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추적 60분 ‘일본 대지진 한 달, 끝나지 않은 공포’ 제작기

강민승
KBS 시사제작1부 프로듀서



그동안 재난 지역 취재, 보도가 상당히 많았음에도 회사 내에는 재난 지역 취재 요건과 관련한 어떠한 매뉴얼도 없었다.
취재진이 챙긴 건 공사 현장에서 쓰는 안전모, 면장갑, 그리고 KBS NEWS 로고가 박힌 스티커가 전부였다.
안전을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우리는 취재진이다, 재난 현장에 접근하고자 한다’라는 일종의 표지에 불과했다.



호텔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갑자기 현지 로밍 폰에서 요란한 알람 소리가 울렸다. 무슨 소린가 싶어 열어 보니 ‘Earthquake’이란 메시지가 떴다. 그리고 잠시 후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어…’ 하는 사이 로비 전체가 흔들흔들. 빨리 밖으로 뛰어나가야 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발이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었다. 흔들거림이 계속되자 멀미가 느껴졌다. 바닥에 주저앉아 흔들림이 가라앉길 기다리는 수밖에. 방에 올라와 TV를 켜니 미야기 현에서 진도 6의 강진이 발생했단다. 난생 처음 겪는 지진의 느낌,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 달 전과 비교해 상황이 달라진 건 없었다. 아니, 상황은 더욱 악화돼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에서는 쓰나미로 인해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이 대량의 방사능을 뿜어내고 있다. 더욱이 지금까지도 강한 여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KBS 김영선 PD가 일본 미야기 현에서 취재 중이던 지난 4월 8일 진도 6의 지진이 다시 발생했다.

몰랐던 건 아니다. 여진이 계속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이 일본으로 향했다. 취재를 위한 그녀의 일본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실 ‘추적 60분’은 제작진 전원을 투입해 지난 3월 16일 일본 대지진 참사 현장을 생생히 보여 준 전력이 있다. 그때도 PD 5명(정현덕, 김영선, 허양재, 양천호, 강민승)이 센다이, 미나미산리쿠, 게센누마, 나토리 시 등의 대참사 현장으로 직접 향했다.

4월 13일 수요일에는 ‘추적 60분’에서 ‘일본 대지진 한 달, 끝나지 않은 공포’ 편이 나갔다. 지난 3월 16일에 나갔던 ‘긴급 취재 최악의 대지진, 지금 일본은?’의 속편 격이다. 1편이 대지진과 쓰나미가 덮친 피해 현장 중심의 이야기였다면, 2편은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한 지 한 달 만인 일본의 현재,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이 속속 날아오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두 가지를 함께 보여 주기 위해 1편을 공동 제작했던 김영선 PD는 다시 일본으로 가야 했고, 나는 국내에서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됐던 이른바 ‘방사능비’를 맞아야 했다.

단 3시간 만에 현지 급파 결정
3월 11일 금요일 오후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 미야기 현의 나토리 시를 집어삼키는 모습이 NHK를 통해 생생히 보도됐다. 그 영상을 보자마자 우리는 일본행을 결정했고, 쓰나미로 인해 이미 폐쇄된 센다이 공항 대신 후쿠시마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확보했다. 취재진은 PD와 VJ가 한 팀으로, 일단 세 팀이 현지에 급파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이 모든 과정이 단 3시간 만에 이뤄졌다.

사실 일반 해외 취재의 경우 사전에 기획돼 거쳐야 할 결재 경로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이템은 그런 과정이 모두 생략,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상황은 대지진과 이로 인한 엄청난 쓰나미가 와서 도호쿠 지역이 완전히 파괴됐다는 것뿐이었다. 이런 재난 현장에 취재를 갈 때는 무엇부터 챙겨야 할까. 취재진도 급하게 꾸려졌고, 무엇을 얼마나 가져가야 할지 몰라 취재진은 허둥지둥했다. 그동안 재난 지역 취재, 보도가 상당히 많았음에도 회사 내에는 재난 지역 취재 요건과 관련한 어떠한 매뉴얼도 없었다. 취재진이 챙긴 건 공사 현장에서 쓰는 안전모, 면장갑, 그리고 KBS NEWS 로고가 박힌 스티커가 전부였다. 그러나 이것은 안전을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우리는 취재진이다, 재난 현장에 접근하고자 한다’라는 일종의 표지에 불과했다.

