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명작 스캔들

민승식 KBS 교양국 프로듀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재미없고 지루하다? 이런 기존의 생각을 뒤집겠다는 역발상에서 시작한 게 바로 ‘명작 스캔들’이다. 명작이 스캔들을 만나면? 역설적이면서도 기발하지 않을까? 명작을 스캔들로 풀어 가는 프로그램, 그렇다고 지적 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다. 명작에 숨겨진 스토리텔링을 발굴하여 명작이 명작인 이유를 흥미진진하게 풀어 간다. 그래서 감히 다루기 어려운 ‘명작’을 누구나 쉽게 지껄일 수 있는 ‘스캔들’로 연결 짓는다. 발칙한 프로그램 ‘명작 스캔들’은 그렇게 기획됐다. 그때가 2008년 봄이다.


명작+스캔들=문화예술 버라이어티

왜 명작이 스캔들을 만났을까? 한 시대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은 당대의 상식을 넘어 기존의 틀을 깨는 작업을 통해 진보해 왔다. 이 상식의 틀을 깨는 순간을 ‘스캔들’로 포착한다. 그래서 명작을 뜯어보고 뒤집어 보면서 입체적 시선의 모험을 시청자들께 선물한다. 전문적인 대화만으론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없다. 문화의 근엄함과 무거움을 과감히 벗어던진 문화예술 토크쇼를 만든다.

예술 작품의 숨겨진 뒷얘기를 통해 재미와 감동 모두를 고려한 신개념 ‘문화예술 프로그램’이다. 교양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희망사항, 엉뚱 발랄 유쾌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명작 스캔들’은 이렇게 준비되고 있었다. ‘문화예술 버라이어티’의 출발인 것이다.  

‘명작 스캔들’은 전문가들을 내세운 전형적인 고급문화 프로그램들과의 차별화가 필요하다. 단순하게 고전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자기들만 아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일반 시청자의 시선에서 쉽게 풀어 주는 역할을 맡아 줄 사람으로 ‘조영남+김정운’을 내세웠다. 최고의 ‘딴짓’으로 예술엔 정답이 없다는 걸 온몸으로 실천하는 놀맨, 스캔들 박사 조영남. 엉뚱한 입담과 풍부한 지식,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재미와 교훈의 균형을 잡아 줄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당대의 괴짜 두 사람이면 된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조영남과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김정운, 시대의 입담꾼들을 전면 배치해 교양 토크쇼라는 콘셉트를 강화시킨다.


흥미로운 스캔들로
명작의 가치를 이해하자



명작을 유쾌한 수다로 풀어내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하자는 거창한 목표도 재밌어야 풀어 갈 수 있다. 두 MC의 기용은 그림과 음악을 모르는 일반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서 전혀 모르는 상태로 들어도 알 만한 이야기로 명작을 풀어 가자는 뜻이었다. ‘조영남+김정운=MC’에 대한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재미있고 발칙한 발상이다”. “말도 안 된다”.

그러나 말이 되게 만들고 싶었다. 더 이상의 조합은 찾을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고, 두 분 역시 흔쾌히 출연을 결정해 주었다.

드디어 엉뚱 발랄 유쾌한 문화예술 버라이어티가 시작됐다. 첫 방송 아이템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의 표절 시비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담긴 비밀.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 그림 속 메뉴는 장어 요리다.” 첫 스캔들로 제격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명작이지만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간직한 ‘최후의 만찬’. 성서적 관점이 아닌 다빈치가 즐겼던 르네상스적 메뉴 ‘장어 요리’가 최후의 만찬 식탁에 올랐다는 주장은 대박이었다. 명작으로서의 대중성과 인지도, 이야기의 다양성, 풍요로운 스토리텔링까지 모든 걸 갖춘 아이템이었다. 이론을 제기한 학자를 찾아 제작팀은 직접 미국 매사추세츠까지 날아갔다. 이탈리아 요리사가 르네상스식으로 만든 장어 요리를 스튜디오로 들고 나오는 정성도 들였다.

스캔들을 스캔들로만 몰아갈 수는 없었다. 흥미로운 스캔들을 통해 명작의 가치를 뜯어보고 이해하자는 게 ‘명작 스캔들’의 태생적 운명이기 때문이다. 스캔들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다큐멘터리 기법을 도입했다. 명작에 얽힌 스캔들의 논리적 증거와 증언을 열심히 찾아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명작의 위대함을 캐내 영상화하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컴퓨터 특수영상 작업을 통한 그림 복원과 재현, 특수 장비를 동원한 영상의 고급화는 필수였다. 그리고 스튜디오에서는 보이는 대로 느낌대로 마음대로 지껄이는 마당이 열렸다. 전문 교양서적에는 나와 있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던 명작의 비밀과 숨겨진 매력을 찾아냈다.

