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일본 대지진 취재기

남상욱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기자라고 해서 위험이 비켜 나가는 건 아니다. 방사성 물질이 ‘기자증(證)’ 앞에서 약해지거나
피해 가는 건 아니다. 센다이로 출발하기 직전 데스크가 내린 뜻밖의 지시가 생각났다.
“절대 기사 욕심을 내지 말 것”,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 등.


재난 취재의 기회는 느닷없이 오기 마련이다. 지진과 홍수 등 재난 자체가 예고 없이 오는 것이니 취재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3월 발생한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의 소식도 난 집에서 편안하게 누워 접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피해 지역을 누볐다. 수많은 일본인을 만났고, 적지 않은 내외신 기자들을 봤다. 이제 한 달이 훌쩍 지났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흔들렸던 여진의 흔적을 아직 몸은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흔들린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간혹 “일본 갔다 왔는데 방사능 검사는 받아 봤냐?”고 묻는다. 혹은 “좀 떨어져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방사능 묻겠다”는 농을 던지는 이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재난 지역, 위험 지역을 갔다 왔구나”라고 한 달 전을 되짚어 본다.

“내일 출발해야 한다. 준비해라.”

재난 취재는 간단한 지시로 시작된다. 언론사마다 다르겠지만, 현재 한국일보 사회부는 그렇다. “○○일(보통은 내일) 출발해야 하니, 빠뜨리는 거 없이 준비물 챙겨라”라는 게 지시의 핵심이자 사실상 전부다.

취재를 앞둔 기자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재난 현장의 위험성에 마음은 불안해지고, 모호하기만 한 현지 사정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지’ 허둥지둥하게 한다.

물론 자문(諮問)이 있다. 이번 일본 지진 같은 경우 뉴질랜드 지진, 지난해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 몇 년 전 있었던 파키스탄 지진에 파견됐던 경험자에게 물어보는 식이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일본은 다르다.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하고, 출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불안해진다.

기자는 다행히 지진 발생 일주일이 지난 후, 속칭 ‘2진’으로 투입됐다. 1진으로 간 기자들로부터 현지 사정을 들을 수 있었고, 필수품에 관해서도 조언을 얻을 수 있었다.

만에 하나의 상황을 모두 머릿속에 넣고 생존 물품을 주섬주섬 가방 안에 넣었다. 항공편과 짐 속에 넣어간 각종 비상 음식, 현지 코디네이터(통역과 운전, 취재 안내 등을 맡는 사람) 예약 등이 최소한의 필수품이었다.

3월 17일 도쿄에 도착했다. 공항에 앉아 지도를 펼쳤다. 가야 할 곳은 센다이 등 지진과 쓰나미 피해 지역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 기자들은 도쿄에 있거나, 서북쪽 지역으로 ‘대피’를 한 후였다. 이미 일본은 지진이 아닌 방사능이라는 ‘2차 재난’을 겪고 있었다.

기자라고 해서 위험이 비켜 나가는 건 아니다. 방사성 물질이 ‘기자증(證)’ 앞에서 약해지거나 피해 가는 건 아니다. 센다이로 출발하기 직전 데스크가 내린 뜻밖의 지시가 생각났다. “절대 기사 욕심을 내지 말 것”,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을 명심할 것” 등. 기자에게 기사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지시는 생경한 말이다. “정말 내가 위험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어디까지 취재를 하고, 어디부터 포기해야 할까?”

도쿄에서 만난 통역은 “위험 지역에 갈 수 없다”며 동행을 거절했다. 급히 센다이에 있는 통역을 구했다. 그와는 중간에 만나기로 하고 신칸센을 탔다. 열차는 후쿠시마현 경계까지만 운행했다. 후쿠시마현은 사고 원전이 있는 곳이다.

늦은 밤 센다이 영사관에 도착했다. 지진 발생 직후 50명에 가깝던 기자들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뒤늦게 도착한 기자를 보고 영사관 직원은 의아한 듯 물었다. “다 떠났는데 지금 온 겁니까?”


“현장에서의 판단은 너의 몫이다.”

재난 지역 취재 기자에게는 소위 매뉴얼이라는 것이 있다. ‘기자의 안전을 우선시할 것, 취재원에게 무리하게 접근하거나, 질문하지 말 것’ 등 일종의 취재 가이드라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매뉴얼은 현장에서 참고일 뿐이다.

18일 오전 지진과 쓰나미로 마을 전체가 송두리째 날아간 미나미현의 미나미산리쿠에 도착했다. 1만여 명이 살고 있던 해안에 접한 마을은 ‘기초 부분만 남았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흔적뿐이었다.

그곳을 헤매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누군가는 무너진 집에서 ‘그나마 건질 수 있는 물건’을 찾았고 다른 이는 ‘혹시나 그 사람이 있을까’라며 마을을 서성였다.