오후 2시쯤 취재진은 일본 후쿠시마 공항에 도착했다. 일단 잘 도착했다는 보고를 하기 위해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가 불통이었다. 취재진이 가져간 전화의 종류는 모두 세 가지였다. 취재진 개개인의 전화, 출발 직전 확보한 국제 로밍폰, 그리고 혹시 몰라 가져온 위성 전화기가 있었다. 이 전화들이 모두 불통이었다.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현지의 발전 시스템이 모두 붕괴됐고, 그로 인해 통신 시스템도 모두 두절됐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취재진 개개인의 전화는 모두 스마트폰이었다. 취재진은 모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본사와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접속이 원활하지 않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을 제대로 보고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현지 코디네이터가 안 왔다. 확인해 보니 코디는 도쿄에서 후쿠시마 공항으로 오고 있는 중이긴 한데, 지진으로 도로가 붕괴되면서 두세 시간이면 올 거리를 무려 10시간 넘게 오고 있다고 했다. 도로가 꽉 막힌 것은 단지 도로가 붕괴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본 도호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되는 여진과 이로 인한 쓰나미가 또 올 수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대거 피난길에 올랐던 것이다. 그나마 성한 도로에 차량들이 일제히 몰리면서 도로는 완전히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연락도 안 되고, 말도 안 되고, 먹을 것도 없고…. 완전히 고립된 취재진은 공항에서 그저 코디가 오기만을 하릴없이 기다렸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나. 사실 본격적인 공포는 그때부터였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공항 내 TV 쪽으로 향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이 폭발했다고 한다. 방사능이 유출되고 있다고 했다. 후쿠시마 공항은 원전에서 반경 40km 안에 있다. 일본 정부는 일단 반경 10km 내의 주민들부터 대피시켰다. 40km는 안전하다고 했다. 정말 안전할까. 취재진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우리처럼 공항에서 코디네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모 방송사의 취재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항에서 벗어나라는 본사의 명이 떨어졌다며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물었다. “K는 안 가세요?” 내게도 아내가 있고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딸이 있다. 사실 후쿠시마 원전이 불안하다는 소식은 출발 전에 접했다. 최대한 원전 가까이 접근해 현재 상황을 취재하려 했는데, 원전 취재를 포기하라는 본사의 지시가 하달됐다. 코디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전날 오후 7시쯤 후쿠시마 공항을 출발해 다음 날 오전 1시 30분이나 돼서야 센다이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에 도착했다. 영사관에는 이미 교민 수백 명이 몰려와 있었다. 강당에는 갓 태어난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피난을 온 교민들이 서로 뒤엉켜 잠도 편히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주로 미야기 현에 살고 있던 교민들은 지진과 쓰나미가 몰려올 때의 정황을 취재진에게 자세히 설명해 줬다.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일단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전기와 통신이 모두 두절됐고 미야기 현 대부분의 지역에 석유, 가스, 수도 공급이 끊겼다고 했다. 도로가 마비됐고 바다는 물론 하늘도 막혔다. 일본 도호쿠 지역의 모든 인프라가 마비된 것이다.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일본의 타 지역으로부터 그 어떤 것도 도호쿠 지역으로는 공급되지 못했다. 음식을 해 먹을 수도, 어디서 사 먹을 수도 없었다. 잠을 잘 수도 없었고, 여전히 추운 날씨임에도 제대로 난방조차 돌아가지 않았다. 노숙자와 같은 행색을 보이는 건 취재진뿐만이 아니었다. 도호쿠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모습으로 있었다.


