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현 연합뉴스 문화부 차장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여 민주화 시위가 지속됐던 1월 31일부터 2월 6일까지 미국 언론사의 주요 뉴스 중 56%를 중동 지역 뉴스가 차지했다. 외국 뉴스가 이처럼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기는 처음이다. 이는 역대 외신 기사 중 점유율이 높았던 이라크 전(43%)이나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 지진(41%) 때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중동 지역에서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고 있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의 불길이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까지 옮아 붙으며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중동 지역의 소식은 올해 들어 미국 신문과 방송사의 주요 뉴스로 연일 취급됐다. 신문 1면 톱뉴스와 방송 뉴스 첫 꼭지로 너무나 자주 다뤄져 미국 현지 언론 학자들조차 신기해했을 정도다. 일본의 대지진 참사가 없었다면 3월에도 아마 가장 비중 높은 뉴스로 기록됐을 것이다.

이집트 시위 현장에서 발생한 다수의 기자 구타 사건, 여기자에 대한 성폭력 등 취재 기자가 뉴스 거리가 되는 일도 빈번했다. 저널리즘 측면에서 접근해도 많은 얘깃거리를 낳은 것이다. 우선 뉴스 분량을 들여다보자.

1997년부터 활동해온 미국의 뉴스미디어 연구 조직인 PEJ(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의 주간 뉴스보도 지수를 보면 중동 지역 뉴스가 최근 미국 언론에서 얼마나 많이 다뤄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지수에 따르면 특히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고 민주화 시위가 지속됐던 지난 1월 31일부터 2월 6일까지 한 주간 미국 언론사의 주요 뉴스 중 56%를 중동 지역 뉴스가 차지했다. 외국 뉴스가 이처럼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기는 처음이다. 이는 종전 역대 외신 기사 중 점유율이 높았던 2007년 9월 이라크 전(43%)이나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41%) 때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미국 내 뉴스까지 합쳐서 보더라도 점유율 56%는 2008년 대선 등에 이어 이 지수 산출 이래 역대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급증하는 중동 관련 보도

최근 이집트 등 중동 뉴스가 이처럼 각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 등 이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국 군대가 직접 투입된 이라크 전이나 아프가니스탄 전보다 언론의 주목도가 높은 점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뉴스 밸류 등 논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집트의 경우 인터넷과 모바일폰이 뒷받침한 풍부한 영상, 양호한 취재환경, 언론사 간의 취재 경쟁도 한몫한 것으로 지목됐다. 특히 이집트 친정부 시위대의 취재단 폭행 등은 미디어 스스로 뉴스 당사자로 발을 담그게 된 계기가 됐다.

CNN은 자사 앵커인 앤더슨 쿠퍼가 얼굴을 맞은 사실을 바로 보도했다. 특히 CBS의 여기자 라라 로건은 2월 11일 무바라크 대통령 하야 직후 타흐리르 광장에서 현장을 취재하던 중 군중 속에 둘러싸여 “야만적이고 지속적인 성폭력과 구타”를 당한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줬다. 라라 로건이 당한 성폭력이 강간인지를 비롯해 폭력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취재 현장에서 일어난 여기자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된 적이 거의 없어 다양한 의견과 논란을 낳았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카고트리뷴의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여기자 킴 바커는 라라 로건이 “침묵의 규율을 드디어 깼다”며 성폭력 사실의 공개가 무엇보다 용감한 결단이라고 치켜세웠다. 킴 바커는 2007년 취재 현장에서 자신이 경험한 성추행 사실을 소개하면서 대부분 이런 얘기들은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문제화되지 않고 묻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프리랜서 기자인 니르 로젠은 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트위터에 쓰면서 로건을 ‘전쟁광’이라고 지칭했다가 논란이 일자 공개 사과하고 적을 걸고 있던 뉴욕 유니버시티 펠로십에서 물러났다.

중동의 시민 혁명에 대한 미국 언론의 주목은 단지 이집트에서 머물지 않고 리비아 등으로 이어졌고 사안별로 정도 차이는 있지만 2~3월에도 상당한 수준으로 지속됐다. 예를 들면 2월 17일자 뉴욕타임스는 중동 지역에서 특별한 진전 사항이나 특기할 만한 사건은 없었지만 ‘중동 소요 확산’이라는 제목으로 이집트, 바레인, 예멘, 이란 등의 시위 소식을 취합해 1면 기사로 실었다.