다카하시 니카(38)는 후자에 속했다. 쓰나미가 몰아치기 직전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그는 “피하라는 전화였을 텐데 받지 못했다”고 했다. 마을 방재청에 근무한다는 남편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거라고 그는 전했다. 그리고 연락은 끊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을을 돌아다니며 남편의 흔적(최악은 시신)을 찾고 있었다. 기자는 그에게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의 그를 취재하는 것은 ‘무리한 접근이자 취재’이기 때문이다.

취재 현장에서는 항상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언론이 쉽게 말하곤 하는 ‘국민의 알 권리’ 그리고 ‘취재원에 대한 예의’. 둘 사이에서 적절한 선택과 조율을 해야 하는 것은 현장 취재 기자의 몫이다. 어느 누구도 데스크를 향해 ‘취재를 해야 할까요?’라고 묻지 않는다. 데스크는 현장 상황을 알지 못한다. 다카하시의 슬픈 얼굴을. 그의 한숨을 말이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의 최대 피해지역인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

“누가 네 마음대로 가라고 했나.”

3월 21일 오후 기자는 후쿠시마로 들어갔다.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사무국장은 “여전히 교민들이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사무국장이 있는 고리야마시는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60km 떨어진 곳이었다. 한국 정부가 대피하라고 권고한 지점(원전 반경 80km)보다 20km나 안쪽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솔직히 두렵고 망설여졌다. ‘가라고’ 강요할 사람은 없었다. “기자에게도 안전은 중요하다”는 주장에 ‘아니다’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결국 갔다. 지금도 왜 갔을까 생각을 해 본다. 기자의 사명감? 아마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남이 가지 않은 곳에 가서 남이 보도하지 않은 내용을 쓰고 싶은’ 욕심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속보’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재난 취재 현장에서도 속보 경쟁이 있을까? 물론 있다. 센다이 영사관에 몰렸던 수십 명의 기자들. 모두에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실제 지진 발생 초기 한 기자는 원전 10km 지점까지 갔었노라고 고백했다. 한국일보의 초기 투입 기자 역시 20km 지점까지 들어갔다가 추후에 방사능 검사를 받기까지 했다. 기자들 간에, 혹은 언론사 간의 경쟁은 재난 취재 현장에서 기자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독(毒)’인 셈이다.


“한국 언론을 보지 마시고
 일본 신문이나 방송을 보세요.”

취재 중 한 한국 교민이 물었다. 그는 “한국 언론은 일본 지진 현장을 과도하게 보도하고 있다. 왜 그런 것이냐”고 했다.

사실 일본 현지 언론은 한국과 조금은 다른 보도 행태를 보였다. 한국의 기자는 “보다 적극적으로 현장으로 들어가겠다”는 모습인 반면 일본의 언론은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일본의 언론은 건조했지만, 한국의 언론은 보다 감성적이었다.

한 방송사 기자들과 현장을 다닌 가이드는 “한밤중에 지진 현장을 가다가 죽을 뻔했다”고 토로했다. 아직 현장 수습이 되지 않았지만, 참혹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겠다는 기자의 사명감과 욕심 때문에 그들은 차를 타고 달렸을 것이다. 아마 그 화면은 지진 방송 내내 변함없이 뉴스를 장식했을 것이다. 목숨을 건 취재였을지도 모른다.

센다이에서 만난 NHK 기자는 재난 취재 매뉴얼 중 일부를 알려줬다. ‘취재 인사는 “어려운 일 당해 고통이 많으시겠습니다”, “힘내십시오” 등을 얘기해야 한다. 피해자 사진을 찍을 땐 허락받아야 한다. 도시락은 취재원 눈에 띄지 않게 차 안에서 먹어야 한다. 공중전화는 재난 피해자가 먼저 써야 하므로 휴대전화를 써라’ 등등.

우리는 아직 정확한 메뉴얼 혹은 재난 취재 현장에서 취재 기자가 해야 할 올바른 태도에 대해 알지 못한다. 반면 ‘매뉴얼에 매몰된 기자는 기자가 아니다’, ‘현장에서의 판단은 기자가 전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말만이 떠오를 뿐이다.

하지만 이번 일본 지진에서 보인 한국 언론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한 번쯤 논의와 토론이 필요한 때가 됐다고 본다. 언제쯤이면 속보를 놓고 보다 자극적인 화면을 구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기자의 안전이 무시되는 취재 환경이 바뀔 수 있을까.

일본 취재 현장에서 한 언론사가 일본에 파견된 119 구조대의 비상식량과 물을 한 상자씩 가져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재난 현장에 파견된 기자에게 ‘안전망’은 없었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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