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사토론 프로그램 진단

김동윤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토론은 한 사회의 민주성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이해집단 간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전제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토론은 정치경제적 민주화와 맞물려 사회의 각 층위에서 분출되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다원화된 의견이 공론의 장을 거침으로써 보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에 이르게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이유를 합리적으로 제시하고, 상대방의 의견이 어떤 점에서 오류가 있는지를 충분하게 따지는 과정이 생략돼 있으면 한 사회나 국가적 의제가 군중심리에 휩쓸려 버리거나 비합리적인 의견이 아무런 여과 없이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토론은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의 자의적이거나 임의적인 판단보다는 시민이나 공동 집단의 협의적 판단이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이끌어 낸다는 전제에 바탕을 둔다.

토론은 논리적인 주장과 반박을 주어진 상황에 맞도록 적용하며, 상대방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채널이다. 토론은 의견 대립이 이미 발생했고, 그러한 의견 대립이 쉽게 해소될 수 없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의견도 판단과 결정에 앞서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때 시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토의나 설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토의는 의견 대립이 분명치 않고, 문제의식이나 목적의식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시행한다. 토론에서도 설득이 중요하지만, 설득은 토론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것이다. 설득은 상대방과의 의견 대립이 표면적일 뿐 동일한 가치나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어지거나 간주돼 의견 대립이 해소될 수 있는 상황에서 행해진다. 종교적 신념이 설득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토론의 대상으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토론은 그래서 언제나 갈등 혹은 논쟁 지향적 이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토론은 그러한 차이와 다름을 배태한 이슈에 대한 의견을 어느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울 때, 그중에서 어떠한 의견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대화적 과정이다. 그러한 대화적 과정을 거친 성찰적 의견일지라도 이러한 의견이 언제나 진리요 참인 것은 아니다. 그 사안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 개인이나 집단, 나아가 공동체가 처한 시대적•상황적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되기 때문이다.



TV 시사토론은 공적 대화

그렇다면 시사토론은 왜 필요하며, TV 프로그램이라는 특수한 장치로 기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TV 시사토론은 TV가 민주주의의 핵심인 건전한 여론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하는 믿음을 토론이라는 형식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사회•경제•정치적 이슈에 대한 공적 대화인 셈이다. 그래서 TV 시사토론의 주제는 시민적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행정 등 모든 논쟁적인 혹은 갈등적인 이슈가 대상이 될 수 있다. 시민들은 이러한 시사토론에 대한 직간접적 참여를 통해 정부와 권력의 주도 혹은 지도하에 이루어지는 정책이나 사업이 시민적 기대에 맞게 기획되거나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환경감시와 상관조정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사토론은 뉴스와 저널리즘 영역과는 다른 차원의 환경감시자 역할과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런데 지상파 방송 3사의 최근 TV 시사토론이 이와 같은 토론의 기본 정신과 의의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심각한 회의가 든다. 제한된 지면과 분석으로 TV 시사토론을 평가하는 것이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위험성이 있지만, 여기서는 시사토론 주제 선정과 선정된 주제를 다루는 방향성에 관한 문제만큼은 반드시 지적하고자 한다. 시사토론의 주제와 그 주제를 다루는 방향성은 시사토론에 부쳐진 시민적 기대와 역할을 TV가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시사토론이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논쟁적이면서 갈등적인 사회•경제•정치적 쟁점을 다루어야 하는 이유는 어떤 쟁점을 토론의 주제로 선정하는 것 자체가 시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갈등과 논쟁의 초점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공시적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시사토론의 주제를 어떠한 방향에서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선정된 주제를 어떠한 맥락에서 다룰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사회변화를 이끌 담론 구성이어야

