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일본 대지진 취재기

홍석재
한겨레 편집부 기자


위험한 현장으로 진입하는 인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있었으면 한다. 이를테면 재난지역에 파견되는 인력들에
대한 최소한의 신분 증명, 사후 절차 따위다. 그랬다면 적어도 외국에서 무면허 운전자가 되고 싶지 않아 백방으로
알아보고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저지르며 내내 마음을 졸여야 하는 일은 아예 생기지 않았으리라.



고백하건데, 나는 범법자였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난 3월 11일 한겨레는 사회•국제•사진부 인력을 각각 한 명씩 차출했다. 당시 경찰청에 출입하던 필자는 사회부 인력이면서, 일본어를 (조금) 구사한다는 등의 이유로 이들과 함께 재난 이틀째 긴급히 도쿄에 도착했다.

재난 지역인 일본 북동쪽(도호쿠) 지역으로 가는 차편은 이미 절단이 난 상태였다. ‘일본의 대동맥’이라고 불리는 도호쿠 고속도로 역시 일본의 ‘재해대책기본법’에 근거해 일반 차량은 진입 자체가 차단됐다. 대부분 언론사들이 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200여 구 이상 시신이 발견된 센다이 지역을 목적지로 삼았다.

이동수단은 택시나 렌트카 뿐이었다. 택시는 센다이로 이동하는 데만 20만 엔가량을 요구했다. 무려 300만 원에 이르는 돈이다. 사고 현장에서 이동을 거듭해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방법은 렌트카 뿐이었다.

문제는 국제운전면허증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사고 당일 오후 2시 30분께 ‘출장’ 통보를 받았다. 곧바로 집으로 돌아와 짐을 꾸린 뒤, 공항으로 떠났지만 항공권 확보가 불가능했다. 다음날 새벽에 다시 공항으로 향하게 되면서 국제운전면허증을 만들 틈을 찾지 못했다.

일본의 지인을 통해 어렵사리 차를 빌렸지만, 결국 무면허운전자가 돼야 했다. 일주일 이상 위험천만한 무면허•무보험 운전을 한 셈이다. 첫날 도쿄에서 센다이까지 진입하는 데 무려 20여 시간이 걸렸다. 이후에도 50여 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아야했다.

호텔 무단 침입에 공무원 사칭도

‘주거 침입죄’도 저질렀다. 재난 발생 초기 일본 동북부 지역 해안가에 10미터 안팎의 쓰나미가 몰아닥치면서 인근 지역이 초토화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문에 바닷길을 통하던 석유 공급로마저 완전히 차단됐다. 비교적 타 언론사보다 이른 시기에 센다이로 진입한 한겨레는 이런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센다이로 향하는 국도는 꽉 막혀 있었다. 정부가 일반 차량의 고속도로 진입을 차단하자, 편도 1~2차선에 불과한 국도에 차량들이 몰려든 것이다. 오후 4시께 도쿄에서 출발해 13일 새벽 2시까지 16시간가량을 힘겹게 달렸지만, 목적지까지는 100km 이상이 남았다. 센다이가 가까워질수록 대부분의 주유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게다가 도시에서 멀어진 국도 한복판에서 민가 한 채 찾기도 어려웠다. 이미 주유등이 노랗게 들어온 채로 40km 이상을 달린 상태였다. 갑자기 차량이 멈춰 설 경우 당장 생사마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강진 탓인지 정문을 비롯해 건물 일부가 파손된 작은 호텔이 눈에 들어왔다. 국도 한복판에서 덩그러니 서 있는 호텔이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보였다. 숙소를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체면이나 염치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기온이 섭씨 3~4도가량이었는데, 새벽으로 접어들자 찬 기운이 고스란히 몸으로 파고들었다. 호텔에 무단 진입해 로비에서 잠을 청했다.

‘공무원자격사칭죄’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국내에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는 꽤 무거운 범죄다. 3월 18일 한겨레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터질 듯한 위기 상황에서 일단 도쿄로 철수 준비를 했다. 센다이에 도착한 지 5일째였다. 이때 우리는 센다이 영사관에서 ‘긴급•특수 차량 운행증’을 받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긴급•특수 차량에 대해 주유소에서 기름을 내주도록 방침을 정했다. 취재 차량도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국내 언론사는 많지 않았다. 영사관에 ‘운행증’을 요구하자 “어떻게 알았냐”며 A4 용지에 차량번호와 영사관명 등을 적어 ‘운행증’을 프린트 해줬다. 영사관 직인 찍기 조차 꺼리는 걸, 다시 요청을 해서 겨우 얻어낸 것이었다.

