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공사창립 대기획 ‘푸른 지구의 마지막 유산-콩고’

최성민 KBS 다큐멘터리국 프로듀서


“아프리카 초원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얼룩말 떼 뒤로 사자가 나타난다.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다 순간적으로 달려든 사자는 추격전 끝에 사냥에 성공하고 시뻘건 피를 입에 묻히면서 맛있게 사냥감을 먹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의 왕국’에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물론 이 장면을 제대로 찍기 위해선 고도의 테크닉과 오랜 기다림, 그리고 운도 따라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정성스럽게 찍은 영상이 우리 시청자들에게 이제 너무나 익숙한 이미지라는 것이다.

지난해 초 ‘푸른 지구의 마지막 유산’이라는 자연 다큐 시리즈 제목을 가지고 첫 번째 촬영 대상지를 정할 때 콩고 열대림이 가장 우선순위에 올랐던 이유는 시청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낯선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시간과 촬영허가와의 전쟁

우리나라 면적의 24배로 남미 아마존에 이어 세계 제2의 열대림이 있는 공간, 그리고 그 한가운데로 흐르는 길이 4,700킬로미터의 콩고강…. 우리가 그동안 봐 왔던 초원의 아프리카가 아니라 열대림의 아프리카, 원시 생명력이 넘치는 ‘낯선 아프리카’를 보여 주고 싶었다.

콩고를 촬영하기로 결정된 3월부터 본격적인 자료 조사와 동시에 출장준비에 들어가야 했다. 열대림 지역은 계절의 변화가 없는 대신 우기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촬영이 가능한 시기는 길지 않다. 거기다 자연다큐 특성상 찍어야 하는 동물들의 생태를 고려하면 촬영 일정은 더욱 촉박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주요 촬영 대상으로 생각했던 슈빌이라는 새는 우기가 끝나면 물을 찾아 인간의 접근이 불가능한 곳으로 이동을 하기 때문에 6월에는 촬영을 시작해야 했다.

촬영 지역 대부분이 국립공원 또는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에 촬영을 위한 허가는 필수다. 이번 제작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아프리카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역의 상당수를 미국과 유럽의 자연보호단체들이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촬영을 위해선 해당 국가의 정부와 이 자연보호단체들의 허가를 모두 받아야 되는데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촬영허가료 역시 이중으로 내야 했다. 그러나 돈을 내면서 촬영을 하겠다는데도 콩고 정부의 촬영 허가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한국인이 없는 지역이라 수소문 끝에 찾아낸 현지인 코디는 직접 와야 해결이 된다고 성화였다. 여러 가지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기였지만 고심 끝에 콩고에 가기로 결심했다. 촬영 출발 예정일을 3주일 앞두고 혼자 콩고에 입국해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산림부 책임자를 직접 만났다. 그들이 요구한 기증품과 촬영 허가료를 직접 건네 주고 나서야 촬영 허가서에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이같이 허가가 제때 나오지 않는 상황은 제작 기간 내내 제작팀을 괴롭혔다. 막바지에 이뤄진 항공 촬영에선 특별한 이유 없이 촬영용 헬기 입국을 지연시켜 촬영 일정을 단축해야 했다. 허가가 지체되는 이유를 물어보면 “여긴 콩고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처음 듣는 아시아의 방송사가 콩고에 와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고 하니, 그것도 평범한 현지인을 통해서 그 이야기를 들으니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촬영지 국가의 고위 관리나 군인 등 유력 인사를 사전에 직접 만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두 달 남짓한 준비 기간 동안 촬영허가 문제에 매달리느라 정작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지 못한 것은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모켈레 음벰베를 찾아라

돈과 시간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면 콩고강과 콩고 열대림에 대한 자료를 찾고 읽는 일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콩고 하면 ‘콩고 내전’과 ‘피의 다이아몬드’밖에 연상하지 못했던 내게 가장 깊은 곳이 수백 미터가 넘고 급류지대에선 수 미터의 파도가 넘실댄다는 콩고강,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람과 유인원인 고릴라와 보노보가 산다는 콩고 열대림까지 어느 것 하나 새롭고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는 콩고 열대림 한가운데 위치한 텔레 호수에 ‘모켈레 음벰베’라는 공룡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모켈레 음벰베’는 영국의 ‘네시’처럼 목격했다는 사람도 있다. 일본의 한 방송사에서 항공 촬영으로 흐릿하게 형태만 찍어서 ‘모켈레 음벰베’라고 주장한 적도 있는데, 그것이 정말 공룡처럼 거대한 파충류인지 확인은 안 된 ‘전설의 괴수’였다.

농담처럼 모켈레 음벰베를 찍으면 바로 귀국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찍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거쳐 간 탐험대들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수심이 얕고 수온이 높은 텔레 호수에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가 살 확률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콩고에 도착하니 한번 가 보고 싶었다. 단축된 헬기 촬영 일정이었지만 헬기로 1시간 정도 걸리는 텔레 호수를 가기로 결심했다. 비상착륙할 곳이 전혀 없는 열대림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남아공에서 온 헬기 기장은 처음으로 현지인 코디에게 헬기 항로를 종이에 자세히 적어 주었다. 혹시 돌아오지 못할 경우 수색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안개 낀 열대림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호수는 장관이었다. 감탄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연료 때문에 30~40분 정도밖에 상공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곳곳을 살펴봤지만 평온해 보이는 호수에는 아프리카 물수리만 몇 마리 보일 뿐 거대한 동물의 흔적은 없었다. 텔레 호수 항공 촬영 부분은 결국 방송에 사용되지 않았다. 모켈레 음벰베가 없는 텔레 호수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발생해도 모켈레 음벰베를 찾아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 될 가능성이 높아도 새로운 것을 찾아서 도전하는 것이 제작자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촬영은 짧은 제작 기간을 감안해 두 팀으로 이뤄졌다. 강과 숲으로 주제를 나눠 공동 연출자인 이정수 피디가 콩고강 촬영을 맡고 필자가 콩고 열대림 촬영을 맡았다. 각각 약 100일간의 촬영 기간 가운데 3분의 1은 촬영지로 이동하는 데 소요됐다.