또 리비아의 시위대가 일부 동부 지역을 장악하고 트리폴리에서 무아마르 카다피가 용병을 투입해 대규모 진압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 24일 USA투데이는 ‘리비아에서의 악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톱기사로 다뤘다. CNN에서는 거의 항상 중동 지역 뉴스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중동의 시민 혁명을 둘러싸고 저널리즘 측면에서 또 하나 특기할 만한 내용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뉴미디어의 부상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시위 참여를 촉구한 구글의 중동•북아프리카 마케팅 담당 임원 와엘 고님이 이집트의 민주화 영웅으로 조명받은 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시위대를 결집하는 하나의 미디어로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무바라크 시기의 이집트처럼 독재 국가에서는 방송, 신문 등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기는커녕 사실을 왜곡 전달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에 따라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대안 매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시위대에 대한 야만적인 진압 과정을 대외에 알리는 정보 창구 역할도 했다. 시위 현장에서 젊은이들이 휴대전화 등으로 찍은 평화적 집회 모습이나 잔인한 진압 장면 등 사진과 동영상은 소셜 미디어로 전송되고 이를 신문, 방송 등 올드미디어가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리비아 트리폴리처럼 취재 활동이 차단된 곳에서는 시민들이 올린 사진과 영상, 글 등이 대외 정보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 미국의 신문이나 방송이 이를 이용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뉴미디어는 독재 정권 입장에서는 굉장히 위협적인 새로운 형태의 언론인 셈이다. 이에 따라 이집트의 와엘 고님이 한동안 체포됐듯이 시리아의 베테랑 블로거 수감 등 뉴미디어 활동가들에 대한 탄압도 눈길을 끌었다.

알자지라 방송의 약진

중동의 시민 혁명 과정에서 또 하나 돋보였던 매체는 아랍권의 CNN으로 불리는 알자지라 방송이다. 서방 언론계 일각에서는 걸프전 때 CNN이 했던 역할을 알자지라가 하고 있다는 평도 나왔다.

영국의 가디언은 2월 7일 “알자지라 영어 방송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다뤘다. 이 기사에 따르면 알자지라 영어 방송은 전 세계 100개국 2억 2,000만 가구의 시청자 층을 갖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제대로 된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해 300만 가구에 불과하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중동 소식을 알기 위해 알자지라 방송을 자주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상업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디언은 BBC글로벌 뉴스의 전직 고위 간부였던 리처드 샘브룩의 말을 인용해 서방권이 갖고 있던 국제 뉴스 분야의 지배권이 중동과 아시아로 갈지도 모른다며 최근 이집트의 정세는 알자지라 영어방송에 안성맞춤의 기회를 제공했다고 평했다. 알자지라는 오일 달러가 풍부한 카타르를 기반으로 해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지만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대사관 전문 분석으로는 카타르의 외교 정책 수행에 이용된다는 평가도 있다.

한편 이번 중동 시민 혁명 과정에서 미국의 CNN도 중동 지역에 취재력을 많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 특히 시위대가 장악한 리비아의 도시인 벵가지에 특파원으로 벤 위데만을 발 빠르게 보내 리비아 내의 유일한 서방권 특파원이라는 수식어를 며칠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거 걸프전 때와 비교하면 CNN의 위세는 많이 수그러든 느낌이다.

실제로 무바라크가 퇴진하기 전인 2월 3일 인터뷰에 응한 서방 기자는 CNN이 아니라 미국의 네트워크 방송인 ABC의 크리스티안 아만푸르였다. 아만푸르 기자는 과거 CNN에 적을 두고 중동 지역을 많이 취재했기 때문에 인터뷰 성사는 기자 개인의 역량에 더 좌우됐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찌 됐든 CNN 입장에서는 속이 아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밖에 미국 언론들의 관련 보도 내용 중 개인적으로 눈길이 갔던 사안은 유명 인사들이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에 대해 과거에 어떤 언급을 했고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굳이 들춰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거래 혹은 외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일지라도 국민의 심판을 받은 독재자와 협력했던 것은 잘못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깔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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