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DB 활용 시 주의할 점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정책연구팀장, 변호사
 

요즘 웬만한 언론사들은 기존 자료들의 DB화를 끝마쳤을 것이다. 이제 수십 년 전의 자료라도 검색어 몇 단어만 적절히 입력하면 금세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사내에 구축되어 있는 DB는 새로운 방송 프로그램 제작이나 기사 작성에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성의 이면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도 있다. DB화 되어 있는 사진, 영상자료들 중에는 재사용 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당사자 동의의 범위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면 재사용에 앞서 다시 한 번 당사자의 양해를 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언론사 내 DB 활용 시 주의할 몇 가지 점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사례 1)
기사에 필요한 사진 혹은 영상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마침 사내 DB를 검색해보니 적절한 자료가 발견되었다. 해당 자료를 사용함에 있어 주의할 점은 무엇일까?




지난 2009년 5월 19일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는 방송사의 자료화면 관리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판결(2009가합311)이 선고되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화면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폐기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합의금까지 지급한 방송사가 또 다시 같은 자료를 방송에 내보낸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은 그 이전에 공식적인 분쟁조정의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미 문제가 불거져 공론화가 된 적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마땅히 문제가 시정되었어야 했다.


법원, “무단 재방송 배상하라”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는 두 아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제 엄마에게 “됐어, 똥꼬야!” 등 욕설을 하는 것은 물론 주먹과 발길질까지 해댔다. 마침 모 방송사 프로그램 제작진에서 이 증상을 다뤄보고자 기획했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수만 명에 이르며, 초등학교에 취학하는 아동 중 1/5이 이 증상을 보인다고 하니 가히 사회문제라 할 만했다.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문제의 아이들 부모를 만나 촬영협조를 얻었다. 물론, 아이들의 치료를 돕겠다는 약속도 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2006년 4월 11일 ‘못된 아이 매인가? 치료인가?’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문제는 그로부터 8개월 후에 일어났다. 그 해 12월 11일 같은 방송사에서 제작하는 아침 프로그램에 4월 11일자 방송분 일부가 편집되어 나간 것이다. 해를 넘겨 2007년 2월 1일에는 메인 뉴스 프로그램에 또 나갔다. 두 차례나 무단으로 방송이 나간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의 부모는 방송사의 무심한 처사에 분노했다. 이에 2007년 2월 8일 언론중재위원회에 손해배상을 구하는 조정을 신청했다(2007서울조정46). 피해자 측은 조정신청서에서 ‘원 보도에 관해서는 동의를 했지만 지금처럼 계속해서 방송에 쓰이거나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으며 방송사 측에서도 이에 대한 양해나 아무런 사전고지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중재부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당사자 간의 합의는 결렬되었다. 대신, 중재부에서 직권으로 아이 한 명당 5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으나 언론사의 이의신청으로 이마저도 결렬되고 말았다.

그 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비록 공식적인 조정은 실패했지만 언론사와 피해자 측은 도합 500만원을 지급하고 피해자 관련 자료를 완전 폐기하는 것으로 합의를 이루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해당 방송사는 그로부터 반 년 뒤 메인 뉴스 프로그램에서 10초 정도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또 내보냈고 말았다. 결국, 피해자 측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는 방송사 측의 책임을 인정하여 두 아이에게 각 200만원을, 아이들의 어머니에게는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이 사안에서 우리는 문제의 자료화면이 적어도 당사자 간 합의 시 폐기되었어야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자료는 폐기되지 않았다. 해당 방송사가 적절히 대처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합의서에 서명한 방송사 대리인이 회사 측에 합의사항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거나 해당 방송사의 자료화면 관리방식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뜻이다.

흔히 방송에 나간 영상물이라든가 보도에 사용된 자료들은 해당 언론사의 자료실로 옮겨져 내용별로 분류된 후 보관・관리된다. 즉, 제작부서와 관리부서가 이원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료실에 분류・보관되어 있는 자료들은 언론사 내부적으로 주제어 등에 의해 검색이 가능하고, 여러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재활용된다. 물론,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한 자료에 대해서는 검색에서 제외하거나 아예 영상물 자체를 폐기처분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작부서와 관리부서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할 때 이야기다. 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했다던가, 폐기처분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을 관리실에 통보하지 않으면 해당 자료는 계속 검색되어 재활용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폐기할 영상자료 DB에서 지워야