드디어 파일럿 방송이 나갔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세계인의 교양, 서양 미술과 클래식 음악을 토크쇼로 풀어낸 시도가 신선했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흔히 명작은 교과서나 책에서 보고, 배우고 그냥 시험 문제에 나오는 그런 걸로만 알고 있었다. 시험을 위한 암기 대상쯤으로 여겼던 예술 작품들에 대해 이면에 숨겨진 배경을 찾고, 새롭고 재미있게 그리고 다양한 시선으로 취재해 시청자와 명작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보고 즐기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의 장이 되고자 했던 기획 의도가 통한 것이다.

파격적 편성, 주말 밤 10시 10분 프라임 타임. 드디어 최초의 문화예술 버라이어티 ‘명작 스캔들’은 KBS 2TV 토요일 밤 프로그램으로 정규 편성됐다. 시작이 화려했다. 그러나 사실 교양 프로그램의 주말 밤 10시 편성은 제작자 입장에서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다. 드라마 제국 대한민국의 토요일 밤 10시는 방송사들마다 사활을 건 화제작들이 집중 편성되는 시간대다. 교양 프로그램, 그것도 순수예술문화 프로그램이 막장 드라마들과 정면 대결을 하게 된 것이다. 명분은 좋았다. 2TV의 공영성 강화, KBS 교양 프로그램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새해 첫인사, 첫 방송은 클림트의 ‘키스’로 정해졌다. 시청자와 첫 만남은 입맞춤으로 출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달콤한 시작과는 달리 클림트의 ‘키스’는 흡혈귀 그림? 첫 방송 스캔들은 충격적이지만 화제만발이었다.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명작 중 하나인 ‘키스’가 흡혈 장면을 그린 것이라니…. 대단한 역발상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의 논거와 시대적 상황을 찾아내는 일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국내 연구 자료의 부족은 시작부터 취재를 어렵게 만들었다. 예상대로 대한민국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빈약한지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현실은 제작진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 제작진은 직접 작품을 찾아 현지 취재를 하고, 재현을 통한 상황 설명과 공연도 열심히 준비했다.
 
시청자들이 예술작품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했다. 실제 크기의 작품 실사 프린팅은 물론 같은 재료와 기법을 통한 모작 과정도 명작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명작 스캔들’은 그동안 받은 기대와 격려에 비해 성적이 초라했다. 시청률 3.8%, 오로지 시청률 잣대만으로 모든 게 재단되는 게 싫었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드라마 열풍, 방송 3사의 드라마 공세는 가히 난공불락이었다. 축복(?) 속에 시작됐던 ‘명작 스캔들’은 시청률이란 벽에 가로막히며 문화 프로그램의 한계를 드러내는 듯했다. 모두가 원하지만 보지는 않는 문화 프로그램의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인터넷 게시판과 SNS 그리고 주변의 반응은 좋았다. 그랬기에 문화 프로그램의 어려운 현실을 ‘명작 스캔들’이 극복해 내고 싶었다.

두 번째 스캔들, 세 번째 스캔들을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르네상스 화가 보티첼리의 명작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폐결핵 환자다,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미인도’는 독으로 그렸다, 생상스가 ‘동물 사육제’ 중 백조만 생전에 발표한 이유는 악플러 때문이다, 르 코르뷔제의 ‘롱샹 성당’에는 게 껍질이 숨어 있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는 최초의 BGM이다, 브뤼헐의 ‘네덜란드 속담’에는 우리나라 속담도 있다.” 재밌고 흥미진진한 명작 이야기는 더욱 풍요로워져 갔다. 
 

카메라 감독 전담제 도입

완벽한 팀워크는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는 초석이다. 교양 프로그램으로는 예외적으로 카메라 감독 전담제가 도입됐다. 최고의 실력파 촬영 감독 2명이 ‘명작 스캔들’ 팀으로 파견됐다. 카메라 감독 전담제는 어떤 프로그램보다 영상미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 프로그램 특성을 고려할 때 최상의 선택이었다. 또 한정된 영상과 인터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D, 3D 그래픽은 필수였다. 국내 최고 수준의 컴퓨터특수영상팀도 의기투합해 합류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에서 활용되면서 감각적이고 밀도 있는 영상 작업 장비로 이미 검증이 끝난 DSLR 카메라도 투입됐다. DSLR 카메라는 영상의 고급화에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해외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조명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 곳이 많다. 이럴 때 DSLR 카메라는 광량이 적은 실내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심도와 화려한 색감, 독특한 앵글 구사는 실감 나는 명작 감상의 기회를 마련해 줬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교양 프로그램에서 DSLR 카메라의 본격 사용도 처음이었다. 시청자들에게 명작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는 감각적 영상 전달을 위해 사용한 DSLR 카메라, 이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또한 제작 여건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각국의 피디 특파원과 현지 취재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프로그램 특성상 아이템 소재가 거의 국외에 있다 보니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선택은 가장 큰 어려움인 ‘시간과 돈’의 문제를 쉽게 풀어 줬다.  

