9세, 프랑스 70.6세, 미국 70세, 서독 69.6세….

이후에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빠른 속도로 연장돼 2008년 ‘80세의 벽’을 넘었다. 불과 40여년 만에 인생이 20년 더 길어진 셈이다. 한국은 경제뿐 아니라 수명도 ‘고속 성장’했다. 문제는 속도에서 오는 성장통이다. 통계청은 5년마다 미래의 평균수명을 예측해 발표하는데,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매번 통계청 예측을 깨뜨리며 더 빨리 연장돼 왔다. 과연 우리는 ‘초고속 고령화’의 여파를 정확하고 명료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정부는 닥쳐오는 파도의 높이에 맞춰 방파제를 충분히 높이 쌓고 있을까.

취재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다. 조선일보가 취재팀을 꾸린 시점은 작년 11월. 고려대 통계학과 박유성 교수와 김성용 연구원으로부터 “의학 발달로 인해 수명 연장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였다.



어떻게 구상했나

당시 연구팀은 “고령화의 파도가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와 규모로 닥쳐올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전망을 내놓는 학자들은 많다. 고려대 연구팀이 달랐던 것은 “그 파도가 언제, 어느 정도 규모로 닥쳐올지 손에 잡히는 숫자로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 점이다.

연구팀의 무기는 새로운 방법론이었다. 우선 통계청의 월별 출생자•사망자•사망원인 집계(1997년 1월~2007년 12월)를 토대로 나이와 성별과 질병에 따라 사망 패턴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파악한다. 이어 앞으로도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미래의 평균수명이 어떻게 달라질지 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개인의 사망이 물방울이라 치자. 수많은 물방울이 일정한 방향으로 뭉쳐 움직여 가는 흐름이 바로 사망 패턴이다. 물길의 방향과 유속(流速)을 고려하면, 앞으로 시간이 흐른 뒤 강물이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을지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통계청이 미래의 평균수명을 예측해온 방식이다. 문제는 ‘가속도’다. 물이 계속 같은 속도로 흐르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탄력을 받아 점점 빠르게 흐르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 흘러갈 것이다. 바로 이 가속도를 포착하는 것이 고려대 연구팀이 말하는 새로운 방법론의 핵심이었다.

이 방법으로 계산할 때 장점이 하나 더 있다. 개인별로 성별과 나이에 따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동일 연령대 집단 안에서 몇 살 때 어떤 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은지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1971년생 남성은 절반이 94세 이상 살아남고, 70대 이후 이러저러한 질병을 조심해야 한다’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낼 수 있다.

머리 속에 전구 100만 개가 한꺼번에 켜지는 기분이었다. ‘고령화’라고 하면 남의 일 같은데 ‘당신이 90세, 95세, 100세를 넘길 확률은 ○○%’라고 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확실히 실감이 난다.

취재팀은 연구팀과 의기투합했다. 연구팀은 한 달 이상 밤잠을 줄여 가며 컴퓨터 앞에 달라붙어야 하는 고난도 프로젝트를 흔쾌하게 떠맡았다. 취재팀은 그 결과를 생생하게 대중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조선일보 신년기획 ‘100세 쇼크…축복인가 재앙인가’는 이렇게 시작됐다.

수명은 개인에게도, 국가에도 절박한 누구나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다. 따라서 원소스 멀티 유즈를 시험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다. 취재팀은 세 갈래로 진군하기로 했다. 첫째, 신문용 기획 시리즈. 둘째, 45~50분 분량의 시사 다큐멘터리. 셋째, 인터넷. 요컨대 신문•방송•인터넷을 넘나드는 크로스미디어(cross-media) 리포트였다. 펄펄 뛰는 통통한 물고기를 낚아 생선회, 생선조림, 생선매운탕을 한꺼번에 끓여 먹는 셈이다.

지난 1월 24일에 케이블 비즈니스앤 채널을 통해 방영된 시사 다큐멘터리 ‘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크로스미디어에 도전하다 

 
문제는 시간이다. 신년기획 보도 시점까지 불과 한 달 반이 남아 있었다. 취재팀은 성공의 핵심이 ‘일 배분’이라고 판단했다. 시간이 넉넉지 않은 만큼, 그리고 전통적인 신문 취재 인력 외에 방송 취재 인력과 인터넷 프로그램 제작팀이 붙어야 하는 만큼 정확하게 작업 공정을 설계해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고려대 연구팀이 수명 예측 작업에 돌입했다. 취재팀은 가만히 앉아 연구 결과를 기다리는 대신 현장 취재에 나섰다. 취재팀은 세 조(組)로 움직였다. 1조는 김철중 의학전문 기자와 이인열 팀장이 지휘했다. 삼성경제연구소(SERI)와 공동으로 전통적인 국내 현장 취재를 총괄했다. 2조는 김수혜•오윤희 기자와 오현석 핀란드 특파원으로, 해외 5개국 11개 도시를 취재했다. 3조는 사진과 동영상을 맡았다. 베테랑 사진기자 정경열 차장이 지휘하고 조인원 차장과 이재호•민봉기 기자가 국내외를 뛰었다. 1~3조 모두 신문 취재와 방송 취재를 병행했다. 펜 기자는 신문 취재와 방송 취재를 병행하고, 사진 기자는 스틸 사진과 동영상을 모두 찍었다.