이는 선정된 주제를 얼마나 비판적인 안목으로 어떠한 시민적 기대와 상식을 반영하려 하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나 사업은 시민들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방향성 설정 자체가 잘못돼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시사토론 주제의 방향성은 토론의 환경감시적 기능 수행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시사토론의 주제와 그러한 주제를 다루는 방향성은 현상 유지적인 담론보다는 사회 변화를 이끌고 주도할 수 있는 담론적 구성일 때라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특히 공개성과 공표성의 기술적 혜택에 기반을 둔 TV 시사토론에 대한 시민적 기대를 감안할 때, 논쟁성과 갈등성이 강한 이슈를 뒤로하고 단순히 현안에 대한 기술이나 설명에만 급급한 시사토론은 그 자체로 시민적 기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최근 4개월 동안 이루어진 지상파 TV의 시사토론은 토론 주제 선정과 주제의 방향성을 분석한 결과 토론의 본래 기능과 그러한 토론에 거는 시민적 기대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먼저 MBC ‘100분토론’은 ‘교육’, ‘북한(3대세습, 연평도 도발, 신냉전)’, ‘부동산’, ‘국회’, ‘G20’, ‘한미 FTA’, ‘5000원 치킨’, ‘표현의 자유’, ‘축산재앙’, ‘체벌’, ‘전세가’ 등의 쟁점을 주제로 선정했다. 외형적으로는 주제의 다양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0년 시민적 삶과 가장 직결돼 회자된 뜨거운 감자였던 ‘무상복지’와 ‘서민물가 불안’ 문제에 대해서는 주제로 삼지 않았다. 이에 비해 ‘북한의 3대세습과 동북아 정세’, ‘연평도 도발, 북한의 노림수는?’, ‘연평도 도발 그 후, 신냉전시대 오나?’ 등의 대북 문제를 토론의 주제로 다수 선정하는가 하면, 대통령의 치킨 가격이 비싸다는 발언이 나온 이후에는 ‘5000원 치킨, 불가능한가?’를 토론의 주제로 삼았다. 북한이 남한을 도발하고, 북한의 도발이 동북아 평화체제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토론의 주제로서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다른 중요한 사안을 뒤로한 채 연이어 논쟁성과 갈등성이 적은 북한 문제를 토론의 주제로 삼았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편성이다. 토론 주제를 다루는 방향성 역시도 시민적 기대를 반영했다고 보기 어려웠다.

이를테면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부동산, 바닥인가?’, ‘치솟는 전세, 나의 선택은?’ 등을 문제로 삼았는데, 이 문제에 대한 시민의 관심은 부동산 바닥설이나 치솟는 전세가 자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에 대한 정부 정책이 실패한 이유와 책임, 그리고 추가 대책에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토론 주제의 초점을 ‘바닥설’과 시민 개인의 ‘선택의 문제’에 초점을 두게 함으로써 쟁점이 가지는 정부 비판적 관점을 주변화했다. 시사토론에 거는 시민들의 환경감시적 기대를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환경감시 기능에 거는 기대를 반영 못해

이는 KBS의 ‘생방송 심야토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KBS도 MBC와 비슷한 주제를 다뤘다. ‘교원단체 정치 참여’, ‘인터넷 문화’, ‘수능체제 개편’, ‘기부문화’, ‘개헌 논의’를 주제로 선정했다. 그러나 KBS 역시 당시까지 서민 생계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던 ‘물가 불안’과 ‘전세가 폭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2010년 10월 당시 현안이었던 ‘4대강 사업’을 비롯해 ‘개헌’, ‘대북 쌀 지원 문제’, ‘통일세 도입’,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 강화’ 등에 대한 토론 대신 시사성과 논쟁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약한 ‘인터넷 문화의 현주소’, ‘정년연장, 고령화시대의 대안인가?’를 주제로 삼았다.

