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일본 대지진 취재기
박형준
동아일보 기자



“조심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막상 재난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그런 충고를 까먹기 일쑤다. 아비규환 현장을
남들보다 빨리 전하고 싶은 기자로서 사명감과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재난 취재에 대한 기자들의 안전 대책은 분명 마련
돼야 하고 시스템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각별히 몸조심해”라는 선배들의 조언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직후인 3월 12일 일본으로 건너가 보름간 취재를 했다. 첫 일주일은 미야기(宮城) 현과 이와테(岩手) 현에서 쓰나미를, 나머지 일주일은 도쿄(東京)에서 원자력발전소 문제를 주로 다뤘다.

지금 돌이켜보면 위험한 순간이 많았다. 출국 전에 회사 선배로부터 “조심하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막상 재난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그런 충고를 까먹기 일쑤다. 아비규환 현장을 남들보다 빨리 전하고픈 기자적 사명감과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재난 취재에 대한 기자들의 안전 대책은 분명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뭔가 시스템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각별히 몸조심해”라는 선배들의 조언 수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위험할수록 기사가 되는 ‘모순’
3월 14일 미야기 현 나토리(名取) 시의 한 해변 마을로 취재 갈 때였다. 택시 안 라디오에선 “후쿠시마 관측소에서 3m의 쓰나미가 관측됐다. 도착까지 15분, 해안에서 빨리 벗어나라”는 경고가 나왔다.

택시 운전사는 “유리아게는 쓰나미 피해로 수중 도시가 됐는데 그래도 가겠느냐.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말하면서 계속 기자의 눈치를 봤다. 그러면서도 차는 해안 방향으로 몰았다.
 
바닷가를 약 5km를 남겨둔 지점. 해변 마을 유리아게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자위대 대원을 태운 차량들이 반대편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개인 차량들도 창문을 내리고 “쓰나미가 또 옵니다. 대피하세요”라고 외치며 바다 반대편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그 순간 기자의 머릿속엔 ‘기사다!’는 생각만 가득 찼다. 쓰나미 대피 현장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행운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택시 운전사가 기자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유턴했다.
기자 : “해안까지는 5km나 남았고 거리에 사람도 많습니다. 좀 더 해안으로 갑시다.”

운전사 : “차를 돌려야 합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죽습니다. 전속력으로 달아나야 합니다. 원하신다면 여기서 내려 드리겠습니다.”

곧바로 택시에서 내려 사람들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가장으로 보이는 40대 남자가 라디오에서 귀를 떼더니 “쓰나미가 다시 온다. 모두 뛰어”라고 외쳤다. 갑자기 분위기가 급변하더니 주위의 일본인들이 뛰기 시작했다. 어른은 아이들을 들고 뛰었다. 그때부터는 기자도 ‘살기 위해’ 함께 뛰었다.

결론적으로 쓰나미는 오지 않았다. 대피 현장 취재도 만족스럽게 했다. 만약 택시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대피소로 갔으면 어떠했을까. 현장감이 크게 떨어지는 기사를 송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쓰나미가 왔다면 기자는 안전하게 대피할 수 없었다. 어느 편이 맞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앞서 3월 12일 정오에 후쿠시마 공항에 도착했다. 하루 전 대지진 발생 이후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중 가장 빠른 편을 탔다. 기자는 준비 부족으로 약 48시간을 비스킷 한 통, 손가락만 한 롤케이크 5개로 버텨야만 했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인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

도저히 구할 수 없는 물과 음식
대지진 직후 도로가 파괴돼 물자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피해 지역엔 물과 음식공급이 끊어졌다. 음식점은 문을 닫았고 편의점 음식도 모두 동이 났다. 물론 제한적으로 음식이 공급되긴 했지만 그런 음식을 사려면 서너 시간씩 줄을 서야 한다. 당장 재난 현장을 헤집고 다녀야 할 기자로선 줄을 서서 음식을 살 여유가 없었다.

기자는 택시기사가 준 비스킷과 롤케이크로 이틀을 지냈다. 물은 급수차가 공급해 주는 것을 마셨다. 12일 동일본 대지진 취재를 위해 도쿄로 떠난 다른 동아일보 팀을 이틀 후에 만나면서부터 음식 부족은 해결됐다. 그들은 도쿄에서 비상식량을 가득 사서 재난 현지로 달려왔다.

