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방송의 동일본 대지진 보도와 시사점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NHK의 재해보도 책임자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방송이 가능하도록 방송국으로부터 5km이내의 지역에
거주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NHK의 재해보도 매뉴얼은 재해보도와 관련된 표현에 있어서도 ‘~같다’라는
추정적 표현이나 ‘전멸’과 같은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7분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해로 기록될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초래한 쓰나미가 동일본 지역을 휩쓸면서 이 지역은 한순간에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수만 명의 인명 피해와 천문학적 재산 손실뿐만 아니라 동일본 대지진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누출까지 불러일으키며 일본 전역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마자 일본 방송사들도 앞다투어 특집 편성을 통해 재해방송에 돌입했다. 일본 방송사들은 대지진 발생 초기에는 일단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으니까 우선은 재해방송을 실시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당 지역에 헬기를 급파했다. 일본 방송사들은 헬기로 촬영을 하면서 점차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뒤늦게 도쿄에서 동일본 지역 거점 도시인 센다이에 취재진을 파견했지만, 그때는 이미 해당 지역의 대부분이 피해를 입은 상태로 센다이에 취재진이 도착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방송사는 관련 영상의 확보 없이는 뉴스 제작이 불가능하므로 헬기를 통한 항공 촬영이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다. 보통 광범위한 지역에서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면 취재진이 현장에 진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헬기를 활용해 재해 지역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형태의 취재가 일반적이다. 일본에서도 재해 방송은 헬기 취재로 수집한 영상을 스튜디오에서 받아 아나운서가 피해지역의 상황을 설명을 하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 보도에서도 처음에는 거의 모든 일본 방송사들이 개별적으로 헬기를 띄운 뒤, 구조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상공을 끊임없이 선회하면서 동승한 리포터가 흥분된 목소리로 구조 활동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현장에서 전달하는 형식이 주를 이뤘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재해 취재 방식이 현장의 생생한 화면과 피해 상황을 신속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일본 방송사들의 초기 동일본 지진 보도는 헬기 취재의 의존가 높았다.

취재 헬기 공동 운영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항공 취재가 재해 발생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구조현장에 적지 않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한다. 동일본 대지진 관련 취재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한꺼번에 수십 대의 방송사 및 신문사 소속 헬기가 경쟁적으로 피해지역을 선회함으로써, 헬기의 소음으로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구조대 간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구조가 지연되거나, 심지어 구조 활동에 도움이 되는 소방헬기 및 자위대 헬기의 이동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촉각을 다투는 인명 구조 활동에 적지 않은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자칫하면 1995년 6,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고베 대지진에서 나타난 경쟁적 항공취재의 문제점을 답습할 가능성이 제기됨에 따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 정부의 공식 대변인 역할을 맡은 에다노(枝野) 관방장관은 2011년 3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언론사들의 취재 경쟁과 관련해 “재해 지역의 취재를 헬기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헬기 취재가 구조 활동에 큰 방해가 되고 있고 문제점도 적지 않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주기를 부탁한다”라며 경쟁적 헬기 취재에 대한 방송사들의 자제를 공식 요청했다. 이후 일본 방송사들은 헬기 취재 형태를 각사가 교대로 취재 헬기를 띄우거나 공동 운영 등으로 전환했다.

한편 현행 일본 재해대책기본법은 국민의 생명과재산을 재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공영방송 NHK를 지정공공기관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NHK는 재해와 관련해 국가 기간방송으로서 기본적인 공적 역할을 수행해야할 의무가 있다. NHK는 매일 뉴스센터에서 재해 발생을 가정한 재해보도 훈련도 실시한다. NHK의 재해보도 책임자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방송이 가능하도록 방송국으로부터 5km 이내의 지역에 거주하도록 되어 있다. 또한, NHK의 재해보도 매뉴얼은 재해보도와 관련된 표현에 있어서도 ‘~같다’라는 추정적 표현이나 ‘전멸’과 같은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NHK의 재난보도 매뉴얼에는 지진 발생 2분 안에 기상청 1보가 방송국에 도착하고, 10초 안에 재난방송이 시작되도록 되어 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뒤, 해외 미디어들이 일본 국민은 대규모 재해가 발생해도 모두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모습을 앞다투어 보도하도록 만든 일등 공신은 NHK의 보도였다. 고베 대지진의 경험을 살려 헬기 취재 방식을 개선한 대표적인 방송사도 NHK였다. 고베 대지진 이후 NHK는 더 높은 고도에서 시끄럽지 않게 촬영하기 위해 소형이던 헬기도 중형으로 교체하고 소음을 줄이는 방음장치까지 설치했다. 고베 대지진 때 재난현장 상공을 비행하는 취재헬기 소음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소리가 구조대에 전달되지 못했다는 비판에 따라 취재헬기의 고도도 300m 이상으로 제한했다. NHK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누출 현장 헬기 취재를 위해서는 취재진의 안전 확보 차원에서 원자력 발전소에서 30km 떨어진 상공에 헬기를 선회시키며 망원렌즈로 영상을 촬영해 보도했다.