취재팀은 또 디지틀조선일보와 힘을 합쳐서 고려대 연구팀이 제공한 자료를 인터넷에 맞게 가공하기로 했다. 지면 기사를 인터넷에 띄우는 수준을 넘어 독자들이 자신의 수명 예측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독자 참여형 프로그램’을 제작해 서비스하기로 했다. 독자들이 조선닷컴에 접속해 나이와 성별을 입력하면, 자신이 몇 살까지 살지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기로 했다. 몇 살 때 무슨 병을 특히 조심해야 하는지, 연령별 위험질병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기로 했다.

디지틀조선일보가 전체적인 틀을 짜고, 세부적인 실무는 외주 업체에 맡겼다. 취재팀이 움직이는 동안 인터넷을 맡은 디지틀조선일보도 비상이 걸려 동분서주했다.


다이나믹한 정보 제공을 위해 Flash파일로 제작된 인포그래픽 페이지.


탄탄한 설계도,

조직적인 인력 운용이 핵심

고려대 연구팀이 검산에 검산을 거듭하며 미래의 평균수명을 구하는 동안 취재팀과 디지틀조선일보, 외주업체는 각자의 필드에서 고려대 연구팀이 내놓는 결과를 담아낼 틀을 만들어 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직전 고려대 연구팀의 연구가 마무리됐다. 신문 기사의 경우 연구팀이 내놓는 결과로 1회 1면 스트레이트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목 아래’만 완성되고 ‘머리’는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초조했다. 디지틀조선일보와 외주 업체가 만들고 있는 인터넷 인터액티브 프로그램 역시 틀만 있고 알맹이가 없는 상태였다. 취재팀, 연구팀, 디지틀조선일보와 외주 업체 사이에 하루에도 몇 번씩 닦달과 읍소가 뒤섞인 문자와 전화가 오갔다.

그토록 애태우던 고려대 연구팀의 결과가 나오자 취재팀 전체가 불타는 호떡집이 됐다. 신문 기사를 마무리하고, 인터넷 인터액티브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방송 프로그램 편집을 마무리했다. 신문 기사, 신문 그래픽, 시사 다큐멘터리, 인터넷 인터액티브 프로그램 등이 엇박자 없이 착착 맞아떨어지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연말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없다.




신문・방송・인터넷 융합,

누군가는 반드시 성공한다

1월 3일자 조선일보 1면 톱 제목은 “1971년 돼지띠 남성(올해 만 40세), 절반이 94세 이상 산다”였다. 조선닷컴에는 독자들이 자신의 예상 수명과 위험 질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나는 몇 살까지 살까’, ‘몇 살 때 무슨 병을 조심해야 하나’ 프로그램이 무료로 서비스됐다. 이어 1월 24일에는 오후 7시 50분부터 케이블 비즈니스앤 채널을 통해 동명의 시사 다큐멘터리가 방송됐다.

독자가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곳곳에서 ‘100세 담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여러 국책 연구소에서 100세 시대 대책을 짜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취재팀이 결과에 100% 만족하는가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시사회를 보면서, 인터넷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제 100세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연설 중계방송을 보면서 취재팀은 설레고 겁나고 신나고 부끄러웠다.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독자와 더불어 그 결과를 즐겼다. 그러나 부족함도 많았다. 초고속 고령화 문제와 별도로 취재팀에게 이번 기획은 중요했다. 미디어의 발달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전에 넘어 보지 않은 지평선을 넘어가는 경험을 했다.

신문, 방송, 인터넷의 융합이 결코 멀지 않은 현실이 됐다. 우주가 한꺼번에 팽창하는 최초의 3초처럼 지금 우리는 미디어의 지평이 상상할 수 없는 먼 곳까지 뻗어 나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100세 쇼크를 진행하면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이 있었지만 동시에 전에 없던 스릴도 있었다. 한 가지 매체, 한 가지 버전만 제작하던 과거에는 경험도, 상상도 못했던 느낌이었다.

요컨대 융합이란 ‘모두가 성공하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 최고의 성과였다. 갈 길은 멀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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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eck de madeira 2012.02.10 0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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