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 화재의 원인과 불법 점유 보도’

민정주 경인일보 사회부 기자


경기도 전역으로 구제역이 빠르게 확산되던 지난해 12월 부천에서 화재 사고가 났다. 차량이 통행하는 고가도로 위가 아닌 하부 공간에서 불이 난 데다 인명 피해도 없었다. 차량 수십 대가 불에 타기는 했지만 화재 현장의 사정을 잘 모르던 상황이라 멀쩡한 소들이 수백 마리씩 살처분되고 있던 당시 상황에 비하면 아주 심각한 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천에 주재기자 선배도 있으니 현장 취재 한두 차례면 끝나겠거니 생각하고 화재 발생 다음 날인 12월 14일 아침 부천으로 갔다. 외곽순환 도로 고가 하부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을 전해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화재 발생 구간에 대한 도로 정리 작업과 안전진단, 화재 원인 조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폴리스라인 안쪽의 공무원들은 심각한 표정이었고 바깥쪽의 주민들이나 혀를 차고 있었다. 강추위로 전국이 얼어붙어 있던 때였지만 하루에도 수십만 대가 통행하는 도로에서의 화재는 주민들을 현장으로 불러들였다. 지역 사정을 모르고 간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주민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현장을 지켜보다 취재를 시작했다.

주민들과 함께 현장을 지켜보다

몇몇 주민들이 어젯밤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유독 가스 냄새가 났고 구급차 소리를 들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중에는 도로공사와 부천시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화재 현장인 부천 상2, 3동 주민들이 수개월 전부터 하부 공간에 체육시설을 만들어 달라며 시위도 여러 차례 하고 민원도 냈지만 언제부터인지 주차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장애인 단체에서 주차비를 받는다는 주장도 있었고 컨테이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어느새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주민들은 각자 화재 원인에 대한 추측이나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말들을 받아 적느라 겨울바람에 손이 얼 새도 없었다.

2010년 12월 29일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부천 구간 하부공사 불법 점유시설물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시작돼 부천시 공무원, 용역회사 직원들이 외곽순환도로 350m의 하부공간에서 컨테이너와 각종 시설물을 철거하고 있다.

그 와중에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화재가 난 고가 하부만 문제가 아니라 송내동까지 이어지는 하부 구간의 불법 점용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취재수첩에 적어 둔 것을 그대로 옮기자면 ‘송내동 고가도로 밑에는 2층집 6동이 있고 20년 계약이 돼 있다’, ‘도로공사가 임대했고 그것을 빌린 사람이 재임대를 했다’, ‘20년 계약을 했으니 꼼짝 못한다’, ‘토지대장에는 도로로 돼 있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으며 그곳에서 사고가 났으면 사람이 많이 죽었을 것’ 등이 기록돼 있다. 사실 이후에 취재한 거의 모든 정보가 취재 첫날 화재 현장에서 나왔다. 머릿속으로 정리할 사이도 없이 들리는 정보들을 받아 적으며 쉽지 않고 짧지도 않을 취재가 시작됐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날 오후에는 시청과 경찰서, 도로공사 등을 취재하며 정신없이 다녔다. 취재해야 할 것은 너무 많은데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막상 경찰 브리핑은 별다른 내용 없이 끝났다. 화재 원인은 아직 알 수 없고 감식 결과는 기다려야 한다는 게 경찰의 공식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미 브리핑실 안에서는 화재 발화 지점인 유조차 운전자의 화상 정도와 건강 상태에 대한 질문이 오갔고 유력한 용의자라는 추측도 돌았다. 방화 내지 실화일 것이라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현장에 사람이 있었다면 주민들의 말에 신빙성이 더 커지는 셈이었다. 그러는 사이 도로공사는 중동 나들목 구간 고가도로를 완전 철거하고 재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화재가 단순 사고가 아니라 예고된 인재라는 것을 밝히는 것과 더불어 중동 나들목 일대 정체 구간을 피할 수 있는 길도 알아봐야 할 판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을 중심으로 취재를 했다. 첫날 송내동 상황을 설명해 준 송모 씨는 송내동에서 고가 하부 공간 2곳을 임대해 자재를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다. 송 씨는 억대 보증금을 내고 월 700만 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지만 얼마 전 임대료를 25% 올려 달라는 통보를 받은 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일심동 일대에서 농사를 짓는 이모 씨는 도로공사가 1996년 외곽순환 고속도로 건설 당시 농로가 송내 나들목으로 편입되게 되자 고가 하부에 길을 내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대형 건물을 지어 장기 임대를 주었다고 하소연했다.

불법 점유 문제 파헤쳐

외곽순환로 부천 구간의 교량 하부 불법 점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구간을 수십 개 단체와 개인이 다양한 방법으로 선점하고 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도로공사와 부천시도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부천시는 고가도로 하부를 점용하고 있는 단체와 업체 등을 알고 있었지만 관리 주체가 도로공사라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도로공사로부터 점용허가를 받으면 체육시설이나 주차장 등으로 활용할 수 있었지만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내버려 두고 있었다. 관리자인 도로공사가 불법 점유를 막기 위해 취한 방법은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발부하거나 고발하는 것이었다.

