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사태와 한국 언론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이란어과 교수

2011년 아랍 세계의 민주화 운동은 지구촌을 뒤흔든 역사적인 사건으로 중동 정치 지형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튀니지에서 출발한 ‘재스민 혁명’은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 바레인, 예멘, 알제리 등 아랍권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아랍 세계의 변화는 향후 중동 질서의 재편을 둘러싼 역학 관계뿐만 아니라 국제 에너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해석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서구 언론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도 이번 중동 사태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이면서 국제뉴스로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는 기존의 관행대로 서구 언론의 보도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재인용하면서 서구의 시각과 관점을 그대로 반영했다. 물론 한국 언론의 독자적인 시각을 제시한 부분적인 보도가 존재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한국 언론이 인용한 80%가 서구 언론이었다는 사실이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것은 중동 사태를 둘러싼 용어 사용과 평가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첫째, 아랍의 민주화 운동을 아랍의 소요 사태로 규정했다. 소요 사태란 여러 사람이 모여 폭행이나 협박 또는 파괴 행위를 함으로써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 언론은 아랍 민주화 운동 초창기에 소요 사태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아랍 시민들의 반독재 민주화 열망을 호도했고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다.

서구 언론의 추측성 보도를
그대로 인용하기도

중동 사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친미 국가와 반미 국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다. 한국 언론은 미국이 반미 국가인 이란에 대해 시위대의 용기를 촉구하면서 이란 정부를 압박했지만 친미 국가인 바레인에서는 폭력 사태를 언급하지 않고 하마드 빈 이사 알칼리파 국왕에게 우정 어린 충고를 하고 있다고 비판적인 논조를 제시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특히 이집트와 리비아의 경우에는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보도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집트의 경우 서구 언론은 무슬림형제단의 집권 가능성을 지나치게 과장하면서 민주화 운동의 본질을 왜곡했지만 이에 대한 한국 언론의 문제제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리비아의 경우에는 카다피 정권의 붕괴를 희망하는 미국의 입장을 대변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추측성 보도도 그대로 인용했다. 카다피 국가원수가 시위대를 향해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보도와 지지자들에게 무기를 배분했다는 보도는 대표적인 미확인 보도였다. 또한 시위대가 “트리폴리를 해방시키겠다”고 선언하며 2월 25일 트리폴리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는데, 이를 보도하면서 시위대의 트리폴리 점령이 시간 문제이고 카다피 정권의 붕괴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했다.

둘째, 아랍의 민주화 운동은 동유럽의 민주화 도미노가 아니다. 한국 언론은 2011년 아랍의 민주화 운동을 1989년 동유럽 민주화 도미노와 비교하면서 새로운 중동질서의 변화에 주목했다. 하지만 두 사건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커다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1989년 동유럽의 민주화 도미노는 소련 및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이어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패권의 탄생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2011년 아랍의 민주화 운동은 반미 국가(리비아, 알제리)뿐만 아니라 친미 국가(튀니지, 이집트, 바레인, 예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전략적 동맹국인 무바라크 이집트 정권의 몰락은 미국 중동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다. 향후 친미 아랍 국가들의 위기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지난 3월 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중동 전략이 즉각적인 정권 교체에서 정권 변화로 설정되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바레인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대응책이다. 바레인은 친미 수니파 왕정으로 미 해군 제5함대의 주둔지인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미국은 바레인 왕정체제를 안정화시켜 페르시아만 안보를 통해 원유 수송로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반미 국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다각적인 정치경제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번 중동사태를 계기로 미국의 중동정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셋째, 이집트 혁명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혁명이 아니다. 지난 2월 11일 30년간 비상계엄령으로 장기집권하면서 ‘현대판 파라오’로 불렸던 무바라크 정권이 시민들의 저항으로 붕괴되었다. 현재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 아직까지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집트 역사에서 발생한 최초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한국 언론은 이집트 혁명이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의해 촉발되었다고 분석했다. 물론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과정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역할은 중요했지만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이집트 인구 8,000만 명 가운데 약 20%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44%가 문맹 또는 반문맹 상태이다. 또한 40%가 하루 수입 2달러 이하의 빈곤층이다. 튀니지 혁명은 튀니지의 국화(國花)를 상징하는 재스민 혁명이라고 부르지만 이집트 혁명에서는 이집트의 상징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라는 서구문명의 영향으로 이집트 사회가 변화되었다는 서구 언론의 정치적 의도와 목적을 함축하고 있다.

