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 봇물 : 사회적 파장과 의미

배진아 공주대 영상광정보공학부 교수

방송 프로그램의 장르와 형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한다. 방송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방송가의 유행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포맷이 등장한다.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포맷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과거에 유행했던 포맷이 다시 주목받게 되거나 기존 포맷이 새로운 방식으로 변형되는 경우가 더 많다. 최근 가장 주목받으면서 다양한 버전을 생산해 내고 있는 포맷은 오디션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공개적인 경쟁의 과정을 거쳐 특정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능력을 보여 주는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다. 오디션 과정을 통해 선발된 사람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부여되는데, 여기에는 상금뿐 아니라 해당 전문 분야에 데뷔할 수 있는 기회도 포함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등장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오디션을 표방하는 여러 가지 시도들은 예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목표달성 토요일’(MBC 2001년)의 ‘악동클럽’, ‘초특급 일요일 만세’(SBS 2001년)의 ‘영재육성 프로젝트 99%의 도전’, ‘슈퍼스타 서바이벌’(SBS 2006년) 등은 2000년대 초•중반에 방송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후 2009년부터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는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On Style)와 2010년부터 제작되고 있는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On Style)는 각각 패션 디자이너와 모델을 선발하는 형식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계보를 잇는다. 이렇듯 오디션 프로그램이 간간이 제작되어 오던 중에 갑작스럽게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은 ‘슈퍼스타 K2’(Mnet)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슈퍼스타 K2’는 많은 화젯거리들을 만들어 내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케이블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으로서는 매우 높은 기록이라 할 수 있는 18%대의 시청률과 130만 건이 넘는 문자 투표 참여는 엄청난 인기를 대변한다. ‘슈퍼스타 K2’의 성공 이후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MBC)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를 이어 가고 있으며 ‘신입사원’(MBC), ‘기적의 오디션’(SBS), ‘코리아 갓 탤런트’(tvN), ‘리얼캐스팅’(Fashion N), ‘슈퍼스타 K3’(Mnet) 등이 방송되고 있거나 방송 예정이다.


‘열려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인기 원인

방송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붐을 이루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열려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인기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두 가지 차원에서 열려 있다. 각본이 미리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아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는 것과 모두에게 열려 있기 때문에 학벌, 나이, 지연 등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오디션이 어떠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진행될지 대략의 줄거리는 정해져 있지만, 출연자들이 어떤 발전과 변화를 보여 줄지, 누가 선택되고 누가 탈락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열린 구조는 시청자들을 더욱 궁금하게 하고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을 때 재미를 증폭시킨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프로그램이라는 점도 중요한 인기 요인이다. 재능과 열정만 있다면 누구든지 도전할 수 있다는 설정은 시청자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기에 충분하다. 프로그램 초반에는 평범하고 촌스럽던 출연자가 오디션이 진행되면서 점점 더 세련된 모습을 보여 주고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은 때로는 감동하고 때로는 대리 만족을 느낀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경쟁력 있는 장르로 떠오르고 있는 또 다른 이유로는 시청자들과 소통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청자들은 방청객으로 참여해 평가단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고, 문자 투표나 인터넷 투표 등의 형식으로 오디션의 과정에 참여한다. 때로는 인터넷상의 논쟁을 통해 참가자들의 성패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방송의 제작 과정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요즘 시청자들의 욕구를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최근의 현상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오디션 프로그램은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잊고 있던 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가수든 모델이든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꿈을 향해 아마추어 출연자들이 도전을 한다. 그 꿈으로 갈 수 있는 길은 멀게만 보였지만, 텔레비전이 그 길을 만들어 주었다. 꿈을 향해 도전하고 조금씩 다가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시청자들은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하고, 자신의 꿈을 조심스럽게 되돌아보기도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꿈에 가까이 갔을 때의 기쁨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본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꿈을 이룬 사람들뿐 아니라 중간에 탈락하게 된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는다. 비록 탈락이라는 현실에 직면했지만, 이것이 꿈을 향한 발걸음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는 꿈을 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조금 거창한 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사람들을 꿈꾸게 함으로써 꿈을 잃은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다.