휘발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도쿄로 돌아가던 중간에 오도 가도 못하게 될 수 있었다. 또 소요시간이 15시간 이상 예상되는 국도와 달리 도쿄까지 3시간 안팎에 도착할 수 있는 고속도로를 이용할 가능성도 있었다. 일본 내 대부분의 차량들이 기름을 구하지 못해 주유소 앞에 수백 미터씩 줄지어 서 있던 상황이었다.

특수차량 운행허가증과 운전면허증, 신분증을 갖고 경찰에서 고속도로 통행 허가증을 받아오라고 했다. 무면허 상태였던 우리는 더 말을 붙이지 못하고, 다음 고속도로 톨게이트까지 가서 이번에는 ‘대사관 직원’이라고 얼버무렸다. 상황이 다급해서 경찰한테까지 갈 시간이 없었다고도 했다. 도호쿠 고속도로가 열렸다. 사람 좋게 생긴 할아버지 직원이 인상을 살피더니 바리케이드를 올려준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자연재해와 이에 따른 돌발 상황에 모두가 적지 않게 당황했을 터이다.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거나, 사망의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언론사 직원들에게만 특별 대우를 해달라는 것은 너무나 염치없는 행동이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불법에 가까운 행동을 하면서도 내내 불편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다만, 재난지에서 모두 빠져나오는 상황과 반대로 위험한 현장으로 진입하는 인원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새신랑 기자도 원전 가까이

이를 테면, 재난지역에 파견되는 인력들에 대한 최소한의 신분 증명, 사후 절차 따위다. 그랬다면 적어도 외국에서 무면허 운전자가 되고 싶지 않아 백방으로 알아보고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저지르며 내내 마음을 졸여야 하는 일은 아예 생기지 않았으리라. 숙소 등과 관련한 현지 정보 문제도 비슷하다. 비상 상황 때, 현지의 우리 국민 보호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 공무원들이 현장에 파견된 취재진까지 챙길 일은 분명 아니다.

취재진들이 해당 언론사들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만큼, 정부가 외교부 출입기자 등을 통해 교민들에게 주는 최소한의 안전 정보만이라도 언론사를 통해 제공해주는 방법은 어떨까? 특정한 대책을 받아들여 달라는 것은 아니다. 취재진들도 정부가 보호해야 할 국민의 한 사람인데, 지금은 ‘무대책’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든다. 행여라도 사산이 나기 전 한 번쯤 대책을 논의해 보자는 제안을 드려본다.

적어도 필자의 경우엔 우리 대사관 등이 이름•연락처는 물론이고 인원 파악을 하는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 산골 마을에서 누군가 고립됐다면, 결국 사망 사고라도 발생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재앙에 대한 비난을 받으면 또 ‘사후약방문’을 하지는 않을지….

정부 탓만은 아니다. 언론사 쪽의 안전 문제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한겨레는 후쿠시마 원전 50km 지역까지 진입을 했었다. 꽤 위험한 지역이다. 불안에 떨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방사능 물질 검사를 받고 있었다. 한켠에 끼어서 이 검사도 함께 받아보았다. 이동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는데다,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 하루 만에 센다이로 철수했다.

국내 언론사 대부분이 인근 지역에 접근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취재 기자들에게서도 어떤 안전 장구를 보급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늦깍이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에 다녀온 지 5일 만에 이번 재난 현장에 투입됐다. 회사 선•후배들과 취재원들에게 “어떻게 새신랑을…”이란 얘기를 무던히도 들었다. “기자로 먹고 사는데 누군가 안가면 또 어쩔 것이냐”고 답을 해준다. 한편으로, 기대를 해본다. 다음 번 출장 뒤에는 주변에서 “이번 출장 때 마련됐던 안전 대책이 부족하진 않았냐”고 물어와 주기를. 출장 위로 술자리에서 그런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기를….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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