 
악화되는 원전 상황,
밀려오는 지진의 공포

취재진이 그곳에서 1차 취재를 마친 것은 새벽 4시쯤. 잠시나마 눈을 붙이고자 차가운 대리석 위에 깔린 카펫에 누웠다. 나는 한번 잠들면 쉽게 깨지 않는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부터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에 피로는 극에 달했고, 정말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곯아떨어졌다. 그런 내가 눈을 붙인 지 2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을 떴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분명히 대리석 위에 누워 있었는데, 마치 물침대 위에 누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지진이었다. 비몽사몽인 상황에서 나는 다급히 일어났다. 다른 선배들은 이미 납작 엎드려 있었다. 자지 않고 있던 정현덕 PD는 이렇게 말했다.

“다 잠들어 있었고 실내는 매우 조용했다. 그래서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플라스틱 물통 속 물이 갑자기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정말 머리가 쭈뼛 섰다.”

새벽이었다. 너무 놀라 잠을 깬 나는 영사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1km 이상 줄지어 서 있었다. 한참을 걸어 맨 앞으로 가보니 그곳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일본의 서쪽 야마가타 시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한 행렬이었다. 오전 9시 30분쯤 후쿠시마 원전의 3호기가 폭발 직전이라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그 사람들은 피폭의 위험 때문에 이곳 센다이를 벗어나려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확보한 차량은 두 대뿐. 정현덕 PD와 허양재 PD가 차를 타고 이미 피해 현장으로 나간 상황이었다. 내게 남은 건 두 다리와 일본어 정말 조금 할 줄 아는 입뿐이었다. 방사능 피폭이라니 암 발병률을 현격히 높이고 주변 사람은 물론 후대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그 방사능 피폭 말인가?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빨리 벗어나야 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자 되뇌고 있었다.

오후 1시 23분 정현덕 PD가 나를 데리러 왔다. 후쿠시마 원전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돼 가고 있었고, 지진도 수시로 찾아와 취재진은 공포에 떨었다. 우리를 괴롭혔던 건 현지 상황으로 인해 취재가 미진하면 어쩌나 하는 부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카메라를 들이대면 들이대는 곳마다 그림이었고 이야기였다. 우리를 진짜 두렵게 했던 건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원초적 공포였다. 그리고 그 공포는 점점 더 현실로 다가왔다.

3월 14일 오전 9시 정 PD와 나는 미나미산리쿠로 향했다. 가는 길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길은 곳곳이 침하돼 끊겨 있었고, 어떤 곳은 여전히 침수 중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시계는 정확히 11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미나미산리쿠를 20km 정도 앞두었을 때였다. 라디오에서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듭되는 쓰나미 경보,
살아남기 위해 뛰었다

“미야기 현 앞바다를 정찰하던 자위대 헬기가 3m 높이의 쓰나미가 해안가로 몰려가고 있는 걸 목격했다. 이것은 15분 안에 미나미산리쿠를 비롯한 동쪽 해안가에 상륙할 것이며, 이럴 경우 해안가에서는 10m 이상 높이의 해일로 변해 내륙 10km 안쪽까지 피해를 입힐 것이다.”

우리는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아니, 이번에는 말 그대로 경악했다.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도로 위를 달리는 차를 쓰나미가 덮치는 영상을 보고 왔다. 우리에게도 이제는 그런 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라디오에서 시시각각으로 전하는 소식을 우리 코디는 동시로 통역했는데, 그는 점점 차의 속력을 늦추더니 결국엔 멈춰 섰다. 그는 더 이상은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의 생각은 현재 해안에 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허양재 PD와 후발로 온 도쿄와 아오모리의 김영선 PD, 양천호 PD의 신변으로 옮겨 갔다. 그들은 괜찮을까. 전술했듯 이미 모든 통신이 두절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번 떨어지면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정현덕 PD와 나는 본사에 이 소식을 긴급히 전달하기 위해 미나미산리쿠로 가던 차를 돌려 인근 마을을 찾았다. 아무 가게나,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전화를 쓸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이 마을 역시 유무선 통신 전부가 끊겼다는 답만이 돌아왔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당장 선후배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 탄식만 나왔다(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들은 그 시각에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해안에 있지 않았다고 한다).