이집트 혁명은 코샤리 혁명이다. 코샤리는 이집트의 전통 음식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혁명의 중심지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코샤리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집트 혁명은 서민들의 저항과 힘으로 성공한 혁명이다. 또한 이집트 혁명은 나일강 혁명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르도투스는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나일강이 없으면 이집트도 없다는 말이다. 파라오는 나일강을 관리하면서 절대 권력을 획득했고 이집트를 통치하는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이집트 혁명은 나일강의 주인이 절대 통치자가 아니라 국민들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중동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근원적인 분석 틀 필요

한국 언론은 아랍 민주화 운동의 주된 원인을 국가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장기집권과 권력세습 시도에 대한 정치적인 저항과 만성적인 실업과 빈부격차 등 경제난에 대한 불만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아랍 세계의 억눌린 분노를 한꺼번에 표출시킨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동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분석 틀이 필요하다.

요르단을 제외하고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은 원유, 천연가스, 광물, 관광 등을 독점하면서 자원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지대추구 국가(Rentier State)이다. 지대추구 경제는 사실상 극소수의 노동력을 사용하며 다양한 내수 제조업과는 연관이 없다. 이러한 경제 분야는 다양한 일자리를 거의 만들어 내지 못한다. 고급 일자리는 소수의 지배층이 장악하고 하급 일자리는 숙련된 현지 노동자들보다 낮은 임금 수준과 노동 조건의 계약직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한다.

1980년대 튀니지, 이집트, 알제리 등 대다수 중동 국가들은 외채 문제를 계기로 국제금융기구들에 의해 강요되는 방식으로 개혁 프로그램을 채택했고 테러와의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식량 보조금이 삭감되거나 축소되었고 공공 부문의 민영화는 대량 실업과 고용 불안을 심화시켰으며 높은 경제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빈곤과 사회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집트와 튀니지의 경우 1인당 GDP가 1만 달러 이하이고 실업률은 이집트 8.4%(청년 실업 28%), 튀니지 11%(청년 실업 30%)이다.

반면 리비아는 1인당 GDP가 1만 5,000달러이지만 실업률은 30% 정도이고 바레인은 1인당 GDP가 2만 7,000달러이지만 외국인 노동자가 전체 노동력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역할을
너무 크게 부각

한국 언론사들은 이번에 중동 사태가 발발하자 신속하게 취재 인력을 파견했고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지나치게 외신에 의존한 과거의 관행과 비교해 볼 때 이번에는 보다 많은 인력이 현지 취재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현지 취재는 깊이 있는 분석 기사를 제공할 수 없을뿐더러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중동 사태 보도는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편향적이었다. 현지 취재에서는 사태의 본질을 단순화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역할을 너무 크게 부각시켰다. 중동 사회의 특수성과 그들의 삶에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또한 리비아 사태의 경우 현지 취재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카다피 개인의 부적절하고 선정적인 측면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경향이 많았다.

둘째,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동 전문기자의 양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중동은 대표적인 분쟁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전략 지역을 의미한다. 단편적인 현상을 좇아가기보다는 중동사태의 본질과 향후 전망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번 중동 사태 이후 중동의 정치지형이 새롭게 재편되면서 터키의 급부상과 시아파의 부활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과거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적 구도를 초월한 실용주의 노선이 부각되면서 새로운 탈이데올로기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당대 최고의 중동 전문기자로 알려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로버트 피스크는 30년 넘게 중동에 거주하면서 지금 이 시간에도 현장을 누비고 있다. 로버트 피스크 같은 기자가 한국에는 언제 나타날까?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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