재해보도 책임자, 방송국 5km 내 거주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7분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재해대책기본법의 지정공공기관인 NHK는 1분 30초 뒤 이를 긴급 자막으로 방송했다. 이러한 재해 보도에 있어 NHK의 강점은 전국적인 취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과 광고가 없다는 점이다. 반면 민간방송사는 상대적으로 뉴스 프로그램의 비중이 낮고 지역방송국의 취재 인력도 취약하다. 평상시에는 두드러지지 않지만 이번 동일본 대지진처럼 피해 지역이 500km에 달하고 피난소만 2,300개에 달할 정도로 사상 초유의 대규모 재해를 맞아 24시간 뉴스 체제에 돌입하게 되면 아무래도 취재인력이 부족한 민간방송사들은 뉴스의 내용과 깊이에 격차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민간방송사들의 경우 재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스튜디오에 전문가를 출연시켜 피해 상황을 각종 수치와 반복적 영상으로 분석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결과 정작 피해지역의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피난처나 구호물자 지원과 관련한 정보는 거의 다루지 못하고 말았다.

예상을 초월한 쓰나미로 피해지역의 모든 통신 및 이동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비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보는 지자체에 문의하라는 식으로 현실성이 낮은 정보만 전달됐다. 상대적으로 취재인력과 지역취재 거점이 많은 NHK와 달리 민간방송사들이 생명과 직결될 수 있는 필수 정보인 피난처 및 구호물자 등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데 소극적이었던 원인은 해당 지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통상적으로 민간방송사들의 경우 대도시권이 아닌 지역에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지역을 취재하는 취재인력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본사의 취재인력을 파견하게 된다. 그러나 본사의 취재인력은 재해가 발생한 해당 지역의 사정에 어둡기 때문에 관련 지자체의 정보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 그때 만약 해당 지자체가 체계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거나, 정작 막대한 양의 정보가 해당 지자체에 모아지지만 이 가운데 무엇이 피해지역에 우선적으로 필요한 내용인지를 취재진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단지 본사에 정보를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재해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본사의 스튜디오에서는 전체적인 맥락 파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재해 발생 지역의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는 후순위로 밀리고 마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이후 NHK가 드라마와 같은 일상적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방송하기 시작한 것은 지진 발생 일주일 후부터였다. 그것도 꽤 신중하게 프로그램을 선택해 이재민의 신경을 자극하는 오락 프로그램은 전부 배제했다. 일반 프로그램도 가능한 재해 관련 프로그램들로 편성했다. 예를 들면 복지에 관한 프로그램에서는 재해 지역에서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피난현황이나 피난소에서의 생활 관련 문제점 등을 소개하는 식이다. 정규 편성이라고 해도 NHK의 이러한 일반 프로그램 편성은 전체 방송시간으로 보면 전체의 1/3에 불과했고, 나머지 2/3는 재해보도가 차지했다.

NHK, 재해 일주일 후 정규 편성

반면, 민간방송사들은 지진 발생 3일 후부터 정규 프로그램의 방송을 재개했다. 3월 20일 니혼TV의 프로그램 편성 현황을 보면 NHK와 거꾸로 지진 관련 재해 보도는 6시간에도 못 미치고 나머지는 오락 프로그램들로 편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광고가 주요 수입원인 민간방송사들로서는 기존의 프로그램을 대신해 재해 보도를 계속 실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광고를 일반기업의 상품 광고 대신 점잖은 공익광고로 대체하면서 정규 프로그램과 광고를 편성했다.

재해 지역의 피해 당사자들이 가장 알고 싶은 정보는 ‘안전하다는 말을 정말로 믿어도 되는가’와 ‘가족과 주변사람들의 안전’이다. 동일본 대지진처럼 엄청난 재해가 발생하면, 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장시간에 걸쳐 재해 관련 특집편성을 한다. 문제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장시간 방송을 실시한 방송사들의 재해 관련 특집편성이 나중에 보면 어느 채널을 봐도 내용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모든 방송사들이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신속하게 재해방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비슷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방송할 바에는 차라리 공영방송 1개 채널만 재해방송을 실시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각 방송사들이 피난정보, 구호물자 정보, 인명구조 현황, 생존자 정보, 피해복구 상황 등과 같이 역할을 분담해 관련 정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효율적이다.

미디어 기술의 발전으로 시청자들의 방송 의존도가 점차 낮아지는 가운데 동일본 대지진의 발생은 방송에 대한 일본 시청자들의 신뢰와 영향력을 새롭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부정확하고 신뢰할 수 없는 정보가 인터넷에 넘치는 가운데 일본 방송사들은 객관적이고 검증된 정보만을 전달함으로써 일본 국민들의 생명선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일본 방송사들은 재해 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정보 전달과 국민들의 혼란과 불안을 조장하지 않는다는 재해방송 원칙에 충실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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