라디오에서 경고했던 15분이 지났다. 다행히 쓰나미는 중간에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고 라디오는 다시 전했다. 우리는 다시 미나미산리쿠로 향했다. 미나미산리쿠 항구 입구에 도착하자 현지 경찰이 우리의 앞길을 막았다.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 이후부터 발생하는 모든 위험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우리의 취재를 허용해 줬다.

미나미산리쿠 항구의 모습은 정말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디가 집이고 어디가 항구인지 알 수 없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건물에 큰 배가 박혀 있었다. 곳곳에 뒤집어져 있는 차량 안에는 해초류가 덕지덕지 널려 있었고, 젖어 있는 가족사진으로 이 주변이 사람이 살던 마을이었다는 것을 짐작만 할 수 있었다. 원래 이곳에는 1만 7,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1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행방불명이라고 했다.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이 혹시 저 멀리 보이는 해변에 누워 있진 않을까.’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무서웠다. 혹시 또 올지도 모르는 쓰나미 때문이었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촬영하느라 정신없이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차에서 내린 곳에서 내가 혼자 너무 멀리 와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애애애애애애애앵~”

불안한 예감은 왜 단 한번도 틀리지 않는 걸까. 쓰나미 경보였다. 어제와 오늘 오전, 그리고 세 번째 경보다. 그러나 지금은 바다가 코앞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아직은 해일이 보이지 않았다. 저 먼 바다에서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고 있는 걸 목격하고 뛰기 시작하면, 이미 늦은 건 아닐까.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자신의 평생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던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가.

그 순간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그리 많지 않았다. 뛰는 거다, 무조건 차에서 내렸던 곳으로. 촬영이고 뭐고, 지금은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함께 갔던 VJ와 나는 살기 위해 정신없이 뛰었다. 차가 있어야 할 곳으로 뛰었다. 그런데 차가 없었다. 차가 있어야 할 곳에 차가 없었다.

차는 어디로 간 걸까. 나와 VJ는 미나미산리쿠 입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사이렌 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안내 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도 계속 어서 대피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뛰었을까. 우리를 찾고 있는 차가 보였다. 우리는 그 차를 타고 미나미산리쿠 항구를 황급히 벗어났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수그러들 생각을 않는다. 여진은 계속되고 있고, 그래서 또 다른 형태의 피해가 충분히 예상된다. 또 한 번의 대지진이 발생한다면, 그 장소가 이번에는 도쿄가 될 것이라고 지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도쿄 인근에는 후지산도, 시즈오카의 원전도, 교민과 일본인들도 있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사태가 발생한다면 나를 비롯한 우리 취재진은 언제든지 다시 현장으로 달려갈 각오가 돼 있다.

예고 없는 재앙,
‘회사가 뒤처리’ 믿음 줘야

‘추적 60분’의 일본 대지진 관련 방송은 1, 2편 모두 평단과 시청자들을 만족시켰다. 그건 모두 제작진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취재진의 열정이 ‘아무 준비도 없이, 그들을 언제든 현장에 투입해도 된다’고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취재진이 그런 위험한 현장을 마음껏 누빌 수 있는 건 ‘혹 내가 어떻게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회사가 뒤처리를 해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덕분이다. 우리는 여전히 일본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재난 지역 취재 매뉴얼은 만들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안 할 말로, 누가 다치면 그제야 부랴부랴 매뉴얼을 만들 것인가. 사고가 일단 나면 그때는 이미 늦은 거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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