항공 촬영으로
‘낯선 아프리카’를 그리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오지에서의 촬영은 매일 긴장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의욕적으로 가져간 각종 촬영 장비들도 제 역할을 하기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높은 습도 탓에 카메라는 수차례 작동을 멈췄고 카메라를 세팅한 나무 망루는 조그만 진동에도 흔들려 애써 촬영한 그림을 쓸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선 스토리 라인이 있어야 하는데 상황은 매일 똑같았다. 먹지 않으면 잠만 자는 고릴라를 보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고릴라를 쫓아 가시덤불이 가득한 열대림을 하루 8시간씩 걷고 슈빌을 찍기 위해 발이 푹푹 빠지는 습지를 5시간씩 이동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촬영에 대한 부담감은 육체적 피로마저 잊게 했다.

슈빌 한 쌍이 부리를 마주치며 키스하는 듯한 장면을 세계 최초로 찍는 등 육상 촬영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처음에 예상했던 시야가 나오지 않는 어두운 열대림 속과 혼탁한 강물에서의 촬영은 웅장한 원시 자연의 모습을 보여 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나온 해결책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려했던 시네플렉스라는 촬영 장비를 이용한 헬기 촬영이었다. 문제는 전체 제작비의 3분의 1에 달하는 헬기 촬영 비용이었다. 콩고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헬기가 거의 없고, 있어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는 탓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남아공에서 헬기를 렌트해 오는 것이 오히려 저렴했지만 그 비용도 큰 부담이었다. 헬기 촬영에 이렇게 많은 돈을 쓴 전례가 없기 때문에 내부 설득도 필요했다. 우여곡절 끝에 남아공에서 시네플렉스를 장착하고 날아온 헬기는 ‘푸른 지구의 마지막 유산 - 콩고’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아름답고도 웅장한 그림을 남겨 주었다. 잠비아와 탄자니아 국경에 위치한 높이 260미터의 칼람보 폭포, 방웨울루 습지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연꽃밭, 성난 바다처럼 거친 콩고강의 급류지대 등 육상 촬영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훌륭한 장면들이 나왔다.

BBC의 자연 다큐 촬영에 수차례 참여한 헬기 기장과 시네플렉스 오퍼레이터의 경험, 환경스페셜에서 5년간 자연 다큐의 영상미학을 구현한 이정수 피디의 정확한 연출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항공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그 과정은 예상했던 것처럼 쉽지 않았다. 허가를 받기 위해 몇 개월이 소요됐고 만만치 않은 허가료를 내야 했다. 수도 이외에는 헬기 연료가 없어 1,000리터짜리 기름통을 5개 사서 트럭에 싣고 수천 킬로미터를 따라 오게 했다. 만약 중간에 트럭이 고장이라도 나면 헬기 촬영은 포기해야 하고 연료가 도착할 때까지 며칠이고 기다려야 했지만 다행히 트럭은 헬기에 마지막 기름을 넣고서야 고장이 났다. 그래서 헬기 기장은 우리가 비교적 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선 촬영용 헬기가 입국하는 데만 수십만 달러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안전을 이유로 헬기 연료는 일반 트럭으로 운반할 수 없는 국가도 많다는 것이었다.

방송이 나가고 난 뒤 만난 사람들의 반응은 주로 동물보다는 콩고강 급류 지대에서 물고기를 잡는 와게니아족과 콩고 열대림에서 수렵 생활을 하는 바아카 피그미족이 흥미로웠다는 것이었다. 자연 다큐를 표방하고 그 공간을 표현하고자 그곳에 사는 부족들의 이야기를 넣은 제작자 입장에서는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짧은 기간 동안 촬영된 분량을 가지고는 동물들의 생태를 이야기로 엮어 내지 못한다는 한계를 다시 한번 절감했다. 그렇다고 프로그램이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고릴라 등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매년 정기적으로 촬영하는 BBC를 따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형 자연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그래서 혹자는 제작비와 제작 기간이 많이 필요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해외까지 나가서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한다. 지금은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대형 자연 다큐를 들고 나오지만 한때 유행이고 곧 시들해질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편당 20억 원 가까이 들인 BBC의 자연 다큐와 비교해 경쟁력이 있겠느냐는 이야기도 있다. 일리가 있는 말들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 보면 해외 자연 다큐 제작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분야다.

 

 

 


19세기 말 리빙스턴과 스탠리가 탐험에 나섰던 이래 서구인들에게 콩고 열대림은 ‘암흑의 심장’이었고 초식 동물인 고릴라는 포악한 킹콩이었다. 그들에게 자연은 연구의 대상이자 정복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전통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반면 우리에게 자연은 교감과 소통의 대상이었다. 절제된 영상에 이런 자연관을 접목한 ‘한국형 자연다큐멘터리’가 대형 해외 자연 다큐 제작을 걱정스럽게 보는 시선에 대한 답변이 될 것이다. ‘푸른 지구의 마지막 유산’ 시리즈가 계속되면서 우리만의 장점을 잘 살린 자연 다큐멘터리들이 완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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