이후의 취재는 불법 점유에 대한 전방위 수사에 들어간 경찰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경찰의 특성상 수사가 진전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수사 내용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찰서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며 경찰의 조사를 지켜봤고, 집요한 확인으로 내용을 파악해 나갔다. 유조차 기사에게서 유력 용의점이 포착됐다는 기사를 가장 먼저 쓸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노력에 따라 이뤄졌다. 이후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속속 확인되는 사실은 놀라웠다. 경찰은 경인일보에만 단독으로 정보를 주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지만, 끈질긴 설득으로 계속해서 관련 내용을 입수했고 착실하게 보도했다.

교량 하부 불법점유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현장을 찾아 그곳을 점유하고 있던 개인과 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속사정도 취재했다. 그런 과정에서 일부 점유자들이 수년 전부터 도로공사 측의 허가를 받고 교량 하부를 사용하고 있었다며 억울해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법 점유를 막기 위해 애를 써 왔다던 도로공사가 실제로는 스스로 임대사업을 하고 있었다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다. 이후 도로공사의 교량 하부 임대사업을 취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경찰과 시청•구청을 뛰며 단서를 찾았고, 지난 수년간의 국회 행정감사 자료를 뒤지고, 자치단체와 국도유지관리사무소 등의 점용업무 관련자들을 만나 조언을 들었다. 결국 도로공사가 최근 수년간 국내 굴지의 물류회사와 택배회사 등에 20년 장기 점용을 허가해 주고 각각 매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임대료를 받아 왔다는 사실을 확인, 단독 보도를 할 수 있었다.

불법 시설에 대한 행정대집행 이끌어내

수십에서 수백만 원에 불과한 벌금 때문에 이 노다지 땅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중에 경찰 조사에서 확인된 바로는 수억 원씩 부당 이익을 챙긴 사례도 있었다. 오히려 이미 십수 년씩 점유해 온 사람들은 하부 구간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강제 철거를 집행하겠다는 계고장이 몇 차례 발부됐지만 실제로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고가 하부에는 여러 가지 사업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을 매립해 주는 업체나 세차장도 있었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도 있었다. 취재가 마무리돼 가는 즈음에 다시 본 그 고가 하부는 달라 보였다. 사람들이 불안정한 주거 공간에 상주하고 사업장을 차려 놓은 그곳은 가스통과 전선들이 뒤엉켜 있어 언제 화재가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화재 사고 후 보름이 지나 부천시는 하부 구간 불법 점용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시작했다. 강제철거에는 1,000여 명에 가까운 인력과 카고트럭, 지게차, 견인차 등의 장비가 투입됐다. 사업체와 숙박시설, 식당 등이 들어서 있던 하부 구간 일부가 단 하루 만에 철거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 문제가 제기된 후 처음 이루어진 작업이었다. 시는 행정대집행 비용을 불법 점용자들에게 청구하겠다고 했다. 철거 작업을 지켜보고 있는데 철거비용을 부담하게 될 불법점용 단체의 대표가 다가와 취재를 요청했다. 그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2004년부터 불모지였던 이곳에 들어와 수억 원을 들여 배수 공사를 하고 땅을 일구고 거주 공간을 마련했으며 도로공사에서도 이를 용인했다고 주장했다. 철거 계획도 하루 전에 알려 미쳐 다른 거처를 마련할 시간도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여러 언론을 상대로 취재를 요청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가 끝난 뒤 그는 다른 불법 임대업자 4명과 함께 구속됐다. 외곽순환도로 불법 시설물을 적법 시설물이라고 공문서를 작성한 혐의로 원미구 공무원 한 명과 고가 하부 공간을 임대해 부당이득을 챙긴 임대업자 90여 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도로공사는 일부 하부 공간에 대해 업체에 최장 20년간의 점용을 허가한 뒤 거액의 점용료를 받아 온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 질타를 받았다. 부천시는 3월까지 고가 하부 공간 불법 시설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계속하고 10월까지 일부 구간에 체육시설을 임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취재도 끝이 났다.

화재 사고 이후 상판 재시공으로 사용이 중단됐던 중동 나들목 구간도 3월 15일 다시 개통됐다. 이제 이 사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 구제역으로 350여만 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되고 확산은 멈췄지만 침출수가 문제로 남아 있고 장자연 사건이 다시 불거졌다. 일본에서는 강력한 지진과 해일로 수천 명이 사망해 전 세계인의 이목이 그곳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고가 아래를 지나다 하부 공간에 버스나 승용차가 빼곡히 주차돼 있는 것을 보면 그 화재 사고를 떠올린다. 화재 사고는 수면 위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빙산의 일각 같은 것이었고 수면 아래에는 지금도 대한민국에서는 계약서 한 장 없이 국가 땅을 빌려 주고 빌리는 일이 가능하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일각에 가해진 한 차례 충격으로 빙산은 깨졌지만 아직 비슷한 종류의 빙산이 도처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사건이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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