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연평도의 봄’

강윤중 경향신문 사진부 기자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사진기자들은 추가 포격의 위험 속에서 섬으로 들어갔다. 포격과 관련한 뉴스들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면서 경향신문 역시 일주일 단위로 사진기자를 번갈아 투입했다. 위험하고 추운 데다 먹고 자는 문제까지 수월하지 않은 곳에서 타사와의 경쟁까지.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자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근무를 따져 가며 데스크가 지명해 출장을 보내는데 어찌된 일인지 출장은 나를 피해 갔다. 좋아해야 하나 섭섭해야 하나. 표정 관리가 쉽지 않았다. 사진기자라는 존재는 큰 현장과 동떨어진 곳에 있으면 불안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현장을 지키는 것이 사진기자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리라.

연평도 포격과 관련한 뉴스도 잦아들 때쯤인 지난 2월 18일. 경향신문 기획물인 <포토다큐 ‘세상’>의 마감을 1주일여 앞두고 연평도로 향했다. 무엇을 할까 기획을 하는 단계에서 아무래도 ‘현장’인 연평도를 밟지 못했던 것이 가슴 한쪽에 걸려 있었던 모양이다. 연평도로 결정하자 마음이 좀 개운해졌다. 이즈음 섬을 떠났던 주민들이 이른 봄바람과 함께 돌아오고 있었다. 상처를 딛고 다시 시작하는 주민들의 삶을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아 기록하겠다며 연평도에 생애 첫발을 디뎠다.


묻고 따질 필요도 없이 ‘발품’이 최선

민박집에 짐을 풀자마자 카메라를 메고 마을을 돌았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던 포격 현장을 먼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사진과 TV의 네모난 앵글 속에 머물던 현장이 튀어나오는 듯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들려오는 깨진 유리의 아우성, 포격에 내려앉은 가옥 위로 흐르는 바람, 그 바람에 실린 매캐한 냄새 등 오감으로 현장을 느꼈다. 긴장감과 긴박감은 현저히 떨어졌지만 현장감은 다시 살아났다. 바로 이것이 현장이구나. 뒤늦게 왔지만 참 잘 왔다며 자족했다. 주민의 아픔보다 현장에 대한 감상에 빠져든 것에 일말의 죄책감도 들었다.  
   

‘포토다큐’라는 게 보통 호기롭게 시작하나 막상 시작하면 막막해져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행히 여러 차례 경험으로 막막함에 대한 대처 방안은 진작부터 마련돼 있었다. 묻고 따질 필요도 없이 ‘발품’이다.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메인 사진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며 종일 마을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단순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정직한 대가로 돌아온다.

그렇게 본격적인 취재는 시작됐다. 쓸쓸하고 적막했던 섬은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집안의 묵었던 때를 벗겨 내고 어질러져 있던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외벽과 담장에 새로 페인트칠을 하는 등 주민들에게 하루해는 무척이나 짧았다. 썰렁했던 학교 운동장과 인적이 드물었던 골목에 끼리끼리 어울린 아이들이 몰려다니며 웃음이 흘러들었다. 바닷물이 빠지자 할머니들은 유모차를 밀고 갯가로 나가 굴을 땄다. 항구에서는 어민들이 통발과 부표를 손보며 봄 꽃게 잡이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인부들이 동원돼 무너진 담을 다시 쌓고 깨지고 뒤틀린 창을 새로 갈아 끼우고, 겨우내 얼었던 보일러와 수도관 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른 아침부터 저물녘까지 마을을 채우던 망치 소리가 잦아들자 연통에 연기를 피워 올린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저녁 준비하는 칼질 소리가 완연한 봄 공기에 떠다녔다. 집과 골목에 오랜만에 켜진 등이 연평도의 밤을 환하게 밝혔다.


메인 사진은 항상 마지막에

예정됐던 5박 6일을 부지런히 다녔고 발품을 판 만큼을 기록했다. 늘 그렇듯 손을 터는 시점에는 겸허해지며 아쉬움을 곱씹는다. ‘최선을 다했다’, ‘이 정도면 됐다’며 아쉬움을 밀어내며 자위했다. 떠나는 날 아침. 짙은 안개에 휩싸인 마을을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고 민박집에서 밥을 먹으며 배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인천항을 떠났어야 할 배가 안개로 뜨지 않았다고 했다. 시계가 확보되면 배를 띄울 예정이란다. 비슷한 날씨였던 어제도 정상적으로 배가 들어왔던 터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다.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결국 여객선은 뜨지 못했다. 안개처럼 짙었던 외로움은 하루 더 연장됐다. 이날 오후 터덜터덜 버릇처럼 마을을 걷다가 한 노인이 연방 개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는 장면을 목격했다. 망원렌즈를 갈아 끼우고 먼발치에서 다가가며 셔터를 눌렀다. 셔터가 요란을 떨며 ‘이게 메인, 이게 메인’ 하고 외쳐댔고 나의 오른손 검지는 이에 화답하듯 힘을 잔뜩 준 채 셔터를 더 깊숙이 눌렀다. 할아버지의 개 누렁이는 석 달 만에 돌아온 할아버지 부부를 집 앞마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버리고 떠나 걱정했던 누렁이가 굶어 죽지고 않고 살아 있어 대견하고 또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애초 내가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간결한 이 사진 안에 다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배가 떴다면 이 장면은 지면에 실리지 못했을 것이다. 발품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확인했고 메인 사진은 항상 마지막에 나온다는 놀라운 징크스를 다시 한번 경험했다. 결국 이 사진이 다큐 지면의 절반을 차지했다.



돌아보니 주민들의 남은 상처를 들여다보고 보듬기보다 ‘마감’에 더 몰두해 있었던 것이 못내 안타깝고 민망하다. 3개월간의 피란 생활로 인한 피로와 조금은 예민해져 있는 상황에서도 셔터 소리를 인내해 주신 연평도 주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음에 연평도 오면 민박집에서 돈 쓰지 말고 우리 집 빈 방에서 묵어요. 돈 안 받을 테니.” 누렁이 할아버지가 떠나는 내게 말씀하셨다. 연평도에서의 일주일,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 간직할 것 같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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