대개 특정 기사나 방송이 문제된 경우 분쟁해결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제작부서의 데스크들이다. 이들은 심리과정을 통해 제작방식의 문제점이라든가, 해당 자료의 위법적 요소를 충분히 인지하게 되지만 자료 관리를 담당하는 부서에 그 사실을 일부러 알리지 않는 한 해당 부서에서는 이를 알 길이 전혀 없다. 이 문제는 언론사 스스로 자료실 관리에 관한 적절한 시스템을 개발, 적용할 때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법원이나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당사자 합의 시 자료 폐기조항과 함께 의무불이행에 대비한 이행강제금 조항을 합의서 등에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언제까지 삭제 또는 폐기하되 만일 해당 일자를 넘기면 지연기간 하루에 얼마씩 가산금이 붙는다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간혹, 합의시 부과된 이행강제조항을 간과하여 큰 낭패를 보는 언론사도 있다고 한다. 판결이 확정되었거나 조정합의를 했다면 혹시 주문이나 합의조항에 이행강제금 부과규정은 없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 위 사안에서 본 것처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분쟁이 재연되지 않도록 사내 DB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사례 2)
A는 일찍이 사랑하는 남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남편 사후,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삶의 애환을 시로 승화시켰다. 그 시들을 모아 시집으로 펴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러한 A의 사연을 알게 된 모 방송국에서 그녀의 삶을 소재로 하고 직접 출연도 시켜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하였다.

 

그 후 해당 방송사는 해당 다큐멘터리를 직원교육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한 보험사의 요청을 받게 되었다. 과연 해당 방송사는 보험사의 요청에 따라 다큐멘터리의 판매를 할 수 있겠는가?

지난 2005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선고된 바 있는 실제 사건을 제시했다. 위 사건에서 해당 방송사는 보험사의 요청을 결국 수락하여 계열사인 프로덕션을 통해 비디오테이프로 제작, 판매한다. 그러나 내부교육용으로 사용하겠다던 다큐멘터리는 보험사에 의해 보험 상품 판매 등에도 사용되었다. 결국, A는 자신의 초상권, 사생활의 비밀 등이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방송사 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소송 결과 법원은 A에 대한 방송사와 방송사의 계열사인 프로덕션에 각각 5백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명했다. 해당 판결에서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가. 인격권으로서의 초상권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승낙 여부 및 승낙의 범위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어떤 구체적인 동기에 의해 공표를 승낙하였더라도 추후 그 초상을 원래의 목적과 다른 형태로 공개하거나 동의의 본래 의미와 목적과는 달리 당사자의 가치를 저하시키거나 그에게 불리한 방법으로 공표하거나, 또한 당사자가 동의한 때에 전혀 고려할 수 없었던 사정 하에서 공표하였다면, 그 공표는 초상권 침해가 된다.
나. 방송 프로그램의 판매로 초상권이 침해되었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 단지 사적 또는 가정용 이용을 위한 시청자들의 주문에 의하여 실비 정도에 해당하는 소정의 대가를 받고 방송 프로그램을 원본 그대로 복제, 판매하는 것은 제작, 방영된 방송 프로그램의 이용에 있어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할 것이어서 … 동의의 범위 내에 속한다 할 것이나, 방송 프로그램을 영리를 목적으로 대량으로 복제, 판매하거나 영리를 직접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를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방영하는 데에 제공하는 것은 방송 프로그램의 통상적인 이용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 할 것이어서 촬영 동의 외에 원고의 추가적인 동의를 얻었어야 할 것이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05. 9. 22. 선고 2005가합2739 판결)

이 판결은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당사자 동의의 통상적인 효력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판결이라 할 수 있다. 판결에 따르면, 일반인의 주문에 의하여 실비 정도의 대가만 받고 방송 프로그램을 원본 그대로 복제, 판매하는 것은 초상권자 동의의 통상적인 효력범위 내에 속한다. 그러나 이 사안에서처럼 일반인이 아닌 생명보험사의 주문에 의하여 실비 이상의 대가를 받고 방송 프로그램을 편집하여 판매하는 것은 초상권자 동의의 통상적인 효력범위 밖의 일이다. 또,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반복적으로 방영하는 데에 제공하는 것 역시 동의의 통상적인 효력범위 밖에 있다. 이런 경우에는 처음부터 해당 행위에 대한 동의를 명확히 받거나 해당 행위에 대한 동의를 추가적으로 다시 받아야 한다.

저작물에 있는 인격권은 별도로 보호

흔히 이미 완성된 저작물의 이용에 관한한 저작권자인 언론사의 전적인 권한의 문제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처분행위였을지라도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문제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만일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처분행위로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게 된다면 처분행위에 앞서 당사자 본인의 동의를 받거나 인격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자이크 처리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일 당사자 동의의 범위를 벗어난 사진이나 영상의 이용행위에 해당된다면 이는 처음부터 동의를 받지 않은 것과 똑같이 취급될 것이다. 이 경우 초상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등의 책임을 지게 된다는 점도 기억하기 바란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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