꿈을 향한 도전, 멘토의 조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사회적 의미는 ‘멘토’의 존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멘토는 전체 구성의 중심에 서 있다. 출연자가 자신의 재능을 찾아내고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에서 멘토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프로그램 안에서 멘토는 도전자 한 사람을 위해 조언하고 방향을 제시하지만, 도전자와 동일시된 시청자들 역시 멘토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여러 유형의 멘토들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멘토와 출연자가 관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멘토는 과연 누구일지 되돌아보게 된다. 또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과연 좋은 멘토가 되어 주고 있는가?’, ‘나를 이끌어 주는 멘토의 조언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고 성장하였는가?’ 등등 프로그램의 내용에 비추어 나 자신과 우리 사회를 되돌아볼 기회를 갖는다.

한편 오디션 프로그램은 여느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다양한 가치 기준들을 만들어 낸다. 앞서 언급한 꿈을 향한 도전이나 멘토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의미 부여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가치들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가치보다는 부정적인 가치가 더 많이 발견되는 것 같아 아쉽다. 실력보다 외모가 강조되는 외모 지상주의, 성공한 사람만이 주목받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경쟁 이데올로기,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 등이 그것이다. 출연자의 독특한 개성과 특수한 맥락을 무시한 채 대중화하고 상업화하기 쉬운 몇 가지 특징을 부각시켜 정형(stereotype)화하는 것 역시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이러한 정형화는 개성이 무시된 채 특정 유형의 인간으로 분류되어 버린다는 점에서 출연자에게 피해를 주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잘못된 가치관을 형성하고 조장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프로그램의 사회적 영향력이 큰 만큼 제작진은 프로그램 안에 왜곡된 가치가 담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보편적으로 소구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 요소들을 고루 갖춘 포맷이라 할 수 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불확실성과 음악 프로그램의 감상적 요소, 경쟁 프로그램의 긴장감 등을 모두 혼합하는 과정을 통해 오디션 프로그램은 매우 매력적인 포맷으로 재탄생했다.

오디션 포맷이 이렇게 발전하기까지 외국산 포맷의 수입이나 포맷의 모방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있었다. 포맷의 수입은 단순히 프로그램의 형식만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와 ‘마케팅 노하우’까지 함께 구매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방송 시장에서 아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케이블 방송사의 포맷 수입 전략은 현명한 선택이다. 포맷을 구매해 똑같은 프로그램의 다른 ‘버전’을 만드는 일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해 제작하는 것만큼이나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수입 포맷이 이렇게까지 크게 주목받게 된 데에는 포맷 자체의 우수성보다 국내 제작진의 노력이 더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포맷 수입 과정에 참여했던 국내 인력들이 전문성을 갖추고 한 단계 성장하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며, 이는 프로그램의 성공만큼이나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포맷의 진화’

오디션 포맷의 모방 논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관점의 평가가 필요하다. 방송 포맷은 상호 모방하고 융합되는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 특히 케이블 방송의 전문 채널 시스템이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포맷을 실험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케이블에서 성공한 오디션 포맷의 지상파 유입은 다채널 시대의 바람직한 흐름일 것이다. 단, 이는 맹목적인 모방이 아니라 이전의 포맷과는 차별화된 발전적인 모방에 한해서다.

오디션 포맷이 국내 방송에 본격적으로 정착되고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앞서 언급한 모방의 문제도 그중 하나다. 포맷이 모방을 통해 발전해 나간다고는 하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추가되지 않은 무분별한 모방은 시청자들로부터 외면받게 될 것이며 저작권 침해와 같은 법적인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다.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만큼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부분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평가의 단계마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들을 배치함으로써 선발 과정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출연자들의 사생활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일반인 출연자는 촬영과 편집의 권한을 갖는 제작진과의 관계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다. 약자인 그들을 프로그램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을 좀 더 존중하면서 프로그램이 제작되었으면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과 도전에 대해 더 진지하게 접근했을 때, 프로그램이 주는 감동과 재미도 더 커지고 시청자들도 더 많이 공감할 것이다.

시청자들 역시 출연자들에게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시청자 게시판이나 SNS 등을 통해 논의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담론 가운데 많은 부분이 출연자에 대한 비난이나 인신공격이라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프로그램의 세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출연자, 제작진, 시청자가 서로를 더 많이 배려하면서 따뜻하게 소통한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포맷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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