명작 스캔들이 새롭게 평가받는 이유는 기존의 교양 프로그램이 문화예술을 이야기하는 방식인 진지함과 엄숙함을 깬 형식에 있다. 그렇다고 내용까지 진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명작의 기본적 이해를 돕고자 다큐멘터리 기법을 도입했고 전문가 패널의 해설 또한 교양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켜 주고 있다. 작품을 뒤집어 보는 재해석에도 그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는 선에서 충분한 설명을 하고자 했다. 이제 우리만의 문화적 역량으로도 ‘서구 걸작’을 분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 주고 싶었다.

예술 토크쇼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재기 넘치는 전문 코멘테이터들이 필요하다. 지금은 코멘테이터 시대라고 한다. 코멘테이터, 쉽게 말해 ‘해설자’다. 해설이 예능보다 재밌다. 학자들은 교양과 예능의 장르 구분이 점점 무의미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교양적인 주제를 예능적인 감각으로 풀어 가는 새로운 소통법을 갖춘 패널이 요즘 TV에서 각광을 받는 이유다. 예능보다 재미있는 해설이 가능해진 요즘 시대에 맞는 예술 토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재기 넘치는 전문가가 많이 필요하다. 명작을 더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는 코멘트를 해 주는 해설자, 아이템에 맞는 전문성과 대중과의 소통 능력을 갖춘 유쾌한 수다쟁이를 찾는 게 급선무다. 빈약한 우리 교양 시장의 한계는 여전히 우리 프로그램의 적이다. 저조한 시청률(?)은 명분도 가치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보지 않는 프로그램은 존재 이유가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가치가 시청률이란 잣대 하나만으로 평가되는 현실엔 불만이다. 획일화된 문화만이 최선인 듯 창의성이 결여되고 다양성이 부족한 세상은 재미없다. 남들이 다 하는 이야기 방식으로 똑같이 하면 무슨 감동이 있을까. 때로는 엉뚱하지만 재치 있는 BNG를 들으며 미소 짓는 여유를 가지면 안 되는 건지 궁금하다. 여기서 BNG는 ‘뻥 앤드 구라’다.


예술엔 정답이 없다

TV 앞에서 받는 유쾌한 음악•미술 수업. 대중매체가 시청자에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문화적 재미를 줌으로써 사회적 교양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명제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교양 있다는 건 삶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교양이 없는 이유는 모여 앉으면 아이돌 복근, 허벅지 얘기하고, 정치인 욕하는 것 외엔 할 얘기가 없다는 데 있다.” 김정운 교수의 말이다. 지금 이 말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왜 문화예술 작품은 누구나, 아무렇게나 얘기하고 감상하면 안 될까? 그들만의 전유물? 허위의식이다. 어떻게 자기들만의 전유물인가. 누구나 슈베르트를 말하고 마네 모네를 얘기할 수 있는 거다. 멘델스존 음악이 그 시대엔 서태지의 노래였는데 말이다. 클림트의 ‘키스’를 앞에 두고 “키스할 때 저 자세가 가능해요?”라며 지극히 세속적인 수다를 떨 수 있는 소위 고급 문화프로그램이 바로 ‘명작 스캔들’이다. 우리의 시선으로 명작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교양의 재미를 만끽했으면 한다. 교양 프로그램의 변화에는 시청자들의 오랜 기대가 담겨 있다. 인터넷 게시판과 트위터 등의 반응을 통해 절감할 수 있다.

앞으로 제작진이 어떤 흥미로운 소재를 심층 취재해 풍성한 얘깃거리를 펼쳐내는가가 프로그램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예술을 모르고 산 일반 시청자들에게도 ‘명작 스캔들’은 활짝 열려 있다는 점에서 인정받을 만하지 않을까? 예술엔 정답이 없다. 예술에 대해 누구나 자신의 주관적 느낌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 예술 감상법이다. 그 방법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 주는 편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이제 비틀스의 노래도 아이템으로 준비해야겠다. 명작 스캔들이 교양 프로그램계의 ‘비틀스 코드’가 되고 싶다면 욕심일까? ‘프라임타임에서 문화 프로그램도 된다’라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싶다. 그리고 ‘명작 스캔들’의 성공으로 후배 피디들이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Posted by in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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