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선 파리2대학 박사과정


공영방송 France2 채널이 처음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여자들 없는 일주일’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 달렸다. 시청률을 의식한 자극적인 프로그램의 편성 및 방송을 지양하던 프랑스 공영방송 채널의 변화에 대해 놀랍다는 반응과 공영방송 채널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반응이 교차한다.


이번에 방송된 France2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여자들 없는 일주일’(Une semaine sans les femmes)은 프랑스 지방의 작은 마을 몽트레소의 가정들을 대상으로 약 일주일간 집안에 여성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남성들이 이 상황을 꾸려 나가는 과정을 필름에 담은 것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들은 제작비로 모로코 마라케슈의 호텔에서 일주일간 휴가를 보낸다. 이 기간 동안 남성들은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등 그동안 여성들이 하던 일을 도맡아 한다. 이때 좌충우돌하는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그동안 프랑스의 공영방송 채널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암묵적으로 오랫동안 금지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임 사장인 마크 테시에와 파트릭 드 카롤리스는 공영방송 프랑스 텔레비지옹(France Télévisions) 소속 채널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 편성을 거의 금기시했다. 특히 마크 테시에는 10년 전 타 채널인 M6에 ‘로프트 스토리’(Loft Story)가 편성되는 것을 보고 프랑스에 그와 같은 프로그램이 상륙하게 된 것을 맹비난한 바 있기도 하다. 마크 테시에 후임자이자 현 사장인 레미 플리믈랭의 전임자인 파트릭 드 카롤리스 역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공영방송의 프로그램 편성 정책과
리얼리티 프로그램

반면 지난해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임명한 프랑스 텔레비지옹 사장 레미 플리믈랭은 시청자에게 신선함을 주는 것을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삼고, 이전 사장들보다는 덜 보수적인 정책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개인, 다양성,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민영 채널에서 방송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조건과 원칙하에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공영방송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터부시되었다고 해도 공영방송 채널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파트릭 드 카롤리스 사장 시절인 2006년 France3에서는 학업이나 취업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회 경제적 취약 계층의 청년 10명을 데려다가 프랑스의 유명한 슈베르니 저택 정원을 꾸미도록 한 ‘정원사 군단’(La brigade des jardiniers)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다. 실업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단 한번이라도 성취감을 느껴 보도록 하여 이들이 다시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시작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몇몇 출연 청년들은 일자리를 얻게 되는 등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시청률 측면에서는 실패하였다. 많은 시청자들은 공영방송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것 자체를 비난하기도 했다. 또 공영방송도 시대에 편승할 수밖에 없으므로 리얼리티 프로그램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프로그램의 내용이 전혀 흥미롭지 않다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심지어 전임 대통령인 자크 시라크가 프랑스판 CNN인 ‘France24’ 채널을 만들기 위해 공영 방송사에 들어갈 예산을 사용하여 프로그램 질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기도 했다.

한편 새롭게 시작하는 공영방송 채널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여자들 없는 일주일’은 방송이 나가기 전부터 민영 방송사의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큰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는 비판도 있었다.



공영방송 스타일의
새로운 리얼리티 프로그램?

민영 방송사 M6에서 주로 편성한 ‘대단한 유모’(Super nanny)나 ‘엄마를 바꿨어요’(On a échangé nos mamans) 같은 프로그램과 혼동되리만큼 유사한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M6에서 편성하였던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이 BBC의 프로그램 포맷을 구입하여 제작한 것인데, 이번 공영방송 France2의 ‘여자들 없는 일주일’ 역시 BBC의 ‘여자들이 떠난 일주일’(The Week the Women Went) 포맷을 구입, 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관찰자 입장의 여성 진행자 베로니크 무니에 역시 주로 M6의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던 진행자로 시청자들이 채널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자칫 M6의 새로운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혼동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France2 측은 기존의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차별성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카메라로 생생하게 보여 주거나 출연자들 사이의 경쟁을 유도하고 그 경쟁 속에서 시청자 휴대전화 문자 투표 등을 통해 탈락시키는 자극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과는 달리 다큐멘터리 형식의 실험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입장이다.

France2의 사회, 매거진 팀장 나탈리 다리그랑은 “프랑스에서는 여성들이 집안일의 약 80%를 도맡아 하고 있는데, 여성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많은 남성들이 어떻게 이 상황을 꾸려 나가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남성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프로그램의 의도를 밝혔다. 실제로 몽트레소에서는 약 40가구가 실험에 참가하였지만, 방송된 것은 10여 가구에 불과했다.

한편 민영 방송사인 TF1은 앞서 ‘여성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이게 하는’ 이 ‘지극히 마초적인’ BBC 프로그램 포맷을 거절한 것에 대해 자랑스럽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다리그랑 팀장은 “우리를 마초적이라거나 성차별주의라고 비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프로그램은 여성만큼 남성 역시 가정에서 각자 자신의 역할이 있다는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France2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이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판단, 편성하였다. 또 남성들이 그저 여성들 없이 살아본 일주일을 보여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 France2의 홈페이지를 통해 이 실험 참여 한 달 후의 일상과 소감에 대한 가족들의 인터뷰를 비디오로 시청할 수 있게 하여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시청자 반응 역시 나쁘지 않았다. 비록 같은 시간대 민영 방송사 TF1에서 방송된 ‘CIA 과학수사대’에 비해 시청률은 낮았지만, 시청자들은 대부분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프랑스 TV의 가족주의

한편 TF1이 일회성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경쟁 채널인 France2 ‘여자들 없는 일주일’의 연착륙에 대해 ‘마초적’인 프로그램 도입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하나의 질투나 견제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TF1 역시 4월 1일부터 ‘탐험 가족’(Familles d’explorateurs)이라는 새로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4인으로 구성된 다섯 가족이 호주를 탐험하며 게임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힘을 발휘하는 가족들 사이의 관계와 그것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방송사와 제작사는 이 시대의 ‘가족’과 ‘공유’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것이 프로그램의 취지라고 밝혔다. 물론 민영 방송사답게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방송 말미에 시청자들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두 가족에게 투표를 하게 된다. 선정된 가족들에게는 14만 유로의 상금이 돌아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앞다투어 프랑스의 인기 텔레비전 방송 두 채널이 가족 관련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편성해 방송하고 있다.

그동안 일찌감치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신의 삶을 꾸리는 자녀들과 자식보다는 자신들의 삶이 더 중요했던 프랑스인들의 가치관이 무한 경쟁과 경제 위기의 시대에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가족 중심주의’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프랑스 TV 프로그램들이 반영하고 있는 징후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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