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서울신문 교열팀 차장, 한국어문기자협회장

난리다. 큰 지진이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뒤이은 원자력발전소 폭발은 선진국 일본에서 ‘난민 대이동’이란 현상까지 낳고 있다. 불안과 공포는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와 중국에까지 닿았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 일본의 지진 관련 소식을 전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소식이 지진과 연관돼 쏟아졌다. 여기에 등장한 전문적인 용어들은 뜻을 어렵게 했다. 용어 풀이를 통해 시청자와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지만 풀이와 다른 쓰임새는 혼란을 주었다. 특히 방사선과 방사능, 방사성물질은 다른 뜻이라고 해 놓고 어느 부분에서는 비슷한 의미로 쓰기도 했다.

뜻풀이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방사선’(放射線)은 ‘입자나 전자기파’이고, ‘방사능’(放射能)은 ‘방사선을 방출하는 일. 또는 그런 성질이며, 능력(의 세기)’이다. ‘방사성물질’(放射性物質)은 ‘우라늄・플루토늄・라듐 등 방사선을 방출하는 물질’을 가리킨다. 즉 형광등을 방사성물질이라고 했을 때 형광등에서 나오는 빛은 ‘방사선’이고, 빛을 내는 능력은 ‘방사능’이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 등에서는 ‘방사능’을 ‘방사성물질’이라는 의미로도 썼다. ‘방사능’의 의미가 확장됐다고 본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렇게 쓰는 예가 많았다. 국어사전도 마찬가지다. ‘방사능’과 ‘방사성물질’을 크게 구별하지 않는 게 일반화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의 구별은 한다. “바닷물 등에서 방사성물질 검출이 잇따르는 가운데 22일에는 후쿠시마 현 채소에서 최대 164배에 달하는 세슘이 검출됐다.” 이렇듯 구체적인 방사성물질을 나타낼 때는 ‘방사성물질’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이지 않을 때는 ‘방사능’이라고 표현할 때가 많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능 누출은 일본 당국이 수십 년간 대처해야 할 문제다.”

‘방사선 물질’ 등 다음과 같은 표현들은 지나치게 잘못 사용됐다.

“최근 전국적으로 내린 비에선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방사능’이 ‘방사성물질’의 뜻으로도 사용된다고 보면, ‘방사능 물질’은 의미가 중복된다. 더 정확하게 ‘방사성물질’이라고 하거나 ‘방사능’이라고 해야 적절하다.

“후쿠시마 우유와 이바라키 현 시금치에서 인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사선 검출.” 우유와 시금치 등에서 검출된 방사성물질은 요오드였다. 방사선은 우라늄, 라듐, 요오드 같은 방사성물질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시금치에서 방사선 검출’됐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방사능/방사성물질 검출’이라고 해야 옳다. 어쩌다 ‘방사선 물질’이란 표현도 보이는데 역시 잘못된 말이다.

“선박 파손 피해가 복구되기도 전에 ‘방사선 오염’이란 악재가 덮친 셈이다.” ‘방사선’과 ‘오염’도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다. ‘오염’은 물질과 어울린다. ‘방사선’은 물질보다 ‘전자기파’의 의미가 강하다. ‘방사능 오염’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방사능과 짝이 돼 많이 쓰이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피폭’(被曝)이다. ‘인체가 방사능에 노출됨’이라는 뜻이다. ‘방사선에 피폭’이라는 표현도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국어사전의 풀이 때문인지 ‘방사능에 피폭’이 더 많이 쓰인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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