KBS도 ‘G20 서울 정상회의’나 ‘한•미 FTA 협상’에 따른 득실의 문제를 따지기보다는 성과와 과제, 그리고 전망을 토론의 방향성으로 설정함으로써 시사토론의 환경감시적 기능에 거는 시민적 기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MBC와 KBS에 견주어 볼 때, SBS의 ‘시사토론’은 다양성과 갈등성이 농후한 시민적 삶과 맞닿아 있는 토론 주제를 선정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시민적 기대를 잘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SBS는 MBC와 KBS가 시사 현안으로 다루지 않았던 ‘배추파동’, ‘LH 빚더미’, ‘4대강 사업 충돌’, ‘정부의 소통’, ‘전셋값 고공행진’, ‘무상복지’, ‘서민물가’ 등의 쟁점을 골고루 반영했다. 뿐만 아니라 토론의 방향성 역시도 정부 정책의 한계와 문제점에 초점을 둠으로써 환경감시자로서 시사토론에 부쳐진 역할을 수행하려는 노력이 많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구체적으로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충돌의 쟁점이 무엇인지를 다루었고, G20의 경우도 ‘무엇을 남겼나?’라는 표현을 통해 성과에만 천착하지 않으려는 뉘앙스를 실었으며, 연평도 포격 사건에 대해서도 ‘우리의 대응’을 주제로 뽑아 당시 우리 군의 대처 방식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반영하고 있었다. 또한 무상복지의 문제에서도 ‘누가 옳은가’라는 표현으로 논쟁성과 갈등성을 지향하고 있었고, 서민물가 불안에 대해서는 ‘대책 없나’에 초점을 두어 정부 정책에 대한 환경감시적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제 선정은 자유 아닌 자율

한편 2010년 12월에 있었던 예산안 날치기 통과와 그에 따른 4대강 예산과 이른바 ‘형님예산’과 ‘쪽지예산’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현안을 비켜 갔다. 이 시기 MBC는 오랜 의제중 하나였던 미네르바 사건에서 비롯되는 ‘나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나’를, KBS는 ‘긴급진단, 구제역 비상’을, SBS는 ‘2011 함께하는 대한민국’을 편성했다. 당시의 예산안 편성이 2011년 시민적 삶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토론의 주제로 선택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정 정치 정당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 한 해 국가 예산이 제대로 된 심의와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고 날치기로 처리됐다는 사실은 당시 지상파 방송 3사가 선정한 그 어떤 현안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따라서 시민들은 이 문제에 관해 시사토론이 시민적 공론장 역할을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당연히 가졌을 것이다.

토론 주제 선정과 토론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일은 편성권의 일부분으로, 이는 어디까지나 방송사 자율(autonomy)에 부쳐진다. 그렇다고 자유(freedom)는 아니다. 자율은 남의 구속(拘束)을 받지 않고 자기(自己) 마음대로 하는 자유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자율은 스스로 자기 방종을 억제(抑制)해야 하며, 실천(實踐) 이성(理性)이 스스로 보편적(普遍的) 도덕법(道德法)을 세워 이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4개월의 TV 시사토론에 대한 분석, 그것도 총제적인 접근이 아니라 지엽적인 분석만으로 지상파 방송 3사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비평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도 있지만, 선정 주제와 주제를 다루는 방향성 차원에서 제기되는 문제만으로도 ‘국민의 방송’과 ‘공영방송’을 자임하는 지상파 방송에 일정한 비판이 가해질 수 있다. 공영방송 MBC와 KBS가 정부와 여당에 불리하거나 부정적일 수 있는 시사 현안을 회피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라도 시사토론에 거는 시민적 기대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길 바란다.

TV 시사토론이 토론 본래의 역할과 사명을 망각하고 혹시라도 토의 혹은 설득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지 방송사들은 자문해야 한다. 그것만이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다. 
  
시사토론의 주제와 그러한 주제를 다루는 방향성은 현상 유지적인 담론보다는 사회 변화를 이끌고 주도할 수 있는 담론적 구성일 수 있을 때라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논쟁성과 갈등성이 강한 이슈를 뒤로하거나 단순히 현안에 대한 기술이나 설명에만 급급한 시사토론은 시민적 기대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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