2004년 말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인근에서 해안 지진이 발생했을 때 태국 푸껫을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태국에서도 쓰나미로 수천 명이 죽었지만 음식 부족 문제는 없었다. 쓰나미는 일부 지역에만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 지진을 취재하러 갈 때는 반드시 물과 음식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고 바리바리 음식을 쌀 필요는 없다. 현장 취재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또 해당 국가 정부가 국민들이 굶어 죽도록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음식 공수는 분명히 이뤄지기 때문에 초창기 이삼일 정도를 버틸 음식이면 충분하다.

사명감과 공포 사이
동일본 대지진 취재는 초창기 쓰나미 피해에 집중됐지만 하루 이틀 사이 원전 공포로 옮겨 갔다. 기자도 동부 해안 지역의 쓰나미를 취재하다 동아일보 도쿄지사로 옮겨 원전 취재를 했다. 그러자 쓰나미 피해 취재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공포가 밀려 왔다.

특파원 선배들은 원전 문제로 가족들만 한국으로 보냈다. 서부 도시 오사카에 호텔을 장기간 예약해 놓고 매일 전화를 걸어 하루치 방을 취소해 나갔다. 원전 문제가 심각해지면 곧바로 오사카로 옮길 태세였다. 물론 그런 상황이면 교통편이 마비돼 실현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어찌 됐건 대피 준비는 했다.

미국 등 주요 국가의 대사관 직원들은 일본을 떠나기 시작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한국 기업 직원들은 수시로 동아일보 지사로 전화를 걸어 “원전 상황이 어떠한가. 우리도 옮겨야 하나”를 물었다. 일부 직원은 한국 본사에서 정식 철수 명령이 떨어지지 않자 근무가 없는 토・일 이틀 동안 오사카로 가서 피신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3월 21일 도쿄에 비가 왔다. 원전 사고가 난 이후 첫 번째로 도쿄에 내린 비다. 필시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있을 터였다. 일본인들은 인사말처럼 “비는 절대 맞으면 안 된다”고 하고 다녔다. 하지만 ‘방사능비’가 내리는 도쿄 모습은 분명 르포를 할 의미가 있었다.

일단 “르포를 하자”고 결정을 내렸다. 그 이후에는 취재 수위를 놓고 특파원 선배들과 한창 논의를 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를 여기저기 다니고 제대로 인터뷰를 하면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반면 택시만 타고 도쿄 시내를 돌아선 르포가 밋밋해진다.

결국 절충된 수준으로 취재했다. 택시를 타고 대부분 취재를 하지만 사진을 찍어야 하는 중요 포인트에서는 택시에서 내려 취재를 했다. 당시 도쿄 시내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도쿄 시민들이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도쿄는 ‘죽은 도시’처럼 조용했다. 하지만 기자는 일부러 문밖을 나와 돌아다녀야만 했다. 기자라는 직업의 사명감과 아이러니가 동시에 느껴졌다.

아사히 기자, 이틀치 음식물 준비
아사히신문 기자와 같은 택시를 타고 리쿠젠타카타 시를 취재한 적이 있다. 이 마을은 80% 정도가 쓰나미로 형체 없이 사라진 곳이다. 그때 아사히신문 기자가 한 행동은 한국 기자들에게 재난취재 교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소개한다.

3월 15일 리쿠젠타카타 시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은 앞서 사흘 동안 취재했던 현장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피해 규모가 컸다. 취재 욕심이 솟아올랐다. 또 기사 송고를 위해선 최대한 빨리 취재해 인터넷이 되는 센다이 시로 되돌아가야 했다. 택시가 멈추자마자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그때 동승했던 아사히신문 기자가 팔을 잡았다. 쓰나미가 다시 올지 모르니 준비를 좀 하자고 했다. 그는 언제 준비했는지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꺼내 신었다. 못이나 철근에 발목을 다칠 것을 대비해서다. 고개를 들더니 주위 높은 지대도 꼼꼼히 확인했다. 산등성이 방향을 가리키며 “쓰나미가 다시 오면 저쪽으로 달리자”고 말했다.

물과 음식을 배낭에 담더니 기자에게도 이틀치 정도를 챙기라고 조언했다. “어찌 될지 모르니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택시 운전사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7, 8시간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회사에 전화해 주세요.” 너무나 철저한 준비에 기자는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재난취재에 앞서 당연한 준비 절차이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을 전혀 고민하지 않고 취재현장으로 달려가는 기자가 잘못된 것이었다.

각 언론사는 재난취재와 관련해 사전 준비사항과 현장에서 지켜야 할 원칙들에 대해 미리 매뉴얼을 하나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취재기자는 기사 욕심을 조금 버려야 한다. 두 번의 대형 재난취재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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